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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17화 (217/687)

217화

자. 가서 준비해 와라. 참고로 던전 안에서 야영할 준비도 하는 게 좋을 거다.

“아니... 교장 선생님...”

해골 교장은 학생들이 할 말을 잃은 틈을 타 재빨리 밀어붙였다.

강의실 밖으로 강제로 쫓겨난 학생들은 우두커니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떡하지?”

“뭘 어떡해... 준비해와야지.”

“진, 진짜 던전인가?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

누군가 희망 섞인 말을 중얼거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눈치 빠른 학생들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해골 교장이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절대로 만만치 않을 거라고.

“워다나즈. 네가 그래도 교장 선생님과 친하잖아. 뭐라도 말해보면 안... 어디 가? 워다나즈?”

부탁하려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은 의아해했다.

이한이 벌써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야영 준비하러 가는데.”

“...우리도 준비하러 가자.”

이한의 대답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학생들도 모두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냥 준비나 해야겠다!

*         *         *

“던전 안에서 야영할 경우에는 뭐가 필요하지?”

탑으로 돌아온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어수선했다.

해골 교장 때문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런 부분에서 다들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경험해 본 적 없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하물며 안에서 야영이라니.

던전 안을 공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야영까지 각오하는 건 몇 배로 만만찮은 일이었다.

심지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에인로가드에 들어오기 전까지 대부분 평범한 야영도 경험해본 적 없으니...

다른 세 탑 학생들과 달리 어수선한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에게는 의존할 만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한이었다.

“워다나즈. 이 도끼 갖고 갈까?”

“단검이면 충분해. 부피 늘릴 필요 없어. 혹시 모르니 못하고 망치, 밧줄도 챙기자. 배낭에 넣어.”

“이 헝겊이랑 기름병을 굳이 가지고 가야 해? 우린 마법 쓸 수 있는데...”

“마력이 넘쳐나는 거 아니잖아.”

이한의 말에 열심히 준비하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모두 동작을 멈추더니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한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내가 계속 너희들하고 붙어 있을 거란 보장이 있나?”

“그... 그렇긴 해.”

“이한. 난 너하고 같이 움직이게 해줘.”

잽싸게 안전한 자리에 줄서는 가이난도를 밀어내고, 이한은 친구들의 배낭을 점검했다.

들어오기 전에는 노기사 알라르롱에게.

들어온 후에는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인 닐리아에게.

프로들에게 꾸준히 훈련 받은 만큼 이한은 이제 경험 많은 용병이나 모험가들 사이에 있어도 ‘저 마법사, 제법 노련한데?’수준이 되어 있었다.

“만약을 모르니까 각자 통조림을 하나씩 배낭에 넣도록. 가죽 물통에 물 채우는 거 잊지 말고. 연장 무겁다고 배낭에서 빼지 마. 언제 쓰게 될지 모르니까. 가이난도. 카드 빼. 잃어버린다. 황녀님. 간식 그렇게 많이 배낭에 넣으셔도 다 못 드십니다.”

“?!”

자신을 도와주는 추종자들을 위해 간식을 챙기던 황녀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이미 이한은 돌아서서 다른 친구들의 배낭을 점검하고 있었다.

황녀는 억울함을 가득 담아 눈동자를 깜박였다. 가이난도가 옆에서 말했다.

“이해해. 나도 간식을 더 갖고 가고 싶었... 악! 저게 날 밟았어?!”

“지금 휴게실이 번잡해서 실수하신 거겠지.”

“아니야! 일부러 밟았다고!”

“황녀님이 너냐? 그런 유치한 짓을 하게? 타고나신 핏줄이...”

그렇게 말하던 아산은 멈칫했다.

가이난도가 더 말해보라는 듯이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뭐, 워다나즈가 말하기를 사람의 가치를 정하는 건 그 사람의 핏줄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이래.”

“닥쳐.”

30분 후.

