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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58화 (458/687)

458화

거인들에게 먹일 독약이라니.

대체 어째서?

“연금술 시험 상대가 혹시 거인인 거 아니야?”

“분명 그런 게 틀림없어.”

“너희 뭔 소리를...”

이한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시험하고는 상관없어.”

“알겠어. 워다나즈.”

“우리를 믿어.”

친구들은 이한의 대답을 다른 뜻으로 이해했는지 걱정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니 진짜 시험하고는 상관없...”

“그래그래.”

“알겠다니까.”

친구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알아서 연금술 책을 펴고 <저항력 높은 대상에게 물약을 사용할 때 주의사항>을 읽기 시작했다.

시험 상대가 거인인 이상 최대한 강력하고 관통력 있는 물약을 만들어놓는 게 좋았던 것이다.

황녀는 주변 눈치를 슬며시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고 연신 고민하다가 결국 읽던 책을 덮고 친구들과 같은 책을 펼쳤다. 옆에 앉아 있던 시아나 사제는 이미 진작에 책을 펼친 상태였다.

흰 호랑이 탑 출신의 연금술 전공 학생인 바트렉은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험 상대가 거인인가보다!’

바트렉은 돌아서더니 친구들에게 이 비밀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후다닥 달려갔다.

잠시 후 당번 일을 끝내고 온 요네르가 이한에게 물었다.

“이번 연금술 시험 상대가 거인이라는 게 진짜야?”

“......”

*         *         *

“이번 시험은 <도브룩의 수경(守庚) 물약>을 만드는 거다.”

<도브룩의 수경 물약>은 음(陰)하고 어두운 기운이 가득한 곳에서도 생명의 기운을 보존해주는 방어 물약이었다.

그런 곳에서 오래 일하는 흑마법사는 물론이고 그런 곳에 들어갈 일이 있을 모험가나 마법사에게는 많이 유용한 물약.

“거인들이 마시는 거죠?”

“거인들에게도 효과가 있어야 하는 겁니까?”

“??”

우레걸음 교수는 갑자기 난이도를 몇 배로 올리는 학생들의 질문에 당황했다.

‘뭐지? 워다나즈한테 옮았나?’

우레걸음 교수가 알기로 학생들이 스스로 시험의 난이도를 올리고 싶어하는 일은 없었다.

워로 시작하고 즈로 끝나는 가문을 가진 모 학생을 제외한다면.

“아닌데?”

“어? 아닙니까? 거인한테...”

“거인이 아니면... 아하! 다른 저항력 강한 종족인가보다. 워다나즈는 미친놈이라 일부러 거인으로 연습한 거고.”

“나 뒤에 있다.”

“미, 미안. 습관적으로.”

우레걸음 교수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 가짜 소문이 돌았다는 걸 깨달았다.

흔한 일이었다.

에인로가드는 눈 감았다 뜨면 이상한 소문이 생겨나는 곳이니까.

“뭔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만든 물약의 성능 검사는 자기가 하게 될 거다. 각자 물약을 다 마시면 여기로 나와서 걷도록.”

우레걸음 교수는 강의실 뒤쪽을 열고 미리 만들어 놓은 검푸른 응달을 가리켰다.

암흑 원소와 음의 기운이 뒤섞인 곳이라 몇 걸음만 걸어도 생기가 쭉쭉 소모되는 공간이었다.

“아. 워다나즈 너는... 너는 제외다.”

“예?”

이한은 놀랐다.

어째서?

뒤에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은 워다나즈 놈 전용이었던 거군.”

“과연 합리적이야...”

‘뭐가 합리적이야 미친놈들아.’

우레걸음 교수는 뭔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넌 물약 안 먹어도 멀쩡할 테니까 검사가 안 되잖냐. 넌 마시지 말고 나한테 제출해라.”

“......”

이한은 혀를 찼다.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교수님. 그런데 지금 밖에서 재료를 구해 와야 하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옵니다. 시간을 좀 더 주시면...”

“시약은 옆의 찬장에서 꺼내서 써라.”

“?????”

“...왜 놀라는 거냐? 설마 이 날씨에 시약을 밖에서 구해오라고 할 줄 알았던 거냐?”

연금술 시험은 놀랍게도 상식적으로 진행됐다.

