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52화 (552/687)

552화

“아니야. 마법사라고 다 정령을 생각하진 않아.”

다람쥐 정령이 맞다는 듯이 이한의 어깨 위에서 머리를 흔들었다.

해골 교장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정령에 진심인 마법사는 생각보다 드물었다.

몇몇 정령과 친해져서 계약을 하더라도 정령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걸고 오염된 숲 깊숙이 들어오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선배님은 어떻게 저희 앞에 모습을...?”

“교장 선생님 마법을 잠깐 멈추는 물약이 있어.”

“!”

“...!!!”

셋 다 연금술 성적이 뛰어난 학생인 만큼 지금 일렌딜 선배가 말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바로 이해했다.

아무리 잠깐이라지만 해골 교장의 마법을 멈출 줄이야.

방금까지만 해도 ‘미친 선배’나 ‘수상한 선배’로 일렌딜을 쳐다보던 눈빛이 바로 ‘대단한 선배’를 보는 존경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대단하시네요!”

“정말로...!”

“으응?”

정작 일렌딜은 후배들이 왜 이러나 싶어서 의아해했다.

“왜?”

“선배님. 죄송하지만 저희는 정령들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 시간이...”

“도와줄게. 아직 물약 효과가 남았으니까.”

“어...”

이한은 처음 보는, 그것도 이번 사건의 원흉인 아직 수상쩍은 선배와 굳이 같이 동행해야 하나 싶었다.

게다가 정령들하고 계약도 해야 하는데...

“교수님이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는데 위험하시지 않겠습니까?”

“응. 나보다는 숲하고 정령이 더 중요하니까.”

“멋져요...!”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봐. 이한.”

시아나 사제와 요네르가 일렌딜에게 아까보다 더욱 강한 존경을 보내자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오염체들 원흉인 건 모두 잊어버렸나?’

하지만 지금 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어쨌든 선배고 이한보다 몇 배는 뛰어난 연금술사인 만큼 도움은 되리라.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는 게 좀 찜찜하긴 했지만...

*         *         *

“인공적인 암흑 정령은 왜 만들려고 하신 건가요?”

평범한 학생들은 걸으면서 오늘 저녁 이야기를 하겠지만, 연금술에 뛰어난 학생들은 걸으면서도 연금술 이야기를 했다.

시아나 사제의 질문에 일렌딜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숲지기로 쓰고 싶었거든.”

“숲지기요?”

에인로가드의 숲들은 태고림(太古林)에 가까운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의 숲들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법.

특히 숲이 취약한 원소 중 하나가 암흑 원소였다.

가끔 암흑 정령 하나가 잘못 소환됐다가 거대한 숲 전체를 오염시키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그런 사례들에 마음 아파한 일렌딜은 역으로 접근했다.

아예 암흑 정령을 이용해서 숲지기로 쓰면 어떨까?

“와! 정말...”

“미친 생각 아니야?”

이한의 중얼거림에 감탄하려던 시아나 사제는 머쓱해졌다.

“좋은 생각 아닌가요?”

“시아나 사제. 지금 앞에 오염체들 보라고.”

후배들의 대화에 일렌딜은 시무룩해졌다. 머리카락에 연결된 나뭇잎들이 풀죽은 듯 방향을 내렸다.

“성공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차. 선배인데.’

이한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지금 정령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서 평소 하지 않던 실수를 한 것이다.

일렌딜은 엄연히 선배 아닌가.

선배들 사이의 커뮤니티에서 이한의 악소문이라도 돈다면...

‘모라디 가문을 쓸 순 없나? 무리겠군. 아까 이름하고 가문 전부 말했으니.’

“아닙니다. 선배님.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응? 미친 생각이라며.”

“원래 선구자들은 모두 미친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감탄의 뜻이었습니다.”

“너 정말 착한 사람이구나.”

일렌딜의 나뭇잎들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암흑 원소처럼 다루기 까다로운 원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낫지 않습니까?”

“도와주게?”

드라이어드 혼혈 선배는 빤히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숨도 쉬지 않고 재빨리 대답했다.

“흑마법 학파의 선배님들을 말한 거였습니다.”

“으응. 그런데 흑마법 학파는 다들 괴팍하고 무서워.”

“예?”

선배의 말에 이한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나 멈칫했다.

“잠깐. 정령은 저쪽이야.”

