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하여간 다음부터는 혼자 들어가 보는 게... 다 듣고 가라!
이한이 휘적휘적 걸어가 버리자 해골 교장은 툴툴대며 외쳤다.
“이해해주세요. 교장 선생님. 그 많은 그늘 망령들을 전부 쓰러뜨렸다면서요. 피곤할 수밖에 없겠죠.”
뒤늦게 도착한 가르시아 교수가 편을 들어주자, 해골 교장은 울컥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직접 안 봤으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지...! 가르시아 교수. 저 녀석이 얼마나 편하게 잡았는지 아시오?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데에 편하고 불편하고가 어딨어요. 다 똑같이 힘든 거죠.”
......
가끔은 반박하기 힘든 정론이 더 짜증나는 법이었다. 해골 교장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정말로 편하게 잡았...
“자. 다들 들어가서 쉬세요. 고생 많았어요. 강의는 내일부터 시작이니 그 때까지...”
학생들은 가르시아 교수의 따뜻한 말에 지친 와중에도 살짝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가져온 책이나 읽으면서 쉬시면 될 것 같아요.”
“......”
“......”
학생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그게 어떻게 쉬는...?
“??”
가르시아 교수는 학생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골 교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시아 교수가 맞는 말을 했군. 다들 돌아가서 책이나 읽으면서 쉬어라.
“제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나요?”
아무것도. 가르시아 교수는 아주 잘했소.
* * *
마음은 억울해도 사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나온 학생들은 자기들 탑으로 돌아가 갖고 나온 책들을 돌려 읽었다.
“헉. 이한. 그거 알고 있었어? 가짜 금이라고 불리는 광석들이 있대. 예전에 연금술사들이 이걸 만들어서 금으로 팔아먹었다는데?”
<초급 광석학개론> 책을 읽고 있던 가이난도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이한과 요네르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거 이제 못 해.”
“확인 방법이 너무 많아졌어.”
“그렇구나. 잠깐. 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가이난도의 의아함에 둘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공부할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군.’
이번에 도서관에서 새로 갖고 온 책들을 보니 새삼 공부해야 하는 양이 실감이 났다.
학생들은 각자 자기가 가고 싶어하는 길에 맞춰 책들을 필사하고 있었는데, 이한은...
“워다나즈. 이거 마셔.”
“워다나즈. 이거 먹어.”
“...왜 주는 거지?”
“그, 그냥?”
“도서관에서 신세 많이 졌잖아! 그래서!”
친구들은 이한 앞에 쌓인 책더미를 볼 때마다 간식과 음료를 하나씩 주고 지나갔다.
아무리 워다나즈라고 하더라도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 책의 양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책 중 해골 교장과 볼라디 교수가 쓴 책이 그나마 친절한 편이라는 게 새삼 슬프군.’
이한은 책들을 훑어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기본적으로 마도서들은 알기 쉽게 요점만 딱딱 정리해주지 않았다.
마법사 본인만 아는 비유와 은어, 암호들로 가득 차있는 만큼 그걸 해석하고 비교해보고 직접 알아가는 게 다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반강제지만) 직접 알려주는 해골 교장의 검은 책이나, 요점을 정확히 적어 놓은 볼라디 교수의 번개 마법/혈마법 책들은 확실히 좋은 책이 맞았다.
‘볼라디 교수의 성격을 생각해봤을 때 이 책들도 최대한 빨리 진도를 나가둬야 하는데.’
볼라디 교수의 성격상 어느 날 갑자기 ‘A 마법 익혔겠지. 못 익혔나? 그럼 지금 익혀라’하면서 불합리한 공격을 해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괜히 두들겨 맞기 싫으면 미리 익혀놓는 게 나았다.
‘다음 마법은 번개 원소와 부여 마법을 응용한 건가... 혈마법은 충격파 계열인가? 의외로 멀쩡하군.’
잠깐만 확인해보려고 했던 이한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다음에 들을 강의 책부터 읽어놔야지.’
똑똑똑-
“?”
누군가 휴게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밤중에 누가 휴게실 문을 두드리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걸,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이미 학습해서 알고 있었다.
“...누구세요?”
똑똑똑-
“......”
“...누가 열지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가까이 있던 친구들은 이를 악물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리고 가이난도가 슬픈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그래도 설마 교장 선생님이 또 언데드 습격 같은 짓을 하시겠...”
“으아아악! 언데드다!!!”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고!”
학생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책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탁자를 넘어뜨려서 바리케이드를 치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의 명령으로 간식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
“...속, 속지 마. 간식바구니 안에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정말로 바구니 안에는 아무런 함정도 없었다.
해골 교장이 보낸 언데드는 푹신푹신하게 갓 구워진 빵과 팥소가 들어간 흰 떡이 든 바구니를 내려놓고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그러면 공부 열심히 하십시오.
“조, 조심히 들어가세요?”
“잠깐.”
이한은 돌아가려는 언데드를 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 간식이 함정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믿습니까?”
“워다나즈. 설마 그렇진 않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간식에까지 함정을 설치하셨겠어?”
사실 이한도 간식 자체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말을 걸어본다.’
저번에 창고지기나 첨탑지기를 상대하면서 느낀 점은, 해골 교장의 하수인들이 의외로 아는 게 많다는 것이었다.
해골 교장이 세우고 있는 사악한 계획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그러려면 무슨 트집을 잡든 상대의 입을 열게 해야 했다.
“대답해보십시오. 이 간식, 함정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군!
언데드는 감탄한 듯이 외치더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한 연기가 휴게실 안을 가득 채웠다.
학생들은 콜록대며 경악했다.
“정... 정말로?!”