시약과 도구를 모두 준비해준 우레걸음 교수의 모습에 학생들은 당황했다.

-함정 아닌가?

-함정이야. 조심해. 도구가 갑자기 부서질지도.

-시약이 상한 걸지도 몰라.

그러나 놀랍게도 끝날 때까지 별다른 일이 없었다.

친구들이 술렁거리는 동안 ‘함정이 있으면 하다보면 나오겠지’하는 마음으로 작업한 이한은 가장 먼저 물약을 완성했다.

우레걸음 교수는 물약을 꼼꼼히 확인하더니 한 모금 맛을 봤다.

“만점이다.”

몇 번을 들어도 언제나 듣기 좋은 말이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참. 거인들하고 어울린다면서? 알아서 잘하겠지만 거인들한테 물약 만들어 줄 때면 주의해라. 훨씬 더 독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니 대체...!”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         *         *

흑마법 학파의 2학년 학생, 오골도스는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등을 확인했다.

“없다니까. 오골도스.”

“흥.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미안하다니까... 그만 놀릴게.”

코홀티는 사과했다.

이번 방학 때 오골도스가 1학년 후배와 같이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이후로, 코홀티는 오골도스의 등에 <나는 1학년 후배 덕분에 살았습니다>란 쪽지를 몇 번 붙였었다.

그 탓에 오골도스는 이제 코홀티가 다가오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경계심을 내보였다.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 많지도 않은 후배 더 줄이겠네. 쟤 그만두면 꼭 니가 교수님한테 말하는 거다. 알겠어?”

“아, 아니야. 오골도스도 용서해준다고 했어!”

“흥. 모릅니다.”

오골도스는 입으로는 용서했지만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디레트는 날개를 펄럭이더니 코홀티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애초에 너도 도움 받아서 해결했잖아.”

“그, 그건 조금 다른...”

옆에서 듣고 있던 오골도스가 귀를 쫑긋거렸다.

코홀티 선배의 추한 실패 이야기를 듣는다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듣고 싶습니다. 디레트 선배님.”

“좋아. 이걸로 네 기분이 좀 나아진다면야.”

디레트는 한심하다는 듯이 코홀티를 노려보고는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말해주기 시작했다.

왜 초여름의 에인로가드 복도에 겨울이 찾아왔는지, 어떤 미치광이들이 서리거인의 왕을 불러왔는지 이야기해주자 오골도스는 경멸 섞인 눈으로 선배를 쳐다보았다.

“...나 혼자 저지른 실수가 아니다. 오골도스.”

“예...”

“다른 놈들도 있었다고! 난 그리고 책임이 적다니까!”

“예...”

“준비나 해. 다들 그만 재잘대고.”

디레트는 궤짝을 열고 멀쩡한 뼈들을 꺼내 곳곳에 뿌렸다.

이번 중간고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학파들은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배우는 신입생들을 담금질하기 위해 1학년 때부터 혹독하게 몰아붙였지만, 흑마법은 조금 달랐다.

1학년 1학기 때 흑마법 시험들이 옥석을 걸러내는 역할이었다면, 1학년 2학기 때 흑마법 시험들은...

“그런데 솔직히 이쯤 배웠으면 억울해서라도 안 그만두지 않나?”

“제 동기들은 저 빼고 다 그만뒀잖습니까.”

“...그, 그랬지.”

...일종의 유인책이었다.

흑마법은 이렇게 위대하고, 흑마법은 이렇게 재밌고, 흑마법은 이런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두지 말아다오!!

1학기 때는 어떻게 버티던 신입생들도 2학기 때 몸 힘들어지고 정신 힘들어지면 ‘아 제일 별로인 것부터 그만둘까?’가 나왔다.

그리고 보통 ‘제일 별로인 것’에 흑마법이 들어갈 확률이 높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언데드 웨이브면 충분합니다.”

오골도스는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장 오골도스 본인도 1학년 2학기 때 비슷한 걸 경험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수많은 언데드들을 파도치듯이 밀어붙이는 총사령관으로서의 모습.

그것만큼 강렬한 것도 드물었다.

“어... 그, 그런데 디레트. 이거 시약 다 쓰면 우리 이번 학기 실험은 뭘로 하지?”

“...내가 교수님한테 말해서 어떻게든 보충할게.”

디레트는 한숨이 나오는 걸 참으며 말했다.

