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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70화 (270/687)

270화

학생 한 명은 망토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허겁지겁 떼어내서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러나 붉은 깃털은 생각보다 숫자가 많았다. 비가 점점 거세지듯 깃털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학생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늘 아래로 피해!”

“어느 그늘로!? 나무 밑으로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촤아아악!

알펜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러 학생들 머리 위로 거대한 장막을 쳤다.

붉은 깃털이 장막 위로 탁탁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감, 감사합니다!”

“불사조는 여러모로 짓궂은 생물이지.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만큼 주의하는 게 좋겠네.”

‘두 번 장난치면 화상 입겠는데.’

이한은 황당함을 참으며 위를 쳐다보았다.

아래 상황을 모르는지 불사조는 저 먼 창공 위에서 몸을 흔들며 깃털을 털어대고 있었다.

학생들은 서로 빤히 쳐다보더니 불사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던 장신구를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러니까 워다나즈가 불사조 기념하지 말고 공부하랬잖아.”

“이럴 줄 어떻게 알았겠냐!”

*         *         *

“콜록. 불사조가 나타났다고? 운도 없군.”

모르툼 교수는 불사조가 나타났다는 말에 혀를 찼다.

안 그래도 신입생들은 할 일이 많은 상황인데 불사조까지 나타나다니.

“불을 좀 지르긴 했지만 그 이상은 안 했어요. 가만히 있던데요.”

가이난도는 불사조가 마음에 들었는지 슬며시 변명했다.

‘불을 지른 것부터 문제 아닌가?’

“콜록. 지금이야 그렇겠지. 하지만 환수들의 성격은 대부분 괴팍하기 마련. 지금이야 멀쩡하더라도 언제 변덕을 부릴지 누가 알겠느냐?”

이미 불사조가 깃털을 몇 번 턴 것만으로 주변에 불이 붙는 광경을 본 이한이었다.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불사조가 무슨 짓을 저지를 것 같으십니까?”

“콜록. 이해를 아직 못했군. 환수들은 그냥 존재 자체가 재해야. 자기 힘을 통제할 줄 모르는 폭풍 같은 놈들이지. 날아와서 껴안기라도 하면 온몸이 활활 타지 않겠나?”

모르툼 교수의 말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환수들은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는 곳마다 파괴와 혼돈을 불러오는 존재였다.

스스로의 강한 힘을 통제하지 못하는 만큼 주변에 피해를 안 끼칠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 괴팍한 성격으로 이해 가지 않는 변덕이라도 부린다면...

“콜록. 그에 비해 언데드들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잘 통제되고 예상 가능한 이 아름다움.”

“......”

“......”

이한과 친구들은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좀 위험하더라도 언데드보다는 불사조가 나을 것 같은데.’

‘쉿. 교수님 토라지신다.’

“그래서 작업은 잘 되어가고 있느냐?”

“예.”

이번 학기에서 이한과 친구들이 배운 흑마법의 분야는 크게 저주, 독, 뼈 정도였다.

어디 가서 정말 인기 없을 것 같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마법들이었다.

-콜록. 기말고사 전 과제를 따로 내주진 않겠다.

-만세! -콜록. 대신 간단한 부절 제작으로 대체하도록 하지.

-......

부절(符節).

원래는 장신구를 반으로 쪼개서 나눈 다음, 훗날 만났을 경우 서로 모양을 맞춰서 신분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였지만...

흑마법에서 부절은 좀 다른 의미로 쓰였다.

-잘 봐라.

모르툼 교수는 뼈로 된 패(牌)를 반으로 쪼갰다. 그러자 한쪽에서 강렬한 저주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달칵!

그러나 그 저주의 기운은 다시 부절을 합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쪽에는 저주의 힘이. 다른 한쪽에는 해주의 힘이 담겨 있지. 둘을 합치면 평범한 장신구지만 둘을 쪼개는 순간 그 힘이 드러난다.

저주 마법은 비교적 난이도가 쉽고 시전 속도도 빨랐지만 상대가 숙련된 마법사라면 막을 방법이 너무 많았다.