일렌딜은 손가락을 뻗으며 방향을 수정했다.

“정령의 기운을 느끼시는 겁니까?”

“응. 어렸을 때부터 정령들하고 친했어.”

“......”

요네르는 친구가 지팡이를 잡은 손등에 힘줄이 솟는 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정령이 뭐라고...!

*         *         *

“다 왔어. 저기 정령들이 모여 있어.”

이한은 우레걸음 교수 대신 임시 길잡이를 맡은 선배의 솜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선대에 한 계약이 후대에 우연찮게 발현되는 정령 혼혈들은 전부 특징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정령 혼혈은 이한을 보면 기겁할 만큼 예민했지만, 다른 정령 혼혈은 무덤덤할 만큼.

일렌딜은 정령들과 친했다고 하는 만큼 친화력 쪽으로 타고난 게 분명했다.

“잠깐.”

순간 선배의 안색이 변했다.

“호문쿨루스가 이쪽으로 온다.”

“!”

이한의 눈빛이 변했다.

다른 오염체들과 달리 사태의 원인인 인공 암흑 정령은 이야기가 달랐다.

“내가 막아. 너희들은 정령들을 데리고 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이한은 멈칫했다.

지금 옆에 정령들이 있는데, 일렌딜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아닌가?

“아니. 저도 같이 막겠습니다.”

일렌딜은 후배의 말에 ‘진짜 정말 착한 사람이구나’하는 눈빛을 보냈다.

“으음.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모ㄹ...”

“워다나즈 님이에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이요.”

“예. 맞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응. 기억해둘게.”

드라이어드 혼혈 선배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안 그래도 빽빽했던 나무들이 더욱 더 엉키며 자라더니 단단한 벽을 만들었다.

쿵!

달려오던 인공 암흑 정령이 나무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정령도 만만치 않았다. 순식간의 형체를 자유자재로 바꾸더니 나무 감옥 틈새로 온몸을 빼서 기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암흑이여, 여기에 모여라!”

이한은 선배의 말이 없어도 바로 대응했다.

나무로 정령을 가두던 일렌딜은 이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정확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인공 암흑 정령에게서 계속해서 암흑 원소를 흡수하는 것.

이한의 지팡이 끝으로 암흑 원소가 모였다.

■!

자신의 육신이 뜯겨나가자 정령은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힘으로 어떻게든 암흑 원소를 붙잡으려고 하던 정령은 통제력에서 이한에게 밀리자 바로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이건...!’

지팡이 끝에 응축된 암흑 원소가 점멸하며 터져나가려고 하자 이한은 재빨리 시약주머니에서 뼛조각을 꺼내 급하게 압축시켰다.

몇몇 뼛조각은 타버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암흑파 확산>!’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줬던 마도서에 나온 마법을 떠올렸다.

암흑 원소를 응축시킨 다음 파동의 형태로 터뜨려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의 마법.

다른 원소라면 별다른 위력이 없었지만 암흑 원소의 특성은 이런 파동 형태의 공격도 치명적이게 만들었다.

살아 있는 육신을 가진 마법사들은 이런 암흑 원소에 몇 번 직격하면 생명력이 사그라드는 것이다.

지금 상대 정령은 본능적으로 비슷한 현상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었다.

“흡수, 힘들...?”

일렌딜이 숨을 헐떡이며 단어를 끊어서 내뱉었다.

물약을 사용해가며 가두고 있었지만 워낙 대규모의 마법인 만큼 마력과 체력 소모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었다.

요네르와 시아나 사제도 옆에서 돕고 있었지만 벌써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한은 이 상황에서 물러서면 일이 더 꼬인다는 걸 직감했다.

‘여차하면 마법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다.’

<암흑파 확산>은 아직 연습해 본 적도 없고 미뤄뒀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읽은 걸로 해볼 수밖에 없었다.

디레트가 옆에 있었다면 눈을 질끈 감았을 무모함으로 이한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암흑이여, 여기에 모여라!”

다시 한 번 암흑 원소가 모였다.

나무 감옥에서 발버둥치던 정령은 이번에는 경험한 만큼 더 빨리 반응했다.

암흑 원소가 즉시 점멸하며 터져나가려고 하자 시약에 가둘 시간도 없었다.

이한은 마도서에서 읽은 대로 <암흑파 확산>을 시전했다.

