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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91화 (391/687)

391화

이한은 오랜만에 두통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시험을 앞둔 가이난도한테 어디서부터 설명해줘야 할지 고민할 때 느꼈던 두통이었다.

“자. 잘 들어라. 흰 호랑이 탑 놈들아.”

이한은 이 골렘의 수준이 얼마나 뛰어난지 최선을 다해서 설명했다.

처음에는 ‘워다나즈 녀석, 자기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참 돌려서도 말하는군’하고 듣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얼굴이 흐려졌다.

“설... 설마.”

“못 한다는 거냐? 워다나즈??”

“그렇다고 아까부터 말했잖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충격을 받아서 대답도 하지 못했다.

비척거리며 돌아가려는 모습이 어찌나 기운 없어 보였는지 사제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아무래도 걱정되는데요...”

“괜찮아. 곧 기운들 차릴 거다.”

*         *         *

그러나 이한의 예상과 달리 다음 날이 되어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시무룩해있었다.

생각보다 골렘에게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곧 기운 차리겠지.’

이한은 신경 쓰지 않았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갑자기 잘해주기 전까지는.

탁-

“워다나즈. 너 가을 토끼가 맛있단다.”

“?”

탁-

“워다나즈. 여기 사슴 뒷다리다.”

“??”

탁-

“워다나즈. 여기 1년 넘게 숙성시킨 최고급 제국 햄이다.”

“이건 어디서 갖고 온 거냐?”

“주방을... 쉿.”

‘어쩐지 두 명 정도 줄었다 싶었는데 징벌방에 끌려간 건가?’

계속 선물만 받아도 되긴 했지만 이한의 양심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한은 한숨을 쉬며 앙라고와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선물은 고마운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다음에 멧돼지를 통째로 잡아오면...?”

“내가 능력이 있는데 안 해주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이 자식아.”

“악!”

이한은 결국 참다가 폭발해서 앙라고의 머리통을 지팡이로 때렸다.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는 게 나을 거다.”

“어떤?”

“버두스 교수 같은...”

“그 교수님이 부탁을 들어주실 리가 없잖아.”

앙라고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말했다.

그들도 당연히 버두스 교수가 부여 마법에 뛰어난 달인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도와줄 뜻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긴 그렇군.”

“앗. 혹시 워다나즈 저 놈이라면 뭔가 다를지도...”

“맞다, 아끼는 제자잖아!”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이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개소리하지 마라.”

“...아니냐?”

“그래. 그런 관계 아니니까. 받은 게 있으니까 말은 해보겠는데 너무 기대하지 마라.”

마침 오후에 버두스 교수의 모임이 있었던 만큼 이한은 말이나 해보기로 했다.

이 정도 받았으면 말 정도는...

“골렘? 다음에 갖고 와.”

“!”

이한은 물론이고 앙라고와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깜짝 놀랐다.

이한은 너무 놀라서 평소처럼 말을 조심스럽게 하지 못했다.

“교수님. 혹시 어디 편찮으십니까??”

“워, 워다나즈. 교수님이 좋다고 하셨는데 왜 그러는 거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기겁해서 말리려고 들었다.

대체 왜 버두스 교수를 자극하려고 한단 말인가.

“난 멀쩡해. 고나달테스가 일을 많이 시킨 것 말고는. 그보다...”

버두스 교수가 머뭇거리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이한은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다.

원래 무례하던 사람이 갑자기 예절을 갖추면 더 무섭기 마련.

평소 원하는 게 있다면 무조건 고민하지 않고 말하던 버두스 교수가 저렇게 머뭇거리면서 눈치를 보니 소름이 끼쳤다.

대체 뭘 부탁하려고?

‘설마 피나 뼈를 뽑으려는 건가?’

“바실리스크 키운다면서?”

“...예.”

이한은 한숨을 참으면서 대답했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이제 궁금하지도 않았다.

‘교수들끼리는 다 텔레파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야겠군.’

“같이 구경 가도 돼?”

“예?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 겁니까?”

“배그렉 교수 강의실에서 키울 거잖아.”

“아마 그렇겠죠.”