“워다나즈, 어떻게 알아본 거야?”
-일학년 무쇠대가리들이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언데드는 능숙하게 주변을 휘젓더니 바로 입구로 달려 나가려고 했다.
“번쩍여라!”
그러나 이한의 주문이 먼저 외워졌다. 날카롭게 입구를 향해 꽂히는 벼락에 언데드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지금 언데드가 펼친 연막은 마법의 연기구름이라 꿰뚫어 볼 수 없었다.
하물며 1학년 학생이라면 더더욱.
상대가 주인에게 칭찬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아직은 어린, 갈고 닦이지 않은 원석.
그런데 어떻게?
“번쩍여라, 번쩍여라, 번쩍여라!”
이한은 망설이지 않고 벼락을 날렸다. 계속된 주문 난사에 휴게실 정문 주변이 박살이 났다.
그제야 언데드는 깨달았다.
‘이 놈!?’
지금 이한은 언데드의 위치를 확인하고 주문을 시전하는 게 아니었다.
언데드가 주문을 시전하기 전의 위치를 기억하고 그 주변에 난사를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위치를 기억한 것도 대단하고, 또 그걸 믿고 과감하게 마법을 난사하는 게 대단했다.
언데드는 저 소년이 괜히 칭찬을 받은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킨 이상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 속셈을 들킨 이상 패배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연기구름 속에서 콜록대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 사이를 지나, 언데드는 이한에게 접근했다.
“워다나즈! 어떻게 해야...”
“다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앞이 보이지 않아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만 가득했다.
혼란 그 자체.
언데드에게는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워다나즈!”
언데드는 마법을 시전해 자신의 목소리를 바꾸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과 비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러면 속을 수밖에 없었다.
“워다나즈, 도와주러 갈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워다나즈!”
언데드는 이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학생의 목소리로 외치며 접근했다.
가까이 접근하면 바로 이한을 제압하고 유유히 떠날 생각이었다.
설마 저 1학년 소년이 언데드가 접근하고 있다고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언데드는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이한은 친구라 하더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접근하면 가차 없이...
“워다나... 칵!”
빡!
...주먹을 날린다는 점이었다.
놀랍게도 바로 주먹이 날아왔다. 마력이 실린 주먹에 맞은 언데드는 그 충격에 마법 시전이 막혀버렸다.
-커헉...
‘뭐지?’
누군가 가까이 접근하자 바로 주먹을 날린 이한이었다.
그런데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이 이상했다.
뼈처럼 딱딱한 감촉.
그 순간 이한은 상대가 누군지 바로 깨달았다.
온갖 상황을 겪은 전투 경험과 감각은 이런 상황에서도 올바른 답을 도출해냈다.
‘언데드다!’
언데드가 몰래 접근한 게 분명했다.
“항복해라!”
이한은 그렇게 외치며 주먹을 갈겼다. 마력 낭비를 각오하고 폭주하듯이 마력을 방출시켰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상대의 다리를 그대로 걷어찼다. 이번에 새로 배운 흡(吸)의 묘리가 깃든 마력이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항복하라고 했다!”
퍽! 퍽퍽퍽!
“항복하라고!”
퍽퍽퍽퍽퍽!
“항복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주먹을 날리는 사이 연기구름이 걷혔다.
언데드는 완전히 곤죽이 되어서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말할... 기회를 줘야... 항복을... 하지...
이 1학년 놈이 생각보다 너무 근접전이 강했던 것이다.
* * *
“그래서 저걸 먹으면 어떻게 되지?”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언데드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변신 저주? 마력 사용이 금지되나? 다른 곳으로 이동되나? 징벌방 같은?”
이한의 날카로운 추측에 친구들은 모두 감탄했다.
아까 언데드의 함정을 눈치 챈 것도 그렇고, 워다나즈의 관찰력은 정말 초인적인 구석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챈 거지?”
‘그러게 말이다.’
그건 언데드도 궁금했다.
간식이 함정이라는 걸 알아챈 것도 궁금했고, 언데드가 접근하는 걸 알아챈 것도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대답하지 못하는 거 보니 더 사악한 독이었나 보군.”
-아니... 먹으면 푹 잔다.
“...어? 겨우 그거에요?”
-내일 쪽지시험을 보는 강의들이 있으니까...
“......”
“......”
학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일 쪽지시험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또 그거 때문에 이렇게 손수 간식에 수면제를 넣어서 보낸 해골 교장의 악독함도 놀라웠다.
‘앞으로 교장 선생님이 주는 간식은 절대 먹지 말아야겠다.’
“에이. 그래도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
가이난도는 김이 샌다는 듯이 말했다.
지독한 저주나 맹독이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해야 푹 자는 거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가이난도. 쪽지시험은 중대사항이야.”
“맞아. 저건 최악의 함정이지.”
“그, 그런가?”
성적 좋은 친구들이 정색하자 가이난도는 속으로 투덜댔다.
시험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말을 마친 언데드는 부러진 뼈를 맞췄다. 이한은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과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별 거 아니다. 아프지도 않아.
1학년답게 아직 성격이 말랑말랑했다. 언데드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일어서려고 했다.
탁-
그러나 이한은 일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내가 지금 가봐야 할 곳들이 많은데. 이만 보내주면 안 되겠나?
“내일 쪽지시험 보는 강의가 정확히 뭡니까?”
-그것까지 말해주는 건 너무 과하지 않...
이한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상대가 무슨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먼저 공격하겠다는 뜻이었다.
언데드는 방금 성격이 말랑말랑하다고 생각한 걸 취소했다.
‘뭐 이런 지독한 놈이...!’
1학년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