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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27화 (627/687)

627화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워다나즈의 모습을 보자 지젤은 머릿속 무언가가 ‘툭’하고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언니하고 싸우게 됐는데!”

“잠깐. 모라디. 너도 같이 싸우나?”

“...그래.”

‘왜지? 같이 싸운다고 하면서 내 뒤를 찌르려는 건가? 혹시 어떤 함정을 미리 준비해놓은 건가? 만약 함정이라면...’

이한이 매우 노골적으로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지젤은 이를 갈며 말했다.

“네가 뒤질까봐 같이 싸워주는 거다...”

“에이.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과장 아니니까 정신 차려. 그러니까 대체 왜 언니한테 쓸데없이 아첨을 해서...”

이어지는 지젤의 설명을 듣자 이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지클린이 박살낸 북부의 기사들 이야기를 듣자 생각보다 문제가 크다는 걸 느낀 것이다.

잘못했다가는 남은 겨울방학 동안 목발 짚고 걸어 다녀야 할지도 몰랐다.

“난 외부에서 온 손님인데 그래도 힘조절을 하시지 않나?”

“하시겠지만 믿을 게 안 돼. 언니는 힘조절을 잘 못 한다고.”

“아니, 이무기 목은 그냥 자르시는 분이 힘조절은 왜 못하시는데?”

“야, 말조심해. 누구나 못하는 게 있는 거야.”

지젤은 지클린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조금의 비난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너무하시는군. 검술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고 죽이려 하시다니.’

이건 이한의 실수였다.

식사 한 번 하자고 말했다가 강제로 약속을 잡혔을 때 미리 알아차리고 조심했어야 했는데!

“모라디. 나하고 같이 싸운다고 했지?”

“그래. 그래야 언니가 조금이나마 더 힘조절을 하실 테니까.”

“내가 널 붙잡고 인질극을 펼치면 어떻지?”

옆에서 듣고 있던 알시클은 어이가 없어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러나 지젤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생각해보긴 했는데, 언니 성격상 역효과야. 바로 날 뺏은 다음에 널 죽일 걸.”

“역시 그런가.”

“......”

알시클은 이 방에서 제정신인 사람이 자신밖에 없나 싶었다.

옆을 보니 에안두르데가 자기 정어리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저기,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너도 이상하게 들리지?”

“?”

에안두르데는 이 펭귄 수인이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         *         *

하늘에도, 저 먼 지평선에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황무지.

오랜만에 보는 꿈 속 광경에 이한은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반갑다.”

해골 교장이 준 검은 책이 공중에서 펄럭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 이한이 역경과 고난에 처하면 꿈속에서 새로운 마법을 전수해주던 검은 책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해골 교장이 이런 점에서 이한을 배려해줬다는 건 확실했다.

이 검은 책이 아니었다면 이한은 에인로가드에서 한두번 정도 죽었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교장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고난 겪을 일이 한 절반 정도로 줄지 않나?’

파락!

검은 책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는 듯이 펄럭이며 이한의 관심을 끌었다.

“검은 책. 내일 내가 이상한 기사와 싸우게 됐는데 도움이 필요하다. 쓸만한 마법을 가르쳐다오.”

파라라락!

검은 책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종이를 펄럭였다.

그걸 보자 이한은 갑자기 걱정이 됐다.

“그런데 또 근접전 계열 마법은 아니지?”

검은 책이 가르쳐 준 마법들은 기본적으로 해골 교장이 만든 마법들이었다.

검은 책 자체가 해골 교장이 만든 아티팩트 같은 것이었으니 그건 당연했다.

문제는 그 마법들이 다 근접전 계열로 편중되어 있다는 것.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이나 <고나달테스의 날카로운 손>. 거기에 <고나달테스의 끓어오르는 힘>까지...

그나마 비전투 마법인 <고나달테스의 암흑 시야>는 범용성이 높긴 했지만, 사살 이것도 근접전 용으로 개발한 마법처럼 느껴졌다.

지금 지클린 같은 기사와 싸우는데 근접전 계열 마법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텅 빈 컵에 물방울 하나 넣는다고 꽉 차겠는가.

파락!

검은 책이 새로 펼친 마법은 <고나달테스의 재빨라지는 민첩>이었다.

