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41화 (241/687)

241화

“그 방패!”

“아. 이 방패.”

이한은 하품이 나오는 걸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실한 학생답게 더르규는 확실히 안목이 있었다.

“놀랍지 않나?”

“당연히 놀랍지...!”

“그래. 마법 지속 시간 증폭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아직 유지되고 있다니. 나도 예상 밖이야.”

지금 방패는 여섯 시간도 넘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원래라면 해제하고 돌아다녔어야 했지만, 이한은 얼마나 갈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내버려두고 있었다.

‘얼마나 지속되는지 확인을 해야 써먹든 말든 할 테니.’

마법 지속 시간 증폭 과정을 생략해도 그냥 부여 마법이 유지가 된다는 건 솔직히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마력량이 많다 하더라도 이런 것까지 될 줄이야.

이한도 예상하지 못한 일.

하지만 행운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행운에 취해 안주해서는 안 됐다. 정확히 어디까지 가능하나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지속 시간이 하루 정도만 되도 이한은 바로 제출해버릴 생각이었다.

‘제발 여기서 마무리지었으면 좋겠군.’

“그런데 대단하군. 더르규. 바로 알아볼 줄은 몰랐는데. 이 방패에 마법 지속 시간 증폭 과정을 따로 하지 않았다는 걸 이렇게 빠르게 알아차리다니...”

“...부, 부여 마법을 열심히 배워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당연히 알아보지 못한 더르규는 말을 더듬었다.

그냥 벌써 완성 작품을 가져와서 놀란 거였는데...

“그보다 이한. 원래 같이 작업하면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그냥 따로 물어봐도 상관없다. 더르규.”

“정말 고맙다. 잠깐. 혹시 모라디도 같이 물어봐도 괜찮나?”

“상관은 없는데, 혹시 나한테 물어봐놓고 기말고사 때 날 방해하진 않겠지. 사람이 양심이 있다면.”

“당연히 모라디는 그러지 않을 거다.”

“그런데 모라디는 양심이 없잖아.”

“이한...”

“괜찮아. 안 들렸을 거다.”

‘들린 것 같은데.’

기사 가문에서 자란 학생의 청력이라면 이 정도 거리에서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럼 모라디한테서 직접 들으면 되잖나. 이한.”

“좋은 생각이군. 모라디. 혹시 가문과 명예를 걸고 기말고사 때 날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겠나?”

“...그래. 약속해주지.”

“흰 호랑이 탑 학생 중 한 명이라도 나를 보고 시비를 걸면 네 책임인 걸로 해도 괜찮겠나?”

“그게 왜 내 책임이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던 지젤은 경악했다.

방심한 순간 놓치지 않고 사기를 치려고 하다니.

“네가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우두머리 같은 거 아닌가?”

“내 말 안 듣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탑이 무슨 너희 탑 놈들처럼 말을 잘 듣는 줄 알아?”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군. 우리 탑이야말로 네 탑 중 가장 말을 안 듣는다. 모라디.”

‘다른 친구들이 이 말다툼을 보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더르규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한을 믿고 따르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과 지젤을 믿고 따르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이 대화를 들으면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울먹일 테니까.

*         *         *

“좋아. 이 정도로 합의하지.”

서로 필요한 게 있는 만큼 이한과 지젤은 한 걸음씩 양보했다.

“나중에 필요할 때 흰 호랑이 탑 놈들 빌려주는 거 잊지 마라.”

이한은 추가로 필요할 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동원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냈다.

대신 지젤은 이한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타협했다.

중간고사의 처참한 성적을 봤을 때 이대로 내버려두면 탑에서 지젤을 포함한 몇 명만 방학을 맞이할 수 있었다.

“너야말로 가르치는 거 잊지 마.”

“가르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

“......”

이한의 말에 더르규와 지젤이 침묵했다.

그 모습에 이한은 살짝 불길해졌다.

“...그래도 에인로가드 입학할 정도면 다들 기본적인 재능은 있지 않나?”

“그, 그렇지.”

“물... 론이지.”

“친구들이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그렇지 머리가 나쁜 건 절대 아니다.”

‘더욱 불길해지는데.’

보통 저런 변명을 하는 놈들 중에 가르치기 좋은 놈이 없었던 것이다.

