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화
이제까지 무슨 소리를 해도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답하던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싸늘하게 묻자,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당황했다.
“아니 무슨 말씀을...?!”
“저희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정말 좋아서 한 겁니다!”
“후... 잠깐 다시 와보십시오.”
이한은 뱃전에 나가있던 사냥꾼들을 불렀다.
그림자 순찰대는 이한이 보여주는 거부할 수 없는 위엄에 짓눌려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자. 이 화살과 저 화살이 어떻게 다르냐면...”
이한은 아까보다 더 열심히 설명했다.
지금 즉석에서 마법을 건 화살과, 공방에서 젠바야 마법 시리즈가 부여되어서 나온 화살이 어떻게 다른지.
우악스럽게 마력을 퍼부어서 억지로 마법을 중첩시킨 전자와, 완벽한 계산으로 마법을 여러 겹 중첩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불안정도 없는 후자는...
“......”
“......”
물론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조금도 알아듣지 못했다.
‘뭔 소린지 알겠나?’
‘아니...’
‘자네는 글자도 읽을 줄 알면서 왜 몰라?’
‘제국어가 아닌 것 같은데.’
이한은 일장연설을 마치고 물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예...니오?”
사냥꾼들은 말하고 나서 이한이 다시 설명할까봐 겁이 나 서둘러 외쳤다.
“마법사 님! 그... 마법의... 때깔 좋은 이론은 잘 알겠습니다.”
“...때깔이 아니라 마력색 응용...”
“그런데 정말로 거짓이 아니라 이 화살이 더 좋습니다. 잘 보십시오. 더 묵직하고, 더 빠르고, 더 깊게 박히면 그게 좋은 화살 아닙니까!”
사냥꾼들은 서둘러 화살을 하나 꺼내더니 저 멀리 있는 암초 위에 박아버렸다.
그리고 메이킨 가문의 화살을 꺼내 다시 비교했다.
놀랍게도 정말 이한이 방금 마법을 건 화살이 더 깊게 박혀 있었다.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분명 이거라면 납득...
“제 화살은 세게 당기시고 저 화살은 약하게 당기신 거 아닙니까?”
“......”
“......”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닐리아와 비슷한 황당함을 느껴야했다.
“제가 한 번 당겨보겠습니다.”
“마법사 님께서 활도 쏘실 줄 아십니까?”
“닐리아한테 배웠습니다.”
“푸핫... 어어?”
농담에 웃으려던 사냥꾼들은 이한의 자세를 보고 깜짝 놀랐다.
활을 잡는 특유의 자세가 그림자 순찰대에서 가르치는 방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어...
어라??
“정, 정말 닐리아랑 친하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활 겨누고 협박한 게 아니라면 그게 가당키나 한가?”
“그것도 내가 저번에 마을에 내려갔을 때 여관에서 해봤는데, 모험가들이 도망치더군. 같이 술 좀 먹자고 했을 뿐이었는데...”
“활을 좀 더 정확히 겨눴어야 했나? 닐리아는 정확하게 겨눴을지도 모르겠군.”
사냥꾼들이 뒤에서 흉흉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한은 활에 집중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배 위에서 시위를 당기는 건 아무리 마법이 걸린 화살이라 하더라도 집중을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콱!
“!”
두 화살을 모두 쏘아본 이한은 놀랐다.
정말로...?
‘내가 마법을 건 화살이 더 깊게 박혔다!’
“...마법사 님! 뭐라고 했습니까 저희가!”
“정말 이게 더 나아서 낫다고 한 건데!”
사냥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우성을 쳤다.
“빨리 마법 걸어주십시오!”
“하실 수 있으시면서 엄살이 너무 심하지 않으십니까!”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이한의 엄살에 연신 투덜거렸다.
역시 마법사들은 할 수 있으면서 안 해주는 게 맞았다.
마을에 있던 마법사도 필시 화살에 마법을 걸어줄 수 있는데 귀찮아서 변명을 댄 것이리라.
“이게 원래는 이렇게 잘 되는 게 아닌데... 지금 화살에 걸어야 하는 마법들이 운 좋게도 제가 쓸 수 있는 마법들이고, 제가 지금 힘으로 억눌러서 그렇지 원래 이렇게 중첩을 많이 시키면 불안정해서...”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법사 님!”
사냥꾼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해했다.
