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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64화 (264/687)

264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오해를 받을 뻔했군.’

이한은 대답을 하고서도 찜찜해했다.

저 이칼도렌 공작이 제국 사교계로 돌아가서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이란 소년이 고나달테스와 그렇게 친하다더군’ 같은 가짜 소문을 퍼뜨릴까봐 걱정됐던 것이다.

만약 그럴 경우 해골 교장과 원한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숫자도 한둘이 아닐 텐데.

“에인로가드의 생활은 어떤가? 만족스럽나?”

이칼도렌 공작은 찻잔을 기울이며 마법학교 내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이한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이건...?

‘함정일지도 모른다!’

이칼도렌 공작이 사실 해골 교장과 막역한 사이라면?

그래서 우연히 만난 학생이 가진 불만을 캐내려는 것이라면?

“만족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가?”

“교장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학생들이 학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마법학교의 학생들은 언제나 마법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지요.”

“...?”

이칼도렌 공작은 혼란스러웠다.

에인로가드는 외부인이 굴러가는 사정을 파악하기 힘든 내밀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란 건 없었다.

어느 정도는 소문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에인로가드도 몇몇 소문들이 흘러나왔고 그 정도는 이칼도렌 공작도 알고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에인로가드는 절대로 저렇게 만족스러운 환경이 아니었다.

‘무슨 꿍꿍이냐. 워다나즈? 무슨 꿍꿍이냐. 고나달테스?’

이칼도렌 공작의 작은 눈이 살짝 번뜩였다. 예상 밖의 대답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소년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말로 고나달테스가 규칙을 바꾼 것일까?

‘그것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왜? 무엇 때문에?’

고나달테스 정도 되는 인물이 아무 이유 없이 규칙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칼도렌 공작의 추론은 더욱 더 깊게 파고들었다.

‘설마... 다른 대귀족 가문들이나 황제에게 환심을 사려는 것인가?’

고나달테스는 황제 앞에서도 땍땍대는 것으로 유명한 대마법사였다.

그런 대마법사가 다른 대귀족 가문들이나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쓴다는 건, 그만한 일을 준비하고 있어서였다.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고?

이칼도렌 공작은 등줄기에 차가운 얼음 칼날을 갖다 댄 것처럼 오싹해졌다.

‘설마... 나를 노리는 것이냐. 고나달테스! 그래서?!’

“뿐만 아니라 교수님들은 모두 다 훌륭하십니다. 저희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시려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계시죠.”

말하던 도중에 볼라디 교수가 고개를 끄덕여서 기침이 나올 뻔했지만, 이한은 간신히 말을 마쳤다.

그 태도에 이칼도렌 공작은 더욱 확신했다.

저렇게 강조해서 말할 정도면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 마법학교 내에 변화가 생긴 게 분명했다.

‘주의해야 한다. 더욱 더.’

“공작 전하.”

“말해라.”

부하 중 한 명이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며 낮게 읊조렸다.

“명령 내리신 것을 찾았습니다.”

“어떤 놈이지?”

“바실리스크입니다.”

볼라디 교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만족스러운 감정이 전신에서 드러났다.

‘이칼도렌 공작. 잊지 않겠다.’

이한은 한숨을 참으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         *         *

“이건... 바실리스크가 아니잖습니까?”

“정확히는 놈의 알입니다. 마법사님.”

이한은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그에 비해 볼라디 교수는 살짝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언제 부화하지?”

“그건 정확하게 알기 힘듭니다. 아시다시피, 바실리스크 같은 희귀한 몬스터들은 상당히 변덕스럽지 않습니까.”

수탉이 낳은 알을 독사(毒蛇)가 오랫동안 품어서 변화된 알.

그게 바실리스크의 알이었다.

매우 희귀한 보물인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 당장 제자와 맞붙게 할 상대가 필요한 볼라디 교수 입장에서 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알과 싸우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볼라디 교수가 묵묵부답하자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공작의 부하들이 살짝 기분 나빠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바실리스크의 알도 매우 희귀한 보물인데, 아무리 마법사라 하더라도 아무 대가 없이 이런 선물을 받으면서 감사를 표하지 않다니?

그걸 눈치 챈 이한이 재빨리 나섰다.

“정말 감사합니다. 공작 전하의 호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너무 감사해서 할 말을 잊으신 모양입니다.”

“하하. 그렇게까지 기뻐하시니 저희도 기쁩니다.”

그제야 공작의 부하들도 얼굴을 풀고 만족스러워했다.

“정말 힘들게 구했습니다. 웃돈을 얼마나 얹어줬는지 아시면 놀랄 겁니다.”

‘젠장. 그냥 금화로 주지.’

공작의 부하도 불행하고 이한도 불행하고 볼라디 교수도 불행한, 모두가 괴로운 거래였다.

이한은 바실리스크의 알을 몰래 빼돌려서 팔다가 들킬 경우 이칼도렌 공작이 암살자를 보낼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부하들이 돌아가고 단둘이 남자 볼라디 교수가 입을 열었다.

“저건 쓸모가 없다.”

“아닙니다. 교수님. 잘 돌봐줘서 부화시키면 되잖습니까.”

이한은 대충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러다가 볼라디 교수가 드래곤을 찾아가서 시비라도 걸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비록 알이라 하더라도 바실리스크의 알인 건 사실입니다. 잘 기르면 순식간에 클 겁니다.”

“......”

이한의 설득에 고민하던 볼라디 교수는 마침내 대답했다.

“...그렇군. 너무 늦지 않으면 다음 시험에 쓸 수 있겠지.”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이한은 정색하고 대답했다.

*         *         *

선물도 교환했겠다, 교장과 친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겠다, 이칼도렌 공작은 슬슬 둘을 배웅할 준비를 했다.

