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20화 (420/687)

420화

-정말 신기하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데스 나이트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해골 교장은 혀 차는 소리 대신 뼈를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직 멀었군. 난 바로 알아차렸다.

-그렇습니까?

데스 나이트는 놀라워했다.

지금 이 미스터리한 현장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차리다니.

역시 주인님은 제국 제일의 현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의 가장 인기 있는 잡지, 수인족 탐정 토베리즈를 찍어내는 인쇄 길드도 매번 조언을 구해올 만큼 고나달테스의 이름은 명성 높았다.

범인은 워다나즈 놈이 분명해.

-...?

데스 나이트는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주인을 쳐다보았다.

물론 데스 나이트의 주인이 아끼는 제자일수록 더 괴롭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완전히 억지 아닌가.

저렇게 억지로 괴롭혔다가 제자가 비뚤어지기라도 하면 뒷감당하기 힘드실 텐데...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 이 머리통 빈 놈아.

-알겠습니다. 전 주인님을 믿습니다.

진짜 믿는 놈은 그런 소리도 안 한다. 자. 생각해봐라. 여기 1학년들이 왔다갔다는 것 정도는 너도 짐작하고 있겠지.

-그건...

데스 나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이 인정하진 않았지만 분위기를 보니 1학년 학생들이 왔다간 건 분명해보였다.

그런데 1학년 학생 중에 그나마 마법사 놈들하고 기사 놈들 모두 친한 건 워다나즈 놈밖에 없지.

-하지만 탈주한 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인데 어떻게... 그리고 아무리 친하더라도 그게 가능한 일인지...?

무언가 내막이 있겠지. 잘 기억해두도록. 불가능한 것들을 모두 제외하고 나면, 남은 게 아무리 이상하게 보여도 그게 진실이야.

해골 교장은 현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스 나이트는 감복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친한 건 알았지만 둘 사이를 중재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재주도 정말 좋군.

-예. 아직도 신기합니다. 두 개새끼들을...

어허.

-죄송합니다. 무례한 표현을.

아니. 목소리 낮추고 계속해도 된다. 개새끼들이 맞긴 하지. 말로 해서 안 들으면 그게 사람새끼인가.

해골 교장은 진심으로 신기해했다.

드넓은 제국 땅에 천재는 많았다.

물론 이한은 그 천재들 중에서 좀 더 특출난 편이긴 하지만 어쨌든...

당장 이한의 선배들 중에서도 자신의 전공 학파에서는 놀라운 재능을 선보이는 이들이 여럿 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천재들은 보통 자기 학문에만 관심이 있지, 자기 친구들 끼니 챙겨 먹이면서 교수들 일 도와주고 시간 남으면 외부인들 중재까지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한은 그런 게 가능했다.

지금 보니 기사들과 마법사들도 중재한 게 분명했다.

이건 노련한 제국 관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생각하니 어이가 없군. 원래 저런 건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인데. 말이 되나? 어떻게 제자보다 사교성이 떨어지지?

데스 나이트는 속으로 ‘주인님께서 데리고 오신 교수들이잖습니까’라고 생각했지만 묵묵히 침묵했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제자 분을 두셨으니 참으로 기쁘시겠습니다.

그렇긴 하지. 저 정도까지 가능하단 걸 알았으니 앞으로 다른 걸 더 시켜 봐도 되겠군. 다음에 뭘 시켜볼까...

-......

데스 나이트는 1학년한테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묵묵히 침묵했다.

충성스러운 소환수는 침묵할 때를 잘 알았다.

참. 하마터면 잊을 뻔했군. 맡아서 처리하도록.

-뭘 말입니까? 포상?

데스 나이트는 해골 교장이 제자한테 추가로 일을 시키는 만큼 포상을 주나 싶었다.

솔직히 마법사들과 기사들을 중재해서 일을 처리하는 건 사악한 악마 대공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미쳤나? 무슨 포상을? 도망친 녀석한테 포상을 줄 정도로 에인로가드가 만만해보이나?

-...예. 죄송합니다.

워다나즈 녀석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찾아보란 소리였다.

-흰 호랑이 탑 놈들과 같이 나온 게 아닐까요?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워다나즈 녀석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 직원을 풀어줬다면서? 아마 따로 나왔을 거야. 한 번 찾아보도록.

