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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57화 (457/687)

457화

물론 물에 잠긴 던전에 도전할 수는 없었다. 볼라디 교수는 아끼는 제자가 불완전한 던전에 위험하게 도전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교수인 만큼 나보다 더 잘 가르치겠지. 하지만 거인들과 관련된 일인 만큼 이건 양보하기 힘들군.

이쿠루샤는 이한이 거인들에게 시험을 받는다면 미리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딪쳤다가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 실수로 이한 같은 어린 마법사가 거인에게 증오심이라도 가진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란 말인가.

훗날 <거인학살자> 같은 칭호를 단 대마법사가 등장하기라도 하면...

‘이미 증오심을 가지게 될 것 같은데.’

이한은 이쿠루샤가 지금 교수들한테 말한 것만으로도 증오심이 피어오를 것 같았다.

“존중하겠소.”

볼라디 교수는 매우 선심쓰듯이 양보했다. 양심이라곤 없었다.

-그러면 다른 거인들을 만나러 가보도록 하지. 준비됐나?

이쿠루샤는 이한의 긴장감을 덜어주기 위해 눈을 찡긋거렸다.

물론 거인이라서 별로 효과는 없었다.

쾅!!!!!!!!

-음. 조금 더 기다렸다가 나가는 게 좋겠군.

밖에서 산양 한 마리가 더 도망친 모양이었다.

*         *         *

산양이 다 잡히고 나서야 이한은 밖에 나갈 수 있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이쿠루샤의 뒤에서 볼라디 교수는 이한에게 충고했다.

“거인 앞에서는 지팡이를 내리지 말도록.”

“......”

‘정말 한 대 때리고 싶다.’

지금 저딴 걸 충고라고...

“다른 충고는 없습니까?”

“거인들은 대체로 예측하기 힘들다.”

이쿠루샤처럼 현명하고 지적인 거인이 드문 편이고, 대부분의 거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괜히 제국의 벽지(僻地)를 여행하는 탐험가들이 거인이 말을 걸어오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잘못 휘말리면 억지스러운 내기에 강제로 참가하게 되니...

“?”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볼라디 교수의 말이 저기서 끝난 것이다.

“더 없습니까?”

“방금 말했지 않나.”

“...아하.”

그러니까 ‘거인들은 대체로 예측하기 힘들다’가 충고였다.

이한은 눈을 감았다.

‘차라리 거인이 낫겠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거인들이 옆에 있는 교수보단 나으리라.

부글부글-

거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산등성이에 위치한 비탈진 목장에 도착하자 거대한 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인들이 지친 얼굴로 바윗덩어리를 잘라 솥에 던져 넣고 있었다.

“?”

다시 보니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치즈였다. 이한은 저렇게 커다란 치즈덩어리는 처음 봤다.

-산양의 치즈라네. 관심이 있나?

“예? 예.”

이한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에인로가드에서 사는 만큼 식재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이쿠루샤는 거인에게 다가가더니 치즈를 내놓으라고 손짓했다.

-내놓게.

-왜...?

-손님을 대접해야지.

-어째서...??

-그냥 내놔!

팍!

이쿠루샤는 화를 내며 거인의 손에서 치즈를 뺏었다. 그리고 이한에게 조금 잘라서 내밀었다.

뒤에 있는 거인은 슬픔과 분노와 원한이 섞인 눈으로 이한을 노려보았다.

“...아, 아니. 뺏어서 주실 필요는 없는데...”

-신경 쓰지 말게. 원래 쉽게 토라지는 놈들이야. 곧 있으면 풀리겠지.

이쿠루샤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한을 노려보는 거인의 눈동자는 너무나도 깊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이한은 찜찜한 감정으로 치즈를 받았다.

캉!

“?”

돌처럼 생긴 치즈가 돌처럼 딱딱했다.

...그럼 그냥 돌 아닌가?

“돌 아닙니까?”

-으음? 잠시만.

이쿠루샤는 치즈를 확인했다.

돌도 아니고, 오래되어 굳은 치즈도 아니고, 갓 만든 치즈가 맞았다.

-치즈가 맞군.

‘식재료로는 못 쓰겠군.’

이한은 포기하고 치즈를 거인에게 돌려주었다. 거인은 이한이 날아갈 정도로 콧바람을 흥하고 불며 치즈를 챙겼다.

