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7화
“워다나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쟤네들을 쏠 수는 없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한은 닐리아의 과격한 사고방식에 경악했다.
“아. 아니야?”
닐리아는 머쓱해졌다.
하긴 이한이 미친 사람도 아닌데 발드로가드 학생들한테 화살을 쏘라고 할 리는 없었다.
“일어나라, 뼈로 이루어진 전사들이여!”
창밖으로 뼛가루를 던지자 스켈레톤 전사들이 일어났다.
이한은 스켈레톤 전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걸 쏴야지.”
“......”
닐리아는 이한의 과격한 사고방식에 경악했다.
귀족 가문의 저택 부지에서 스켈레톤 전사를 소환해서 마법 활로 쏴도 되나?
물론 당연히 안 됐다.
발드로가드 학생 둘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스, 스켈레톤이다! 언데드! 언데드야!”
“스켈레톤 가지고 왜 그래?”
가이난도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물었다.
마법밖에 모르는 에인로가드의 미치광이가 하는 말은 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간신히 진정했던 잉센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외쳤다.
“언, 언데드! 언데드라고요!”
“언데드지 그럼 저게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여?”
“왜 이렇게 태연한 건데!!”
잉센은 발작하듯이 가이난도에게 소리를 질렀다.
공터를 돌아다니는 강아지라도 본 것처럼 태연한 가이난도의 모습은 잉센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요네르는 안되겠다 싶어서 닐리아를 재촉했다.
“빨리. 빨리 쓰러뜨려!”
“아, 알겠어.”
닐리아는 서둘러 활에 부여 마법을 걸고 정령을 불러냈다.
묵직한 울림과 함께 활에 강력한 기운이 맴돌았다. 정령은 주인의 다급함을 느꼈는지 화살촉 끝에 깃들어 방향을 조정했다.
쾅!
화살은 정확하게 스켈레톤 전사들한테 작렬했다. 제대로 부서지는 스켈레톤 전사들을 본 친구들은 박수를 쳤다.
“역시 닐리아야.”
“흥. 이한이 더 강하게 소환하고, 뼈 방패도 세우고, 저주도 걸고 했으면...”
“지금 흑마법 자랑 시간 아니야. 가이난도.”
“어, 여러분? 저기 좀 보십시오.”
“?”
친구들은 털썩 주저앉은 두 발드로가드 학생들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 두 분. 창 밖 보세요! 스켈레톤이 죽었습니다! 걱정할 거 없어요!”
“맞아요. 여기 닐리아 님이 잡으셨다구요! 일어나서 보세요!”
“다, 다리에 힘이...”
시아나 사제는 발드로가드 학생들의 변명에 지팡이로 등짝을 퍽퍽 때렸다.
다른 친구들은 황급히 달려들어서 말렸다.
“때리면 안 됩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길래...”
“어, 등짝을 때리면 다리에 힘이 돌아오나요?”
“아뇨, 그냥 짜증나서 때렸어요.”
다행히 둘은 정신이 없어서 자기들이 맞은 건지도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간신히 일어나더니 창밖을 보고 박살난 스켈레톤을 확인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 정말 죽었군요!”
“엄밀히 따지자면 스켈레톤은 죽은 게 아니라... 읍.”
랫포드는 가이난도의 입을 막았다.
여기서 흑마법 강의를 해봤자 좋을 게 없었다.
“누가 쓰러뜨리신 겁니까?”
“여기 닐리아가 했어요. 부여 마법과 정령술의 결합이죠.”
“...!”
잉센은 경악했다.
하나 거는 것도 어려운데 그 둘을 같이 사용해서 스켈레톤까지 쓰러뜨리다니.
믿기 힘든 마법 능력이었다.
“대... 대단하십니다!”
“말도 안 돼. 귀족도 아닌데?”
바시우의 중얼거림에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해주던 요네르가 발끈했다.
“아 이 새끼가 진짜.”
“네?!”
“뭐요?”
