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09화 (209/687)

209화

아마 너 정도면 지금쯤 어렴풋이라도 고민하고 있겠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길을 걸어야 하는가?

‘...안 했는데.’

무슨 관직이 좋을까 생각은 했어도 진리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같은 고민은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한은 침묵했다.

해골 교장이 진지하기도 했거니와, 관직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줘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저번에 몇몇 교수들이 보여준 관료들에 대한 적대심을 생각해보면...

유익한 조언을 하나 해주겠다. 인간 시절, 나는 왕자였지.

“예?????!!!!!”

이한은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방금 그 반응은 뭐지?

“어쩐지 기품이 넘치셨습니다.”

고맙다. 아름다운 소국의 왕자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린 시절부터 고민이 많았다. 왜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야 하는가? 왜 왕국의 사람들은 팔고(八苦), 칠정(七情), 오욕(五慾)에 괴로워해야 하는가?

“그... 그러셨군요.”

생각보다 너무나도 멀쩡하고 훌륭했던 해골 교장의 젊은 시절에, 이한은 그대로 압도되었다.

그러던 나는 깨달음을 얻고 육신을 버렸다. 리치가 되었지.

“...어, 진도를 너무 많이 건너뛰신 것 아닙니까?”

그 사이 지루한 수행의 이야기를 들어서 무엇하겠나.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육신을 버림으로서 방금 말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거다.

“......”

마법사로서 경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마법사가 갖춰야 할 덕목은 많아졌다.

단순히 마력을 통제하고 마법을 이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다스리고 심상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감정 또한 마법사가 맞서 싸워야 할 적이었다.

오욕칠정과 팔고에 휘둘리다보면 아무리 총기 있는 마법사라 하더라도 방황하기 십상.

해골 교장은 그런 고뇌의 굴레를 단칼에 잘라냈다.

...그 방법이 살아있는 육신을 버린다는 극단적인 방법이긴 했지만.

“저는 리치는 좀...”

리치화하란 게 아니다.

해골 교장은 이한이 거부감을 보여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걸어온 길을 말해준 거지. 꼭 육신을 버리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진리를 향한 길은 무한히 많으니.

해골만 남아서 푸른 안광을 깜박이고 있었지만 그 모습에서는 숨길 수 없는 현기(玄機)가 느껴졌다.

이한은 해골 교장이 처음으로 현자처럼 보였다.

평소에는 사악한 성의 보스 몬스터처럼 느껴졌는데...

내가 보기에, 너는 꼭 리치화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을 거다.

“어째서입니까?”

이한은 살짝 기대했다.

아무리 괴팍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대마법사였다.

그런 사람이 이한을 높게 평가해줬는데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그 나이에 일부러 여러 교수 밑에서 스스로 고생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그런 고행(苦行)은 심신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아주 잘 선택한 셈이지. 계속 그렇게 하도록 해라.

“......”

이한은 정색했다.

칭찬인데 왠지 기분이 매우 나빴던 것이다.

*         *         *

‘필로네 마을이 아니군.’

이한은 마차 밖으로 보이는 번영한 도시의 풍경에 놀랐다.

에인로가드와 가장 가까운 마을인 필로네 마을도 그 특수성 때문에 상당히 번성한 마을이었다.

원래 일반적인 마을은 마법사나 모험가, 용병들이나 상인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의 도시는 그런 필로네 마을을 압도했다. 어디에 시선을 던져도 활기와 번영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그랑덴 시인가.’

마법학교와 가장 가까운 도시.

필로네 마을에 갔을 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의 가문 사람들은 다 그랑덴 시로 갔습니다’란 말을 들은 바로 그 도시였다.

이한은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출신이 출신인 만큼 대도시를 봤다고 놀라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신선한 건 사실이었다.

워다나즈 가문에 있을 때는 가문의 저택과 영지에서만 머물렀던 것이다.

선물 사오도록.

-예.

“?”

이한은 해골 교장이 밖의 소환수에게 명령을 내리자 멈칫했다.

무슨 선물이지?

