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93화 (493/687)

493화

“마법사 님.”

“......”

“마법사 님?”

선원이 떠나고 나서도 이아놉이 아무런 말도 없자 용병들은 살짝 겁을 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마법사가 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만큼 두려운 징조도 없었다.

‘반드시 끌어들이고야 말겠다!’

두건 속, 이아놉의 눈동자는 횃불처럼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이제까지의 행동은 단순히 안타곤달스의 명령과 보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금 본 마법의 편린을 보자 이아놉은 눈이 뒤집히고 생각이 달라졌다.

‘저건... 대마법사의 재목이 틀림없음이야.’

제국의 마법범죄자들은 사악하고 타락한 자들이었지만, 마법에 대한 탐욕만큼은 마법사들과 똑같았다.

이아놉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타곤달스 같은 위험하고 변덕스러운 인물 밑에서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마법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 저 소년이 사악한 마도(魔道)로 빠져들어 대마법사가 된다면?

그러는 동안 이아놉이 충실한 오른팔 노릇을 한다면?

그 곁에서 흘러나오는 마법의 비의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으리라.

그건 안타곤달스처럼 인색한 자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보상이었다.

저 소년이 대마법사의 재목이라는 확신에 이아놉은 자신의 목숨마저도 걸 수 있었다.

‘안타곤달스한테 보고하는 대신...’

이아놉은 이 소년을 안타곤달스에게 바치는 대신 자신이 몰래 독점하기로 마음먹었다.

소년을 바치는 것보다 소년을 끌어들여 심복이 되는 게 훨씬 더 매력적인 길이었다.

위대한 재능을 타고나신 워다나즈 가문의 마법사에게 바칩니다...

이아놉은 심혈을 기울여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안타곤달스의 마법을 조금씩 보여주는 식으로 접근할 생각은 완전히 버린 상태였다.

생각해보니 멍청한 짓이었다.

안타곤달스마저 내려다보는 대마법사의 재목에게 그런 식으로 접근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는가.

더욱 더 노골적이고, 더욱 더 유혹적으로 접근해야 했다.

...저는 늙었지만 경험 많은 마법사입니다. 제국에서 위험 때문에 금지한 몇몇 마법들을 알고 있으며, 제국에서 금지한 구역에 발을 디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처럼 위대한 재능을 가진 마법사는 본 적이 없습니다. 부디 제가 당신을 섬기는 일을 허락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제가 아는 보잘것없는 지식과 지혜를 당신에게 바칠 수 있기를, 위대한 마법의 초석이 되기를...

이아놉은 용병들이 알면 경악할 정도로 저자세의 편지를 썼다.

한 마법사가 다른 마법사에게 이렇게 종노릇을 하겠다고 보내는 편지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이아놉은 어떤 굴욕감도 느끼지 않았다.

어떻게든 접촉만 할 수 있다면 이아놉이 아는 사악한 지혜들로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을 타락시킬 생각이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비비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이걸 보내라!”

“예... 예!”

귀기 서린 이아놉의 목소리에 겁먹은 용병들은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하고 밤의 거리를 달려 나갔다.

*         *         *

다음날.

이아놉은 항구 여관 구석에 푹 처박혀서 용병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분명히 통한다.’

이 정도로 낮게 조아리는데 어느 마법사가 흥미를 가지지 않겠는가.

이아놉은 분명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말 한 마디 정도는 나눠보려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법사 님!”

‘왔구나!’

용병의 목소리가 들리고 여관의 문이 열리자 이아놉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용병의 표정이 이상했다.

무언가 숨긴 듯한, 무언가 죄를 지은 듯한...

어색하고 불편한 얼굴이었다.

이아놉의 본능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설ㅁ...”

“저 사람인가?”

“예!”

이한의 질문에 용병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불안감도 잊고 이아놉의 얼굴이 밝아졌다.

“워다나즈 님...”

“교수님! 저 사람이 맞답니다!”

“?!”

이한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순간 여관 뒤의 벽이 갑자기 박살나더니 그림자가 사납게 달려들었다.

콰르릉!

이아놉도 나름 거친 뒷골목의 마법사로서 마법 전투 경험이 없지는 않았다.

뒤에서 이상함을 느끼자마자 기겁하며 아티팩트를 가동시켰다.

