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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30화 (330/687)

330화

이한이 팔찌를 또 하나 깨먹는 걸 본 버두스 교수는 궁금한다는 듯이 물었다.

“앞으로 해제 안 하고 그냥 부숴도 돼? 그게 더 빠를 거 같은데?”

“안 됩니다.”

잔해를 치우며 이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진짜 중요할 때 아껴 써야지.’

남은 2개를 이한은 소중하게 챙겼다.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볼라디 교수가 칼들고 ‘회전 속성을 오늘까지 완벽하게 익히지 못하면 죽이겠다’라고 협박할 때 쓸 생각이었다.

*         *         *

<그림자 순찰대> 소속 사냥꾼, 바이샤다는 메이킨 가문 저택 앞에서 약속을 잡고 닐리아를 기다렸다.

같은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으로서 에인로가드에 입학한 학생을 응원하고, 동료들이 갖다달라고 부탁한 선물도 갖다 주고, 그리고...

‘메이킨 가문 저택에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물어봐도 되나???’

바이샤다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메이킨 가문의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안에서 지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화살로 협박했나??

“대체 어떻게 여기 안에서 지내는 거지?”

<황무지 별잡이> 소속 사냥꾼, 그엣세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메이킨 가문의 친구가 있는 것 아닌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콧대 높은 귀족 놈들이 왜 우리 같은 놈들하고 친하게 지내겠어.”

“가끔 사냥꾼의 영혼을 가진 귀족도 있는 법이잖나.”

“뭐? 그런 게 있어? 난 못 봤는데.”

“저, 저기...!”

지나가던 아이들이 수줍어하며 말을 걸었다.

두 사냥꾼은 무슨 일이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혹, 혹시 그 복장... 황무지 별잡이신가요??”

“맞단다.”

그엣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이샤다는 그 모습에 깊은 질투를 느꼈다.

황무지 별잡이의 명성 자체를 떠나서, 그엣세는 뭘 해도 이상하게 우수에 찬 그윽한 느낌이 났다.

‘각도의 문제인가?’

바이샤다가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의 각도를 점검하는 사이 아이들은 그엣세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황, 황무지 별잡이라고 써주세요!”

“여기에도! 여기에도 부탁드려요!”

“자. 자. 진정하렴. 나는 어디 가질 않는단다.”

“......”

바이샤다는 힐끗힐끗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바이샤다의 복장에서 무언가 떠올리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크흑.’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자 그엣세는 살짝 피곤하다는 듯이 말했다.

“황무지 별잡이의 이름을 알아주는 건 고맙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은 나한테 너무 과분하게 기대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군.”

“거 더럽게 힘들겠네.”

바이샤다는 중얼거렸다. 그엣세는 의아해했다.

“뭐라고 했나?”

“아냐. 아무것도. 황무지 별잡이 부럽다고.”

“그런가? 나는 그림자 순찰대가 더 부러운데.”

“......”

바이샤다는 순간 멱살 잡아야 하나 생각했다.

이 새끼가 누구 지금 놀리나...

“그림자 순찰대는 허명에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북방의 산맥을 지키지 않나. 그에 비해 우리는... 윗선의 방침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관련 없는 이들의 쓸데없는 방문이 너무 잦네.”

“그... 그렇군.”

바이샤다는 칭찬을 들어서 기쁘면서도 부러웠다.

그냥 바꾸면 안 되나?

“게다가 그림자 순찰대에서는 에인로가드에 입학한 학생까지 나오지 않았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어린 사냥꾼들이 그만큼 많은 거겠지.”

“흐, 흐흠.”

바이샤다는 표정을 관리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저렇게 말해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정문 안에서 닐리아가 달려 나왔다. 같은 그림자 순찰대 출신으로서 서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이샤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네가 닐리아 맞지?”

“네. 맞습니다.”

“자. 일단 이것부터 받아라. 이건 풀람이 너 갖다 주라고 나한테 부탁한 선물이야. 이건 반다가 너 갖다 달라고 한 선물이고. 이건... 아이알이었나?”