오고닌의 탑에 방문하는 일이잖나. 선물 없이 방문하는 건 무례한 일이지.

“......”

복수하러 가는데 이미 충분히 무례하지 않나 싶었지만, 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 이 무쇠대가리 간식도 사와라.

-예.

잠시 후.

마차 안에 예쁘게 포장된 과자상자 몇 개가 날아들었다.

감초사탕, 팥양갱, 유밀과 등등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해골 교장은 그 구성을 보고 불평했다.

품위라고는 없는 과자들이군. 어린애들이나 좋아하는 과자 아닌가?

-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과자로 사왔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어리석은 놈 같으니.

-죄송합니다.

됐다. 먹어라.

그러나 이한은 섣불리 과자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해골 교장은 의아해했다.

왜 그러지? 독 안 들었다.

“이거 먹으면 혹시 저번에 약속하신 보상이 날아가는 거 아닙니까?”

......

저번에 버두스 교수가 사고 친 걸 수습한 보상을 주기로 했던 것이다.

해골 교장은 정말 오랜만에 감탄했다.

이제까지 봐왔던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저렇게 신중한 놈은 없었던 것이다.

그건 별개다. 약속하마.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외투 주머니에 과자 넣지는 마라.

바로 주머니에 과자를 넣으려는 신입생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아주 살짝 자신이 세운 교칙을 반성했다.

그러고 보니 첨탑지기가 선물을 줬다고 들었는데.

“아. 예.”

너무 과분한 선물인 것 같지만...

‘으음.’

이한은 첨탑지기가 줬던 꾸러미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 꾸러미에 든 목걸이는 괜찮은 아티팩트였다.

...투명화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이미 투명화 허리띠를 갖고 있고 투명화 마법을 갖고 있는 이한에게 있어서 투명화 목걸이는 좀 과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이미 투명화 마법을 익혔습니다.”

뭐? 빠르군. 어떤 걸 익혔지?

“<고나달테스의 투명 망토>요.”

이한의 대답에 해골 교장은 놀라움과 동시에 만족스러움을 내보였다.

벌써 익힐 줄은 몰랐는데. 진도가 제법 빠르군.

‘젠장. 역시 그렇게 한 번에 익힐 필요가 없었던 거였군.’

다른 투명화 마법보다 내가 만든 마법이 낫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언제나 그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효과를 가진 아티팩트들이라 하더라도 쓸모가 없는 게 아니다. 심지어 동일 마법을 이미 익혔어도 말이다. 잘 생각해봐라.

“?”

이한은 해골 교장이 남긴 말을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해골 교장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해골 교장은 소환수가 사온 선물을 보고 투덜거렸다.

아니 선물 꼴이 이게 뭔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딴 카드뭉치라니.

-오고닌 님도 들어 있는 카드입니다만.

오고닌이 나온 카드라고 다 선물이 되겠나. 나 원 참...

해골 교장은 툴툴대며 카드뭉치를 공중에 파라락 띄우더니 구석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오고닌 주제에 왜 이렇게 성능이 좋은 건가?

-하지만 주인님께서 저번에 말씀하시기를, 카드의 성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쓰는 마법사가 중요하다고...

밖에서 말하던 소환수가 입을 다물었다. 이한은 해골 교장이 침묵 마법을 쓴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너 가져라.

‘난 이미 완성된 덱이 있는데.’

그러나 이한은 얌전히 받았다.

해골 교장이 더 심술을 부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해골 교장이 던진 카드는 오고닌이 아니었다.

자기 본인이었다.

덱에 넣어서 잘 써라. 좋은 카드니까.

“어... 예.”

이한의 덱은 게임 초반부터 상대 마법사의 체력만을 집요하게 노리고 빠르게 깎아버리는, 기민한 저비용 덱이었다.

소환하는 데에 마나가 많이 드는 해골 교장 카드는 쓰기 힘들었지만...

이한은 해골 교장이 보는 앞에서 바로 덱에 카드를 넣었다.

아부는 언제나 진심으로 해야 하는 법.

