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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25화 (525/687)

525화

“하긴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워다나즈한테는 없겠군요.”

“어... 음. 예.”

머릿속으로 해골교장볼라디교수버두스교수등등을 빠르게 떠올리던 이한은 표정을 관리하고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워다나즈 같이 침착한 학생은 쓰기 힘든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이건 마법사보다는 검객의 방법이니.”

검사도 마법사도 마력을 다루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몇몇 극단적인 마법사들이 검사들을 ‘무식하게 감으로 마력을 다루다니 무슨 몬스터냐?’라며 비웃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검사들의 방식은 조금 난폭한 편이긴 했다.

이론과 학문으로 서로 토의해가며 기반을 다지는 마법사들과 달리 검사들은 훨씬 더 폐쇄적이었다.

비전과 깨달음은 오로지 가문 내에서만 구전으로 전해졌고 유출은 거의 절대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훨씬 덜 체계적이고 덜 이론화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몸 안의 마력을 신체의 말단으로 돌려서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기술을 설명해야 할 때, 마법사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필요한 최소한의 마력량은 삼제곱센티미터의 마석, 혹은 1서클의 빛 생성 마법에 드는 마력량과 동일하다. 이 마력을 유도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동작들은 다음과 같다. 주문은...

그에 비해 검사들은 이런 식으로 전달했다.

-호흡을 깊게 들이쉬고 타오르는 불을 느껴라. 그 불을 팔로 번지게 해라. 거센 들불을 내뿜으며...

하지만 이렇게 비웃음을 사는 검사들의 방식에도 장점은 있었다.

“내가 알기로, 아무리 지식과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세계의 질서를 바꾸는 건 마법사의 의지입니다. 검객도 마찬가지로 의지로 힘을 불러옵니다. 이 의념(意念)을 싣는 것은 그 의지를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의지.

복잡한 이론과 주문, 시약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세계를 바꾸겠다는 그 의지가 마법의 핵심이었다.

이 의지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벼려서,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만드는 게 원래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잉걸델 교수는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 있었다.

이 의지를 맹염(猛炎)처럼 뜨겁게 피어 올려서 그 힘을 이용하라고!

‘흥미롭군.’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검술과 기사로서의 자부심에 취해 잉걸델 교수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이한은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저 방식은 해골 교장한테서 들었던 몇몇 마법의 특징들을 떠오르게 했던 것이다.

‘원시 마법?’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그리고 지금도 제국 외곽에서 가끔 가다가 발견되는 체계 밖의 마법들.

별 관심 없거나 무시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이한은 그런 편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점이 있고 쓸 수 있다면 뭐하러 거부하겠는가?

잉걸델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단단한 강철 막대를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목검을 들더니 가볍게 휘둘렀다. 마력의 결정체인 오러도 담지 않았다.

서걱!

“!”

“...!”

목검이 강철을 베는 기현상에 학생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냥 놀라는 학생들과 달리 이한은 다른 것을 느꼈다.

‘강화 마법?’

마치 검에 <절삭력 강화> 마법을 건 것 같은 마력의 흐름을 느꼈던 것이다.

“뭘 느꼈습니까?”

“검술의 심오함을 느꼈습니다!”

“...그거 말고 말입니다.”

“아닙니까?”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머쓱하다는 듯이 뒷목을 긁적거렸다.

“순간 절삭력이 강화된 것 같았는데 맞습니까?”

“잘 봤습니다.”

이한의 대답에 잉걸델 교수는 기쁜 얼굴로 대답했다.

“베겠다는 의념(意念)이, 검에 담긴 마력의 성질을 변화시킨 겁니다.”

“...!!”

‘대단하군.’

이한은 놀랐다.

간단한 것처럼 말했지만 잉걸델 교수가 방금 보여준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마법사가 이론 공부하고 주문 외우고 시약까지 써가면서 시전하는 마법을, 그냥 감각과 의지만으로 비슷하게 구현한 셈 아닌가.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전자가 훨씬 짧겠지만, 어느 누구도 후자의 완성도를 부정할 수 없으리라.

