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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54화 (554/687)

554화

“아닌가? 갈 수 있나?”

“그렇게까지 고민하실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별 생각 없이 물었는데 저렇게 깊이 고민할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었다.

요네르는 떨떠름해하며 좌절한 친구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이한. 일어나. 괴로운 건 알겠는데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정령들은 다 배은망덕한 놈들이야.”

바실리스크가 동의한다는 듯이 쉿쉿 소리를 냈다.

“응. 그럴지도 모르고. 하여간 일어나. 여기 다람쥐 정령도 있잖아.”

얼음과 서리로 된 다람쥐 정령은 자신이 있다는 듯이 이한의 뺨을 잡아당겼다.

그 모습에 이한은 살짝 기운을 차렸다.

그래도 남은 정령이 하나는 있었던 것이다.

툭툭-

“계약하자고?”

끄덕끄덕-

“다른 좋은 마법사들도 많을 텐데.”

“아니야. 이한.”

“맞아요. 워다나즈 님.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혹시라도 다람쥐가 도망갈까봐 두 친구는 황급히 끼어들었다.

상대 정령이 동정심이든 아니면 혼란 때문이든 계약하고 싶어하면 계약하면 됐지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한단 말인가.

다행히 다람쥐 정령은 개의치 않았다. 이한 앞에서 꼬리를 비비며 호감을 표했다.

“봐봐. 이한. 정령들은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는다니까?”

“...그럴지도.”

뒤에서 작업을 마친 일렌딜이 후배들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다람쥐 정령과 이한이 친한 걸 보고 흐뭇해했다.

정령들이 저렇게 호감을 표하다니. 보통 정성과 애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

일렌딜은 주머니에서 다람쥐 정령이 좋아하는 얼음잣을 한 움큼 꺼내 내밀었다.

그러자 다람쥐 정령은 순식간에 일렌딜에게 달려가더니 머리를 손바닥에 비비며 잣을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계약하려고 막 지팡이 꺼냈던 이한은 선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잘 먹는다. 그치?”

“선배님은 왜 여기 계속 계시는 겁니까? 할 일 많지 않으십니까?”

“어... 혹시 화났어...? 왜?”

*         *         *

숲에서 빠져나오자 이미 주변은 캄캄했다. 달과 별들만이 반짝이며 학생들의 앞길을 비춰 주...

“???”

계약을 마친 다람쥐 정령을 쓰다듬던 이한은 저 멀리서 일렁이는 횃불들을 발견하고 의아해했다.

원칙적으로 이런 밤에는 학생들이 돌아다니면 안 됐다.

당번을 맡았거나 교수님이 시키신 일이 있는 게 아니면 기숙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몇몇 학생들은 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다녔지만 저렇게 횃불을 들고 돌아다니진 않았다.

에인로가드 안을 순찰하는 데스 나이트들한테 붙잡아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무슨 일이지?’

“워다나즈!! 너 이 자식. 죽은 줄 알았잖아!”

“???”

위아래로 두들겨 맞은 것마냥 꼴이 엉망인 앙라고가 이한을 와락 껴안았다.

이한은 앙라고의 얼굴을 한손으로 붙잡고 밀어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혹시 교장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보낸 오염체들이 숲에서 튀어나와서 기숙사를 공격하고 있어!”

“아.”

“어.”

“으음.”

이한과 요네르, 시아나 사제는 머뭇거렸다.

딱히 이번 일은 해골 교장과 상관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잘 수가 있어야지. 지금 다들 나와서 놈들을 추적하고 있는 중이야.”

“그렇군.”

이한은 이제야 친구들이 왜 다 나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염체가 끊이지 않고 기숙사로 들어오려는 와중에도 태연히 잠을 잘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만약 해골 교장이 벌인 일이라면 더더욱 잠들어서는 안 됐다. 한시라도 빨리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했다.

“워다나즈. 네가 와서 다행이다. 빨리 남은 애들을 지휘해서 진원지를 찾아줘!”