“방, 방금...”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친구들은 요네르의 말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저런. 언데드를 봐서 마음이 약해지신 것 아닙니까?”
“그, 그런... 그런 것 같습니다.”
잉센과 바시우는 혼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밖의 스켈레톤 전사가 걸어오던 광경이 눈에 선했다.
사악한 존재를 만나면 사람의 영혼이 흔들린다더니 헛소리까지 들릴 줄이야...
“닐리아 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대단한 마법이었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셔서...”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닐리아는 속으로 당황했다.
저거에 죽을 사람이 있나?
“난 제대로 못 봤는데.”
바시우는 옆에서 중얼거렸다. 아직 남은 일말의 자존심이 뭐라도 트집을 잡게 한 것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한이 밖에서 외쳤다.
“닐리아. 준비됐어!”
“...뭐, 뭐가?”
친구들이 모르는 사이 이한은 밖에 나가서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닐리아와 친구들은 당황했다.
뭘 준비했단 거지?
밖에는 이한이 불러낸 각종 방어 마법들이 있었다. 닐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걸 표적으로 맞추라고?”
스켈레톤하고 차이가 없어 보이는 표적에 닐리아는 의아했다.
“맞아. 그렇지만 잠깐만.”
이한은 발드로가드 학생들에게 다가가더니 둘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방패 뒤로 끌고 갔다.
“자. 우리한테 쏘면 돼!”
“......”
“...?!!”
자신들한테 화살을 쏘라고 자신 있게 외치는 이한의 모습에, 두 학생은 기절하기 직전의 표정이 되었다.
닐리아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이, 이건 좀...”
“생각해보니까 여기가 가장 마법을 구경하기 좋을 것 같더라고. 체감하기 좋을 거야.”
“...겁이 나지 않을까?”
랫포드의 손에서 풀려난 가이난도가 재빨리 소리쳤다.
“아까 쟤, 제대로 못 봐서 너무 아쉬웠대!”
“오. 잘 됐군. 아까보다 훨씬 더 보기 좋을 거야.”
이한은 잘 됐다는 듯이 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억센 힘에 둘의 표정은 납빛을 넘어 시체처럼 변해갔다.
잉센은 바시우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너... 다, 다시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나, 나도 몰... 몰랐... 살려...”
“하하. 안 죽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닐리아. 날려!”
* * *
그 후로도 이한은 친구들의 마법을 몇 개 더 자랑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발드로가드 학생들은 비쩍 마르고 생기를 잃어갔다.
하지만 이한은 그런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친구들의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외부인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더르규. 랫포드. 잠깐 나와 봐라. 이건 좀 준비가 필요할 거 같다.”
“뭘 하실 겁니까?”
“악마 환상 유혈 참격은 어떨까?”
셋이 나가자마자 잉센은 궁지에 몰린 쥐처럼 눈을 굴리더니 슬며시 문을 열고 나갔다.
“?”
“어디 가는 거지?”
“도망가는 거 아냐?”
가이난도의 말에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바시우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설, 설마...?’
다른 친구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타박했다.
“여기 다른 친구가 있는데 도망쳤겠어?”
“친구랑 같이 나가면 수상하니까 두고 도망친 거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5분 뒤.
잉센은 이한과 같이 돌아왔다.
이한은 친절하게 웃으며 잉센의 등을 두드려줬다.
“저런. 길을 잃으시다니. 여기 부지가 넓긴 합니다.”
“어... 어떻게 저를 찾으신...”
“누가 나가길래 혹시 싶어 발자국 보고 쫓아갔죠. 늦지 않게 찾아서 다행입니다. 저택 안에서 길을 잃으면 그것만큼 웃긴 일도 또 없잖습니까. 하하.”
“하... 하하하...”
잉센은 죽고 싶은 얼굴로 메마르게 웃었다.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저 뒤에서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갑자기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럼 쉬고 계십시오. 마법 좀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워다나즈. 마법만 너무 많이 보여드리는 거 아니야?”
“그런가?”
“!”