“검을 잡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러에 관심을 가지고 꿈꾸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러는 검의 길에 있어서 그저 거쳐 지나가는 곳일 뿐입니다. 거기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닭을 잡을 때에는 닭을 잡을 수 있는 검을, 소를 잡을 때는 소를 잡을 수 있는 검을 꺼내면 될 뿐. 자.”

잉걸델 교수의 이야기를 감명 깊은 얼굴로 듣고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멈칫했다.

“네?”

“다들 적당히 쉬었으니 일어나십시오. 원래 지금처럼 지쳤을 때 감정이 격렬하게 일어나기 쉽습니다.”

“......”

원래 의념을 담는 것도 숙련되면 감정을 타오르게 하면서도 그 방향을 능숙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게 불가능했으니, 일단 감정을 타오르게 만들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열받을 때까지 굴리는 것이었다.

“일어나십시오. 자. 일어나십시오.”

“악! 악!”

“잠, 잠시만! 5분만 더!”

잉걸델 교수는 널브러진 학생들이 일어날 때까지 목검을 들고 때렸다.

팔다리에 힘이 빠진 학생들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피하려고 했지만 잉걸델 교수는 집요하게 따라가면서 일어날 때까지 때렸다.

이한은 처음으로 축제에 참가한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성 이악투스여. 감사합니다.’

*         *         *

캉!

“더 감정을 담아서.”

캉!

“더!”

캉!!!

“아직 부족합니다. 마력이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으아악! 으아악! 으아아아악!”

“좋습니다. 그렇게 감정을 끌어올리는 겁니다.”

“헉, 허억.”

더르규가 숨을 내쉬며 한쪽 무릎을 꿇자 이한이 옆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강화 마법 걸어줄까?”

“아, 아니다. 힘들어야 하는 거니까... 헉. 허억. 그리고 교수님도 우릴 생각해주셔서... 하는 거니까.”

‘저런 마음이면 오히려 불리할 것 같은데.’

잉걸델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이 감정을 일으켜서 마력을 변화시키려면 진심으로 감정을 폭발시켜야했다.

저런 식으로 생각해주면 오히려 불리한 것이다.

“워다나즈.”

“?”

지젤이 말을 걸어오자 이한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학교에 홍수가 나거나 사악한 마법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지젤이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지젤도 매우 지쳤는지 온몸에 피로가 가득해보였다. 쌍검의 끝을 아래로 내린 채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쪽 좀 보고 있어봐.”

“뭐? 저주 걸지 마라. 나한테 저주 걸어봤자 너만 손해야.”

“저주 걸려는 거 아니거든. 그럴 기운도 없으니까 이쪽 보라고.”

이한도 더르규도 신기해하며 시선을 돌렸다.

이한의 얼굴을 한 번 뚫어지게 쳐다본 지젤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촤악!

다른 학생들과 달리 이번 일격은 강철 막대를 파고들어 상처를 남겼다.

그걸 본 잉걸델 교수가 박수를 쳤다.

“잘 했습니다! 분노를 아주 잘 폭발시켰군요!”

“......”

“......”

이한과 더르규는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야. 나도 연습해야겠다.”

“몸은 괜찮나?”

“지금 안 괜찮다고 연습 안 하면 네 친구가 가까운 미래에 날 더 안 괜찮게 만들걸.”

“모, 모라디가 그런 녀석은... 맞긴 한데.”

“......”

옆에서 숨 돌리던 지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더르규를 쳐다보았다.

이 새끼가?

‘교장 선생님을 떠올릴지, 버두스 교수를 떠올릴지, 볼라디 교수를 떠올릴지 고민이군. 생각해보니 또...’

이한은 눈을 감고 골똘히 명상에 잠겼다.

감정을 폭발시킬 상대가 생각보다 너무 많았던 것이다.

옆을 지나가던 잉걸델 교수가 그 모습을 보고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상대가 역시 없나?’

기사 가문 출신 학생들은 필연적으로 경쟁과 투쟁을 겪고 클 수밖에 없었다.