준비를 마저 끝내고 다시 도착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보며, 해골 교장은 입맛을 다셨다.

너무 준비가 잘 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탑을 망쳐놓는다더니...’

해골 교장은 속으로 한탄했다.

원래 매 해 신입생들이 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 제일 엉망인 게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었다.

다른 세 탑 학생들과 달리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를 받고 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도서관에 들어가서 엉엉 울고, 구르고,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꼬르륵대는 꼴이 몇 배로 재밌었는데...

그 즐거움을 이번 해에는 못 보게 되었다.

단 한 명의 학생 때문에!

‘저 놈은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면서 대체 왜 저렇게 생활력이 좋은 건지 모르겠군.’

제국에서 손꼽히는 대귀족 가문 출신이 왜 저렇게 생활력이 강한 것일까?

특이해도 보통 특이한 게 아니었다.

그래. 잘 들어갔다 와라.

“예. 잘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이한의 대답에 해골 교장은 괜히 심술이 났다.

왠지 눈앞의 제자는 정말로 잘 들어갔다 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고나서 일행하고 떨어졌으면 좋겠군.’

‘설마 사고나서 일행하고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아닌가?’

이한은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지만, 설마 해골 교장이 그렇게 치졸한 생각을 할까 싶었다.

‘그런데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군.’

“교장 선생님.”

왜?

“다른 탑 친구들은요?”

다들 먼저 들어갔다. 너희가 마지막이고.

이한은 그 대답에 의아해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야 ‘워다나즈 놈하고 엮이지 말자’고 후다닥 들어갈 수 있었지만, 다른 탑은 아니었던 것이다.

“기다려준 친구들은 없습니까?”

소풍 가냐? 내가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역시.’

이한은 놀라지 않았다.

해골 교장 성격에 다른 탑 학생들과 다 같이 들어가는 일을 허락해준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있는 인원도 찢어놓고 싶은 것 같은데...

‘하지만 상관없다.’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 놓은 것이다.

-닐리아. 난 언제나 그림자 순찰대를 존경해왔다는 걸 알아줘. 그런데 혹시 도서관에 따로 들어가게 된다면 나중에라도 만나서 협력하지 않겠어?

-당연히 해줄 일이고,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지금 혹시 내가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림자 순찰대 칭찬하고 시작한 건 아니지?

-티질링 사제. 내가 매번 다과를 대접한 사실을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혹시 탑의 사제들을...

-같이 협력하시는 걸 원한다면 편하게 말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받아들일 텐데 왜 굳이...

다행히 다른 탑의 친구들은 이한의 제안을 선선히 받아주었다.

심지어 더르규도.

-더르규.

-이한.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라.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어쨌든 고맙다.

‘심층부는 무리겠지만 저층부에서는 할만하다.’

이한은 나름 계산이 있었다.

도서관이 악명이 높다지만 이한 같은 학생들은 사실 도서관에 몇 번 들어온 적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주말에 입구 근처의 서고를 뒤져서 책을 찾았던 것이다.

입구 근처 저층부는 그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파악하기 쉬웠다.

친구들과 저층부에서 만난다면...

“......”

“......”

쿠오오오오오오오-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간 이한은 광활한 황야의 모습에 경악했다.

서고들이 가득 들어찬 익숙한 도서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웬 처음 보는 던전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의 도서관을 본 적 있는 아산도 황당함에 입을 뻐끔거렸다.

“말... 말도 안 돼. 아무리 괴물이 잡혔다지만 이렇게 모습이 바뀌는 게 말이...”

그러나 이한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공기에서 흐르는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던 것이다.

어떤 괴물인진 모르겠지만 그 괴물이 막고 있던 도서관 내 마력의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막혀 있던 흐름이 강하게 터져나온 덕분에 도서관 내부 구조도 그만큼 격렬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리라.

...물론 왜 그럴 때 1학년들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아산. 정신 차리자. 받아들여야 해.”

