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65화 (265/687)

265화

“교수님. 제가 제국법에 능통하지는 않지만, 아마 납치는 불법일 겁니다.”

“허락을 받았다.”

“예??”

이한은 경악했다.

모험가들이 미친놈들인 줄은 알았지만 저런 제안에 응할 정도로...

‘아. 아니겠군.’

사기치려다가 붙잡힌 모험가들 입장에서 거절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볼라디 교수가 친절하고 상냥하게 붙잡지는 않았을 테니 분위기는 꽤나 위압적이었으리라.

‘칼을 목에 겨누고 질문하면 그건 허락이 아니라 협박인데.’

“그런데 허락을 받았으면 이렇게 상자 안에 넣어서 들고 갈 이유가 있습니까?”

“외부인을 멋대로 풀어놓으면 사고를 칠 수 있으니까.”

“과연.”

물론 대답만 ‘과연’이었지 이한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그걸 말이라고...!

*         *         *

쿵!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이한을 현실에 강림한 신을 보듯이 쳐다보았다.

휴게실 중앙에 놓인 케이크는 거의 천장을 찌를 정도로 높았다.

“다 같이 기말고사가 끝나면 먹는 거다. 알겠지?”

“세... 세상에...”

“샤르칸. 손 대는 놈 있으면 물어버려.”

샤르칸이 가이난도의 발목을 깨물었다. 가이난도는 비명을 질렀다.

“손 안 댔어! 생각만 했어!”

펄쩍 뛰는 가이난도를 보던 이한은 말을 덧붙였다.

“낙제한 놈은 안 준다.”

“아니...!”

몇몇 학생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그런 잔인한 조건을?

“낙제한 게 잘못은 아니잖아!”

‘잘못이지 않나?’

이한은 친구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돌아섰다. 요네르가 놀란 표정으로 작게 말했다.

“난 축제 때문에 갖고 온 줄 알았어.”

“무슨 축제? 아. 불사조 축제?”

제국에는 계절마다 여러 축제들이 있었다.

그 중 불사조 축제는 초여름이 제대로 찾아오도록 불사조에게 기원을 바치는 축제였다.

예전에는 불사조가 태양의 힘을 북돋아 계절이 제대로 순환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미신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저번에 마법학교에 폭설이 찾아왔을 때는 불사조가 자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미신과 별개로 불사조 축제는 그렇게까지 꼭 챙겨야 할 만큼 중요한 축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다음 주가 끝나면 바로 기말고사 기간.

그런 상황에서 축제를 기념할 만큼 멍청한 학생들이 있을 리가...

“...뭐하냐?”

“응? 장식 만드는데?”

붉은 칠을 한 깃털과 백일홍을 엮어 화환을 만들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왜 그러느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한은 속으로 탄식했다.

‘이 자식들이 멍청한 걸 잊고 있었군.’

사실 시험을 앞에 두면 별 쓸데없는 것들도 재밌어지기 마련이었다.

과제와 시험만이 남은 현재.

소소한 불사조 축제도 학생들한테는 미친 듯이 빠져들 만큼 재밌으리라.

“워다나즈. 여기 화환. 축제 기간 동안 화환 쓰고 있으면 더위에 강해질 거야.”

‘고맙다.’

“공부는 안 하냐?”

“...지, 지금 하려고!”

‘아차.’

일단 성의를 생각해서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속마음이 반대로 나와 버렸다.

이한은 안타까워하며 도망치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잠깐. 이 자식들이 지금...?!’

주변을 둘러 본 이한은 위화감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들 책상 앞에 앉아 있긴 했는데 제대로 공부를 하는 놈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아산은 종이 위에 깃펜을 끼적거리길래 과제를 하는 줄 알았더니 불사조 축제 기간 동안 차고 다닐 장식물을 그리고 있었고, 네블렌은 부여 마법 과제인 아티팩트 개선이 아니라 불사조 축제 기간 때 갖고 놀 공을 만들고 있었다.

이한은 마지막 보루인 황녀를 쳐다보았다. 황녀는 다급히 책을 펼치더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혹시 교장 선생님이 불사조 축제를 만든 건 아니겠지.”

“그, 그건 아니지 않아?”

옆에 있던 요네르가 터무니없는 음모론에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국 전역에서 기념하는 축제를 해골 교장이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한. 원래 놀 때는 놀아야 좀 더 집중할 수 있어.”