닐리아의 말에 둘은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이 냉혹하고 잔인한 응접실 안의 마법사 중에서도 유일하게 둘을 신경써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번 마법만 하고...”
“!”
“저 두 분이 갖고 온 마법을 준비하자고. 계속 우리만 보여주면 그것도 미안하지.”
‘마법지옥이구나!’
둘은 이제야 깨달았다.
여긴 마법지옥이었다.
동화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개구쟁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사악한 마법사한테 끌려간 곳.
바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마법지옥이었다.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그들은 영원히 저 마법과 마법 사이에 끼어서 절망하게 되리라.
다시는 가문 사람들과 선배들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게 된 잉센은 엉엉 울었다.
그리고는 이한이 나간 사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제발!”
“?”
“제발, 닐리아 님. 저희한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내, 내가 뭘 어떻게...”
“도망가게 해주십시오!”
“네? 도망가시면 되잖아요.”
닐리아는 둘이 왜 이러나 싶었다.
마치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는 사람처럼 헛소리라니.
그냥 지금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하면 워다나즈는 보내줄 것이다.
‘...아닌가? 안 보내주나?’
“도, 도망가면 잡힐 겁니다. 저 워다나즈 가문의 대마법사한테...”
‘워다나즈 별명은 어떻게 안 거지?’
닐리아는 신기했다.
“몰래 도망가면?”
“잡힌다니까요! 응접실에서 밖으로 나가면 들킬 겁니다! 들킬 거라구요...!”
바시우는 진심으로 애걸복걸했다.
“닐리아 님. 당신을 질투한 걸 사과드립니다. 너무 뛰어난 마법 실력에 저도 모르게 질투했습니다.”
“예??”
“하지만 이제야 알겠습니다. 저희를 생각해주시는 분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제발! 이렇게 사과드리겠습니다. 이제까지 보여주신 자비심을 한 번만 더...!”
둘은 닐리아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너무 진지한 부탁에 닐리아는 친구들을 부르지도 못했다.
“그... 투명화 물약이 있긴 한데.”
“!!”
“그, 그런 비결이...!”
‘얘네 마법학교 학생 맞아?’
위험 지역에서 투명화 시도는 에인로가드 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할 생각이었다.
어이없음을 참으며 닐리아는 말했다.
“그런데 발자국이 남는 게 문제죠.”
“으흑...!”
“사실 그것도 방법이 있긴 한데.”
“닐리아 님!!”
“...저기 수풀로 기어가면 흔적 안 남기고 정문으로 나갈 수 있거든요?”
닐리아는 말하면서 살짝 창피함을 느꼈다.
그림자 순찰대 출신인 닐리아도 수풀로 기어오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과연 귀족 가문 출신 둘이 할 수 있을까?
“근데 역시 힘드실 것 같...”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자식을 낳으면 닐리아라고 짓겠습니다!”
“...진짜 하지 마세요.”
닐리아는 정색하고 거절했다.
* * *
더르규, 랫포드와 열심히 준비를 마치고 돌아온 이한은 두 명이 줄어든 응접실을 보고 멈칫했다.
“어디 갔지?”
“글, 글쎄. 돌아가신 것 같은데?”
“시약 주머니도 두고?”
“놓, 놓고 가셨나봐.”
“왜 못 봤지? 흠.”
“마, 마법에 너무 집중한 거 아닐까?”
이한은 닐리아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 그렇게 땀을 흘려, 닐리아?”
“안... 안이 더워서. 그, 있잖아. 난 북부 산맥 출신이지!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한겨울에도 천 옷 하나 걸치고 다녀!”
“저번에 그림자 순찰대 보니까 다들 두껍게 입고 다니던데?”
“......”
다행히 이한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기껏 준비했는데 섭섭하군. 급한 일이 있었나?”
“이 시약 주머니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음...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서신을 보내야겠다. 내가 방문해서 전달해주겠다고.”
“워다나즈 님은 너무 친절하십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닐리아는 두 학생이 오늘부터 갑자기 꾀병을 앓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