“그... 그렇지만...”

“다들 움직인다! 각자 주변을 제대로 관찰하도록.”

이한은 마음을 추스르고 외쳤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정신을 차리고 각자 지팡이를 붙잡았다.

“저기 서고다!”

드넓은 황야 곳곳에 서고들이 있었다. 도착한 학생들은 서둘러 책들을 훑어보았다.

“틀렸어. 쓸만한 게 하나도 없어.”

“대체 어떤 놈이 여기다가 자기가 낙제한 시험지를 꽂아 놓은 거야?”

“다음 서고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탐사.

이동.

수색.

단순하고 어려울 것 없는 작업이었지만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잡아먹는 작업이기도 했다.

하물며 이계(異界)에 가까운 이런 황야라면 더더욱 그랬다.

마력의 흐름으로 인해 마치 흙먼지라도 낀 것처럼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고, 태양은 보이지도 않는데 뜨거운 낮볕이 내리쬐고, 건조한 바람이라도 한 번 불면 학생들이 여럿 콜록였다.

“이한.”

“알고 있어.”

이한은 요네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책이 급하다지만 휴식을 취하지 않고 강행군을 계속하면 친구들이 먼저 쓰러지는 수가 있었다.

“잠깐 휴식하자.”

학생들은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몇몇 학생들은 바로 물통에 물부터 채우려고 했다.

아직 수원(水源)을 찾지는 못했지만 마법사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파티에 마법사를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넣으려는 이유!

“샘솟아라!”

자신있게 지팡이가 휘둘러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야. 넌 배운지가 언젠데 물 생성 마법을 실수해. 됐어. 내가 할게. 솟아나라!”

그러나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 주문이 별로였나? 하지만 밖에서는 잘 됐는데?”

“샘솟아라! 샘솟... 컥.”

그제야 학생들은 깨달았다.

이슬에 가까운 물방울이 허공에 맺히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이 실패한 게 아니었다.

이 근처의 강력한 마력 흐름 때문에 물 생성 마법의 효과가 크게 약화된 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학생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번 주에 때 이른 혹한이 찾아와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학생들이었다.

이런 자연의 마력 흐름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알았다.

“물 얼마나 남았지? 여유분 있는 사람?”

“한 모금도 안 남았는데...!”

“따로 갖고 온 물통을 꺼내봐!”

‘실수했다.’

이한은 혀를 찼다.

이한이야 만약을 몰라서 예비 가죽 물통을 넣어놨지만 친구들은 아니었다.

괜히 무게를 늘리기 싫어서 말하지 않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를 시켜놨어야 했다.

마법학교 안에서는 정말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한이 해도 안 되나?”

“그걸 말이라고 하냐?”

가이난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아산이 구박을 줬다.

“괜히 워다나즈 마력 낭비시키지 마. 안 그래도 책임질 일 많은데.”

“근데 낭비해도 상관없지 않...”

‘맞는 말이긴 하군.’

친구들은 가이난도의 말에 ‘니가 그러고도 친구냐’하고 구박했지만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납득했다.

하긴 낭비해도 상관없긴 하지!

“샘솟아라.”

이한은 한 번 확실하게 확인하고 가기 위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거대한 물의 구체가 샘솟았다.

“......”

“...워다나즈. 내가 언제나 널 천재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었나?”

“이한. 저 자식들 물 주지 ㅁ... 읍읍.”

친구들은 재빨리 가이난도의 입을 손으로 막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누가 워다나즈가 마법 실패한다고 한 거야?”

“설마. 난 들은 적도 없어.”

‘나중에 다들 가문에 돌아가면 놀라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

친구들의 가죽 물통에 차가운 물을 채워주면서 이한은 생각했다.

만약 친구들의 가문에서 ‘대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성격이 이렇게 변했지?’라고 놀란다면, 그건 이한의 잘못이 아니라 해골 교장의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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