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42화 (542/687)

542화

한편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볼라디 교수와 이쿠루샤는 생각보다 늦게 돌아오는 이한의 행방에 의아해했다.

“늦는군.”

-으음.

이쿠루샤도 걱정이 됐는지 표정이 흐려졌다.

물론 이한과 같이 간 거인들의 전력만 놓고 보면 이 험난한 산맥에서도 적수를 찾기 힘든 든든한 전력이긴 했다.

하지만 이쿠루샤는 거인들이 얼마나 제멋대로 구는 놈들인지도 잘 알았다.

길 가다가 베히모스라도 보고 ‘맛있겠다!’하고 우르르 몰려가면 이한 같은 아직 어린 학생은 휩쓸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래도 그 학생이라면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했을 것 같은데, 아마 괜찮지 않겠나?

“오해가 있는 것 같소.”

-??

이쿠루샤는 이 교수가 뭔 소리를 하나 싶어서 쳐다보았다.

“그보다는 워다나즈가 거인들을 이끌고 다닐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오.”

-무슨... 그걸 말이라고 하나?

볼라디 교수의 말에 이쿠루샤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그러니까 아직 어린 학생이 거인들을 강제로 끌고 다니고 있다는 말인가?

거인들은 ‘우우 우리 그만 돌아가고 싶다’이러는데 학생이 ‘안 돼! 다음 장소로 이동해라!’이러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도전을 즐기는 성격이오.”

-아니, 아무리 즐겨도 그렇지 거인들을 끌고 다니는 건 도전의 수준이 아닌데...

도전을 좋아하는 마법사라 하더라도 거인들과 붙여놓으면 ‘사실 저는 편안한 삶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생각이 바뀔 것이다.

이쿠루샤는 100% 확신했다.

그만큼 거인들의 일상이 거칠고 난폭했던 것이다.

-우리 왔다!

-!!

대화하던 이쿠루샤는 저 멀리서 거인들이 돌아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온몸에 늪의 진흙과 부스러기들을 덕지덕지 붙인데다가 자잘한 상처까지 달고 오고 있었던 것이다.

거인들이 저 정도 상처를 입으려면 이 산맥에서도 용의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뭘 하고 온 거냐?

-야차 늙은이하고 같이 구울 드래곤 치우고 왔다.

-원래 안 하려고 했는데 마법사 때문에 한 거다.

-!

이쿠루샤는 충격 받은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원래라면 ‘야차가 부탁했고 학생이 거들어서 거인들이 들어준 거구나’라고 이해했을 이쿠루샤였지만, 볼라디 교수가 남긴 말 때문에 순간 착각에 빠져버렸다.

-정말로?!

-어? 그렇다.

‘왜 저러시지?’

이한은 이쿠루샤가 평소 볼 수 없는 충격 받은 표정을 짓자 의아해했다.

하긴 생각해보니 저럴 만도 했다.

거인들과 적당히 일하겠다고 올라가놓고 너무 커다란 일을 해냈으니까.

“죄송합니다. 야차 어르신 덕분에 어쩔 수 없...”

“괜찮다.”

볼라디 교수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제자의 사과를 막았다.

“이미 끝난 일이니.”

“아. 예.”

“하지만 지나치게 무리한 도전은 삼가도록. 저번에도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

이한은 어이가 없어서 교수를 쳐다보았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         *         *

랫포드는 평소와 다르게 흐물흐물 늘어진 이한을 보고 물었다.

“잠을 못 주무셨습니까?”

“아니... 오전에 산을 타고 난리를 쳤더니...”

“저런. 흰 호랑이 탑 때문입니까?”

뒤에서 지나가던 흰 호랑이 탑 학생이 움찔했다.

‘헉. 진짜 우리 때문인가?’

“아니. 구울 드래곤하고 거인들 때문에...”

‘휴. 아니군.’

안심하던 흰 호랑이 탑 학생은 몇 걸음 더 걷다가 비명을 질렀다.

“뭐? 구울 드래곤? 거인??”

“왜 남의 대화를 엿듣습니까! 이런 도둑놈 같으니라고!”

“아, 아니...! 지나가다가 들은 거야. 지나가다가!”

랫포드가 흰 호랑이 탑 학생과 투닥거리는 동안 이한은 피클을 잘라 넣은 두툼한 치킨 샌드위치를 뱃속에 집어넣었다.

환상 마법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원기를 회복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으적!