“감, 감사합니다.”

같은 그림자 순찰대 출신들이 보내는 고향 선물에 닐리아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분은?”

“그엣세라고, 황무지 별잡이 출신이야.”

“예???”

닐리아는 ‘왜 그런 사람하고 어울려요?’하는 눈빛을 보냈다. 바이샤다는 황급히 설명했다.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야. 이번에 일 하나 같이 했지.”

“아. 예...”

닐리아는 수긍하면서도 약간 미심쩍은 눈빛이었다. 바이샤다는 화제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묵는 거지?”

“친구가 같이 지내자고 해줬어요.”

“메이킨 가문의?!”

“네.”

‘세상에!’

바이샤다는 깜짝 놀랐다.

그림자 순찰대 출신에 저런 재주를 가진 사냥꾼이 있었을 줄이야.

기본적으로 그림자 순찰대는 사교 능력이 떨어지고 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놈들만 모여 있는 줄 알았는데!

“놀... 랍구나!”

‘시대가 바뀌어가는가?’

바이샤다는 언젠가 어린 사냥꾼들의 시대가 오면 그림자 순찰대도 황무지 별잡이만큼 유명해질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툭 까놓고 말해서 황무지 별잡이보다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어쨌든 여기 선물 다 받았지? 확인했고? 그럼 우린 가봐야겠다.”

“앗,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바로 떠나시는...?”

“우린 도시가 영 안 맞아서.”

바이샤다의 말에 그엣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이 탁 트여 있지 않고 고개만 돌려도 사람이 나타나고 하늘을 찌르는 첨탑들이 빼곡한 이 도시는 사냥꾼들에게는 좀 과한 곳이었다.

옆에서 불쑥불쑥 누가 튀어나올 때마다 바로 활에 손이 가는 것이다.

“그래도 뭐라도...”

“배려해줘서 고맙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아. 여기서 딱히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앗. 잠시만요. 그, 운이 좋으면 쓸만한 아티팩트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닐리아는 이한이 전해줬던 프리싱가 교단의 행사를 떠올렸다.

안 그래도 오늘 가보려고 했었는데, 두 사냥꾼을 보니 잘 됐다 싶었다.

도시에 별 관심이 없던 사냥꾼들이라 하더라도 쓸만한 아티팩트를 구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실제로 둘은 바로 흥미를 보였다.

“정말로? 그런 곳이 있나?”

“그, 프리싱가 교단이라고...”

“아하. 저주 받은 아티팩트를 해제해서 주는 건가.”

“좋은 생각 같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그런 아티팩트들은 거기 교단 사제들의 물건일 텐데 괜찮니? 아는 사람이 없으면...”

“아는 사람 있습니다!”

닐리아는 이한이 아직 있기를 빌면서 그렇게 외쳤다.

*         *         *

“이건 네가 해제해봐 이제.”

“아니...”

이한은 아까 한 번 보여줘 놓고 해보라고 던져주는 버두스 교수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없었으면 멱살을 잡았을지도 몰랐다.

‘참자. 그랑덴 시 신문에 <에인로가드 교수와 제자 멱살잡이>로 실릴 순 없다.’

아까 버두스 교수가 했던 것처럼 이한은 저주 마법진의 외곽부터 조심스럽게 선을 지워가며 접근했다.

고여 있는 마력을 건드리지 않고 차근차근 마법진을 해제해나가자 점점 저주의 힘이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했어. 이제 이거 해. 난 뭐 좀 먹고 올게.”

“......”

진짜 멱살 잡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낯익은 얼굴이 방문했다.

“닐리아! 아니. 바이샤다 씨?”

“워다나즈!?”

바이샤다도 이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번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사이에서(대체 왜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괴물 같은 활약을 보여주던 그 학생 아닌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프리싱가 교단의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아. 아는 사이라는 게...”

바이샤다는 이한을 쳐다보고 닐리아를 쳐다보고 다시 이한을 쳐다본 다음에 경악했다.