실제로 이한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흐뭇해했다.

직접 사러 가야겠군.

“예? 그래도 됩니까?”

이한은 멈칫했다.

아무리 제국 사람들이 온갖 기괴한 마법사들의 모습에 익숙하다지만, 해골만 둥둥 떠서 날아다니는 리치를 보고도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한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해골 교장은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검푸른 비단으로 만든 예복을 두르고, 귀족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유의 우아한 동작으로 지팡이를 잡는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제국 대가문 출신의 귀족이었다.

이한은 그것 자체에는 놀라지 않았다. 해골 교장 정도 되는 대마법사가 사람의 껍데기를 쓰지 못한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었다.

이한이 놀란 건 해골 교장의 사람 형태 얼굴이 어디서 본 적 있는, 낯익은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각상...!’

본관 3층을 돌아다닐 때 본 적 있는, 잊혀진 짐승의 동상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지키는 조각상.

그 때는 ‘누군진 모르지만 더럽게 잘생겼군’싶었는데...

왜 그러지?

“실로 품위 넘치셔서 감탄했습니다.”

네 두 번째로 큰 장점은 품위가 무엇인지 아는 바로 그 심장이다.

해골 교장은 아부에 기분 좋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흑마법은 정말 무섭군.’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지만, 그 조각상을 보고 해골 교장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가자.

“예.”

두 사제(師弟)는 마차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혼잡한 인파 속에서도 둘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끌어 모았다.

해골 교장은 황동과 청동의 조각으로 고급스럽게 장식된 서점의 문을 열었다.

<이칼텐의 절우관(絶愚館)>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서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말쑥하게 잘 차려입은 직원이 자세를 바로잡고 고개를 숙였다. 보자마자 둘의 신분을 짐작한 것이다.

“마도서 있나?”

“예. 물론입니다.”

“가장 쉬운 환상마법개론서 하나 주게. 잘 포장해서.”

“...?”

이한은 해골 교장이 뭔 짓을 하나 의아해했다.

물론 이 정도 규모가 되는 서점에 마도서 하나 없을 리 없겠지만, 가장 쉬운 환상마법개론서라니.

“설마 그걸 선물로 주실 겁니까?”

“눈치가 빠르구나.”

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둘이 알아서 해결을 봐야 할 일이다.’

두 마법사가 서로 원수졌을 때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이한은 시선을 돌리고 다른 책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이게 오고닌이라는 분이 쓴 책입니까?”

“보자... 맞군. 놈이 젊었을 적에 쓴, 결계에 있어서의 환상마법 고급응용... 아. 좋은 생각이다. 저것도 사가야겠군. 놈 앞에서 읽어주자꾸나.”

“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이건 포장해줄 필요 없네. 들고 갈 거거든.”

“......”

오고닌의 탑에 갈 때가 가까워져오자 이한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해골 교장이야 어디 가서 시비 걸고 나와도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한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사람 아닌가.

환상 마법사들이 해골 교장이 아니라 이한에게 원한을 가지면...

‘투명 마법을 써야 하나?’

*         *         *

선물 구입을 마치고 마차가 도시를 빠져나오자 그 때부터는 하늘을 달리기 시작했다.

기암절벽으로 층층이 채워진 산맥 한가운데에 뾰족하게 솟은 마법사의 탑이 보였다.

해골로 돌아온 교장은 대뜸 입을 열었다.

생기사귀(生寄死歸).

같은 말 한 마디라도 마법사가 내뱉는 말 한 마디는 그 의미가 달랐다.

그리고 방금 해골 교장이 뱉은 말도 그랬다.

이한은 그 말이 시동장치가 되어 거대한 마법이 발동되었음을 깨달았다.

세계가 뒤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사는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질서를 교활하게 비틀 줄 아는 존재였지만, 가끔 세계의 질서 자체를 자신의 뜻대로 새로 써내는 마법사도 있었다.

해골 교장이 바로 그런 경지에 오른 마법사였다.

...그걸 남의 탑에 와서 시비 걸 때 쓰고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