독 마법도 비슷했다. 제대로 중독만 되면 치명적이지만, 마법으로 된 독인만큼 상대가 숙련된 마법사라면 하독이 어려웠다.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흑마법사들은 평소에 더 강한 저주, 더 강한 독을 만들어 갖고 다니곤 했다.

미리 준비한 것들을 사용한다면 그 위력이 몇 배로 뛸 것은 당연지사.

흑마법에 있어서 부절은 이런 걸 안전하게 보관하는 아이템이었다.

문제는...

“커헉. 컥. 커헉.”

라파드엘은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기침을 토해냈다.

저주의 덩어리가 마법진 밖으로 새어나오더니 공기를 타고 날아든 것이다.

“에취. 에취! 에취취!!”

“아. 재채기 좀 조용히 해! 공방 혼자 쓰냐!”

가이난도가 핀잔을 주자 라파드엘은 울컥해서 노려보았지만, 반박하기에는 라파드엘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자식... 에취! 에취!!”

“하여간 실력 부족한 녀석들이 더 화를 낸다니까. 그렇지 않아, 이한?”

아직 멀쩡해서 거들먹거리던 가이난도의 안색이 갑자기 돌변했다.

“...이, 이한. 몸이... 몸이 안 움직이는데...”

“중독됐군.”

이한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라파드엘은 저주가 든 부절, 가이난도는 독이 든 부절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농도 높은 저주와 독을 부절에 푹 담가서 보관해야 하는 만큼 자칫하면 마법사도 당하기 십상이었다.

이미르그는 조심스럽게 뼈로 된 메달 반쪽을 청동으로 된 대야에 푹 담갔다. 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야 안에 든 저주가 뼈로 전이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으으윽.’

거인의 피를 이은 만큼 다른 학생들보다 마법 저항력이 높았지만 그렇다고 독이나 저주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람인 이상 독이나 저주가 두렵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으으... 으으으.”

이미르그는 진저리치며 두꺼운 집게로 뼈 메달 반쪽을 꺼냈다. 조금이라도 몸에 닿으면 저주가 옮을까봐 두려워하면서.

치이익!

간신히 다른 뼈 메달 반쪽을 붙이고 나서야 이미르그는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

이한은 깜짝 놀라 이미르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지?”

“맨, 맨손! 맨손!”

“아. 난 또 뭐라고.”

같은 마법을 배우는 친구가 하도 태연해서 이미르그는 순간 자기가 잘못 알았나 싶었다.

하지만 다시 봐도 저 워다나즈 가문 출신 친구는 손을 저주가 담긴 청동 대야에 푹 담그고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더라고.”

“...????”

“괜찮아. 안 죽어.”

“아, 아니.”

이미르그는 지금 탁자 뒤에서 뻗어있는 라파드엘과 가이난도를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충분히 죽을 수도 있어 보이는데...

옆에서 이미르그가 괴물 보듯이 쳐다보던 말던 이한은 자기 작업에 집중했다.

이한이라고 괜히 장갑과 집게를 내려놓고 맨손으로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부절 제작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이다.

뼈가 저주나 독을 깃들게 하기 좋은 매체긴 했지만 그냥 몇 번 담그고 휘적거린다고 제대로 깃들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부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뼈에 저주가 깃들기 좋도록 여러 시약을 조합해서 발라주고, 저주에 담근 다음 뼈가 저주를 제대로 빨아들이는지 확인하고, 아닐 경우 마력을 움직여서라도 저주를 뼈에 몰아넣고...

물감을 정성스럽게 덧칠하듯이 한 겹 한 겹 저주를 바르는 이 과정은 번뜩이는 영감보다는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리고 하면 할수록 흑마법이 왜 인기가 없는지도 알 것 같다.’

이한은 맨손으로 뼈 조각을 잡고 저주의 흐름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장갑이나 집게를 쓰면 이런 흐름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으으억... 이한. 나 옆에 외투 좀.”

간신히 공방 바닥에서 일어난 가이난도가 의자 옆의 외투를 가리켰다.

마비된 상태에서 누워 있다 보니 세 배로 추운 기분이었다.

“받아라.”

“고맙... 악, 앞이! 앞이 안 보이잖아!”

“아차. 미안하다.”