가문 내에서, 혹은 가문끼리 계속 교류하면서 대결을 겪어왔으니까.

이런 만큼 호승심이 강한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워다나즈처럼 대귀족 가문 출신은 딱히 경쟁과 투쟁을 하며 클 이유가 없었다.

그런 교양과 예법, 사교 또한 삶에는 도움이 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아무래도 감정을 폭발시키기가 힘든...

쾅!!!!!

“......”

“......”

박살난 목검과 완전히 찌그러진 강철 막대를 본 잉걸델 교수와 학생들이 경악의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대체 이 분노는?

“...알겠다!”

“뭐가?”

“워다나즈 저 자식. 저번에 내가 격구 이야기를 계속해서 화가 아직도 잔뜩 나있는 게 분명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 좀 안 듣는 걸로 생길 분노가 아니었다.

*         *         *

가르시아 교수는 학생들이 모두 모이자 반가워하며 입을 열었다.

“다들 잘 지냈어요?”

“예. 교수님!”

“오늘 강의실이 아니라 이렇게 호수 앞에서 강의를 하는 이유는...”

학생들은 긴장한 시선으로 호수를 쳐다보았다.

설마 호수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날씨도 추운데.’

‘저번에 수중 호흡 가르쳐 주신 이유가 설마?’

“...강의실 안에서 쓰기에는 좀 난장판이 될 것 같아서 나온 거예요. 아무래도 넓은 곳에서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럼 호수는 안 들어가나요?”

“네? 안 들어가죠.”

학생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이한은 냉정했다.

“혹시 호수에서 몬스터가 나오는 겁니까?”

“아니요.”

“아. 알겠다. 워다나즈. 호수 그 자체가 몬스터인 거야! 호수 괴물인 거지!”

“...그냥 다른 곳에서 할까요?”

학생들 기분 전환 좀 하라고 경치 예쁜 곳을 강의 장소로 정한 가르시아 교수는 살짝 후회했다.

산만한 학생들을 다독이고 나서야 가르시아 교수는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 배울 마법은 호신에 가까워요. 이 중에서 마법 결투나 전투를 따로 배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날 쳐다보지?”

“아, 아니. 그냥...”

“...기본적으로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 거예요.”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을 싸움에 같이 사용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싸움에 익숙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그랬다.

평온한 상황에서 집중해도 실패할 때가 있는데 정신 사나운 싸움판 한가운데라면 더더욱 힘들지 않겠는가.

“그런 학생들을 위한 호신용 마법이죠.”

“오...”

‘이게 교수지.’

다른 학생들은 물론이고 이한은 감동했다.

사실 다짜고짜 쇠구슬 던지는 건 교수가 아니라 깡패에 가까웠다.

‘방어 마법이려나?’

“자. 먼저 <언데드 퇴치> 마법입니다. 언데드가 거부감을 느끼는 기운을 주변에 두르는 마법인데, 이 마법을 걸고 있으면 약한 언데드들은 쉽게 접근하지 않죠.”

“언데드...”

“퇴치...”

학생들은 깃펜을 놀려가며 오늘 배울 마법을 메모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언데드 감지> 마법입니다. 언데드가 뿜어내는 특유의 음(陰) 에너지를 잡아내는 마법인데, 미리 시전해놓으면 매복한 언데드를 잡을 수 있어요.”

“언데드...”

“감지...”

“또 뭐가 있을까요. 이건 2서클 마법이지만, <하급 언데드 역소환> 마법도 같이 배워보도록 하죠. 약한 언데드는 이 마법으로 무너뜨려서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

“???”

메모하던 학생들은 슬슬 위화감을 느꼈다.

호신 마법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언데드 중심이었던 것이다.

어째서?

위화감을 느끼던 학생들 중 가장 눈치가 빠른 이한이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왜 그러죠?”

“혹시 교장 선생님이 곧 저희를 습격하시나요?”

“무, 무슨 소리에요. 이한 학생?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

“......”

대충 메모하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벌떡 일어나서 옆의 친구들 메모를 베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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