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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92화 (492/687)

492화

 “그런가.”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변명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품속에서 붉은 물약이 든 유리병을 꺼내서 한 모금 마셨다.

 처음에는 마력 회복 물약인 줄 알았는데...

 ‘피잖아?’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혈마법을 사용해서 마력을 증폭시켰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방금 보여준 혈검의 위력을 생각해봤을 때 볼라디 교수라 하더라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렇게 빠르게 시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마력은 괜찮으십니까?”

 이한은 교수가 걱정이 돼서 물었다.

 가끔 에인로가드의 교수들이 보여주는 천외천(天外天)의 모습을 보다보면 잊기 쉬웠지만 교수들도 어디까지나 피와 살로 된 사람이었다.

 ...물론 리치도 있긴 했지만...

 마법은 대가 없이 보상만 얻을 수 있는 편리한 학문이 아니었고, 당연히 이런 격렬한 전투가 끝난 이상 마법사에게도 부담이 갔다.

 “괜찮다. 네가 할 걱정은 아닌 것 같군.”

 스승이 제자를 걱정하면 모를까, 제자가 스승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볼라디 교수는 이한을 한 번 훑어보았다.

 꽤 격렬한 전투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마력에는 어떠한 이상도 없어보였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압도적인 마력량이었다.

 “방금 사용한 마법을 기억하나?”

 “예? <펭에린의 냉기 원소 분신> 말입니까?”

 볼라디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펭에린의 냉기 원소 분신>을 성공시킨 것도 대단하긴 했지만 지금 교수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었다.

 “그 다음에 썼던 마법.”

 “아, 물 구슬에 회전 속성을 넣은...”

 “그래.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군.”

 “...!”

 이한은 놀랐다.

 마법에 이름을 붙인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다.

 그 마법이 다른 마법과 명확히 구분되는 가치가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이난도가 책에 적힌 매직미사일 마법을 보고 시전한 다음 ‘내 마법이 책에 적힌 마법보다 훨씬 느리고 약하니까, 이건 <가이난도의 매직미사일>이라고 이름붙이겠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마법 같은 거지!’라고 말해봤자 누가 들어주겠는가.

 마법사 한 명의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닌 만큼 볼라디 교수가 저렇게 말하는 건 상당히 놀라웠다.

 “이름을 말입니까? 그 정도 마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뿌듯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계속 시전 과정을 나눠서 억지로 시전했던 마법을 단칼에 성공하는 즐거움은 마법사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었다.

 그건 수십 개로 흩어져 있는 복잡한 퍼즐을 하나로 딱 맞추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그렇지만 어려운 마법에 성공했다고 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건 아니지. 개량도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건 그렇지만...”

 이한이 망설이자 볼라디 교수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줬다.

 “방금 사용한 마법은 유미디후스 님의 수옥탄과 유사해보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파괴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는 물 원소 계열 마법이었지만, 그 평가를 반전시킨 게 바로 유미디후스였다.

 물 원소에 다양한 심화 속성을 조합시켜서 파괴력을 극대화시킨 마법사!

 그 중 하나인 <유미디후스의 수옥탄>은 물 원소에 회전 속성을 극한으로 융합시킨 마법이었다.

 이 일점(一點)에 집중되는 관통력과 파괴력은, 마법의 창시자인 유미디후스가 직접 사용해서 악마 공작을 즉사시킨 일화로 유명했다.

 그 유미디후스 밑에서 사사받은 볼라디 교수인 만큼 원소 마법의 심화적인 지혜를 갈구하는 총명한 제자에게 이 마법을 가르쳐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제자는 탐욕스럽게 요구한 만큼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옥탄을 재해석하고 개량해서 완성해냈다.

 원본 마법에서 불필요한 과정을 잘라내고, 빠진 부분은 마력을 사용해 감각적으로 보완한다.

 유미디후스가 직접 시전하는 것보다 위력은 약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씨 서펜트에게 타격을 주고 발을 묶을 정도면 위력으로서 훌륭한 것이다.

 무엇보다 시전 속도가 대폭 줄어든 게 인상적이었다.

