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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41화 (541/687)

541화

“어. 죄송합니다. 저는...”

졸지에 에인로가드의 학생이 아니라 에인로가드의 산지기로 직종 변경을 할 상황에 처하자, 이한은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야차도 이한이 수긍할 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린 마법사가 에인로가드의 학통을 버리고 산 속 깊이 틀어박힐 이유가 없겠지.

“...졸업 후 인맥과 뛰어난 사업 감각으로 자산을 수십 배로... 아. 네. 맞습니다.”

‘잘못 들었나?’

야차는 방금 자기가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에인로가드의 학생, 그것도 저 정도로 선업을 쌓은 학생이 금전에 탐욕스러울 가능성은 적었던 것이다.

“그래서 늪에 자리 잡은 골치 아픈 놈이 누굽니까? 혹시 자색늪벌레입니까?”

이한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되짚어보며 생각나는 몬스터를 꺼냈다.

자색늪벌레는 황소만한 크기를 가진 몬스터로, 늪에 한 번 자리 잡으면 독기를 토해내서 주변 식물을 죽여 대는 골치 아픈 놈이었다.

‘하지만 거인들이 도와준다면 그리 어렵지 않겠군.’

늪에서 은신하는 놈이라 귀찮은 거지, 거인처럼 독에 강하고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종족은 그냥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늪에 들어가서 잡힐 때까지 휘저으면 알아서 나올 테니까.

-으응? 자색늪벌레? 아아... 그 조그만 놈. 그거 가지고 무슨 거인들까지 부르겠나.

“되게 크지 않나...”

-구울 드래곤이다. 오래 묵은 놈이라 그런지 덩치도 덩치인데 독기가 보통이 아니더군.

“......”

-아야. 마법사. 왜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건가? 뽑지 마라. 귀한 머리칼이다.

“미, 미안합니다.”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당황해서 거인의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사실 구울 드래곤은 ‘드래곤’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드래곤은 아니었다.

드래곤을 연상시키는 겉모습을 가진 유사한 아종, 아니 사실 아종도 아닌 비스무리한 무언가였다.

제국의 드래곤 전문 학자들은 ‘덩치 큰 파충류 계열에 다 드래곤 붙일 거면 드레이크도 워킹 드래곤이라고 하지 그러냐’하며 불만을 표했지만 사람들은 원래 직관적인 명칭을 선호하는 법.

그리고 이한도 구울 드래곤이라는 표현에는 별 불만이 없었다.

이한을 단숨에 짓눌러 죽이거나 독기 넘치는 숨결로 중독시켜 죽이거나 오염된 발톱으로 베어서 죽일 수 있는 몬스터라면 진짜 드래곤인지 가짜 드래곤인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 교장 선생님 불러올까요?”

-뭐? 아서라. 핏덩이야. 네가 고나달테스 공의 무서움을 모르는구나.

야차는 이런 같잖은 일에 해골 교장을 부른다는 이한의 말을 듣고 어이없어했다.

고나달테스가 아무리 에인로가드의 제자들을 어여삐 여긴다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응석을 다 받아줄 만큼 무른 마법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이런 부탁 정도는 해주실 것 같은데...”

-그게 착각이라는 거다. 네 선배와 선배의 선배와 선배의 선배의 선배들 모두가 한 착각! 대화한 적도 별로 없을 텐데 무슨 자신감이더냐?

“으음.”

늙은 야차의 단호한 기세에 이한은 살짝 압도되었다.

그런가?

‘하긴 해골 교장이 좀 미친 사람이긴 하다.’

이한만 친하다고 생각하는 거고 불렀다가는 지랄을 할지도...

“알겠습니다. 그래도 구울 드래곤을 상대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아니다. 마법사!

-우릴 믿어라!

거인들은 이한의 반응에 발끈했다.

마법사가 그들보다 구울 드래곤을 더 높게 평가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못 믿는 게 아니라...”

-길 안내해라. 야차 늙은이!

-그래. 알겠다. 알겠어.

“......”

*         *         *

거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발파탄과 안파곤은 바로 정상으로 향...

...하지 않고 거인들의 뒤를 쫓았다.

아무래도 후배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거인조종자의 칭호를 가진 후배라지만 거인들은 변덕스럽고 알 수 없는 종족.

자칫하면 거인조종자가 거인먹잇감으로 될 수도 있었다.

“...잠깐. 저거 야차 아닌가?”

