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화
흑마법사의 독은 자연에 존재하는 평범한 독이 아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독을 마법사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웠다.
뛰어난 흑마법사는 이러한 가상의 독들을 여러 개 연계시키고 융합해 더욱 더 복잡하고 지독한 독을 만들어내곤 했다.
언데드 마법사도 당연히 그 정도 수준은 되는 마법사였다.
-타각(打刻)의 독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열다섯 개의 기본독으로 시작해야 한다.
“......”
-먼저 세 개의 독을 섞어서...
분명히 언데드 마법사가 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한의 머리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독 원소 마법의 수준이 높았던 것이다.
-...다 들었겠지! 해봐라!
“...독이여, 피어나고 끓어올라라. 피어나는 독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황이 급한 탓에 이한은 일단 주문부터 외우고 봤다.
허공에서 뭉글거리면서 독들이 생겨나고 뭉쳐나고 변색해갔다.
-완성되는 대로 쏴라! 시간이 없다!
“...움직여라!”
아까 언데드 마법사가 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독이 형태를 갖추고 날아갔다.
이런 원소 통제력은 언데드 마법사가 이한을 따라올 수 없었다.
언데드 마법사가 굳이 저런 기교를 연습하지 않고 더 고위의 마법을 배우는 동안 이한은 혹독하게 수련했으니까.
-훌륭하다!
그러나 언데드 마법사는 이한의 그런 기묘한 마법 능력을 다른 식으로 오해했다.
원체 뛰어난 마법사라 저 정도 움직임이 나온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기대가 큰 탓에, 언데드 마법사는 이한의 타각독이 광전사의 몸통을 완전히 녹이지 못하고 근육만 태우자 매우 실망했다.
치이이익-
-아... 아니?! 대체 언데드 소환도 굼뜨고 독도 못 다루면 흑마법은 왜 하는 거냐!
언데드 마법사는 믿기지가 않아서 발을 굴렀다.
다루는 마법 분야나 마법 연사 능력이나 원소 통제 능력을 보면 자기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 같은데, 왜 이렇게 실수가 잦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불완전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 정도 성공시킨 것도 솔직히 대단한 게 맞았다.
객관적으로 화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한은 사과했다.
워낙 미친 교수들의 무리한 요구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 대신 화를 낸 건 오골도스였다.
“사과하지 마! 네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데! 이 미친 언데드 놈!”
-뭐라고!?
“나이를 몇백년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잘못 가르쳐놓고 새파랗게 어린 마법사한테 화를 내는 게 옳은 짓이냐! 교장 선생님도 그러진 않을 거다!”
-뭔... 뭔...?
언데드 마법사는 혼란스러워했다.
말하는 걸 보니 이 두 마법사가 상당히 앳되게 느껴졌던 것이다.
화르르르륵!
그 사이 앞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언데드 광전사가 몸에서 체액을 내뱉더니 마찰시켜서 불을 지른 것이다.
“......”
냉기를 몰아내기 위해 자기 몸에 불을 지르는 광기에 이한은 경악했다. 언데드만이 할 수 있는 살벌한 전법이었다.
‘온다!’
언데드 광전사가 불타는 몸을 휘둘러 스켈레톤 전사들을 한 차례 더 밀어냈다.
아직 움직임이 둔했지만 이제 곧 뚫고 돌격해올 거란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선배. 혹시 방법 없으십니까!”
“나라고 무슨...!”
오골도스는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당장 본인도 2학년인데 뚜렷한 방법이 나오겠는가.
쓸 줄 아는 저주 마법이나 뼈 원소 마법, 독 원소 마법들은 저 광전사에게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방금 교전에서 저 언데드 광전사가 무시무시한 체력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바리케이드도 부서졌고 냉기 원소 마법도 파훼됐고 어중간한 뼈나 독 마법으로는 발걸음을 묶기 힘들고...
‘소환수... 소환수라도 어떻게 세워서 시간을...’
샤르칸이 혼자 남아서 놈을 노렸지만 무시하고 이쪽으로 달려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단단한 소환수를 사이에 세워야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오골도스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물었다.
“스켈레톤 전사 숫자 줄이고 합치면 안 되나!?”
“예?”
“줄이고 합치면 안 되냐고!”