“......”

검은 책은 이한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빨리 배우라는 듯이 펄럭였다.

*         *         *

어젯밤에 잠을 설친 지젤은 빵을 우물거리며 고민했다.

오늘 언니와 맞붙을 때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모라디. 좋은 생각이 났다.”

“...?”

식당에 나타난 이한이 대뜸 저런 이야기를 하자 지젤은 의아해했다.

“뭔데?”

“대련할 때 마법은 쓸 수 있지?”

“이번에는 상관없지.”

검술과 검술의 대결이 아닌, 워다나즈한테 지클린의 검술을 보여주고 싶어서 진행하는 대련인 만큼 워다나즈나 지젤은 마법을 써도 별 상관없었다.

“대련은 언제 끝나지?”

“이번 대련 같은 경우는... 언니가 검술을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고 생각하면 끝나겠지.”

기사들의 대결은 규칙에 따라 승리 조건도 다양해졌다.

어떨 때는 정말 목숨을 걸고 누구 하나가 죽을 때까지 결투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떨 때는 첫 상처가 날 때까지 대결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어떨 때는 특별한 목적을 정해놓고 그 목적이 달성되면 끝나기도 했다.

지금 같은 경우는 마지막에 가까웠다.

“그래. 그럴 것 같았다.”

이한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클린 님이 끝내시면 되는 거지. 그래서 이런 방법을 생각해봤다. 모라디. 우린 기사들과 달리 마법을 쓸 수 있잖나?”

“그렇지...?”

지젤은 워다나즈가 대체 뭔 소리를 하려는 건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마법을 최대한 난사한 다음 마력 탈진 왔다고 누워버리자.”

“...!”

검을 맞대야 하는 기사는 누워버리는 순간 지클린의 호통을 듣게 되어 있었다.

고지식한 지클린의 성격을 봤을 때 싸우지도 않고 포기한 사람의 변명이 통할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마법사는 조금 달랐다.

마법을 난사한 다음에 ‘마력이 없다’고 누워버리면 어쩌겠는가?

...조금 많이 추잡한 방법이긴 했지만 지젤은 솔깃했다.

“확실히. 언니는 마법은 모르니, 그건 통할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야. 일단 마법을 쓸 시간이 없을 텐데.”

뛰어난 기사들은 마법사를 상대할 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충분한 시간을 가진 마법사만큼 위협적인 존재도 드물었던 것이다.

지클린은 아마 다른 기사들을 상대했던 것처럼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달려들어서 폭풍처럼 둘을 압박할 터였다.

마법을 쓰는 건 자유였지만, 이런 강한 압박에서 둘이 쓸 수 있는 건 사실상 검술밖에 없었다.

“그렇지.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해.”

“설마 네가 거리 벌리는 사이 내가 미끼 하란 소린 아니리라 믿는다. 그리고 언니한테 그런 건 통하지도 않아.”

“모라디. 나를 어떻게 보는 거냐?”

이한은 친구한테 항의하며 준비해 온 전술을 설명했다.

지클린의 실력을 봤을 때 평소 하던 것처럼 어설프게 거리를 벌리며 마법을 시전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아무리 전력을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는 넉넉하게 거리를 벌릴 수 없으리라.

오로지 도망에만 집중해야 했다.

“우린 둘이야. 숫자의 이점을 살려야 해. 마침 얼마 전에 민첩 강화 마법을 배웠으니 내가 널 들고 최대한 도망칠게. 넌 지클린 님한테 마법을 난사해.”

“과연... 잠깐만. 내가 가진 원거리 마법들 중에 그럴 만한 게 없는데.”

“뭐? 원거리 마법도 안 배우고 뭐한 거야?!”

이한의 지적에 지젤은 황당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대부분 강화나 부여 계열로 전투 마법을 꾸리는 만큼, 원거리 전투에는 비교적 취약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른 탑 놈들도 지금 워다나즈가 말하는 것처럼 마법을 마구잡이로 난사하지는 못했다. 마법을 난사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난이도 높은 일이었던 것이다.

“마법을 난사하는 게 장난도 아니고, 잘못하다가 진짜 탈진 오는 거 몰라?”

“아. 과연... 확실히 잘못해서 정말로 탈진하면 본말전도긴 하군.”