“암흑이여, 휩쓸어라!”

머리 위 허공으로 암흑의 파장이 출렁이며 지나갔다. 상대가 터뜨리기 전에 이한이 먼저 시전해서 소모시킨 것이다.

일렌딜이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아까는, 왜...?”

“처음 써보는 마법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

이한은 일렌딜에게 더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상대 마법사를 암흑 원소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정령이 다시 한 번 방식을 바꾼 것이다.

풀과 나뭇가지들이 암흑 원소와 결합해 마치 인형처럼 일어났다.

그 모습에 일렌딜이 고통이 담긴 비명을 내뱉었다.

“개자식이!”

“손이여, 적을 갈라버려라!”

새벽별을 뽑을 틈도 주지 않고 붙어버리는 적의 모습에 이한은 간신히 주문을 외웠다.

해골 교장의 근접전 주문, <고나달테스의 날카로운 손>.

다른 마법과 달리 이런 마법을 언제 쓰나 했었는데...!

촥!

“번쩍여라!”

한쪽 손으로 베고 다른 손으로 지팡이를 휘둘러 주문을 외웠지만 숫자와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런 난전으로 가면 마법사가 언제나 손해를 보기 마련.

“번쩍여라!”

번개가 맺히는 순간 다른 풀 인형이 달려들었다. 이한은 번개를 강제로 끝에 고정시키며 지팡이를 창처럼 찔렀다.

잠깐의 틈만 있으면 소환수들을 총동원해서 시간을 벌 수 있는데 그 잠깐의 틈이 없었다.

잠깐의 틈만 있다면!

파지지지직!

이한의 염원에 반응하듯이 지팡이 끝에 맺힌 번개 원소가 더욱 더 크기를 부풀려가며 지팡이를 덮었다.

정작 이한 본인은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적을 처치하고 나무 감옥 안에 갇힌 정령을 응시하느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깨달은 것은 지팡이를 든 손 주변의 적들이 전부 쓰러져 있다는 걸 알아차린 뒤였다.

“...?”

이한은 순간 지팡이가 번개의 창처럼 변해 있다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잠깐. 이걸 내가 어떻게 했지?’

보아하니 지팡이를 심지 삼아서 번개 원소를 타오르는 창의 형태로 고정시킨 게 분명했다.

볼라디 교수가 그렇게 번개 원소 형태 고정 이야기를 했던 만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건 정작 본인도 이걸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워낙 다급한 상황에서 했던 탓에 본능적으로...

‘이럴 때가 아니다!’

이한은 바로 샤르칸과 스켈레톤 전사들을 불러냈다.

번개의 창으로 밀려난 풀 인형들을 소환수들이 가로막았다. 이한은 그 틈을 타 번개의 창을 들고 뛰었다.

■!

나무 감옥 사이에 갇힌 정령이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는지 겁에 질린 비명을 질렀다.

파지지지지지직!

발사되고 관통되어 지나가는 번개의 충격과 달리 응축되어 고정된 번개의 힘은 날카롭고 사나웠다.

게다가 사라지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정령을 불태웠다.

이한은 창을 뽑아들고 다시 내질렀다.

파지지지지지직!

상대가 역소환 될 때까지 이한은 창을 찌를 생각이었다.

물론 에인로가드의 선배들이 만들어 낸 놈인 만큼 일반적인 정령처럼 쉽게 역소환되진 않으리라.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구력 승부라면 이한의 마법은 절대 먼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푹, 푹, 푹, 푹, 푹!

■! ■! ■! ■! ■!

벼락과 비명의 합창 끝에 인공 정령은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었다.

공격을 멈추고 이한의 손등에 자신의 문양을 솟아오르게 한 것이다.

마법사에게 자신의 처분을 맡기겠다는, 완전히 굴복했다는 신호였다.

“???”

물론 이한은 상대와 계약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에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애초에 미쳐 날뛰던 흉폭한 놈 아니던가.

언제 자기 등을 찌를지 모르는 놈과 계약하는 마법사는 어지간해서는 없었다.

정령에 환장하지 않고서는...

“워다나즈 님! 계약하세요! 정령하고 계약하고 싶어 하셨잖아요!”

“그게 정말이야?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 조금 장난꾸러기지만 원래는 착한 애야!”

“......”

시아나 사제와 일렌딜 선배의 외침에 이한은 인상을 찡그렸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