“근데 워다나즈 님은 흰 호랑이 탑 아니잖아요...?”

시아나 사제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앙라고는 무시했다.

지금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이한은 크게 하품하며 말했다.

“모라디나 살코는 지금 숲 돌면서 찾고 있나?”

“어!”

“그렇군. 걔네들한테 적당히 찾고 돌아오라고 전해줘. 이미 원흉은 잡았으니까. 우린 가서 이만 좀 자야겠다.”

이한의 말에 요네르와 시아나 사제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탓에 온몸에 피곤이 가득했다. 지금이라도 눈을 감으면 풀썩 쓰러질 것 같았다.

“어? 워다나즈! 워다나즈! 돌아와라! 기사로서 네 의무를 저버릴 생각이냐!”

‘미친놈...’

피곤해서 반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한과 친구들은 손 한 번 흔들어주고 천천히 기숙사로 걸어갔다.

*         *         *

금요일.

모처럼 여유가 생긴 이한은 비밀기지에 들어가 집중에 잠겼다.

휴게실이나 도서관도 공부하기 나쁜 곳은 아니었지만 다른 친구들 때문에 영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워다나즈 님. 혹시 이번 제국 남부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일에 대해 아시나요? 그리고 그 기적 같은 일을 일으킨 교단이 어느 교단인지 아시나요? 힌트를 드리자면 아프하 교단도 아글타콰 교단도 아니에요.

-워다나즈. 왜 사람은 마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내가 절대 공부를 하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닌데 갑자기 의문이 들어서...

이한은 환경이 열악해도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한테 외치는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조용한 공간의 효율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워다나즈의 수옥탄과 그 기초 원리에 대하여>와 <수옥탄 마법의 한계와 그 발전 방향성에 대하여> 이 두 책의 내용을 채우고, 알펜 교수가 제안한 주머니칼 요새 설계 의뢰를 작성하고, 이번 주에 배운 마법들을 정리하고...

‘으음.’

이한은 어제 오염체와 싸울 때 사용했던 번개 창도 정리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분명 번개 원소의 형태 고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긴 했는데, 문제는...

‘내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렇다고 볼라디 교수한테 가서 ‘교수님 제가 번개 창을 시전해봤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럴 경우 ‘역시 목숨이 위험할 경우 능력이 성장하는군 내가 널 도와주겠다’라고 하면서 볼라디 교수가 이한을 죽이려 들 테니까.

볼라디 교수가 죽이기 전에 이한이 먼저 떠올려서 다시 완성하는 게 그나마 안전한 방법이었다.

사실 볼라디 교수한테 아예 숨길까도 생각했었는데...

‘볼라디 교수가 이상할 정도로 정보 획득이 빠르단 말이지.’

가르시아 교수처럼 다른 교수들과 교우관계가 원만한 사람 같지도 않았는데 희한하게 이한이 다른 학파에서 마법 배울 때마다 그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무슨 교수 휴게실에서 정보 공유라도 하는 것처럼.

후배. 후배.

“!”

디레트와 연락하는 노트 위에 글씨가 새겨지자 이한은 깃펜을 들고 노트 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좀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 그러는데, 하나 물어봐도 될까?

-예. 어떤 게 궁금하신 겁니까?

네가 숲의 정령들한테 너무 사랑을 받는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이야? 숲의 정령들이 널 너무 사랑해서 네 부탁에 전부 다 자기 차원으로 돌아갔다고 하던데.

-??????

이한은 순간 깃펜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십니까?

어쩌다가 네 이름을 들었는데, 네가 정령하고 친하다고 하더라고. 좀 이상해서.

기본적으로 흑마법사는 정령과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언데드와 어울리면서 그 특유의 냄새가 영혼에 스며드는 것이다.

흑마법사는 정령하고 친하기 힘들잖아?

-아. 그렇죠. 생각해보니 맞는 말씀이십니다. 혹시 그래서 정령들이 절 피하는 걸까요?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후배 넌 마력량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겠네. 정령들은 예민하니까.