“내가 혼자 가면 배그렉 교수가 공격할 수도 있잖아.”

“왜... 무슨 짓을 하셨길래?”

“몰라. 그냥 공격하던데.”

버두스 교수는 순진무구한 비버의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한은 귀여운 동물의 모습에 속지 않았다. 저런 걸로 넘어가기에 버두스 교수가 저지른 짓들이 너무 많았다.

‘그보다 같이 가셔도 공격하실 것 같은데.’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해주진 않았다.

어차피 맞는 건 버두스 교수였으니까.

“어쨌든 같이 구경 가시면 골렘 도와주시는 겁니까?”

“응? 골렘은 골렘이지. 구경은 구경이고. 무슨 소리야?”

생각해보니 버두스 교수는 저런 걸로 거래를 할 정도로 영리한 사람이 아니었다.

골렘은 그냥 재밌어보여서 수락한 거였고, 제안은 별개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끝나고 같이 가시죠. 어차피 저녁 전 강의 때문에 한 번 찾아뵀어야 했는데.”

버두스 교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그럼 배그렉 교수한테 나 공격하지 말라고 해줘!”

“오... 음... 뭐 말은 해보겠습니다.”

*         *         *

부여 마법 강의가 끝나고(손에 화염 저항 마법을 걸고 모닥불 속에서 달궈진 돌멩이를 꺼내느라 학생 몇몇이 치유실로 실려갔다) 이한은 버두스 교수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교수님. 2학기 때는 역시 강화 마법 위주로 가르쳐주시는 겁니까?”

1학기 때 부여 마법의 기초를 배우고 무생물에게 거는 걸 연습했으니, 2학기 때는 생물에게 직접적으로 거는 부여 마법을 연습하는 게 순서적으로 맞았다.

“어?”

“...아닙니까?”

“그랬나? 그냥 책 순서대로 했던 거라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네.”

학생들을 무슨 길가에서 굴러가는 돌멩이처럼 대하는 버두스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이제 와서 딱히 놀랄 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면 2주 동안 어떤 걸 가르쳐주셨습니까?”

“저번 주에는 뭘 했더라... 음... 아. 그거다. 그거. 화살 막기.”

“예?”

“날아오는 화살 막는 거. 강화 마법 확인하기 좋잖아.”

‘더 늦게 들어올 거 그랬나?’

“그러면 중간고사 때까지는 계속 강화 마법 위주로 갈 가능성이 높겠군요.”

“책에 그렇게 쓰여 있어? 그럼 그렇겠지?”

“...중간고사는 저번처럼 아티팩트 제작입니까?”

“아냐. 1학년 신입생들 2학기 중간고사는...”

버두스 교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거였어. 서로 함정 준비해서 던져넣는 거.”

“...예??”

“잠깐만. 이거 고나달테스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비밀이야.”

“아. 예. 그...?”

이한은 기껏 힌트를 얻었는데도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대체 뭔 중간고사 시험이 ‘서로 함정 준비해서 던져넣는 거’란 말인가?

“다 왔습니다. 교수님.”

이한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볼라디 교수는 언제나처럼 탁자 옆에 앉아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낯익은 커다란 알이 강의실 중앙에 위치해있다는 점이었다.

“저게 바실리스크지?”

버두스 교수는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볼라디 교수는 대답 대신 바로 지팡이를 들어서 버두스 교수를 공격했다.

비버 수인 교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옆으로 날렸다.

“말려줘!”

“제가 무슨 능력으로... 그보다 교수님. 버두스 교수님을 왜 공격하시는 겁니까?”

“바실리스크를 훔쳐가려고 했다.”

“...교수님...”

이한은 한심하다는 듯이 버두스 교수를 쳐다보았다.

“아니야!”

버두스 교수는 꺽꺽대며 외쳤다.

“신기해서 만져보려고 했던 거야!”

“무슨 말씀을.”

이한은 코웃음쳤다.

복도 옆으로 구르고 있던 버두스 교수는 이한이 왜 저러나 싶어서 올려다보았다.

“교수님께서 그런 순수한 마음만으로 오셨을 리가 없잖습니까.”

“...진짜 아니라니까!”