방학 때 그렇게 보충을 했는데도 흑마법 학파의 예산은 풍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골 교장은 본인이 흑마법의 대종사면서 치사하게 흑마법에는 박했고, 제국도 흑마법 연구나 실험에는 유독 까탈스러웠다.

-살점 골렘의 방어력 연구가 제국에 이득이 될 이유가 뭡니까?

-저, 그러니까, 그, 더 강한 소환수로 제국의 적을...

-다른 골렘들도 많은데 굳이 살점 골렘이어야 합니까? 소환 마법 쪽으로 대체가 가능하지 않습니까?

-...혹시 심사관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코홀티가 한숨 쉬는 디레트를 위로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후배들한테 이것만큼 강한 인상도 드물 테니까.”

“그래야지.”

“워다나즈 걔는 좀 빼고.”

“......”

디레트가 노려보자 코홀티가 급히 변명했다.

“아, 아니. 근데 솔직히... 서리거인의 왕하고 드잡이질을 벌였는데 언데드 웨이브에 감동을 받지는 않겠지...! 교장 선생님 애제자라면서!”

이건 선배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해골 교장을 따라다니면서 온갖 사악한 마법의 비의를 직접 목격했을 텐데, 어떻게 더 강렬한 감동을 준단 말인가.

“그리고 걔는 감동 안 받아도 계속 들을 거야. 모든 학파 마법 다 듣잖아. 흑마법도 듣겠지.”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오골도스가 신중하게 말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저번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슬아슬해보였습니다. 흑마법을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이 자식이 지금 재수없게... 그럼 네가 잘 했어야지! 선배란 놈이 같이 갇혀놓고서 업혀서 나와??”

코홀티가 구박하자 오골도스도 울컥했다.

“그게 지금 왜 나옵...”

“야. 그만해. 그만해.”

디레트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다들 닥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1학년 후배들 중 귀하지 않은 후배는 없었지만, 그 중에서 워다나즈는 잃어버리면 정말 속이 몇 배로 쓰릴 것 같았다.

“...혹시 같이 갇혔을 때 워다나즈가 좋아하는 음식 말한 거는 없어?”

“......”

“......”

“뭐. 이 자식들아.”

*         *         *

강의실 문을 열자 그 너머는 새카만 타차원이었다.

평소였다면 놀랐겠지만 중간고사 기간인 만큼 이한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음. 시험인가보군.’

어둑어둑한 평원은 사악하고 음한 기운이 일렁거렸다. 흑마법 계열의 대마법이 준비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흰색 파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품을 하며 눈을 비비던 가이난도가 눈을 크게 뜨더니 다시 눈을 비볐다.

“저, 저, 저, 저...!”

“......”

흰색 파도가 아니라 언데드들의 군세였다.

갑자기 달려오는 언데드들의 군세를 본 1학년들은 경악했다.

“라파드엘을 미끼로 쓰자!”

“개자식이!”

옆에 있다가 졸지에 미끼가 된 라파드엘이 발끈했다.

저 멀리서 도망칠 곳 하나 없이 빼곡하게 채우고 다가오는 언데드 군세를 본 이한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 저걸 상대할 방법은?

‘생각해라. 분명 방법이 있을 거다.’

“어... 그, 그냥 시험이 아니라 보여주는 거 아닐까?”

이미르그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솔직히 시험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난이도가 높았던 것이다.

“시험이겠지.”

“현실도피하지 마라!”

그러나 가이난도도 라파드엘도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에인로가드에서는 충분히 가능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한은 행동에 나섰다.

“심연에서 당신을 부릅니다...”

“그 삐죽거리는 정령 부르는 거야?!”

이한이 주문을 영창하자 가이난도가 화색이 되어서 물었다.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페르쿤트라는 지금 상황에서 불러봤자 크게 활약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적들의 숫자가 많은 만큼 페르쿤트라의 화력은 과잉화력이었던 것이다.

“옛 궁전의 마법사이자, 왕을 섬기는 자, 폭군을 찌르시는 분이시여, 당신과 계약한 자가 혈맹의 자격으로 당신을 부릅니다!”

이번 방학 때 구울의 왕에게 같이 저항했던 언데드 마법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타박했겠지만,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로군!

“시험... 아니, 도와주십시오!”

이한은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급히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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