해골 교장은 의외로 자신이 세운 규칙에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현장에서 잡히거나 물증을 남기지 않은 이상 심증이나 증언만으로 학생을 가두진 않았다.

가둔다면 확실히 잡아서 반박하지 못하게 하겠다!

-1학년 학생인데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힘들지 않겠습니까?

네 그 방심이 참으로 오만하다! 상대를 얕보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명심해둬라! 그냥 1학년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려. 닳고 닳은 4학년이라고 생각해!

-...예. 알겠습니다...

*         *         *

광란의 주말을 보내고 간신히 새벽에 돌아온 이한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바로 아침에 일어났다.

사제들은 내색하진 않았지만 갑자기 달라진 아침 식단에 술렁거리고 있었다.

“혹시 오늘 무슨 날...?”

“아니. 원래 영양을 위해서 이 정도는 먹어야 해.”

이한은 제일 말라 보이는 사제한테 식빵 겉면에 듬뿍 잼을 발라서 밀어주며 말했다.

사제 중 한 명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물었다.

“혹시 푸른 용의 탑 학생 님들은 저번 학기 때 이렇게 식사를 하셨습니까?”

“대체로 그렇지?”

“아...!”

사제들은 ‘그렇구나!’하고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1학기 때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간식에 별로 절박하지 않고, 사제들이 먹을 걸 나눠주려고 해도 ‘하하 괜찮습니다 사제님들 드세요’했는데, 요즘은 눈빛이 퀭한 게 신경 쓰였던 것이다.

“어쩐지...”

“그런데 그렇게 드시던 분들이 안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을까 싶은데, 혹시 좀 갖다드리면...”

사제가 계란 커스타드와 호박 파이, 계란밥과 숙성오리고기구이를 접시에 담아서 일어나려고 하자 이한은 바로 경고했다.

“음식 다른 탑에 가져다주는 사람들은 순서 추첨할 때 무조건 탈락이다.”

“아, 아니!”

“왜...!?”

가져다주려던 사제들은 당황했다.

이한의 다음 신성 마법을 꼭 자기 교단의 신성 마법으로 각성시켜주려던 만큼, 그 순서에서 밀려날 수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사치스럽게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교단에서 이렇게 먹으면 안 좋다고 들었던...”

이한은 사제들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먹였다.

“티질링 사제. 접시에 너무 조금 담았군. 더 담아주도록 하지.”

“지금 세 접시째 담아주고 계십니ㄷ... 아니, 너무 많은...!”

티질링 사제는 황급히 거절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배불리 먹는 사제들을 흐뭇하게 둘러보고 나서 이한은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무언가 이상하군.’

한 학기만 다녔지만 이한은 에인로가드에 매우 예민하게 적응한 상태였다.

덕분에 분위기가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탑이나 성벽 주변에 데스 나이트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하늘에도 못 보던 언데드 소환수들이 날아다니고...

이유는 넘치도록 짐작이 갔다.

‘하여간 흰 호랑이 탑 놈들은 도움이 안 되는군.’

물론 돈 좀 벌겠다고 그 짧은 주말 시간에 의뢰에 참가한 이한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만, 소란을 크게 키운 건 어디까지나 흰 호랑이 탑 놈들이었다.

그런 주제에 이한에게 ‘기사단 만나서 잘 됐다’같은 시비나 걸고,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었다.

‘들켰을까?’

이한은 첩탑을 노려보았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긴 했지만, 사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이한도 비밀이 지켜질 거라고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바로 징벌방에 끌려가지 않은 걸 보니 해골 교장이 현장을 잡지 못해서 다행히 넘어간 모양이었지만...

‘절대 그냥 놔둘 사람이 아니지.’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같이 나갔다고 믿는다면 다행이겠지만 그 정도로 허술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 학기에 3, 4번 정도는 나가줘야 물자가 넉넉한데...’

수색에도 불구하고 이한의 영혼은 매우 평화로웠다.

물자를 잔뜩 들여오기도 했고, 외출권도 있는 만큼 상황은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편이었다.

저번 주처럼 또 마법사의 축제가 열리진 않을 테니 이번 주는 나오는 과제만 열심히 하면...

콰당탕탕탕탕!

볼라디 교수의 강의실에 들어간 이한은 데굴데굴 굴렀다.

안 보던 사이에 강의 내용이 바뀐 것이다.