버두스 교수는 오랜만에 억울함을 느꼈다.

“물론 바실리스크가 태어나면 재료를 좀 받아가려고 하긴 했어!”

“허락 안 받고요?”

“허락 받고!”

“에이...”

이한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버두스 교수는 참으로 오랜만에 억울함을 느꼈다.

평소에는 무슨 소리를 들어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철혈의 정신을 가진 버두스 교수였지만, 이한이 저러니까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제자가 저렇게 스승을 의심해도 된단 말인가?

“진짜라니까!”

“알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이한이 내민 손을 잡고 버두스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볼라디 교수의 마법이 다시 강의실 안에서 쏘아져 나왔다. 버두스 교수는 정통으로 맞고 복도 저편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착용하고 있는 아티팩트들이 워낙 대단해서 상처 하나 입진 않았지만 충격이 컸는지 버두스 교수는 기침을 콜록였다.

“말리라니까!”

“아니... 제가 말린다고 말려지는 분이 아니잖습니까.”

“해보고 말해!”

이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했다.

“교수님. 버두스 교수님을 공격하는 걸 잠시 중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알겠다.”

볼라디 교수는 지팡이를 내렸다.

“......”

“......”

버두스 교수는 이한을 노려보았다.

괜히 안 맞아도 될 공격을 한 대 더 맞은 셈 아닌가!

*         *         *

바실리스크의 알이 있다 하더라도 볼라디 교수의 강의가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암흑 원소는 얼마나 익혔지?”

“기본적인 시전은 가능합니다만...”

“번개 원소는?”

“형태 변환 연습 중입니다.”

“물 원소는? 소환 마법은? 부여 마법은?”

버두스 교수는 옆에 앉아 우두커니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다른 교수였다면 ‘좀 과하지 않나?’하고 반응했을 테지만 다행히 버두스 교수라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진도가 부족한 부분부터 따라잡아야겠군.”

볼라디 교수의 말에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슬금슬금 옆으로 움직였다.

만약 공격이 날아오면 버두스 교수를 방패삼으려는 생각이었다.

‘교수님이 있는데 바로 공격하진 못하겠지.’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볼라디 교수는 암흑 원소로 된 탄환을 날리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맞게 된 버두스 교수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넘어졌다.

“중지한다면서!”

“그쪽을 공격한 게 아니다.”

“아. 그렇구나.”

이한은 그렇긴 뭐가 그렇냐고 하고 싶었지만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버두스 교수는 넘어졌어도 착용하고 있는 아티팩트들 덕분에 단단한 장애물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이한은 재빨리 쓰러진 버두스 교수를 잡아끌고 방패처럼 들어올렸다. 암흑 원소로 구성된 탄환들이 사정없이 튕겨나갔다.

“이거 언제 끝나?”

“잠깐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30분 후.

간단한 기초 훈련으로 이한의 암흑 원소에 대한 감각을 향상시킨 볼라디 교수는 휴식을 선언했다.

“환경을 활용하는 건 좋지만 기본적인 실력이 우선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바실리스크를 돌보도록.”

“...?”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어... 뭐... 안 가르쳐주십니까?”

보통 1학년 학생한테 바실리스크의 알을 돌보라고 할 때는 ‘이렇게저렇게 해야 한다 이런 짓은 하지 말고’같은 걸 알려주지 않나?

물론 이한이 오기 전에 번개걸음 교수한테 이것저것 묻긴 했지만...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다.”

“감사합니다.”

탁-

볼라디 교수는 책을 던졌다. 이한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볼라디 교수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책으로 설명하는 게 더 나은 사람이었으니까.

“푸른 용의 탑 기준으로 썼지만 불사조의 탑도 크게 차이는 없을 거다.”

“...예?”

이한은 책을 훑어보려다가 멈칫했다.

무슨 소리지?

옆에 있던 버두스 교수가 말했다.

“알 옮기는 거 힘들면 도와줄까?”

“......”

볼라디 교수의 강의실에서 키우는 걸 돕는 게 아니라, 기숙사에서 키워야 한다는 걸 깨닫자 이한은 진지하게 흰 호랑이 탑으로 이적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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