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화
“교수님. 그리폰이 겁먹은 것 같은데...”
닐리아의 말에 벤도졸 교수는 벌컥 화를 냈다.
“그리폰은 겁을 먹지 않는다! 모욕적인 말 하지 마라!”
“힉.”
“너희 모두 들어라! 그리폰은 꼬리를 휘둘러서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앞으로 그리폰을 돌봐줄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 머리를 내밀어라. 그리폰이 꼬리로 때리기 편하도록.”
“그리폰 꼬리에 맞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더르규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리폰은 맹수로 분류되는 몬스터 중에서도 손꼽히게 강력했다.
당연히 그냥 휘두르는 꼬리도 철퇴 같은 위력을 갖고 있었다. 한 대 잘못 맞으면 장난으로 끝나지 않았다.
벤도졸 교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버텨라!”
“......”
“......”
“...폰리그는 제가 알아서 키우겠습니다.”
“이런 멍청한 사기꾼 놈이! 네깟 놈이 그리폰의 사랑을 받는다고 우쭐해하는 거냐!”
벤도졸 교수는 네 발로 엎드린 채 짖어댔지만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에인로가드에 들어왔을 때 만났다면 당황했겠지만, 이제 와서 벤도졸 교수에게 놀라기에는 이한이 너무 미친 교수들을 많이 만난 뒤였다.
한참 동안 ‘그리폰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로 떠들던 벤도졸 교수는 이한이 무시하자 결국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바실리스크!”
“예?”
“그리폰은 그렇다 치더라도 바실리스크는 어떻게 키우고 있냐고 물었다!”
“잘 키우고 있습니다만...”
이한의 소매 속에서 바실리스크 꼬리가 빼꼼 나와서 흔들거렸다.
자신을 부르는 걸 알아듣고 인사해주는 것이었다.
그걸 보자 벤도졸 교수는 심술궂은 얼굴에 아빠마냥 흡족한 미소를 가득 띠었다.
“행동이 장난스러운 걸 보니 제법 만족하고 있군!”
“감사합니다.”
“먹이는? 미노타우로스의 최상급 어깨살을 먹여주는 게 좋을 텐데 그러고 있냐!”
“......”
몇 번 끼니 챙겨주면 파산할 식단이었다.
이한은 떨떠름해하며 대답했다.
“제가 먹는 걸 같이 주고 있습니다만.”
“이... 이... 이... 무식한...!”
네 발로 엎드린 벤도졸 교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입에서 거품이 올라왔다.
그걸 본 시아나가 속삭였다.
“광견병 걸리신 거 아니에요 저거?”
“시아나 사제...”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보세요. 교수님이라고 그냥 봐주면 안 된다구요.”
“%&%##%^#$!”
벤도졸 교수는 알아듣기 힘든 방언으로 욕설을 퍼붓고 난 뒤 간신히 진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나서는 이한에게 바실리스크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열변을 토했다.
“고기도 중요하지만 주기적으로 용의 피를 사석독에 섞어서 먹여줘야 한다.”
둘 다 이름만 들어도 매우 비싼 시약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바실리스크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지 팔뚝을 꼬리로 칭칭 감은 채 머리를 흔들었다.
“벤도졸 교수. 제자가 괴물들에게 사랑받는다고 그만 좀 질투하시오. 유니콘 이야기나 마저 합시다.”
“크윽... 왜 저런 어린 놈에게! 자신의 행운을 깨닫지도 못할 놈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내버려두면 계속 이한의 흠집을 잡을 것 같았기에 번개걸음 교수는 상대를 한 번 걷어찼다. 벤도졸 교수는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이한은 그래도 교수라고 위로해주려고 말했다.
“교수님. 다른 동물들이 교수님을 사랑해주잖습니까. 바실리스크나 그리폰 같은 녀석들이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이한이 알기로 벤도졸 교수는 제국에서 꽤 이름 높은 동물 전문가였다.
실제로 돌봐준 동물의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다양했으니 이것만 봐도 일정 이상의 친화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벤도졸 교수는 묵묵히 들었다.
“저는 대신 정령처럼 예민하고 겁 많은 녀석들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저는 차라리 교수님이 부럽습...”
“이 새끼가 자꾸 자랑질을! 누구 놀리냐!”
묵묵히 듣는 줄 알았던 벤도졸 교수는 분노를 폭발시키며 바닥의 흙을 이한에게 뿌리려고 했다.
번개걸음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번 벤도졸 교수를 옆으로 걷어찼다.
* * *
간신히 침착해진 벤도졸 교수는 유니콘에 대해 설명했다.
교수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니콘은 크게 다쳐 있었다. 벤도졸 교수는 에인로가드에 돌아가는 대신 유니콘을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악하고 비열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유니콘을 살리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쓸데없는 이야기는 자꾸 추가하지 맙시다. 벤도졸 교수.”
하여간 유니콘의 부상만 회복시킬 생각이었는데, 알고 보니 유니콘에게는 어린 새끼까지 있었다.
다친 상태에서 어린 새끼까지 키워야 하는 이중고.
벤도졸 교수가 학교를 쉬고 시간을 쏟아 넣을 각오를 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부상도 평범한 상처가 아니었지.”
“그렇겠군... 유니콘을 다치게 할 적이 많지는 않을 테니.”
번개걸음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벤도졸 교수의 말에 동의했다.
유니콘은 그 순결한 이미지와 별개로 매우 강력한 몬스터였고, 다치게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역으로 말하자면 유니콘이 다쳤다면 그 부상은 쉽게 치료하기 힘든 부상이란 뜻이 됐다.
“어떤 적이 다치게 했답니까?”
“도철(饕餮). 여기 비통 산맥에는 놈이 잠자고 있소.”
“!”