가이난도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한의 손을 슬쩍슬쩍 보는 게 뒤통수를 때릴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가이난도.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게 뭐지?”

“...팽, 팽이?”

“과제인가?”

“아니... 음... 과제에 쓸 일이 있을지도...?”

가이난도는 팽이에 그린 불사조 문양을 벅벅 문질러서 지웠다.

*         *         *

새 주의 월요일.

이한은 푸른 용의 탑 학생들만 특별히 멍청하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데굴데굴-

“워다나즈! 공 좀 차줘!”

불사조 문양이 그려진 가죽 공이 날아오자 이한은 반대 방향으로 공을 차버렸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땅을 두드리며 욕했다.

“무슨 짓이야!”

“불경하게! 불사조 축제인 거 몰라?!”

“공부나 해라.”

학생들은 놀고 싶어서 온갖 핑계를 붙이고 있었다.

불사조 축제를 기념하는 공놀이.

불사조 축제를 기념하는 팽이치기.

불사조 축제를 기념하는 카드게임...

‘카드게임은 진짜 양심이 없는 놈인가?’

“불사조 카드를 덱에 넣었어.”

“......”

“안, 안 할게.”

가이난도는 이한이 노려보자 덱을 주머니에 슬며시 집어넣었다.

불사조 축제란 게 화려하거나 거창하게 무언가를 준비하는 대신 소소하게 불사조가 그려지거나 장식된 물건들을 갖고 놀면서 기념하는 방식의 축제인 만큼, 학생들이 핑계를 대기 너무 좋은 축제였다.

<기초 마법 인성 교육> 강의실에 들어온 해골 교장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불사조 축제를 기념하고 있구나?

“교, 교장 선생님!”

체스에 불사조 말을 넣어서 두고 있던 학생들은 해골 교장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해골 교장은 자상하게 말했다.

계속 둬도 된다.

“정, 정말이십니까?”

그래. 머저리처럼 놀다가 낙제해도 징벌방에 들어가는 건 너지 내가 아니잖느냐?

“......”

학생들은 조용히 체스판을 치웠다. 해골 교장은 흐뭇해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나는 너희들을 배려해서 과제를 따로 내주지 않았다. 너희들이 시간이 썩어 남아도는데도 말이다.

“아닙니다! 저희가 얼마나 바쁜...”

불사조 장식이나 떼고 말해라. 한심한 놈아.

말을 꺼낸 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어깨에 붙인 불사조 견장을 떼었다.

“저희도 나름 바빴습니다. 교장 선생님.”

방금 친구를 보고서도 감히 누구냐?

해골 교장은 고개를 돌려 건방진 발언자를 찾았다. 그리고는 이한을 보고 멈칫했다.

...자. 그래서. 다음 주가 시험이지.

“......”

해골 교장도 차마 이한에게까지 시간이 남아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너희가 나를 의심하는 건 알지만, 기말고사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하!”

“퍽이나!”

해골 교장의 눈동자가 번쩍이더니 방금 코웃음을 친 학생들이 거꾸로 천장에 매달렸다.

내 욕은 속으로 해야지. 멍청한 놈들아. 그리고 정말로 어렵지 않다. 미리 알려줄 수도 있지.

“뭡니까?”

학생 한 명이 불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제국에서 관료 한 명이 와서 너희들의 인성을 검사할 거다.

“......”

“......”

학생들은 친구가 거꾸로 매달렸을 때보다 더 커다란 당혹에 휩싸였다.

“저희는... 인성에 관한 걸 딱히 배우지 못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무슨 소리. 너희가 느끼지 못했어도 차곡차곡 너희 안에 쌓여 있을 거다. 잘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관료한테 찍히면 인생이 고달파지거든.

‘이건 좀 두렵군.’

다른 학생들보다 몇 배로 기말고사를 두려워해야 하는데도 아직 태연했던 이한이었다.

하지만 저 인성 검사는 두려웠다.

대체 누가 오고, 뭘 묻는 거지?

‘학교의 현황을 고발 가능한가? 아니. 이상하군. 고발 가능했다면 해골 교장이 아직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너무 두려워할 건 없다.

해골 교장이 학생들의 불안을 눈치 챘는지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예행연습을 도와줄 테니.