지금은 약한 소환수를 여럿 소환할 때가 아니었다.
숫자는 하나더라도 어떻게든 버틸 소환수가 필요했다.
원래 일반적으로 계약해서 불러오는 소환수들은 마법사가 멋대로 합치거나 융합할 수 없었지만 이한의 흑마법은 마법사가 직접 불러오는 방식.
숫자를 줄이고 합친다면 그 힘은 올라가고 조종은 수월해질 것이다.
“돌아와라, 그리고... 일어나라, 뼈로 이루어진 전사들이여!”
이한은 일단 선배가 말하는 대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스켈레톤 전사들이 우르르 무너지더니 원래 시약인 뼛조각으로 돌아왔다. 그 뼛조각이 다시 합쳐지며 하나의 스켈레톤 전사로 일어났다.
일반적인 마법보다 십수 배나 되는 양의 시약을 쏟아 부은 탓에 주문에 들어간 마력부터 유지에 들어가는 마력까지 소모량이 어마어마했지만, 그 결과는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열 구가 넘는 스켈레톤 전사를 압축해서 만든 것처럼 뻑뻑하고 단단한 육신을 가진 스켈레톤 전사가 앞에 탄생했다.
‘진... 진짜 됐잖아?!’
오골도스는 당황했다.
자기가 급해서 외쳤지만 생각해보니 줄이고 합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해진 마법에 시약과 마력을 과투입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오골도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후배는 천재라는 명성에 걸맞게 도박에 가까운 마법을 성공시켰다. 소환된 스켈레톤 전사의 덩치만 봐도 상당히 많이 합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골도스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 잠깐! 왜 이럴 수 있었으면서 열 구를 넘게 소환해서 싸운 거지?”
오골도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럴 수 있었다면 진작 하면 되지 않았나?
언데드 마법사도 그 질문이 꽤나 궁금했는지 이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까먹었습니다.”
“뭐??”
“연습하느라 많이 소환했다가 정신이 없어서 그대로 싸웠습니다. 죄송합니다!”
“......”
-......
언데드 마법사와 오골도스는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광전사가 달려오고 있었다.
쾅!
관통에 독에 냉기에 화염까지 온갖 데미지는 다 입은 광전사였지만 그 힘은 살벌했다.
통로를 가로막은 스켈레톤 전사가 끼긱거리며 그대로 밀려났다. 이한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쏘아져라!”
이한의 주문과 함께 스켈레톤 전사의 몸통에서 뼛조각이 발사되었다.
계약한 관계가 아닌 이한이 직접 조립했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광전사는 뼛조각이 틀어박혀도 상관없다는 듯이 우직하게 스켈레톤을 밀어붙였다.
우득거리는 소리가 연속으로 터져나오자 이한은 이를 악물고 스켈레톤을 강화시켰다.
“비블레의 규칙으로, 마력이여 발산되어라. 냉기여, 깃들어라! 독이여, 피어나고 끓어올라라. 피어나는 독은...!”
이한은 버두스 교수에게 배운 마력 발산 부여까지 스켈레톤 전사의 뼛조각에 걸고 냉기와 독을 부여시켰다.
증폭된 마력. 냉기. 독.
이 세 요소들이 충돌하며 스켈레톤 전사가 금세라도 붕괴할 것처럼 불안정해졌다. 이한은 더욱 마력을 투입해서 어떻게든 응급처치를 했다.
독과 냉기가 섞인 뼛조각들이 연신 발사되자 언데드 광전사도 초조해졌는지 어떻게든 힘으로 제압하려고 온몸의 근력을 끌어올렸다.
오골도스는 순간 무언가 떠올라 외쳤다.
“잠깐, 너 암흑 원소 쓸 줄 안다면서! 왜 암흑 원소는 안 불어넣어!”
“...까먹었습니다!”
“...빨리 해줘, 제발!!!”
너무 많은 마법을 배우는 후배한테 차마 양심상 화는 내지 못하고 오골도스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암흑 원소를 스켈레톤 전사에게 불어넣자 스켈레톤의 뼈가 검게 물들며 더욱 날카롭고 단단하게 변했다.
“쏘아져라, 쏘아져라, 쏘아져라!”
파파파팍!
