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64화 (364/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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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에에엑.”

 제대로 기습을 당한 흰 호랑이 탑 학생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워다나즈!!!”

 “그래.”

 “뭐... 뭐하는 거냐! 왜 우릴 공격하는 거냐! 미친 거냐!!”

 “나한테 칠면조를 먼저 던진 건 너희들인데.”

 “노, 노는 거야! 장난이라고!”

 “장난이었군.”

 “그래!”

 “알겠다.”

 이한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술통에서 술이 뭉글거리며 샘솟더니 구체로 만들어졌다.

 그걸 본 흰 호랑이 탑 학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잔뜩 취한 와중에도 취기가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워다나즈 놈의 물 원소 마법!

 “모두 피... 컥!”

 “피하긴 뭘 피하나 미친놈들아.”

 “워다나즈가 왔어! 워다나즈가 왔다고, 야! 야!! 술 그만 처마시고! 워다나즈가 왔다니까!”

 연회장 복도 쪽에 앉아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변을 깨닫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연회장이 너무 시끄러워서 전달이 되지 않았다.

 드넓은 연회장을 사용해 신나게 음식을 상대방에게 던져대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뒤늦게 이한을 발견했다.

 “뭐... 컥!”

 “이... 크헉!”

 “대체 왜... 켁!”

 “워다나즈를 도와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살코가 사납게 외쳤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뛰쳐 들어오더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공격했다.

 아무리 근접전에 뛰어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어도 이렇게 잔뜩 취한 상태에서는 손발이 맞지 않았다.

 “비... 비겁한 놈들...! 우리가 취해서 방심할 때를... 딸꾹!”

 “......”

 지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작 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저 한심한 난장판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         *         *

 “죄송합니다. 공작 전하. 다들 장난이 좀 심했던 것 같습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옆으로 치우고 이한은 사과했다.

 사실 이칼도렌 공작이 상석에 앉아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싸움이 시작된 조금 뒤였다.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워낙 자유분방하게 놀고 있어서 설마 공작도 연회장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정말 미친놈들인가?’

 공작이 앞에 있는데 술잔 던지고 음식 던지면서 놀다니.

 가이난도를 능가하는 배짱이었다.

 어쨌든 공작이 있는 이상 앞에서 이런 난투를 벌인 건 예의상으로라도 사과해야했다. 이한은 고개를 숙였다.

 “아니네. 젊은 인재들의 끓어오르는 혈기를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지.”

 이칼도렌 공작의 얼굴은 정말 즐거워보였다.

 그걸 본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취향이 독특하시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서로 파이와 케이크를 던지면서 난장판을 만드는 걸 저렇게 좋아할 줄이야.

 돼지우리 구경이라도 가면 기립박수를 칠지도 몰랐다.

 ‘정말 속이 다 시원하군.’

 이칼도렌 공작은 매우 기꺼워하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인재였는데 오늘 보여준 모습이 매우 인상깊었다.

 연회장에서 꿀꿀대는 돼지새끼들을 팍팍 제압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정리 다 끝났습니다.”

 그 난장판이었던 연회장이 순식간에 깔끔해졌다. 이한과 친구들은 우르르 들어와 연회장에 착석했다.

 “......”

 “안 깨워도 되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연회장 구석에서 드르렁대며 누워있었다.

 이한도, 공작도 그쪽은 못 본 척 무시했다.

 “이렇게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많이 방문할 줄이야... 정말로 기쁘군.”

 “원하신다면 다음에는 더 초대해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

 이한의 말에 이칼도렌 공작은 날카롭게 눈빛을 번뜩였다.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저번에 맹독 오염체를 잡고 스스로의 가치를 공작에게 노골적으로 암시한 야심가였다.

 그런 야심가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런 행동을 할 리 없었다.

 이렇게 수많은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데리고 온 이유는?

 ‘인맥인가...!’

 에인로가드 출신이라 하더라도 교우관계가 넓은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공작도 에인로가드가 탑으로 구분되어있고 이들이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런데 푸른 용의 탑 소속인 워다나즈가 저렇게 다른 탑 소속의 학생들까지(흰 호랑이 탑과는 사이가 매우 안 좋은 것 같았지만) 데리고 오다니.

