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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28화 (628/687)

628화

지젤과 지젤한테 안겨 있는 친구는 동시에 머쓱해졌다.

“모라디. 팔다리 부러지고 마법으로 기어 다녀야 한다며.”

“저런. 지젤이 농담을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언니의 뻔뻔한 대답에 지젤은 이한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니 가문의 다른 기사들은...”

“그건 실수였지 않습니까. 워다나즈. 이번 검술을 보고 무언가 느꼈습니까?”

“음.”

이한은 질문을 받고 옆으로 누운 채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검술보다는 전반적인 부분에서 많이 느꼈다.’

평소 볼라디 교수나 잉걸델 교수 같은 강자가 맞춰주면서 싸우다보니 이한은 한 가지 착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만나는 적은 두 교수처럼 사정을 봐주면서 덤비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싸움에서 가장 큰 패인은 역시...

‘시작 상황에서 더 확실하게 준비를 했어야 했어.’

경지에 오른 기사가 진짜 작정하고 들어오면 지금 이한의 화력으로는 저지가 불가능했다.

아예 페르쿤트라나 만마의 팔찌 같은 최강의 수단을 먼저 꺼내놨어야 했다.

시간을 벌고 발을 묶어야 어떻게든 데미지를 넣을 방법을 꺼낼 수 있지 않겠는가.

‘검술로 상대하지 못하면 발을 묶을 마법을 준비하고, 발을 묶을 마법을 준비하지 못하면 페르쿤트라나 만마의 팔찌라도 썼어야 했는데. 에인로가드에서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안일하게 행동하다니.’

이한은 깊게 반성했다.

에인로가드에서 나왔다고 사람이 이렇게 방심하다니.

볼라디 교수가 봤다면 ‘내 제자가 저렇게 안일하다니, 앞으로는 진짜 죽일 각오로 수업하겠다’라고 할지도 몰랐다.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지클린은 무표정한 얼굴 위에 드러난 눈동자로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방금 사람을 죽이려고 한 기사라고는 믿기 힘든 눈빛이었다.

지클린이 돌아서자 지젤은 이한을 보며 말했다.

“야. 내려와.”

“아.”

이한은 지젤의 팔 위에서 내려와 착지했다.

“그래도 좋게 끝나서 다행이다. 그렇지?”

“...그래.”

지젤은 여전히 좀 억울하긴 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좋게 끝난 게 맞았다.

“다음부터는 차라리 검을 들고 한 번이라도 막는 게 낫겠어.”

“뭐!?”

이한의 말에 지젤은 뭔 소린가 싶어서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워다나즈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로 막아보겠다고!?”

“살려면 막는 습관 들여야 하지 않나?”

볼라디 교수나 잉걸델 교수를 떠올린 이한은 당연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2학년이나 3학년 쯤 되면 이 교수들도 슬슬 힘을 올려가면서 학생들을 두들겨 팰 텐데 미리 대비를 하지 않으면 정말 에인로가드를 기어 다녀야 할 수도 있었다.

둘 다 듣는 이한 같은 경우에는 기어다니는 걸 넘어 언데드 상태로 돌아다닐 수도 있었고...

새삼스럽게 워다나즈를 쳐다보던 지젤은 살짝 반성하게 됐다.

‘맞아. 도망칠 생각부터 하면 안 되는 건데.’

아무리 언니라 하더라도 도망칠 생각부터 해서는 안 됐다.

거리를 벌려야 하는 마법사인 만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부었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검술의 초식이나 비기의 강함이나 깊이, 넓이는 차이가 크겠지만 최소한 오러라도 뽑을 수 있으면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지젤은 고개를 끄덕이려...

...다가 멈칫했다.

온몸에서 격통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 마법 반작용.”

“뭐?”

“반작용이... 오고 있다고.”

“!”

이한은 그제야 지젤이 무슨 상태인지 깨달았다.

안 그래도 강력한 강화 마법들을 여럿 걸었으니, 그 반작용으로 근육통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 물약 마셔.”

강화 마법을 시전한 경험이 많은 만큼 이한은 재빨리 물약을 꺼냈다.