‘아니 얘는 대체 무슨 재주로 귀족들을???’

가장 발이 빠른 그림자 순찰대원도, 가장 활을 멀리 쏘는 그림자 순찰대원도, 가장 사냥감을 많이 잡는 그림자 순찰대원도 여기 있는 어린 순찰대원과 비교하면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귀족들과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마법인가?

“어떻게 친해진 거냐?”

바이샤다는 닐리아에게 속삭였다. 닐리아는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그, 그냥요?”

“그냥...!”

심오하게까지 느껴지는 대답에 바이샤다는 전율했다.

예전에 뛰어난 명궁에게 ‘활을 어떻게 해야 그렇게 잘 쏩니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활잡이도 ‘그냥’이라고 대답했었다.

‘진짜 보통 사교가가 아니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바이샤다는 존경의 눈빛을 담아서 닐리아를 쳐다보았다. 그엣세도 흥미로워하며 닐리아를 쳐다보았다.

“귀족들과 저렇게 친하게 지내다니. 대단하군.”

“황무지 별잡이 출신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우리라고 딱히 귀족들과 잘 지내는 건 아니야. 귀족들은 언제나 상대하기 곤란한 존재지.”

황무지 별잡이가 제국에서는 널리 알려진 존재라지만 결국 사냥꾼들이었다.

당연히 귀족들과 어울리는 게 익숙할 리 없었다.

그 말에 바이샤다는 갑자기 친숙함을 느꼈다.

“하지만 저 사교술은 흥미롭군... 괜찮다면 조언을 듣고 싶은데. 나도 앞으로 잘 상대할 수 있도록 말이야.”

“아, 아니.”

닐리아는 당황했다.

갑자기 왜 주제가 ‘닐리아의 뛰어난 사교술을 배우자’로 흘러간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거 없었다.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진심을 다해서...”

“오오...!”

“오오!”

셋이 떠드는 사이 아티팩트 하나를 또 해주에 성공한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닐리아가 사교적으로 뛰어난 성격이었나?’

이한은 의아했지만 친구의 명예를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 닐리아. 쓸만한 아티팩트 챙기러 온 건가?”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닐리아는 귀를 쫑긋 세우며 고마워했다. 어찌나 고마워하는지 눈가에 눈물이 보일 정도였다.

이한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아티팩트가 그렇게 필요했나?’

어디 사업에 쓰려는 것도 아니고 왜?

“혹시 여기 사냥꾼 분들이 쓰실 만한 것도 구할 수 있을까?”

“아하. 그래서... 어렵지 않지. 잠시 기다려봐. 찾으러 가자고.”

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티질링과 메흐리드 사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쓸만한 아티팩트 말입니까?”

원래라면 외부 유출을 하지 않았지만, 이한처럼 헌신하는 학생에게 안 된다고 잘라 말할 정도로 메흐리드 사제는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교단은 저주가 걸린 아티팩트를 중요시 여겼지 저주가 끝난 아티팩트는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중에서 몇 개 골라서 가지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뒤에서 두 사냥꾼들이 ‘대체 저 인맥은?’ ‘화술의 천재가 아닌가’같은 대화를 하는 게 신경이 쓰였지만, 닐리아는 애써 정신을 집중했다.

“닐리아. 이건 어때?”

이한은 가죽 물통을 들어올렸다. 거꾸로 뒤집어서 안에 있는 물을 비우고, 다시 세운 다음 기다리자 찰랑거리며 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엄청나게 빠르진 않았지만 실전에서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물통은 사냥꾼들에게 꽤나 쓸만했다. 산맥을 타고 돌아다니다보면 물을 구하기 힘들 때가 종종 있었다.

닐리아는 놀라워하며 물었다.

“괜찮은데? 무슨 저주가 걸린 물통이야?”

“내가 만든 건데.”

“......”

남들은 마도서 한 장 넘길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다른 학교 마법사 잡고 바실리스크 잡고 구울의 왕 잡고 언데드 키메라 잡고 아티팩트까지 만들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 닐리아는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내일부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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