 아무나 보여줄 수 없는 놀라운 용인술이었다.

 대귀족으로서 타고난 위엄을 갖고 있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

 ‘고작 1학년이... 장래가 두려워지는군.’

 저번 만남에서 이한을 단순히 재능 있는 신입생이 아니라 테이블 맞은편에 대등하게 앉을 자격이 있는 젊은 야심가로 승격시켰던 공작이었다.

 그런데 오늘 만남에서는 아주 희미하지만 경계심이 들 정도라니.

 진심으로 훗날의 모습이 두려웠다.

 “마실 걸 가지고 올까요?”

 하인의 질문에 이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식사를 좀 준비해주십시오.”

 “...예.”

 방금 그 난장판을 피웠던 학생들 때문에 조심스럽게 음료만 갖고 올까 물었던 하인이었다.

 괜히 걱정되었지만 어쩌겠는가.

 하인은 주방에 연락을 넣으러 물러났다.

 ‘음료를 거절하고 식사를 준비해달라? 바로 대화하지 않고 시간을 끌겠다는 건가? 왜지?’

 이칼도렌 공작은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걸 본 더르규가 초조한 목소리로 지젤에게 물었다.

 “화나신 건가?”

 “눈알만 달려 있어도 알 수 있는 거 계속 물어볼 생각이야? 그럴 거면 은화 내고 물어봐.” 

 이한은 살코에게 속삭였다.

 “최대한 많이 먹어라. 살코. 이건 공짜거든.”

 “워다나즈. 넌 정말 검은 거북이 탑에 왔어야 했다.”

*         *         *

 하인들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세 탑 학생들의 식사는 훨씬 더 평화롭고 조용했다.

 사제들은 조심스럽게 나이프를 사용해 스테이크를 썰었고 한 입 먹을 때마다 공작에게 공손한 태도로 감사인사를 했다.

 원래 이런 인사에 감정이 동요하지 않는 이칼도렌 공작이었지만 아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지랄을 보고나자 마음이 흐뭇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공작은 이번 연회가 끝나면 각 신전들에 기부금이나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의 식사는 사제들보다야 시끄러웠지만 어디까지나 화기애애한 정도였다. 학생인 걸 감안해주면 풋풋해서 오히려 좋았다.

 “이거 어떻게 먹는 거지?”

 “줘봐. 내가 잘라줄 테니까. 힘으로 자르는 게 아니라 여기 관절 부분을 자른 다음에 껍질을 벗기는 거야.”

 “닐리아...!”

 “역시 닐리아는 달라도 뭔가 다르지 않아?”

 “행동에 품위가 있어. 괜히 귀족들하고 어울릴 수 있는 게 아니야.”

 “......”

 가이난도가 접시에 코를 박으려고 하는 걸 뒷머리를 잡아당겨서 말리고, 이한은 접시를 들어서 황녀 앞에 내려놓았다.

 사슴고기를 양념으로 굳힌 테린을 먹고 싶었지만 거리가 멀어 시선만 던지던 아덴아르트는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걸 본 로웨나는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원하는 걸 아신 겁니까?”

 “계속 힐끔거리면서 쳐다봤잖나.”

 “그렇습니까? 저는 오늘 수수께끼에 대해 고민하시는 줄 알았는데...”

 ‘접시를 쳐다보면서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로웨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이런 식으로 챙겨주면 이미 친구 아닐까요?”

 “그걸 친구라고 하나?”

 “하인 같은데.”

 “보모.”

 “집사가 낫겠다.”

 다른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냉정하게 첨언하자 로웨나는 시무룩해졌다.

 대충 주변에서 챙겨줘야 할 사람들 다 챙겨준 이한은 공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공작은 표정 변화 없이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저런 걸 보면 사람은 참 좋았다.

 황족을 제외한 이들에게 인색하게 굴어서 그렇지.

 “공작 전하. 수수께끼에 대해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뭐든지 물어보게.”