서둘러 마신 지젤은 줄어드는 고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단한데? 메이킨이 만든 물약이야?”

“같이 만들었지.”

“근육통 물약은 꽤 어렵다고 알고 있었는데...”

단순히 부러지거나 베인 상처가 아닌, 전체적으로 퍼진 통증을 치료하는 건 훨씬 더 고등한 기술이 필요했다.

“근육통 물약이 아니라 통증 완화의 물약인데. 물약 효과 사라지기 전에 가서 누워야 해.”

“......”

지젤은 욕을 하려다가 참았다.

하긴 근육통 물약 같은 걸 같은 1학년한테 기대하는 것도 좀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알겠으니까 부축이나 해.”

“모라디. 한 가지 말할 게 있는데, 화를 내지 않아줬으면 좋겠군.”

“지금 듣기만 해도 화가 나는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말해봐.”

“오늘 만찬회 있어.”

“...저기 절벽 앞에 좀 서봐. 안 밀 테니까. 진짜.”

*         *         *

제국의 몇몇 기사들은 ‘기사들의 직설적이고 진솔한 모임은 빙빙 돌려서 떠드는 귀족들의 모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기사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귀족들의 모임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귀족들의 모임이 주로 살롱이나 홀에서 열린다면 기사들의 모임은 주로 성채나 요새에서 열렸다.

귀족들의 모임이 무도회나 전시회, 혹은 각종 연극이나 연주회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면 기사들의 모임은 대련과 비무, 그날 술이 좀 독할 경우 진심 섞인 결투로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귀족들의 모임이 예법과 격식을 지켜가며 최근에 있었던 일을 떠든다면 기사들의 모임은 좀 더 거칠고 친근하게 최근에 있었던 일을 떠들었다.

그런 만큼 오늘 만찬에 모인 북부의 기사들도 오랜만에 만난 낯익은 얼굴들을 보자 크게 반가워하며 신나게 떠들었다.

“형제여! 오랜만에 보는군. 저번 눈송이 숲 토벌전 이후로 처음 아닌가!”

“자네의 명성이 내가 있는 곳까지 들려와서 안부를 알 수 있었지. 으하하!”

곳곳에서 반쯤 무장을 갖춰 입은 기사들이 소리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기사 몇 명은 얼굴이 벌써 붉었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하인이 옮기는 술을 뺏어 마신 탓이었다.

다른 기사들은 그 기사의 성급함을 탓하기보다는 술을 빨리 갖고 오지 못한 하인들을 탓했다.

“그러게 술을 빨리 갖고 왔어야지! 이 북부 끝에서 온 기사를 목마르게 내버려두면 안 되지 않나!”

“죄송합니다. 경.”

북부의 거센 하인들은 술 달라고 지랄하는 기사들을 처음 보는 게 아닌 만큼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다음 술통을 갖고 왔다.

“모라디 가문의 위세는 여전하군. 젠장!”

“목소리 낮춰라. 여긴 모라디 가문의 영지다.”

“설마 기분 좋은 자리에서 죄를 묻진 않을 거 아닙니까.”

신나게 마시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

북부의 기사 가문들 중에는 모라디 가문과 협력하는 가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패권을 노리며 경쟁하는 가문들도 있었다.

그런 가문에서 온 기사들은 당연히 이 커다란 규모의 만찬을 질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만찬 자체가 부와 명성, 그리고 가문의 인맥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모라디 가문의 직계가 워다나즈 가문하고 친분이 깊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럴 리가.”

부정적인 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가문들이 자신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서 허세를 부린다지만 정도가 있었다.

워다나즈 가문이 어떤 가문이던가?

제국의 가문들 중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가문 아닌가.

그런 가문의 핏줄이 갑자기 외부와 교류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러 곳에서 들었습니다. 에인로가드에서 같이 수학했다고...”

“나도 에인로가드에 대해서는 잘 아네. 마법사가 아니라고 무시하지 말게나.”