화끈한 소리에 옆을 보니 이미르그가 두툼한 닭다리를 통째로 뜯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미르그는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먹, 먹을래?”

“난 이거면 충분해서. 그보다... 아니다.”

이한은 이미르그가 왜 거북이 탑 친구들 옆에 안 앉고 이한과 랫포드 옆에 앉았나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랫포드야 원래 친했다지만 이미르그는 낯을 좀 가렸던 것이다.

‘후후. 홍수 때 열심히 먹여 살린 보람이 있군.’

이한은 워다나즈 가문의 악명을 뚫고 자신의 노력이 승리한 모습에 흐뭇함을 느꼈다.

처음 에인로가드에 들어왔을 때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을 도와줬는데도 ‘힉! 워다나즈 괴물, 아니 가문!’같은 반응을 보였던 게 아직도 마음에 살짝 남아있었다.

“어? 이미르그 왜 저기 앉아 있어?”

“아차...! 늦었다! 워다나즈 옆에 앉아야 했는데!”

뒤늦게 환상 마법 강의의 특성을 떠올린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은 안타까워하며 무릎을 쳤다.

여러 환상 마법들이 오감을 어지럽힐 때, 워다나즈처럼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버티는 녀석이 한 명 있다는 건 매우 도움이 됐다.

그걸 알고 미리 대비하다니. 과연 우등생은 뭔가 달랐다.

“젠장. 뒤는 내가 앉아야지.”

“비켜! 여긴 내가 먼저 앉았어!”

“흰 호랑이 탑 네놈들은 자신도 없냐? 워다나즈를 그렇게 욕하면서 이럴 때는 이용하려고 해?”

“아... 아니거든? 워다나즈를 방패로 쓰려고 했던 생각은 조금도...!”

“......”

대화를 듣고 있던 이한은 배신감을 느꼈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들 같으니.’

“자, 자. 다들 반갑다!”

강의실 문이 열리고 키르민 교수가 들어왔다. 에인로가드의 교수들 중 패션으로는 손꼽힌다고 자부해도 될 정도의 옷차림이었다.

키르민 교수는 진청색 벨벳으로 만든 조끼 앞주머니에서 조그만 돌조각을 꺼낸 뒤 가장 가까이 있는 학생에게 던졌다.

펑!

“으... 으악. 으아악!”

“그만, 안 돼! 침착하게 해야지. 침착하게.”

1학기 때는 기초적이고 흥미로운 마법들을 가르쳐 줬던 키르민 교수였지만, 2학기 때부터는 슬슬 환상 마법에 대한 대응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환상 마법에 대한 대응법을 알려면 역시 많이 맞아봐야 했다.

“꼭 에인로가드에서뿐만 아니라, 제국의 전역을 돌아다니다보면 환상이나 환술을 접할 일이 많지. 미리 익혀두지 않으면 크게 손해를 볼 수도 있다구. 내가 저번에 환상 마법에 크게 속은 불운한 드워프 구리앙금 이야기를 해줬었지?”

“예!”

“자. 빈틈!”

키르민 교수는 비열하게 방금 대답하느라 숨을 들이쉰 학생한테 유리병 안에 가둔 연기를 뿜어냈다.

연기가 학생의 마력을 흩뜨리고 저항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 뒤 환상으로 끌어들였다.

“교장 선생님! 으악! 교장 선생님이다!!”

해골 교장이 자신을 습격하는 환상에 빠진 학생을 보며 키르민 교수는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미안하다.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환상 마법을 막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환상 마법에 걸리는 것 자체를 막는 일.

이한처럼 강한 저항력을 갖춰놓거나, 여러 아티팩트를 착용해서 방비하거나, 아니면 환상 마법을 경계하고 있다가 접촉을 피하거나.

환상 마법은 언령처럼 아무 제약도 없이 마음대로 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보통 기본적으로 어떤 방식이든 접촉을 해야 하는데, 이런 접촉을 원천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흐으읍...!”

교수가 다가오자 학생 한 명이 숨을 참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키르민 교수가 웃으며 지팡이를 흔들었다. 마법이 날아가더니 학생을 환상에 빠뜨렸다.

“아. 워다나즈. 심부름 좀 해주겠니?”

“예. 교수님.”

이한은 경계심을 표하며 일어섰다. 키르민 교수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너는 선천적으로 저항력이 강해서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내가 무슨 배그렉 교수도 아니고.”

“교장 선생님도 언제나 자길 믿으라고 하시던데요.”