-마법사들은 다들 할 수 있으면서 저렇게 겸손하게 말하는구나.
뱃머리에서 산고리아 꽃의 위치를 찾느라 골똘히 집중하던 우레걸음 교수는 힐끗 뒤를 쳐다보고 놀랐다.
어느새 이한이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과 친해져서 어울려 놀고 있었던 것이다.
친화력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놀랐다.
‘저 놈 진짜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 맞나...?’
“워다나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있냐?”
“화살에 마법 걸어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잠깐. 받은 화살 있을 텐데?”
“제 마법이 더 좋다고 하셔서...”
“......”
다시 지도에 코를 박으려던 우레걸음 교수는 경악한 얼굴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 * *
“하나 찾았군. 저쪽으로 배를 모시오.”
“뱃머리를 돌려라!”
도시의 남쪽 해안은 크고 작은 암초들과 섬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군도 지형이었다.
그런 만큼 튀어나오는 몬스터들도 많았고, 해로도 잘못 드는 순간 아차하고 휘말려서 난파될 수 있었다.
다행히 메이킨 가문이 구한 쾌속선들을 이끄는 선원들은 모두 다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다. 이들은 우레걸음 교수의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당황하지 않고 배를 몰았다.
“훌륭하군. 이렇게 능숙하게 배를 꺾을 줄이야...”
“하하. 사냥꾼 님들의 요구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닙니다.”
“......”
우레걸음 교수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번개걸음 교수가 물었다.
“정말 이 섬에 있나?”
“예. 박독새가 위를 날아다니잖습니까. 산고리아 꽃을 좋아하는 놈이니 먹으려고 저러는 겁니다. 수풀을 뒤지고 들어가면 나올 겁니다.”
“알겠다. 잠시 정박하고 사냥꾼들에게 주변 소탕을 부탁해야겠군.”
번개걸음 교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주변은 잠잠했지만 해야 할 일은 제법 많았다.
수면 속에서 대기하고 있는 몬스터들부터 섬 위에 있는 놈들까지 처리해야 앞으로 어부들과 채집꾼들이 오고 가기 좋게 되리라.
“그림자 순찰대 여러분들... 아니. 워다나즈 너는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
번개걸음 교수는 이한이 사냥꾼들과 섞여서 활 쏘기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에 당황했다.
몇몇 사냥꾼들은 이한에게 가죽 수통을 내밀며 북부의 술을 마셔보라고 권하고 있었다.
친해지는 건 좋았지만 너무 빠르게 친해진 것 아닌가?
“마법 걸어드리고 활 연습을...”
“그, 그래. 어떻게 그게 연결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여러분들. 이 주변은 이제 소탕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기다리던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이 갑판을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만 해도 허름한 옷을 걸치고 느긋하게 지껄이던 사람들이 마치 칼날 같은 기세를 내뿜었다.
“시작합시다.”
“잘바르, 자네가 내 뒤를 맡아주게. 안달탄, 자네는 반대쪽을 맡아주고.”
“잠깐.”
볼라디 교수가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활과 창을 챙기고 뛰어내리려던 사냥꾼들은 동작을 멈추고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강자를 존중했고, 그런 점에서 저 뱀파이어 마법사는 존중받기 충분한 강자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섬의 몬스터들은 소탕하지 말아주십시오.”
“!”
사냥꾼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혹시 저희가 모르는 정보라도 있는 겁니까?”
“어떤 놈이 숨어있길래 우리가 피해야 하는...”
“워다나즈가 소탕해야 합니다.”
“......”
“......”
“......”
분위기가 매우 싸늘해졌다.
이한은 물론이고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도 당황해서 낮은 목소리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소리인가 저게?”
“저기 워다나즈 가문 마법사께서 섬에 있는 몬스터를 잡겠다는 모양인데...?”
“혼자서? 잘못 들은 거겠지?”
사냥꾼들도 신참을 섬에 혼자 들여보내서 다 죽이라고 하진 않았다.
그건 사냥꾼이 아니라 미치광이나 할 법한 소리였다.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을 느끼자 우레걸음 교수가 헛기침을 했다.
‘젠장. 이래서 에인로가드 밖이 싫다니까.’
에인로가드 안에 있다가 밖에 나오면 다른 마법사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했다.
안 그러면 이렇게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이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그렉 교수. 그렇지 않습니까?”