“뭐? 야차?! 정말 야차가 있다고?”

발파탄은 깜짝 놀랐다.

예전에 졸업한 선배한테 예전에 ‘산맥 어딘가에 야차도 있더라’란 말은 들었지만, 당연히 선배가 겁을 주려고 한 거짓말인 줄 알았던 것이다.

-눈 심하게 내리는 날에 야차를 만났는데, 딸꾹. 내가 악업을 쌓았다고 그렇게 훈계를 하더라고. 그러니까 모라디 네 녀석은 선배를 잘 섬기고... 딸꾹. 어디까지 말했지?

“놀랍군... 어디로 가는 거지?”

“글... 글쎄. 젠장. 쪽지 다시 보내봐. 슬슬 빠져나와야 할 거 같은데.”

거인들과 야차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두 선배의 얼굴이 굳어졌다.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혹시 후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야만스러운 놈 같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냐!”

안파곤은 벌컥 화를 냈다.

미신을 믿진 않았지만 지금 불길한 소리를 하는 흰 호랑이 탑 놈이 참으로 짜증나기 그지없었다.

“누군 지금 걱정 안 되는 줄 알아? 거인 놈들이 얼마나 이상한 놈들인지 알잖아!”

“저 후배는 거인들이 모두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다.”

“양념 같은 거라면?”

“...닥쳐!”

둘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따라갔다.

거인들은 흥얼거리면서 주변의 거대한 나무들을 뽑아내더니 썩둑썩둑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야, 야영 준비?’

발파탄은 경악했다.

거인들이 야영을 준비한다->요리를 준비한다->후배가 요리가 된다

“쪽지 보내! 바로 탈출시킬 준비해야 해!”

“알, 알겠다. 지금 보낸다!”

안파곤도 보기 드물게 얼굴이 창백해져서 쪽지를 날렸다.

*         *         *

-구울 드래곤은 난폭하거나 잔인한 녀석은 아니다. 다만 놈의 성질이 골치 아플 뿐이지.

야차는 거인들이 급조한 나무 방패를 확인하고 손짓했다.

-얌전히 지하 깊은 곳에서 자고 있으면 좋을 것을 가끔씩 이렇게 밖으로 기어 나온단 말이지. 됐다. 그 정도면. 어차피 놈을 잡을 게 아니니까 그 정도면 충분해.

“앗. 대화로 해결합니까?”

-구울 드래곤은 말을 못 알아들어. 그리고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워낙 게으른 놈이라 무시할 거다.

이한은 시무룩해졌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린놈들이 들어가서 구울 드래곤을 힘으로 밀어낸다. 적당히 멀어지면 다시 늪으로 가기 귀찮아져서 자기가 살던 지하 굴로 돌아갈 거다.

“...정말 그거면 됩니까?”

이한은 생각보다 평화로운 방식에 놀랐다.

-그래.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을 뿐이지 힘은 대단하거든.

하긴 방식이 단순해보여도 그걸 실천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당장 이만한 거인들이 일치단결해서 힘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핏덩이 네 녀석이 맡을 일은 하나뿐이다.

“알겠습니다. 앞에서 어떤 마법을 쓰면 됩니까?”

각오를 다진 이한은 지팡이를 잡고 물었다.

-무슨 소리냐? 구울 드래곤을 치우는데 새파랗게 어린 마법사를 앞에 세울 리가 없지 않느냐. 뒤에서 거인들 지시 내려줘라. 놈들이 내 말은 잘 안 들으니까.

“그것뿐입니까?”

-아니... 그럼 뭘 할 줄 알았는데?

야차는 어린 마법사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이한은 머쓱해져서 재빨리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이 적은 것 같아서...”

-지금도 충분히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저 놈들은 지지리도 말을 안 듣거든. 좋아. 다 됐다. 끌어내라!

쿠르르르르릉!

거인들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숲을 밀어내고 길을 만들었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늪과 그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구울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면 드래곤과도 비슷했지만 훨씬 작았다. 군데군데 뒤틀리고 흉측한 모습을 덧댄 탓에 드래곤보다는 차라리 마법사가 만들다가 잘못된 흉악한 키메라처럼 보였다.

-우어어어!

“잠깐, 잠깐! 다른 사람하고 보조를 맞추십시오!”

-우어...

“옆으로! 옆으로 돌아서!”

거인들은 정말 말을 안 들었다.