“...이제 입장하자마자 공격하시는 겁니까?”

“어쩔 수 없다.”

이한은 정말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지만 참고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네 수준에서 공간 이동 마법을 막아내려면 반복 훈련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 왜 갑자기 공간 이동 마법을...? 번개 마법 형태 변화 연습도 해야 하고, 해야 할 게 많은...”

이한은 바실리스크 알 돌보기, 번개 마법 형태 변화 등 다양하고 비교적 안전한 커리큘럼은 어디로 가고 왜 갑자기 공간 이동 마법 대책 수련으로 바뀐 건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러자 볼라디 교수가 쪽지를 보여줬다.

볼라디 배그렉에게

이한 워다나즈가 공간 이동 마법 쓰는 골렘에게 패배해서 좌절하고 있다. 네가 도와주도록.

오수 고나달테스

“......”

이한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외출했다고 이러시는 건가? 정말로?’

물론 외출하기 전에 보낸 쪽지였지만 이한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냥 차라리 징벌방에 가둬라!

“...그래서 지금 공간 이동 마법 대책을?”

“그래. 언젠가 만나게 될 일이 있으니 미리 대비해두는 게 낫겠지.”

볼라디 교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골 교장의 지적은 타당했다.

나중에 이한이 제국의 가장 외지고 음산한 곳을 돌아다니다가 공간 이동 마법만 평생 전문적으로 익힌 전투 마법사를 만나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험하지 않겠는가.

“......”

이한은 ‘왜, 드래곤을 상대하는 법도 가르쳐주시죠’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나오는 걸 꾹 참아야했다.

볼라디 교수는 그런 말을 했다가는 ‘그렇군 알겠다’하며 그날부터 드래곤 슬레이어 준비를 시킬지도 몰랐으니까.

이한이 할 수 있는 건 아주 살짝 빈정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정말 평생 만날 일이 한번이나 두번쯤 있을 것 같은 공간 마법 전문 전투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을 미리 배우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런가?”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기뻐하자 만족스러워했다.

스승으로서 제자가 원하는 가르침을 주는 건 자긍심이 생기는 일이었다.

“앞으로는 직접 말하도록.”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제자로서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에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직접 말할 테니까 제발 다른 교수님들 말은 듣지 말아주십시오. 원래 말이란 게 한 명, 두 명 걸쳐서 전해질 때마다 오해가 생기잖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볼라디 교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간 이동 마법은 공격적으로 사용하면 가장 대응하기 힘든 마법 중 하나다. 전조가 없기 때문이다.”

시공간 계열 마법은 마법 학파 중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어려운 마법에 속했다.

그런 만큼 공간 이동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도, 그리고 전투에 쓸 수 있을 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시전할 수 있는 마법사도 드물었다.

게다가 마력 소모는 또 어떤가. 상대를 죽이고 싶으면 화살 한 방이면 되는데 굳이 그런 복잡한 마법을 쓸 필요는 없었다.

“교수님. 지금 말하신 대로 꼭 그런 걸 대비해야 할까요?”

“하지만 지금도 만났잖나. 한 번 일어난 일은 두 번 일어날 수 있지.”

“......”

볼라디 교수의 말에 논파될 때가 스스로에게 가장 자괴감이 들 때였다.

저딴 논리한테 져야 한다니.

“대응 방법은 적지만 없지는 않다.”

해골 교장이 말해줬던 것처럼, 공간 이동 마법은 빈틈이 없었지만 쓰는 사람에게는 틈이 있었다.

상대방의 패턴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라도 회피 가능한 것이다.

“바로 예지 마법이다.”

“!”

이한은 생각보다 멀쩡한 방법에 놀랐다.

확실히 예지 마법은 지금 상황에 적합했다.

“엇. 그러면 몸으로 맞으면서 익힐 필요는 없는 겁니까?”

“아니. 예지 마법을 쓰기 위해서 많이 맞아야 한다.”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한이 있던 자리에 의자가 생겨나서 날아들었다.

안심하기도 전에 책상 하나가 뒤에서 생겨나더니 이한을 치고 지나갔다. 이한은 강의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방금 처음 회피는 훌륭했다. 재능이 있군.”

“그건 예지 마법이 아니라 그냥 운...”

이한은 대답할 틈도 없었다. 다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