“가르치는 건 나중 일이니,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고.”

이한은 하품을 참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지젤은 속으로 의아해했다.

평소 워다나즈 놈의 모습과 좀 많이 달랐던 것이다.

‘밤이라도 샜나? 설마. 아니겠지.’

철저한 워다나즈의 성격을 봤을 때, 정오부터 산맥을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밤을 새고 왔을 리 없었다.

“이한이 피곤해 보이는데. 밤이라도 샌 거 아닌가?”

“헛소리 좀 하지 마. 워다나즈가 그럴 리가 없잖아.”

지젤은 퉁명스럽게 더르규를 타박했다.

“하지만 부여 마법 과제도...”

“어제 완성한 거겠지.”

“그, 그런가?”

더르규가 보기에는 안 그래도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모라디도 저렇게 말하니까 그런 거겠지.’

“그래서, 여기 산맥에 무슨 몬스터가 있는지 각자 아는 대로 말해볼까.”

아마 에인로가드의 졸업생도 이 산맥에 대해 전부 파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산맥이 넓고 깊었으니까.

당장 저번에도 몇 시간을 걸려서 들어갔는데 산맥의 초입 부분에서 헤매고 나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마법학교의 학생들에게는 쌓인 지식과 소문들이 있었다.

“곰, 늑대, 멧돼지나 악어.”

“악어가 나오나?!”

더르규가 깜짝 놀랐다. 지젤은 살짝 턱짓하며 대답했다.

“늪지대가 있어.”

“늪지대가 있다고?!”

“더르규. 벌써부터 그렇게 놀라면 어떡하려고. 뭐든지 나올 수 있다. 화산지대가 나와도 놀랍지 않지.”

‘그건 놀랄 것 같은데.’

‘그 정도면 놀라야 하지 않나...’

“슬라임이나 각종 키메라들.”

키메라가 나오자 이한은 혀를 찼다.

이 물 좋고 공기 좋은 산맥에 인공융합마법생명체인 키메라가 왜 나왔겠는가.

마법사들의 실험에서 나왔으리라.

그리고 그 마법사들은 당연히 에인로가드에서 나왔을 것이고...

‘안전수칙 안 지키고 실험한 선배들이 원망스럽군.’

“대충 이 정도.”

“그렇군. 더르규는?”

지젤이 아는 몬스터가 끝나자 더르규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난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친구들은 지금... 거인을 노리고 있다던데.”

“...뭐?”

이한보다 지젤이 먼저 반응했다. 지젤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뜬 채 물었다.

“어떤 놈들이 거인을 쓰러뜨리려고 하는데? 말해.”

“그, 그건 비밀이라 말해줄 수 없고... 그리고 한 조도 아니다.”

거인.

거대한 체구와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주변 몬스터를 겁먹게 하는 종족.

흉폭하고 야만스러워서 다른 종족과 대화가 불가능한 만큼 그냥 몬스터라고 봐도 무방했다. 만나는 순간 공격이 날아올 걸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1학년이 노릴 만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 몇 명은 진지하게 거인을 노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도서관에서 거인에 관한 책을 찾아낸 게 계기였다.

-이건 너만 알고 있어. 여기 지도 보이지? 산맥 능선 건너편에 거인이 산대.

-오...! 야. 이건 너만 알고 있어. 내가 들었는데, 대충 산맥 이쯤 건너편에 거인이 산다더라.

-와... 이리 와봐.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라. 이거 진짜 귀한 정보인데, 산맥 이쯤 건너편에 거인이 있다고...

“...뒤지려고 작정을 했나?”

지젤은 인상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이걸 또 자기들끼리 몰래 쑥덕거린 게 어이가 없었다.

자기들 딴에는 말하면 뺏길까봐 숨긴 거겠지만 그걸 누가 뺏어간단 말인가.

아무리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도 그렇지 거인을 노린다니.

“워다나즈도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진 않을 텐데.”

“그렇지. ...잠깐. 무슨 뜻이지?”

이한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지젤에게 따지려고 했다.

그러나 더르규가 먼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나름 거인을 상대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던데.”

“책에 거인의 위치가 나와 있었다고 했으니, 상대하는 방법이 적혀 있어도 놀랍진 않지.”