 이한이 말을 걸자 공작은 끼니를 건너뛴 사람이 음식을 받은 것처럼 반색했다.

 “저는 전하께서 내주신 수수께끼가 무언가를 비유하는 수수께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달이라거나...”

 “아주 잘 맞췄네!”

 “......”

 “......”

 순간 이한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옆에 있던 요네르의 얼굴도 얼어붙었다. 둘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진짜 비유 수수께끼였나?’

 ‘조금 이상하다 싶었지...!’

 둘의 표정이 굳은 것도 모르고 공작은 말을 이었다.

 원래 맞히라고 내준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하고 이상한 답을 내오면 문제를 낸 사람도 곤혹스러운 법.

 수수께끼를 냈더니 자꾸 억지로 답을 갖고 오는 황녀의 추종자들 때문에 ‘더 알기 쉽게 내야 하나’하고 고민했던 공작이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칼도렌 공작이 눈치를 봐서 틀린 수수께끼도 맞다고 인정해줬다’같은 소문도 돌 수 있는 문제인 만큼 꽤 고민을 했는데...

 이렇게 정답을 갖고 오다니.

 “그렇지. 바로 그게 정답이었네.”

 “그, 그렇군요.”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황녀와 추종자들을 쳐다보았다.

 식사하느라 아직 공작과 이한의 대화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로웨나?”

 “예?”

 “갖고 온 지팡이 아래로 내려놓고 절대 꺼내지 마.”

 “예? 어째서 말입니까?”

 “...그냥 꺼내지 말라고.”

 이한이 정색하자 로웨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나중에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식사가 끝나자 공작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로 에인로가드에 관한 질문이었다.

 “에인로가드에서는 어떻게 지내나?”

 “개ㄱ...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ㅇ... ...저도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진실을 말하려던 학생들도 맹세로 혀가 멈추자 포기하고 무난한 대답을 선택했다.

 ‘신비와 지식을 지키는 것과 식사가 무슨 상관이냐!’

 ‘빌어먹을 맹세 같으니!’

 “내가 듣기로 마법사들의 가르침은 무척 가혹하다고 들었는데.”

 “ㅇ... ...그건 과거의 소문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원래 그런 소문이 인상에 강하게 남는 편이라 더더욱...”

 “...?”

 공작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분명 안의 생활이 꽤나 힘들다는 정보를 얻었는데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왜 이리 맞는 게 없단 말인가?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미궁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여기 워다나즈 덕분에... 그럭저럭 괜찮은 생활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이 아니었다면 아주 조금 더 힘들었을지도...”

 이한의 이야기가 나오자 공작은 흥미롭게 들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망이 높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들으면 다른 시각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제 목숨도 몇 번 구해줬습니다. 웬 미친놈들이 덤벼드는 걸...”

 “운이 좋았지.”

 살코의 말에 이한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 순간 공작은 번개가 치는 충격을 받았다.

 직감적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설마!’

 공작이 학교 안에 들여보냈던 이들.

 지금 저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말하는 미친놈들은 그들일 수밖에 없었다.

 에인로가드 정도 되는 학교에서, 학생을 습격하는 이들이 더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게 말이 되는가!?’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이칼도렌 공작이었지만 이번 일은 그 선을 넘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을 보낸 것도 아니라 그 비싼 <단풍나무의 뱀> 놈들을 들여보냈다.

 초짜도 아니었다. 대(對) 마법사 경험에는 이골이 난 놈들이었다.

 아무리 마법학교 안이고 교수들이 있다지만 신입생 하나도 제압 못하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공작은 인내심을 잃고 질문을 꺼내버렸다.

 “혹시 그 습격이란 게 무슨...”

 “교ㅈ... 아닙니다.”

 “해ㄱ... 별 거 아닙니다.”

 다른 학생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아니라고 끝냈다. 공작은 더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운 건...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지 않나! 습격을 막은 자가 이 이칼도렌 공작에게 접근하다니...’

 공작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마치 자신이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꼭두각시가 된 기분.

 황제를 대면할 때 외에는 느껴본 적 없는 진득한 압박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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