안 그래도 너덜너덜해진 광전사의 몸통에 뼛조각들이 산탄처럼 박혔다.
-폭파시켜도 되겠나?
“예?”
-저 스켈레톤 말이다!
“하십시오!”
이한의 허락을 구하자 언데드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간신히 회복시킨 마력을 끌어올렸다.
뼛조각 속에 깃든 가스들이 마력과 함께 반응해 연쇄적인 폭발반응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쾅!
강화 스켈레톤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언데드 마법사는 이한과 오골도스를 옆의 방에 처넣었다. 폭발의 후폭풍으로 통로에 공기가 미친듯이 소용돌이쳤다.
이한은 언데드 마법사의 실력에 감탄했다.
“이 정도 위력일 줄은...”
-뭔 미친 마력을 얼마나 때려박은 거야!!!
언데드 마법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절대 이 정도 위력을 의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 * *
바깥 통로의 상황, 그 정도 되는 강화 스켈레톤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법, 그런 스켈레톤을 폭파시키겠다는데 왜 말리지 않았느냐는 질문 등 할 말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언데드 마법사가 가장 먼저 선택한 건 이한의 나이였다.
-...스물도 안 됐다고?!
“보면 모릅니까?”
오골도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는 내가 몇 년 된 언데드인지 아느냐?
“...모, 모르겠습니다?”
-네가 내 나이를 짐작 못하는 것처럼 나도 당연히 너희들 나이를 짐작 못하지. 다 똑같이 생겼는데.
언데드 마법사는 한탄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도 마법을 다양하게 쓰고 마력도 넘쳐나길래 왕국 수석 마법사인가 싶었는데 스물도 안 된 애송이였다니.
하긴 군데군데 너무 어설픈 부분들이 많았다.
-잠깐, 스물도 안 됐는데 타각독은 어떻게 또 따라했...
쿠르르릉!
밖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다시 나자 언데드 마법사는 힐끗 고개를 내밀었다.
-!!!
이한도 같이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선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뭔... 뭐냐?”
“아까 그 폭발 때문에 천장이 날아갔습니다. 잔해를 밟고 가면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그래?! 잠깐. 나쁜 소식은?”
-언데드 광전사들이 더 오고 있다.
“......”
오골도스는 이한에 대해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후배는 유머 센스가 최악이었다.
-마력이 얼마나 남았지?
“하나도 안 소모됐습니다.”
-하나도 안 남았다고?
“하나도 안 소모됐다고요.”
-...뭐... 뭔... 아니. 그래. 그러면 아까처럼 다시 스켈레톤 전사를 불러올 수 있느냐?
“시약인 뼛조각을 다 써서...”
“달라고 해라! 여기 있잖냐!”
오골도스는 울컥 소리치며 이한의 손에 시약주머니를 쥐어줬다.
이한은 살짝 감동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도 그렇고 도움 감사합니다.”
“그걸 도움이라고... 젠장. 됐다. 빨리 불러내! 가까이 붙기 전에!”
-그런데 아까는 운이 좋아서 그 정도로 끝난 거지, 다시 할 경우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
“당연히 싸우는데 위험하겠죠! 그렇다고 안 싸울 수는 없잖습니까!”
오골도스는 언데드 마법사의 말에 기가 막혀서 외쳤다.
그러나 언데드 마법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강화된 스켈레톤을 폭파시키는 것 말이다.
“......”
“...아까처럼 쓰고 피하면 안 됩니까?”
-아까는 운이 좋았다니까. 혹시 폭파에 딱 맞게 마력을 조절할 수는 없나?
“오늘 처음 해봤는데 어떻게 세심하게 조절합니까?”
정론에 언데드 마법사는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반박하기 힘든 말이었다.
‘왜 스물도 안 먹어서...’
쿵-
느닷없이 바위가 날아왔다. 광전사가 날린 바위였다. 언데드 마법사는 황급히 해골을 뒤로 당겼다.
“...?”
그 뒤로 공격이 없자 언데드 마법사는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천장 잔해 앞에 모여 있던 광전사들이 웅성거리고 있다가 손으로 위를 가리켰다.
“뭐라고 합니까? 항복 권유?”
이한의 질문에 언데드 마법사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말했다.
-먼저... 올라가라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