우레걸음 교수는 말하면서 필사적으로 눈을 찡긋거렸다.
제발 볼라디 교수가 자신의 뜻을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워다나즈 훈련시키고 싶은 건 알겠지만 기회야 다음에도 많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갑시다! 너무 이상해보이잖습니까!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냉정했다.
“눈을 다치신 겁니까.”
“...아닙니다... 그냥... 먼지가 들어가서.”
우레걸음 교수는 빠르게 포기했다.
하긴 그 배그렉 교수가 우레걸음 교수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그리고 오해는 없었습니다.”
“예... 없었죠...”
옆에서 번개걸음 교수가 한심하다는 듯이 우레걸음 교수를 쳐다보았다.
우레걸음 교수는 자기 가문 어른만 아니었다면 멱살을 잡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들어가자.”
“예.”
이한은 감정 변화 하나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미 체념했기에 가능한 반응이었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저걸 그냥 받아들인다고!?’
‘대체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은...!?’
선원이나 사냥꾼들이 아니라 우레걸음 교수와 번개걸음 교수한테도 많이 이상하게 보였다.
‘제자는 스승을 닮아간다더니.’
‘배그렉 교수한테 많이 배워서 이제 이 정도는 별로 두렵지도 않은 건가?’
두 드워프 모두 이한이 들었다면 바로 공격을 날렸을 생각을 했다.
* * *
볼라디 교수와 섬에 발을 내딘 이한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자신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었다.
“물이여!”
물 원소 통제에 능한 마법사는 주변에 물이 있을 때 그 위력이 더욱 증가하기 마련.
하물며 물이 없어도 강제로 물을 공간에서 쥐어짜내 쓰던 이한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유리했다.
이한은 바닷물을 불러와 바로 장벽을 친 다음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환영을 양옆으로 쏘아 보낸 뒤 물에 정신을 집중해 회전시켰다.
휘리리릭!
시간이 약간 걸리고, 아직 회전이 부족하긴 했지만 저번보다 확실히 단축된 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전이 완벽하지 않아도 위력은 충분하다!’
물 구슬이 살벌하게 날아가더니 방금 이한을 공격한 식인식물을 타격했다.
회전이 걸린 물 구슬은 포탄처럼 닿은 면적보다 더 넓은 범위를 날려버렸다. 식인식물의 날카로운 꽃봉오리가 일격에 날아갔다.
“잘했다.”
볼라디 교수는 희미한 만족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실력이 늘었군.”
“감사합니다.”
이한이 생각해도 이한 스스로가 기특했다.
그 동안 회전 하나만 수련한 게 아니라, 다른 학파를 듣는다는 죄로 볼라디 교수가 모조리 심화 과정을 추가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시간을 더 단축해야 한다.”
“예.”
“마법사들은 다 저렇게 훈련받는단 말인가?”
“너무 끔찍하군. 대체 제국 놈들은 왜 꼬마들한테 말을 듣지 않으면 북부 산맥으로 보낸다고 겁을 주는 거지? 저걸 보니 우리 순찰대는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
이한은 시선을 돌렸다.
옆의 바다 위에서 나룻배를 타고 몬스터를 처리하던 사냥꾼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한테 ‘저기 외부인들이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말해봤자 별 소용없을 테니까.
“잠깐.”
볼라디 교수는 앞으로 가서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돌아왔다.
“<배그렉의 일순 예지>를 확인해볼 좋은 기회다. 앞에 씨앗파편덩굴이 있더군.”
씨앗파편덩굴.
이한도 책에서만 본 식물형 몬스터로, 씨앗을 산탄처럼 불규칙하게 쏘아내는 몬스터였다.
전투형 예지 마법인 <배그렉의 일순 예지>는 기본적으로 적에 대해 꿰고 있어야 그 효과가 제대로 나오는 만큼...
“...강철로 화(化)해라, 망토여.”
이한은 몇 대 맞을 각오를 하고 방어를 올렸다.
이왕 맞을 거 좀 살살 맞자는 처절한 마음이었지만 멀리서 보는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에게는 좀 다르게 보였다.
“역시 마법사들은 마법을 쓸 줄 아는 만큼 싸우는 것도 보통이 아니야.”
“예전에 산맥에 왔던 제국 마법사는 자기는 못 싸운다고 약한 소리만 내던데, 역시 거짓말이었어. 다시는 그런 거짓말에 속지 않을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