“이쿠루샤 님. 그, 거인들하고 친분을 쌓아야 하는데 시작부터 이러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괜찮네. 괜찮아.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이한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쿠루샤는 현명한 거인이었지만 거인인 만큼 다른 거인들과 친해지는 부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거인들이 좀 화를 내고 토라져도 곧 친해지리라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한이 보기에 그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내가 최대한 다가서야겠다.’

“안녕하십니까.”

-......

-......

솥 주변에 앉아 있던 거인들은 이한이 오자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며 큼지막한 놋쇠그릇을 품에 숨겼다.

이한에게 먹을 거 주기 싫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가이난도도 아니고...’

“저는 음식을 받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 인사를 드리려고...”

-좀 줘라!

이쿠루샤가 다시 달려와서 호통을 쳤다.

이한은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가리고 좌절했다.

-이거... 인간 종족은 못 먹는다.

-잘 먹지도 못한다 이거.

거인들은 항변했지만 이쿠루샤는 식탐을 부리는 어린 거인들을 단호하게 혼냈다.

그리고 이한에게 국자로 솥에 담긴 죽을 듬뿍 퍼서 담아줬다.

“감, 감사합니다.”

-못 먹는다. 어차피.

-음식 낭비다.

거인들은 툴툴대며 불평했다. 이한은 더욱 더 자리가 불편해졌다.

‘무조건 맛있게 먹어야 한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간 이상 맛있게 먹는 수밖에 없었다.

이한은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

‘용암 아닌가?’

시뻘건 액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보니 이게 죽인지 용암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

이한은 에인로가드의 교수들을 저주하며 죽을 입으로 옮겼다.

‘컥.’

오랜만에 비명이 나오는 맛이었다.

맵고 짜고 쓰고 신, 맛이란 맛은 모두 다 응축시켜놓은 것 같은 화끈한 맛.

이한은 온 정신을 집중해서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그리고 죽그릇을 싹싹 비웠다.

“정말 맛있습니다.”

-놀랍다. 인간이 저걸 먹다니.

-믿기지 않는다.

거인들은 웅성거리며 놀라워했다.

다른 종족들은 거인들의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탐험가도 ‘이걸 먹느니 차라리 내 팔을 잘라서 먹겠소’하며 질색하는 게 거인들의 음식인데...

거인들의 눈동자가 살짝 호의적으로 변했다.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한 발 디뎠군.’

간신히 잃어버린 호의를 되찾은 모양이었다.

사실 이쿠루샤가 치즈만 안 뺏었어도 이럴 일 없었을 텐데...

달그락-

“좀 달라고?”

이한은 바실리스크의 알이 달그락거리자 남은 죽 한 숟갈을 떠서 알 위에 부어줬다.

그러자 바실리스크의 알이 미친듯이 경련했다.

달그락달그락달그락달그락!!!

“...네가 먹고 싶다며...”

자기가 먹고 싶다고 해놓고 이렇게 격렬하게 싫어할 줄이야.

식사를 끝낸 거인 중 한 명이 울창하게 자란 나무를 뽑아 입가를 닦은 다음 이한을 불렀다.

-너. 따라온다. 안내해준다.

“아. 예. 감사합니다.”

거인은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며 위치와 지형을 확인하려고 애썼다.

나중에 홍수가 끝나고 물이 빠진 뒤에도 이 주변은 최대한 피해야했으니까.

‘지도에 <거인주의>라고 써놔야겠군.’

멀리서 이쿠루샤와 같이 앉아 있는 볼라디 교수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지팡이였다.

“......”

이한은 교수를 욕하며 지팡이를 다시 들어올렸다.

애초에 이럴 거면 그냥 거인하고...

-여기 목장. 우리 키운다. 양.

“울타리는 없습니까?”

-부순다.

거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한은 무슨 소리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아까 그 소리면 울타리는 쉽게 부수겠군.’

무슨 울타리를 만들던 간에 거인 정도의 덩치라면 쉽게 부술 터.

“지금 양은 어디 있습니까?”

-......

거인은 떨떠름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다른 마법사라면 이런 거인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당황했겠지만 이한은 아니었다.

저 비슷한 눈빛을 어디선가 많이 봤던 것이다.