문제는 책에서 상대하는 방법 좀 읽었다고 바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거인이 만만한 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책 한 번 읽는다고 바로 쓸 수 있다면 마법사들이 왜 고생을 하겠나?”

“그렇지. 그...?”

고개를 끄덕이려던 더르규는 이한을 순간 쳐다보았다.

잠깐 ‘이한은 저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않나?’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너희들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진지하게 말려보도록 하지.”

“아니. 잠깐.”

“기다려봐.”

“?”

이한과 지젤이 동시에 말리자 더르규는 당황했다.

“과연 진심 어린 충고가 지금 상황에서 꼭 효과적일까?”

“워다나즈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확실히 맞는 말이야. 남몰래 준비하고 있는 놈들인데, 말린다고 듣겠어? 몰래 하겠지.”

“그, 그렇군.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일단 위치부터 확인하자. 미행이 좋겠군.”

“위치 확인한 다음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확실하게 못을 박고.”

“아예 책도 뺏어버려야 해. 괜히 책 가지고 있으면 남은 몇 주 동안 쓸데없는 생각을 할 거라고.”

“맞아. 책도 뺏자.”

“......”

분명 주말에 산맥을 타면서 어디어디에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이야기의 주제가 복면강도질로 변하자 더르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뺏는 건 좀 심하지 않...나?”

“더르규. 오해하지 마라. 이건 친구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야. 설마 내가 다른 놈들이 거인 잡아서 성적 잘 나올까봐 이런다고 생각하나?”

“초이. 잘 생각해. 나중에 친구들이 다친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들겠어. ‘그 때 말렸어야 했는데’란 생각이 들지 않겠어?”

“...그... 그럴지도...”

이한과 지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르규의 양쪽 어깨에 한쪽씩 팔을 올렸다.

“그럼 같이 하는 거다. 더르규.”

“그래서 그 책 가진 놈이 누구지? 말해.”

“......”

*         *         *

둘라크 가문의 가토노는 동굴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쫓아오는 사람이 있나 싶어서였다.

‘하긴 이런 곳까지 누가 쫓아오겠어.’

“누구냐?”

“둘라크의 가토노.”

“조용히 들어와.”

동굴 안에서 같은 조 친구들이 서둘러 손짓했다.

“잘 되어가고 있지?”

“물론이지. 여기 바트렉이 누구야? 바로 바크 가문 출신이잖아.”

바트렉은 흰 호랑이 탑에서 뛰어난 연금술로 이름이 높았다.

...물론 다른 탑의 천재들과 비교하면 조금 밀리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준수한 실력이란 건 틀림없었다.

“이게 그... 그거지?”

“그래. 거인도 잠재우는 약.”

동굴 안쪽의 모닥불 위에는 거대한 솥이 걸려 있었고, 그 솥 안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탕약이 펄펄 끓고 있었다.

이한이나 지젤이 걱정했던 것처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머리가 없지 않았다.

거인을 상대하는 일인 만큼 당연히 철저한 계산이 있었다.

여기 거인들을 잠재우는 비약에 대해 쓰노니, 후배들은 괜히 성난 거인들과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거인을 제압하기 위해 꼭 숨통을 끊을 필요는 없었다.

잠재우고 놈의 머리털이나 보물을 가지고 가면 충분했다.

밤에 몰래 놈의 거처 주변에 접근해, 놈이 자고 있는 사이 주변에 비약을 뿌리고 오면...

쾅!

“?!?”

“무슨 소리야?”

“침입자다! 누군가 함정을 건드린 거야!”

“어떤... 워다나즈 아냐?!”

“워다나즈가 여기서 왜 나와! 헛소리 하지 마!”

*         *         *

“여기 맞나?”

“맞는 것 같은데.”

“...잠깐.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동굴 근처 수풀에 멈춰 지켜보고 있던 셋은 멈칫했다.

분명히 안에서 싸움 소리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내놔!

-이 비겁한 놈들이! 너희가 그러고도 기사냐!

-흥. 힘으로 쟁취하는 게 기사지. 보물을 지킬 능력이 없다면, 가질 자격도 없다!

“......”

“......”

지젤과 더르규는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탑 망신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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