고민하던 이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군.”

“??”

*         *         *

연무장에 선 지클린은 예상 밖의 광경에 희미한 놀라움을 표정에 드러냈다.

동생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을 양팔로 들고 서있었던 것이다.

“지젤. 지금 이건...”

“...나름 전략입니다.”

“무슨 전략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마법사 본인이 거리를 벌리면서 주문까지 집중할 수는 없으니, 지젤이 도망치는 사이 워다나즈가 주문을 시전하려는 것 아닙니까?”

“!”

이 기괴한 모습을 보고도 놀라는 대신 바로 알아맞히는 지클린의 모습에 둘은 깜짝 놀랐다.

“역시 지클린 님.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지젤의 양팔에 안긴 이한이 외치자 지클린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라고 해서 완전히 허를 찌르는 전술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마법을 쓴다는 걸 계산에 둔다면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과연.”

“넌 이 자세에서 아부할 생각이 드냐, 이 새끼야?”

지젤은 가로로 길게 뻗은 상태로 아부하는 워다나즈의 모습에 기가 막혔다.

그러나 이한은 당당했다.

“모라디. 여기서 부끄러워하면 더 이상하게 느껴질 거다.”

“이미 충분히 이상해.”

“몸 상태는?”

“주문은 아직 충분한 것 같아. 시작하자마자 전력을 다해 날려. 언니는 틈을 주면 안 되니까.”

대결이 시작되기 전, 이한은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과 <고나달테스의 재빨라지는 민첩> 등 걸 수 있는 강화 마법은 전부 다 지젤에게 걸어두었다.

지클린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이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통해야 하는데.’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지클린이 ‘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지클린은 앞에 와있었다.

지젤은 필사적으로 다리에 마력을 폭발시키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몸이 가벼웠지만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따라잡힌다!

“박무여, 퍼져라!”

안개가 지젤 주변에 퍼졌다. 밖에서 보면 제대로 초점을 잡을 수 없게 만드는 환혹의 안개였다.

그러나 지클린은 눈을 감더니 감각으로 둘을 쫓아서 방향을 수정했다. 그 모습에 이한과 지젤은 모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암흑이여, 휩쓸어라!”

이한은 넓은 범위를 후려치듯이 암흑파를 확산시켰다.

공격력은 부족하더라도 암흑 원소의 특성상 달려드는 기사의 발을 잠깐 멈추게 하는 효과는 분명 있으리라.

그러나 지클린은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다른 빈 손으로 주먹을 쥐더니 허공에 권격을 날렸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암흑파가 상쇄됐다. 마력을 담은 주먹을 후려치는 것만으로 저런 위력을 만든 것이다.

‘진짜 괴물인가!?’

이한은 경악했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다. 바로 이를 악물며 다음 주문을 외웠다.

“모여라, 회전하라!”

허공에 물 덩어리들이 모이고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회전이 실린 물 구슬들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지클린은 아직 뽑지 않은 검을 검집째로 휘둘러가며 물 구슬들을 격추시켰다. 충격이 보통이 아닐 텐데도 자세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대단하다!’

이한은 지클린의 검술을 보며 감탄했다.

모라디의 검술도 변화무쌍한 쌍검술이었지만, 지클린의 검술은 마치 이게 진짜 가문의 검술이라고 주장하는 것마냥 더더욱 화려했다.

심지어 한 검으로만 펼치는데도 그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샤르칸, 고나달테스. 나와라! 일어나라, 뼈로 이루어진 전사들이여...”

이한은 최악의 경우 페르쿤트라라도 소환해야 하나 싶었다.

연습대련에서 페르쿤트라를 소환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지금 눈앞에서 달려오는 기사는 그걸 고민하게 만드는 박력이 있었다.

이대로 계속 좁혀지면...

탁!

마침내 지젤 앞까지 추격한 지클린이 검을 뻗더니 동생의 이마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는 온화한 목소리로 칭찬했다.

“둘 다 잘했습니다. 예상보다 뛰어나서 기쁩니다.”

“......”

“...???”

둘은 당황했다.

지젤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어, 이게 끝인가요?”

“그렇습니다.”

“아직 팔다리 멀쩡한데 그냥 끝난다고요?”

“지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밖에서 온 손님이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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