강렬한 강화 마법과 함께 이아놉의 사고(思考)가 가속되고 시야가 넓어졌다.

동시에 투명한 힘의 장벽이 앞에 생겨나며 방어가 가동됐다.

치이익-

마지막으로 이아놉의 반지가 빙글 한 바퀴 돌더니 이아놉의 손을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닿는 순간 상대의 재생력을 역행시키는 강력한 부여 마법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어중간한 전투 마법사들은 녹아버렸을 테지만 불운하게도 상대가 너무 나빴다.

볼라디 교수는 이아놉보다 한층 더 빠르게 가속해서 움직였다. 이아놉 앞에 장벽이 생겨났을 때 이미 볼라디 교수는 공중으로 가속해 이아놉의 머리 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아놉의 반지가 작동하면서 손에 집중적으로 마법이 걸리자 볼라디 교수는 주저하지 않고 상대의 양팔을 잘라냈다. 변환 마법과 부여 마법으로 강화된 스카프가 명검처럼 마법범죄자의 두 팔을 날려버렸다.

이아놉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마지막 발악에 나섰다. 발목에 묶어둔 스크롤을 작동시켜 이 주변에 유황 안개를 뿌리고 탈출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이미 이아놉의 몸을 검으로 꿰뚫고 있었다.

푹!

칼날에 바른, 우레걸음 교수가 직접 만든 석화 물약이 전신으로 퍼져나가자 이아놉은 그대로 돌로 변해버렸다.

“확보했소?!”

“확보했습니다.”

“잘하셨ㅅ... 고생하셨습니다!”

박살난 여관 뒷벽에서 우레걸음 교수의 목소리가 초조하게 들려왔다.

어찌나 초조했는지 평소 교수 사이 하던 존대도 잊을 정도였다.

“괜찮냐, 워다나즈!?”

“예. 괜찮습니다.”

“뭔 미친 놈이 다 꼬이는군!”

우레걸음 교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숨을 내쉬며 돌로 된 이아놉을 훑어보았다.

가진 아티팩트부터 쓰려던 마법까지 평범한 마법범죄자는 아니었다. 꽤 이름 있는 놈이 분명했다.

그런 놈이 워다나즈한테 접근한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건...

“...너는 이게 안 궁금했냐?”

우레걸음 교수는 이한이 준 편지를 보며 물었다.

솔직히 젊은 우레걸음 교수였다면 이 편지를 보고 한 번 만나봤을 것 같았다.

어떤 마법사가 이렇게 굴종하면서 지혜를 바치겠다고 하는데, 자존심 강하고 호기심 강한 마법사로서 그걸 어떻게 거절한단 말인가?

뭘 하더라도 일단 만나봤을 것이다.

그런데 워다나즈는 이 편지를 받자마자 ‘교수님! 교수님! 웬 수상한 범죄자 놈이 저한테 편지 보냈습니다!’하고 달려온 것이다.

덕분에 일이 괜히 꼬이거나 하는 일 없이 편히 풀렸지만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이 자식은 욕심이 없나?

“이게 뭐가 궁금합니까?”

이한은 의아해했다.

웬 수상쩍은 마법사가 ‘제 지혜를 바치고 노예가 되겠습니다’라고 하면 ‘뭐지? 사기꾼인가?’하고 의심을 해야지 그걸 왜 만나준단 말인가.

하물며 에인로가드의 교수들과 같이 나왔으면 교수들을 불러서 해결하는 게 맞았다.

평소에 맨날 괴롭히기만 하는데 이럴 때라도 이용해야 타산이 맞지 않겠는가.

“아니... 그... 제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마법이나 지식이나 그런 것 있지 않냐.”

“그런 거 함부로 배워서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제대로 검증된 마법들만 배워도 배울 게 많은데.”

“......”

너 진짜 마법사 맞냐?

*         *         *

돌로 된 마법범죄자는 짐더미와 같이 던져두고, 학생들은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학교 나올 때의 예정에 맞춰서 의뢰를 끝낸 덕분에 우레걸음 교수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얼굴도 매우 밝았다.

“워다나즈. 아침에 안 보이던데 무슨 일 있었냐?”

“웬 마법범죄자 놈이 나한테 이상한 편지 보내서 교수님하고 같이 잡으러 갔어.”