 마법 전투에서 필요한 건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정확한 힘이었지 힘자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인 전투에 훨씬 어울리겠군.”

 “마력 낭비가 좀 심하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큰 칭찬에 기분은 좋았지만 이한은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불필요한 과정을 급히 생략하면서 잘린 부분들은 마력을 낭비에 가깝게 사용한 것이다.

 “모든 마법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이니까.”

 “...감사합니다.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이한은 솔직하게 감사를 표하고 즐기기로 했다.

 ‘나쁘지 않다.’

 물론 이 <워다나즈의 수옥탄> 마법이 제국 전역에 널리 퍼지는 마법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마법 하나로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한이 그 정도로 헛된 기대를 품진 않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결점이 좀 크긴 하지만...’

 일단 물 원소 계열 전투 마법 자체가 좀 마이너하고, 거기서 회전 속성까지 추가하면 더 마이너한데, 여기에 마력 과소비란 단점까지 추가하면...

 아무래도 사용할 마법사가 너무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자신의 마법에 이름이 붙는 게 기쁜 건 사실이었다.

 나중에 제안서를 내거나 투자를 받을 때 ‘저는 4서클 마법 <워다나즈의 수옥탄> 을 완성해냈습니다’하고 한 줄 추가하면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는가.

 볼라디 교수는 제자가 기뻐하자 자신도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에인로가드에 돌아가면 이번에 깨달은 물 원소 마법에 대해 정리해서 책을 한 권 쓰도록.”

 “...예?”

 좋아하던 이한은 멈칫했다.

 ‘방금 뭐라고?’

 <기초 번개 원소 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나 <기초 혈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처럼, 마법사가 마법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정리해 책으로 만드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도 수련과 배움을 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정리해서 책을 만들어보곤 했다.

 ...보통 고학년들이!

 이한이 ‘지금 이 사람이 미친 거 아닌가’하고 경악해하는 사이 교수는 말을 이었다.

 “아. 잠깐. 착각했군.”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4학년 때쯤 다시 해보라고 하길 내심 기대했다.

 ‘아닌가? 양심 없는 사람이니 3학년 때 시킬지도 모르겠다. 그럼 3학년 때 수강을 피하는 걸로...’

 “두 권 쓰도록. 하나는 깨달은 마법에 대해, 다른 하나는 마법의 개선방향에 대해.”

 하나는 마법에 대해 정리했다면, 다른 하나는 이제 그 마법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용도였다.

 볼라디 교수는 제자의 마력처럼 끝없는 지적 탐구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씨 서펜트에게 달려든 것처럼 어떤 미친 짓을 할 지 몰랐으니까.

 “......”

 이한이 너무 황당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우레걸음 교수가 달려왔다.

 학생이 전장에 뛰어든 것 때문에 심장마비에 걸릴 뻔한 메이킨 가문 사람들과 도시 사람들을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고 온 덕분에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야 이 미친놈아! 대체 씨 서펜트 앞에는 왜 달려든 거냐!”

 씩씩대며 외친 우레걸음 교수는 분노가 깃든 이한의 화강암 같은 표정을 보고 움찔했다.

 “...내, 내가 너무 말이 심했냐?”

*         *         *

 에인로가드의 학생에게 보여줄 마법의 준비를 마친 이아놉은 용병들과 함께 항구로 향했다.

 용병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법사 님.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요?”

 “씨 서펜트 사냥은 그렇게 빨리 끝나지 않는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대형 몬스터와의 전투는 보통 지구력 싸움이었다.

 지금보다 더 늦게 가도 넉넉하리라.

 ‘이 마법만 보여주면...’

 이아놉이 준비한 건 지독할 만큼 아름다운 약화 마법이었다.

 흑마법으로 오해 받기 쉬웠지만 그건 절대 아니었고, 한 번 시전되면 상대의 몸에 깃들어 재생력을 역행시키는 부여 마법이었다.

 씨 서펜트 같은 상대로는 더더욱 효과적이리라.

 “마, 마법사 님. 항구에 불이...”

 “?”

 “항구가 밝습니다!”

 “!”