가이난도한테 ‘저번에 준 케이크 어디에 놨어?’하고 물으면...

“저는 양을 먹는 걸 싫어합니다. 절대로 먹을 생각이 없습니다.”

거인이 흐뭇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매달렸다.

-저기 있다. 동굴 안에. 가둔다.

동굴 입구에는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산양 하나 가두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란 바위였지만, 아까 소리를 들은 이한에게는 저 바위가 종잇장처럼 느껴졌다.

“저렇게 해놓으면 못 나오나요?”

-나온다. 가끔. 그래서 잡아야 한다.

거인은 툴툴댔다.

산양들이 자기 말을 안 들어주는 게 서운한 모양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이한은 거인의 뒤를 쫓아다니며 주변을 확인하고 거인들이 하는 일과를 확인했다.

1.산양 돌보기.

2.산양 탈주하면 잡아오기.

3.식사 준비하기 등등.

이런 일들을 도와주면 거인들과 친해질 수 있는 만큼 매우 중요했...

‘아니. 내가 도와줄 수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한이 도울 법한 일들이 아니었다.

그보다 이한은 기말고사 때 이 거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 더 신경 쓰였다.

산양과 싸우거나 거인과 싸우거나 혹은 산양을 탄 거인과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저번에도 잡았다. 근데 이번에도 잡았다.

“저런.”

이한은 툴툴대는 거인을 달래기 위해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이쿠루샤 님한테 말씀해서 간식을 좀 달라고 해보겠습니다.”

거인이 간식이 있는지, 그리고 이쿠루샤가 허락해줄지도 몰랐지만, 이한은 일단 말하고 봤다.

징징대던 가이난도를 달래던 습관 때문이었다.

-정말인가?!

그러나 거인의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격렬했다.

-정말로?!

“...어, 아니. 그,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         *         *

-그래? 가져가게.

이쿠루샤는 이한이 부탁하자 별로 어렵지도 않다는 듯이 수락했다.

거인들하고 친해지려고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다.

탁-

이쿠루샤가 거무튀튀한 몽둥이를 내밀자 이한은 당황했다.

“이게 뭡니까?”

-말린 육포. 특제 향신료를 듬뿍 써서 만든 놈이라 다들 좋아하지.

“...감사합니다.”

이한은 이쿠루샤한테 만드는 방법도 일단 전해 들었다.

거인들이 좋아한다니 만드는 방법을 배워둬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거인들이 모두 가이난도도 아니고 간식으로 어디까지 가능할지 모르겠군.’

1시간 후.

-인간 다리 아프다. 내가 들어준다.

-저리 비켜라! 내가 들어준다!

거인들은 서로 멱살을 잡고 자기가 이한을 업어주겠다고 다퉜다.

그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거인들과 친해지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         *         *

“세이지, 미나리, 정향, 강황, 제라늄... 다섯 숟갈씩... 넣어서 푹 끓이고... 고기를 갈아서... 으음... 이걸 대체 무슨 맛으로...”

이한이 탁자에 앉아서 재료와 시약들을 중얼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자, 다른 연금술 학생들은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연금술 수석 학생이 공부하는 물약 제조법인 만큼 흥미가 안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뭐지? 저건 대체 무슨 조합법이지?”

“시아나 사제님. 혹시 아십니까?”

“...용도를 말해주기에는 너무 위험한 물약이라... 으흠. 으흠.”

자신한테 질문이 날아오자 시아나 사제는 슬쩍 말을 돌렸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은 더욱 놀랐다.

“독성이 강한 물약인가?”

“흑마법 쪽?”

“저걸 왜 준비하는 거지 워다나즈는? 이번 시험과 관련이 있나? 혹시 황녀님은 아십니까?”

“......”

아덴아르트는 당황해서 눈만 깜박였다.

그러자 친구들이 알아서 해석해줬다.

“역시 위험한 물약인가봐.”

“괜히 다른 학생들이 멋대로 시도했다가 위험할까봐 저러시는 거겠지.”

“그런데 워다나즈는 왜 저걸 연구하고 있는 건데?”

마침 이한이 책을 덮고 일어났다.

친구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워다나즈. 방금 그건 어디에 쓰려고?”

“음? 거인들한테 먹일 건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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