키르민 교수는 진심으로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야, 내가 너희들을 위해 환상 마법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려는 건데 교장 선생님하고 비교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이한은 조심스럽게 쪽지를 받고 복도로 나섰다. 다행히 나갈 때까지 별다른 습격은 없었다.

‘무슨 심부름이지?’

학생들 공격하는 동안 복도에 서있도록.

키르민 쿠

“......”

-악! 워다나즈! 워다나즈 이 멍청한 자식아!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

-하하, 이렇게 방심하면 안 되지! 환상 마법사들은 언제나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 건가?

이한이 잠깐 나가있던 사이 키르민 교수는 이한만 믿고 있던 학생들을 모두 몰살시켰다.

다들 식은땀에 젖어서 환상에 깨고 나자 키르민 교수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아예 안 걸리는 건 사실 불가능한 방법이지. 실력이 낮을 때는 더더욱. 그러니까...”

말하던 키르민 교수는 이한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 워다나즈 너는 빼고.”

“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교수님.”

“걸려도 침착하게 빠져나올 줄 알아야 하는 거야.”

환상 마법을 막는 두 번째 방법은 걸리고 나서 침착하게 해제하는 것이었다.

먼저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자각하고 나면 본인 주변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하나씩 늘려나가고, 그 위화감을 일정량 이상 충분하게 쌓으면 자신에게 걸린 마법의 구조를 파악해 역으로 해제한다.

이 때 다양한 마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유리했다. 아무래도 본능으로 하나씩 파악하는 것보다 미리 마법들을 알고 있으면 정체를 파악하기 쉬웠으니까.

“환상 마법은 노련한 마법사일수록 더욱 유리한 분야지만 그렇다고 연습을 안 할 수는 없지. 워다나즈.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거지만, 오늘은 힘으로 부수는 거 금지인 거 알지?”

“교수님. 저번에 마법진을 전부 박살낸 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고 실수한 겁니다...”

이한은 저번 강의 때 실수로 마법진들을 날려버린 걸 아직도 구박하는 키르민 교수의 쪼잔함에 속으로 투덜댔다.

그걸 어떻게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실수할 수도 있지. 워다나즈 너 정도면 알고서 했을 것 같지만.”

“어.”

“진짜 알고서 한 거야?”

옆에 있던 학생들이 존경과 감동의 시선을 보냈다.

설마 그들을 위해 워다나즈가 마법진을 파괴했던 것이란 말인가?

“아니야 미친놈들아.”

“에이...”

이한의 정색에 학생들은 바로 시큰둥해졌다.

쿵!

교수가 지팡이를 흔들자 학생들 앞에 산더미 같은 궤짝들이 쌓였다.

나무를 거칠게 깎아서 만든 상자들이었지만 하나같이 자물쇠 부분은 예리하고 복잡하게 만들어 진 상자들이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마력에 학생들은 신음소리를 냈다.

오늘 그들이 뭘 할지 짐작이 간 것이다.

“유적이나 던전을 돌아다니다보면 환상 마법과 기관장치를 연결해놓은 걸 흔히 보게 될 거다. 뛰어난 마법사라면 환상 마법의 구조만 보고서도 기관장치까지 해제할 수 있지.”

“교수님. 저는 살면서 던전에 안 들어갈 건데요...”

“자신감이 아주 넘치는 걸? 하지만 그 자신감은 잠시 넣어놓는 게 좋겠다. 에인로가드에 있으면 던전은 네가 선택하는 게 아니거든.”

괜히 투덜거렸다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언을 받은 학생은 슬픈 얼굴로 상자를 붙잡았다.

푸쉭!

“크헉!”

상자를 잘못 건드린 학생은 안에서 나오는 연기를 맞고 환상 마법에 걸렸다.

그걸 본 학생들은 더더욱 질색했다.

이런 자질구레하고 손 많이 가는 일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대부분의 마법사들도 마법의 화려한 점만을 사랑하지 귀찮은 점까지 사랑하는 이는 드물었다.

“야. 이거 재밌는데? 랫포드. 봐줄래? 제대로 푼 거 맞지?”

“아주 훌륭하십니다.”

“던전 들어갈 때 따로 기술자 안 데리고 들어가려면 어느 정도여야 할까?”

“이 정도면 충분하신 것 같습니다만...?”

“무슨 말을. 랫포드. 넌 다 좋은데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게 단점이야.”

“아니 진짜 충분한 것 같...”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