강의실 안에 어둠의 장막이 깔리고 학생들의 시야는 자기 발끝만 보일 정도로 좁아졌다.

한 명씩 앞으로!

*         *         *

이한의 차례가 왔다. 이한은 어둠 속에 둥둥 떠 있는 푸른 안광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이름을 밝히시오.

“이한입니다.”

가문을 먼저 말하지 않다니. 10점을 주지.

“어... 실제로 관료분도 그러십니까?”

조용. 질문은 내가 한다. 최근 마법학교를 다니면서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나?

“......”

이한은 말문이 막혔다.

‘젠장. 너무 많은데.’

해골 교장이 거짓말을 탐지하는 능력이 있다면 바로 들킬 상황.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정직하군. 10점을 더 주겠다.

‘이거 제대로 된 거 맞나?’

공격하고 싶은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으면 감점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마법을 배우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제국의 많은 학문 중 가장 유용하고 범용성 있는 학문이라 익혀두면 평생 굶지는 않겠다 싶어서...”

그걸 말이라고 하나!?

해골 교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관료분 앞에서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됩니까?”

그건 상관없다. 누굴 죽이려고 하거나 잊혀진 옛 악신의 파편을 소환하려는 것 정도만 아니면 뭐든 상관없으니. 그보다 그 패기 없는 목적은 뭐냐!? 조금만 더 가면 꿈이 제국 관료라고 하겠군!

“관료 좋은 것 같...”

조용! 듣기 싫다. 아무리 아부를 하려고 해도 그렇지. 그 정도 아부면 관료도 당황할 거다!

이한은 속으로 투덜댔다.

관료가 뭐가 어때서...

다음은 익히고 있는 마법과 그 마법을 고른 이유를 말해... 이 질문은 그냥 넘어가지.

“......”

이한은 살짝 상처받았다.

다른 탑 학생들 중에 유난히 밉고 얄미운 자가 있는가?

“딱히 없는데요.”

아쉽군. 말했으면 10점을 줬을 거다.

“아니...”

그 뒤로도 여러 질문들이 나왔다. 대부분 마법으로 뭘 하려고 하는가, 사악한 비전 의식을 쓸 생각이 있는가, 폭주한 마법이 마을을 덮쳐오고 있는데 경로 위의 마법진을 변경해 인원수가 적은 다른 마을로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는가 등등.

놀랍게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말 안 어렵네요?”

그렇지. 원래 제정신만 붙잡고 있으면 어렵지 않다.

해골 교장은 툴툴댔다. 매우 불만이 많은 기색이었다.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너처럼 눈치 빠른 놈은 몰라도 매년 헛소리를 하는 놈들이 나오거든! 그리고 나오면 그건 다 내 탓이 되지.

‘아.’

이한은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가 갔다.

하긴 질문을 던지는데 ‘세상을 전부 불태우고 싶어서 화염 마법을 배웁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황제 입장에서는 ‘고나달테스 불러와라’가 나오리라.

생각보다 학생들이 순수해서 거짓말을 할 줄 몰랐던 것이다.

네 탑에도 이상한 대답을 할 것 같은 놈이 있다면 꼭 말리도록 해라.

“가능한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 그보다는 다른 게 더 위험하지 않습니까?”

뭘 말하는 거지?

“음. 학기 도중에 있었던 일들을 관료분이 듣는다면 당황하지 않을까 해서요.”

걱정해줘서 고맙군. 하지만 괜찮다.

“?”

찾아오는 관료는 에인로가드 출신이거든.

“......”

이한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나쁜 부분에는 머리가 좋구나!

*         *         *

최근 몇 주 사이 볼라디 교수의 강의는 육체적으로는 상당히 편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조금 더 가혹해졌다.

기초 과정이 끝나고 이어서 종합전투마법론을 완성시켜주려는 볼라디 교수가 다른 강의 시간에 뭘 배웠는지 하나하나 묻기 시작한 것이다.

“흑마법에서는 독과 저주. 소환마법에서는 스켈레톤. 다음.”

“환상마법은 구조 파악을 들었습니다.”

“오고닌 님에게 추가로 배웠을 텐데.”

“...이런. 제가 그만 놓치고 넘어갈 뻔했군요.”

이한은 해골 교장을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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