이한은 어르고 달래고 위협하면서 거인들로 포위망을 만들었다.

야차는 그 모습을 보며 매우 흡족해했다.

-정말 잘하는구나. 참. 몇 학년이지? 물어보는 걸 잊었군.

“일학년입니다.”

-그래... 뭐?

-야차 늙은이! 도와줘라!!

거인들이 야차를 불렀다.

늪에서 나오기 싫었던 구울 드래곤이 온몸에 힘을 주며 버티기 시작한 것이다.

놈이 뿜어내는 독기에 코와 눈이 따끔따끔한 거인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간다. 가! 잠깐 힘을 좀 빌려다오!

“예?”

야차는 이한을 머리 위에 올렸다. 마법사를 졸지에 뺏긴 거인이 울부짖었다.

-잠시 기다려라. 곧 돌려주마!

쌓은 업이 힘으로 바뀌자, 야차의 전신에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맹한 힘이 흘렀다.

봤을 때부터 느낀 거였지만 이 어린 마법사가 쌓은 선업은 보통이 아니었다.

-꺼져라, 이 귀찮은 놈아! 네가 좋아하던 곳으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란 말이다!

-야차 늙은이 잘한다!

거인들의 격돌에 온 주변이 무너지고 박살나는 느낌이었다.

이한은 거칠게 흔들리는 야차의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버틴... 버틴다!’

어느 순간 이한은 자신이 자연스럽게 야차의 머리 위에 서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번 시험 때 함선의 옆면을 기어오르면서 깨달음의 단초를 얻은 덕분에, 이번 상황에서 마침내 흡의 성질을 가진 마력 변환을 체화한 것이다.

억지로 마력을 방출하거나 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됐...!’

-밀려난다! 굴려라! 굴려!

-늪에서 밀어내!

거인들은 이한이 하는 고생도 모르고 신나서 밀어댔다.

완벽하게 붙어 있던 사람도 흔들릴 만큼의 충격이었다.

이한의 소매 속에 있던 바실리스크가 안타깝다는 듯이 울음소리를 냈다.

어쩌다가 이런 거인들한테 끌려와서...!

*         *         *

-헉, 헉헉.

-고생 많았다. 너희 어린 놈들이 선업을 쌓았군.

일이 끝나자 야차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어서 헐떡이는 거인들이 없었다면 혼자 힘으로 구울 드래곤을 끌어낼 수 없었을 터.

정말 잘 해준 게 맞았다.

-야차 늙은이 뭐 했나!

-너희들이 못 끌어내서 내가 달려간 건 잊어버린 거냐?

-야차 늙은이도 뭐 했다...

거인들은 기세등등해져서 따지려다가 수그렸다.

-마법사. 마법사 어디갔나?

-야차 늙은이가 훔쳐갔다!

-안 훔쳐갔다. 어린 놈들아.

야차는 거인들을 타박하며 이한을 돌려줬다. 이한은 잔뜩 지친 얼굴로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았다.

-잠깐. 왜 그렇게 지쳤나?

“여기 위가 좀 흔들리던데요...”

-뭐? 마법으로... 잠깐. 쓸 줄 모르나? 정말 일학년인가??

야차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산 아래에 별 학생들이 다 있는 건 알았는데 거인들과 노는 1학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다.

-정말 대성하겠군. 정말 대성하겠어! 일학년이 여기까지 와서 거인들과 친해지다니.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니라 교수님들이 강제로...”

이한은 바로 교수 욕을 하려고 했지만 야차는 듣지 않았다.

-이거 받게. 이 주변에 왔을 때 이 늙은이의 도움이 필요하면 당겨서 부르면 될 거야.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마땅히 도움을 줘야지.

야차는 뿔 모양의 작은 조각을 건넸다. 이한은 받으면서 의문을 품었다.

‘내가 여기 다시 올 일이 있나?’

이번 일만 끝나면 절대 얼씬도 안 할 것 같은데...

“예. 감사합니다.”

-일학년인 줄 알았으면 도움을 부탁하지 않았을 텐데, 이거 괜히 미안하군.

“아닙니다. 말씀만이라도 기쁩니다.”

이한은 자신을 여기로 보낸 교수를 생각하며 씁쓸하게 대답했다.

“?”

거인들이 신나서 서로 칭찬하는 동안 이한은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날려보낸 것 같은 쪽지 몇 장이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뭐지? 선배들 말고 다른 사람도 여기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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