*         *         *

시간이 되자 모르툼 교수는 공방의 문을 열고 다시 나타났다.

“콜록. 다들 완성했느냐?”

“예.”

“네.”

이한과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절을 내밀었다. 얼마나 됐다고 학생들의 얼굴은 핼쑥해진 상태였다.

“어디 보자...”

모르툼 교수는 가이난도의 부절을 쪼개보았다. 그러자 안에서 제법 괜찮은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교수가 손가락을 튕기자 부절에서 퍼져 나온 독기는 빙글거리며 원의 순환을 이루더니 다시 부절 안으로 들어갔다.

“콜록. 제법 잘 만들었다.”

“...정말입니까!?”

가이난도는 뒤로 넘어질 정도로 놀랐다. 간신히 균형을 잡기 위해 라파드엘의 팔을 붙잡자 라파드엘이 혐오스럽다는 듯이 가이난도를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놀라지?”

“그, 다른 강의에서는 잘 만들었다는 말을 못 들어봐서...”

가이난도는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다른 강의에서 칭찬을 들은 적 없었던 만큼 모르툼 교수의 칭찬에 놀란 것이다.

그러자 모르툼 교수는 보기 드물게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콜록. 마법사가 모든 마법에 뛰어날 수는 없는 법이지.”

“?”

“?”

이미르그와 라파드엘은 이한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모르툼 교수는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네 재능은 흑마법에 있는 거다. 흑마법사가 흑마법이 뛰어난 이상 다른 마법을 부러워 할 이유가 없지. 콜록. 안 그러냐?”

“맞습니다!”

“황자 넌 공부 자체를 안 하는 거잖아.”

라파드엘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성적이 안 되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강제로 이한에게 배웠던 만큼, 라파드엘은 가이난도가 얼마나 공부하기 싫어하는지 잘 알았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억지로 앉아서 깃펜을 놀리는데 가이난도는 혼자 도주를 시도했던 것이다.

“조용히 해. 질투하냐?”

“이런 미친놈이...”

부절 하나 잘 만들었다고 거들먹대는 가이난도의 모습에 라파드엘은 기가 막혔다.

“콜록. 이건...”

모르툼 교수가 이한의 부절을 쪼갰다.

그리고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상황을 눈치 챈 가이난도가 울컥해서 외쳤다.

“교수님. 이한하고 비교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주십시오!”

*         *         *

번개걸음 교수는 신기하다는 듯이 산봉우리를 쳐다보았다.

하늘 위에 떠서 깃털을 흩뿌리던 불사조는 싫증이 났는지 산맥의 봉우리 위로 날아간 상태였다. 덕분에 봉우리 뒤로 붉은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신기하군. 불사조는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놈이 아닌데.”

이한은 친구들을 노려보았다. 친구들은 시선을 피했다.

“아주 운이 좋은 거다. 불사조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있는 녀석이 아니거든.”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으시군.’

번개걸음 교수의 말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서리거인의 왕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는데, 이한은 딱히 행운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나 희귀하든 간에 하늘 위에서 불의 비를 내리게 하는 환수가 좋을 리 없었다.

“불사조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오늘 강의를 시작해야겠군.”

번개걸음 교수는 턱짓으로 거대한 솥들을 가리켰다. 학생들은 연금술 강의에서나 볼 법한 솥들에 의아해했다.

대체?

“오늘 할 건 별로 어렵지 않다. 평소에 하던 것보다 훨씬 쉬운 편이지. 너희가 기말고사 때문에 고통 받는 게 안쓰러워서 기분 전환이나 하라고 정했는데...”

이한은 절대 속지 않았다.

‘대체 뭘 하시려고.’

쿵!

“자. 이리 와라. 케르베로스.”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삼두견의 모습에 학생들은 얼어붙었다.

케르베로스의 가운데를 맡고 있는 머리가 학생들을 둘러보더니 눈동자를 반짝였다.

-컹!

“쓰... 쓰러뜨리면 됩니까?”

이한이 자신도 모르게 묻자 번개걸음 교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대꾸했다.

“말도 안 되는 농담하지 마라. 그런 걸 시키겠나?”

“그렇죠? 하하.”

이한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싸워야 하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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