“...그냥 말해주기 싫으면 싫다고 해. 이 자식아.”

바트렉은 투덜거렸다.

아마 워다나즈는 자신만 아는 도시의 비밀스러운 가게에 방문한 게 분명했다.

<미래를 알려주는 거울>이나 <정답을 대신 써주는 깃펜> 같은 귀한 아티팩트를 판매하는 가게.

그런 가게라면 워다나즈가 알려주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한은 바트렉을 때리는 대신 친절하게 질문을 던졌다.

“바트렉. 만약 너한테 네 재능을 찬양하며 네 밑에서 종노릇을 하겠다는 이름 모를 마법사의 편지를 받으면 어떻게 할 거냐?”

“뭐?”

바트렉은 뭔 소리냐는 듯이 반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몰입했다.

“그런 편지를 받는다? 내가? 으음...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너무 이르지 않나? 그래도 받는다고 치면...”

‘이 자식 되게 좋아하네.’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입으로는 ‘현실성 없다’라고 하면서 눈동자를 굴리면서 되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꼴이 어이가 없었다.

마치 가이난도가 ‘내가 토베리즈 시리즈 세계에 떨어져서 조수가 되면 어떡하지’ ‘내가 마법사 카드 챔피언이 되면 뭘 하지’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었다.

“일단 만나보고 가르침을 조금 주긴 해야겠지? 아무래도 이렇게 간절히 나를 뵙고 싶어하는데?”

“...그 상대가 좀 수상하고 범죄도 저지른 적 있는 사람이라고 치자. 그래도?”

“범죄자야? 으으으음.”

바트렉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뭐... 내 노예 노릇 하겠다고 온 사람인데...”

“에라이.”

딱!

이한은 바트렉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무래도 에인로가드에 돌아가면 해골 교장에게 말해서 인성 교육에 추가 사례로 넣어야 할 것 같았다.

‘에인로가드 학생들 너무 사기에 취약한 것 아닌가?’

저런 편지를 받으면 의심부터 해야지...

“뭐냐!? 내가 뭔 틀린 대답을 했다고...!?”

바트렉은 왜 맞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억울해했다.

그러는 사이 도시 길드 사람들과 메이킨 가문 사람들이 일행을 배웅해주기 위해 모여들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좀 더 쉬었다 가셔도 되는데...”

학생들은 그 말에 살짝 솔깃해하며 우레걸음 교수를 쳐다보았다.

도시 사람들이 이렇게 붙잡고 환대해주려는데 하루이틀 정도는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물 동상 축제도 아직 구경 못 해봤는데.’

‘못 가본 거리들이 아직 많은데.’

“아닙니다. 학업 도중에 나온 터라, 학생들도 빨리 돌아가서 공부에 전념하고 싶을 겁니다.”

우레걸음 교수는 가식적으로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과연...!”

“저희가 너무 눈치 없는 부탁을 드렸군요! 죄송합니다.”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말이 되나? 나는 훈련받다가 한 번 마을로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마법사 님들은 머리가 좀 다른가보군.”

학생들은 우레걸음 교수의 뒤통수가 뚫리기를 기도하는 것처럼 노려보았다.

그러나 우레걸음 교수는 그 뜨거운 시선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러분들의 환영과 호의, 잊지 않겠습니다. 메이킨 가문에서 해주신 배려와 후한 보상에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학생들의 수련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메이킨 가문 사람들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겸손하게 말했다.

“더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할 뿐입니다. 학생들이 연구하려면 금화가 보통 많이 드는 게 아닐 텐데요.”

“하하... 괜찮습니다.”

“참. 교수님. 저번에 3학년 발파탄 학생이 검을 담보로 맡기고 시약을 사가셨는데,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했는데 자꾸 사죄의 편지를 계속 보내셔서...”

메이킨 가문 사람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우레걸음 교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여간 이 에인로가드 제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교수를 창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전해드리겠습니다.”

선배의 추잡한 구걸을 들은 1학년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그 선배 뭐하는 사람이야? 혹시 도둑 길드 출신이신가?”

“도둑 길드는 당당하게 훔치지 저런 추잡한 짓거리 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해! 너희라고 다를 줄 아냐!”

우레걸음 교수가 성마른 목소리로 선배를 욕하는 학생들을 타박했다.

자기들의 미래일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욕이나 하다니!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