 이아놉은 휘황찬란한 항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대낮처럼 빛의 구체가 촘촘하게 박혀서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낭비를? 말도 안 된다!’

 이아놉은 에인로가드에서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불빛이 부족해도 그렇지, 씨 서펜트 사냥을 앞두고 이렇게 빛의 구체를 하나하나 불러내면서 마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야. 대단합니다.”

 “역시 마법사들은...”

 용병들은 아첨하듯이 말했지만 이아놉은 머리가 복잡해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무리 봐도 저 마법의 구조가 어떻게 된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아놉은 먼 옛날 느꼈던 것처럼 진한 굴욕감을 느꼈다.

 저런 간단한 마법 하나도 구조를 읽어내지 못하다니.

 ‘도저히 모르겠다...! 어떻게 저걸 한 번에...’

 “...마법사 님. 마법사 님!”

 이아놉이 정신이 팔려있자 용병들이 마법사를 다급히 불렀다.

 “왜 그러느냐?”

 “사냥이...”

 “곧 시작된다고?”

 “끝났다는데요?”

 “...뭐라?”

 이아놉은 빛의 구체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저 아래 항구 선착장 쪽에 씨 서펜트의 사체가 놓여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격렬한 마법이 오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남은 얼음과 독특하게 잘려나간 씨 서펜트의 사체.

 대체 무슨 마법으로...

 “끝났다고!?”

 “예, 예...”

 마법사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겁을 먹은 용병들은 급히 주변에 있던 선원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분명히 봤다고 했지?”

 “몇 번을 말하나? 가장 아래에서 봤다고!”

 “알겠다. 알겠으니 잘 말해라. 아주 대단하신 분이니까.”

 “뭔... 에인로가드에서 온 마법사요?”

 용병들한테 불려온 선원은 마차 안의 이아놉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이 도시에서 저런 차림을 한 대단한 사람은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분은 네가 물을 게 아니라니까. 은화를 다시 내놓고 싶으냐?”

 용병이 짜증을 섞어서 말했지만 거친 바다 위에서 구를 대로 구른 선원도 만만치 않았다. 되레 역정을 내며 말했다.

 “거 염병... 사람 급하게 불러서 왔더니 뭔...”

 이아놉은 대답 대신 은화 하나를 더 튕겼다.

 그러자 짜증을 내던 선원의 태도가 갑자기 사근사근하게 변했다.

 “뭐가 그리 궁금하십니까?”

 “저 빛 마법은 누가 시전했지? 어느 교수인지 기억나나? 시전할 때 특수한 시약이나 스크롤을 사용했나?”

 “학생분이 시전하셨는데요. 그리고 어... 시약이나 스크롤? 그 두루마리 같은 거라면 안 쓰셨습니다.”

 “...!!!!!”

 이아놉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학생이라면 한 명밖에 없었던 것이다.

 “워다나즈 가문의 학생인가?”

 “어, 맞습니다! 그 이름이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 아닙니다! 다른 사람 아무나 불러보시면 알 겁니다.”

 선원의 태도는 너무나도 당당해서 이아놉은 저 말에 거짓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걸 한 번에? 어떻게 한 번에?’

 사실 한 번에 시전하진 않았지만 이아놉은 무심코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잡은 건? 어떻게 잡았는데?”

 이아놉이 충격에 빠지자 용병들이 궁금했는지 물었다.

 “한 놈은 마법 걸린 화살들을 쏴서 잡았고.”

 “그건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이 걸어준 거냐?”

 “아니. 그것도 워다나즈 가문에서 나온 학생 마법사께서 했는데.”

 “......”

 마법에 문외한인 용병들도 슬슬 놀라웠는지 말소리가 적어졌다.

 대충 이아놉이 왜 충격을 받았는지 느낌이 온 것이다.

 “다른 한 놈은?”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이 직접 잡았지.”

 “아까 말한 학생은 이번에는 안 꼈나보군.”

 “아니. 같이 참가해서 싸우던데?”

 “......”

 “...쌍둥이 아니야?”

 “세쌍둥이... 아니 다섯쌍둥이 정도는...”

 용병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만 한밤중 항구 거리에 조용히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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