“......”

이한은 선배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흑마법 때문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

더 물어봤자 자신만 슬퍼질 것 같아서 이한은 화제를 돌렸다.

-아마 일렌딜 선배님 때문일 겁니다. 이번에 숲에 오염체가 발생했는데, 그 일을 좀 도와드렸습니다.

이한은 이번에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디레트는 어디서부터 다시 물어봐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인공적으로 암흑 정령을 만들려고 했다고? 쉽지 않을 텐데. 정령 중에서도 암흑 정령은 정말 불안정하고 까다롭거든.

-정말 그렇더라구요. 왜 흑마법 학파의 뛰어난 선배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디레트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

이한은 자신의 아부가 성공적으로 통했음을 직감하고 흐뭇해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하여간, 일렌딜 일이면 도움 요청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 사이가 별로 안 좋거든.

“?”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멈칫했다.

일렌딜이 딱히 사악하거나 난폭한 사람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일렌딜은 드라이어드 혼혈이잖아? 숲 좋아하고 아끼는. 우리 학파 애들이 숲에 들어가서 시약 채취할 때 일렌딜한테 공격당한 적 있어가지고...

-아.

이한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렌딜은 느긋하고 착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숲이 다치는 순간 바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선배께서 어제 일을 들으셨다니 뿌듯하군요.

일렌딜과 흑마법 학파 선배들의 원한과 별개로 이한은 속으로 감사해했다.

노린 대로 일렌딜이 다른 선배들에게 좋게 말해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디레트가 소문을 들었을 리 없었으니까.

뿌듯?

-예. 좋은 거 아닙니까? 선배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알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일렌딜이 좀... 괴짜 이미지거든.

-그렇습니까? 어느 정도로요?

흑마법 학파보다 좀 더?

-......

이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래서 일렌딜이 칭찬해주는 게 꼭 후배 너한테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 나한테 이야기 해준 친구도 좀...

디레트는 걱정스러워하며 깃펜을 놀렸다.

실제로 디레트에게 소문을 전해준 친구도 이한을 매우 이상하게 여겼으니까.

-디레트.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이라면 네가 말한 후배 아니야? 그 기특한?

-맞는데. 왜?

-일렌딜 알지? 걔가 완전 자기와 같은 부류의 후배를 만났다고, 그 워다나즈를 칭찬하던데... 이상한 후배는 아니지?

“......”

설명을 들은 이한은 고개를 탁자 위에 박고서 좌절했다.

‘젠장. 연금술 학파 내에서 존경 받길래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디레트 선배. 선배께서 절 도와주십시오. 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게, 미안해.

디레트는 진심을 담아서 사과했다.

최선을 다해서 말해보긴 할 건데, 나도 흑마법 학파라서 그렇게 효과가 있지 않을...

“......”

슬픈 이유에 이한은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선배. 생각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응. 하여간 조심해. 숲에 들어갈 때는 특히 더. 일렌딜이 나쁜 애는 아닌데 자기 일 엮이면 좀 난폭해질 수 있거든.

‘앞으로 숲에 들어갈 때는 무조건 투명화 마법부터 걸고 들어가야겠군.’

이한은 일렌딜과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생각해보니 정령들에게 인기 좋은 모습을 보여줄 때부터 본능적으로 꺼려졌는데, 아마 이런 문제를 직감한 게 분명했다.

대화를 끝내고 잠시 허무해하고 있자 이번에는 거울이 진동했다.

이한은 거울로 다가갔다.

저번에 말한 워다나즈 가문의 1학년 정보를 좀 더 사고 싶은데.

“......”

그냥 못 본 척 할까 고민하던 이한 앞의 거울이 계속해서 진동했다.

저번에 준 정보는 쓸만했다. 감사하도록 하지.

그런데 이번에 새로 들은 소문이 있는데.

연금술 학파의 일렌딜과 절친한 괴짜라는데 그게 맞나?

-절대 아니다.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답변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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