“재료를 사러 나왔다고?”

“예.”

“자네가 같이 가주게. 아무래도 상인들은 정말 좋은 물건은 쉽게 내놓지 않으니.”

공작은 부하에게 명령했다.

상인들은 마법사를 속일 만큼 영리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은 물건을 쉽게 내줄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사소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씩 은혜를 쌓아두는 게 이칼도렌 공작의 방식이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대귀족 가문 출신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귀족의 명예는 받은 은혜를 쉽게 잊지 않는 것이다.

물론 상대가 워다나즈 가문인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저 소년은 다른 워다나즈들과 달리 비교적 멀쩡한 것 같으니...

‘이칼도렌 공작은 혹시 호구인가?’

이한은 의아해했다.

그냥 저렇게 베풀어주다니.

혹시 이한이 나중에 미안해서 갚을 거라는 망상을 하는 건 아닐 테고, 대귀족의 배포를 보여주려는 건가?

그런 거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왜 그런 무의미한 짓을...

*         *         *

“먼저 하급 정신 강화 물약을 있는 대로 주시고, 세트리비의 이슬 물약 있습니까? 도브룩의 핏방울 물약도 필요합니다.”

“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길드 공방에 앉아 있던 연금술사들은 귀빈의 방문에 깜짝 놀랐다.

“재고를 확인하고 만들어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많이 사실 겁니까?”

“예.”

이한의 전략은 간단했다.

우레걸음 교수가 ‘재료 구하는 것도 너희 능력이니 알아서 만들어라’라고 했으니 정말 능력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밖에서 쓸만한 물약을 사간다.

기말 전 과제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물약부터 시작해서, 기말고사에 쓰일 가능성이 있는 물약들까지 전부!

원래는 돈이 없는 만큼 최대한 필요한 것만 살 생각이었는데, 이칼도렌 공작이 금화를 내준다니 아낄 이유가 없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공작의 부하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너무... 많이 사는 것 아닌가?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말리진 않았다.

괜히 말렸다가는 이칼도렌 공작이 자신의 체면을 무시했다고 불호령을 날릴 테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좀 비싸긴 했지만, 은혜를 베풀어놓으려는 이칼도렌 공작의 의도를 봤을 때 차라리 잘 된 일일수도 있었다.

“옆의 과자 가게로 갑시다.”

“예?”

“무슨 문제라도?”

“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작의 부하들은 알록달록하고 길쭉한 사탕들로 장식이 된 <다시그의 과자 가게> 문을 지나 이한을 따라갔다.

왜 마법사가 과자 가게에 들어가나 의아했지만 뭔가 그들이 모르는 재료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바삭한 크림 브륄레가 들어가는 물약이 있다거나 달콤한 에클레르로 준비하는 마법이 있다거나...

...진짜 있는 거 맞나?

“이 거대한 초콜릿 케이크는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손님. 가끔 몇 달 동안 고생한 모험가들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사가는 물건이지요. 한 번 만들려면 일주일은 걸립니다.”

“좋습니다. 이것도 사겠습니다.”

“세상에! 귀하신 분이란 건 알았지만 설마 이걸 사실 줄이야!”

이한은 자신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있던 공작의 부하들은 점점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다 됐습니다. 교수님.”

광란의 쇼핑이 끝나고 일요일 저녁이 되자 이한은 아무르 마구간 앞에서 볼라디 교수와 다시 만났다.

아무르는 온갖 산더미 같은 짐을 들고 있는 이한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뭔...?”

상단에서 십 년 넘게 일한 짐꾼도 저 정도로 짐을 무자비하게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출발하도록 하죠.”

“아니... 잠시만 기다려보시오.”

아무르는 당황했다.

감옥, 아니, 학교를 탈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안 들키게 돌아가는 일이었다.

당연히 이한과 아무르도 그런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요일 자정쯤에 아무르와 아무르의 부하 직원으로 위장해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짐은 좀 너무 많았다.

상자 한두개면 모를까 저 정도 짐을 들고 들어가면 첨탑 마구간지기가 장님이어도 ‘잠시 확인 좀 해봅시다’란 소리가 나올 터.

“음. 조금 많이 사긴 했습니다.”

“조금이 아니오만...”

“괜찮습니다.”

“??”

“교수님 짐이라고 하면 됩니다.”

“어... 괜찮겠소?”

아무르는 더 당황했다.

하늘 같은 스승의 이름을 저런 밀수에 이용해도 되나?

볼라디 교수는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면 출발하시죠! 참. 여기 디저트 좀 갖고 왔습니다. 출출하실 때 드십시오.”

“아니오. 학생들은 돈도 없을 텐데... 잠깐...?”

아무르는 이한이 대체 어떻게 저 많은 걸 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지간히 철없거나 뻔뻔하지 않으면 가문의 이름을 팔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일단 알겠소. 출발합시다!”

이한은 그리폰에게 간식을 먹이고(최상급 육포를 주자 그리폰은 매우 행복해했다), 볼라디 교수의 짐을 확인했다.

공작의 부하들과 같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동안 볼라디 교수도 뭘 샀는지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 크기의 길쭉한 상자들이 몇 개 늘어나있었다.

‘...설마 몬스터는 아니겠지?’

이한은 불길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볼라디 교수라도 그 짧은 사이에 몬스터를 더 구할 수는 없었다.

“저 안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모험가들.”

“...예?”

“모험가들. 아까 속임수를 쓴 자들 있잖나.”

볼라디 교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담담하게 말해서 이한이 쌓아 놓은 간식 상자와 모험가들이 들어 있는 모험가 상자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이한은 속지 않았다.

“교수님. 대체 그런 자들을 왜?”

“기말고사에 쓸 생각이다. 허섭스레기들이지만 훈련시키면 쓸모가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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