중년 드워프 기사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에인로가드 출신이라고 다 우정이 있을 줄 아나? 천만에. 잘 맞지 않는 출신이라면 오히려 원수처럼 사이가 안 좋네. 모라디 가문은 기사의 가문이고 워다나즈 가문은 대대로 마법사 가문인데 사이가 좋을 리가 없지 않나. 만약 사이가 좋다면 내 수염을 잘라도 좋네!”

“확실히 맞는 말이십니다!”

경험 많은 드워프 기사의 말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치에 맞는 이야기였다.

“슬슬 안에 들어가세. 밖에서 계속 떠드니 목이 칼칼하군그래.”

“그럽시다. 모라디 가문이 다른 건 몰라도 손님 대접은 제대로 하는 곳이니까...”

기사들이 거대한 천막의 입구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자, 밖보다 더 시끄러운 소음이 귀를 때렸다.

거대한 통나무를 절반으로 잘라 만든 테이블에 모인 기사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기사들은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의 연회가 언제는 주인의 선언에 맞춰서 시작되었던가?

매번 주인이 선언하기도 전에 절반은 취해있기 마련이었다.

“안녕하십니까.”

“!”

익숙한 모라디 가문의 핏줄을 본 기사들은 재빨리 인사했다.

아무리 경쟁 상대라 하더라도 만찬에 초대받고서 건방지게 굴면 북부에서 기사 취급도 못 받았다.

“북부의 방패인 모라디 가문의 핏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라디 가문의 핏줄은 중상이라도 입은 것마냥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비틀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는 소년이 재빨리 부축했다.

“반응이 늦잖아.”

“죄송합니다. 모라디 님.”

“지금 나 놀려? 왜 존대해? 미쳤냐??”

“나름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건데...”

“???”

기사들은 옆에 있는 소년을 보고 의아해했다.

모라디 가문의 시종이나 하인인가 싶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지나치게 귀족다웠던 것이다.

“혹시 이 분은 누구십니까?”

“아.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입니다. 모라디 가문에는 비공식적으로 초청받아서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

기사들은 눈을 크게 떴다.

보통 저렇게 비공식적으로 가문을 방문하는 건 당사자가 가문의 일원과 친할 때 많이 하는 일이었다.

워다나즈 가문에서 다른 이유로 사람을 보냈을 리는 없고, 지금 앞에 있는 소년이 바로 소문의 그 학생인 게 분명했다.

“모라디. 술 마실래?”

“지금 술이 들어가게 생겼냐?”

“미안. 그럼 케이크 먹을래?”

“그냥 아무것도 안 먹고 싶으니까 그만 물어봐.”

“가이난도는 케이크 먹으면 화 풀던데.”

“...방금 말의 의도가 대체 뭐였는지 말해보겠니, 워다나즈? 정말 궁금하구나.”

“미안하다.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 소리였지?”

둘은 소곤거리면서 다른 기사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대화는 살벌했지만 밖에서 보면 꽤 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대, 대체...?”

“아니, 에인로가드 학생이라고 다 친한 게 아니라고 하셨잖습니까!”

놀란 기사들은 드워프 기사를 보며 물었다.

중년 드워프 기사는 혼이 빠진 얼굴로 단검을 내밀었다.

“수, 수염 자르게.”

“......”

*         *         *

가주 옆에 앉아 하품하던 해골 교장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워다나즈를 계속 데리고 다녔다면서?”

“예. 마법진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그 정도 수준인가? 아. 마력으로... 무식한 녀석 같으니.”

해골 교장은 금방 알아차렸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는 다른 마법사들이 따라할 수 없는 무식한 지름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외부 기사들의 위치를 옮겨서 행동 양식을 개선할 줄이야. 에인로가드에서 배웠다고 하더군요.”

가주는 그 냉정한 얼굴에 감명을 희미하게 드러내며 말했다.

해골 교장은 뭔소린가 싶어서 고민하다가 깜짝 놀랐다.

“기사 놈들 숙소 옮기던 게 워다나즈 때문이었나?!”

“예.”

‘아니 이런 미친 놈이.’

해골 교장은 어이가 없었다.

에인로가드 학생 중에서 자기가 에인로가드 다닌다고 제국을 에인로가드처럼 만드는 놈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악마도 저러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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