번개걸음 교수는 백전노장의 제국 탐험가였지만 도철이란 몬스터 이름을 듣자 안색이 변했다.
그만큼 강력한 몬스터였던 것이다.
도철은 얼핏 보면 소처럼 생긴 몬스터였지만, 이 몬스터의 성정은 소와는 정반대였다.
탐욕스럽고 교활한 몬스터라 자기보다 강한 적은 피하고 약한 적은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물론 심성만으로 강력한 몬스터가 될 수는 없었다. 약한 동물들 중에서도 저런 심성을 가진 동물들은 많았다.
도철이 위협적인 건 갖고 있는 신체적인 능력도 어마어마하게 강했기 때문이었다.
창칼과 마법을 튕겨내는 질긴 가죽과 한 번 발을 구르면 암반을 쪼개는 발굽, 적을 발견하고 달리면 땅을 주름잡는 수준의 속도...
거기에 이제 마법적인 능력도 선천적으로 여럿 갖고 있는 만큼 유니콘에게 상처를 입힐 법했다.
“유니콘에게 상처를 입힌 건 도철의 뿔입니까?”
“맞소.”
“상처가 오래 낫지 않는 이유가 있었군.”
번개걸음 교수는 혀를 찼다.
도철의 뿔은 저주와 원념이 깃든 사악한 물건이라, 유니콘 같은 생물도 한 번 찔리면 쉽게 낫기 힘들었다.
“물론 놈도 유니콘한테 꽤 다쳤소. 상처를 회복하려고 긴 동면에 빠져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원래라면 그 때 찾아서 숨통을 끊어놓으려고 했는데...”
“실패했군... 그래서 지금 몬스터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겁니까?”
비통 산맥의 몬스터들이 무언가를 두려워하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싶었는데, 아마 도철이 곧 깨어나리란 걸 직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철이란 몬스터는 특성상 자신이 먹을 것만 사냥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걸 즐겼다.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에게는 재해와 같은 일이었다.
번개걸음 교수는 담배 파이프에 잎을 재워 넣고 불을 붙인 뒤 뻐끔뻐끔 빨았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도철이 곧 깬다고 해서 두려워 할 건 없지. 이 인원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으니. 그렇지 않습니까, 벤도졸 교수.”
벤도졸 교수가 그것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정을 알았으니 다시 한 번 계획을 바꿔야겠군. 학생들은 벤도졸 교수와 함께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유니콘을 지키도록 해라. 나와 사냥꾼들은 도철을 찾아 깨어나기 전에 숨통을 끊어버리겠다.”
“잠깐!”
벤도졸 교수가 말을 끊고 끼어들자 번개걸음 교수가 시선을 돌렸다.
“같이 도철을 찾고 싶어도 안 됩니다. 벤도졸 교수. 유니콘을 돌보고 지킬 사람도 필요하니까.”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오. 그냥 학생들도 데리고 가면 안 되나 싶어서.”
“......”
“......”
학생들은 황당하게 벤도졸 교수를 쳐다보았다.
번개걸음 교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사냥꾼들을 불러서 출발해버렸다.
* * *
“유니콘은 고귀하고 강력한 생물이다.”
벤도졸 교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자신의 야영지 뒤쪽에 난 좁은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교수가 발을 내딛지 않았다면 여기에 길이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만큼 가파르고 좁은 길이었다.
탁, 타탁, 타타탁!
허공에서 얇은 바윗덩이들이 날아와 붙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새로 길이 생겨났다.
“너희 같이 어리고 서투르고 사납고 비겁하고 천박한 학생들이 유니콘을 돌보기에는 천 년도 이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돌보는 방법을 가르쳐주도록 하겠다. 알겠나?”
“와! 유니콘이래!!”
가이난도는 신이 나서 친구들에게 떠들어댔다.
유니콘의 털을 얻으면 어디에 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가이난도를 보자 벤도졸 교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발밑의 돌판을 빼내서 저 밑으로 떨어뜨리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유니콘을 돌볼 때 가장 중요한 건, 유니콘에게 최소한의 인정을 받는 거다. 유니콘에게 최소한의 인정도 받지 못하면 돌봐줄 수 없지. 접근하는 순간 발굽에 치이거나 뿔에 찔릴 테니까.”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습니까?”
“뭘 해서 받는 게 아니야! 네놈들이 어떤 부류인지 유니콘이 보고 파악하는 거다.”
벤도졸 교수는 거대한 산봉우리를 빙 둘러서 감싸듯 만들어진 길을 올라가며 훈계했다.
“유니콘이 싫어하는 놈들은 여기 입구에서 보초를 선다. 유니콘이 인정해준 놈들은 위로 올라가서 돌봐준다. 기억해라. 유니콘이 싫어하는 놈들은 안에 들어가서 얼씬할 생각도 하지 마라. 목숨 보장 못 해주니까!”
말과 함께 길이 끝났다. 산봉우리 위의 평평한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안개가 둘러싸고 있어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지형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유니콘 두 마리가 있었다.
하나는 다 자랐는데 몸에 검붉은 상처가 저주처럼 일렁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새끼였는지 쿨쿨 잠에 빠져있었다.
“유니콘이 좋아하는 놈들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강하고 정의로운 놈. 이건 페가수스하고 비슷하지. 다른 하나는 선하고 순수한 자. 앞보다 더 힘든 조건이다. 괜히 애매하다 싶은 놈들은 유니콘 귀찮게 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라.”
“전 그냥 좀 물러나 있겠습니다.”
랫포드는 직업 특성상 유니콘에게 접근하고 싶지 않아했다.
아무리 봐도 서로 좋은 결말이 예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비해 더르규는 자신이 얼마나 기사답게 살았는지 유니콘에게 평가받고 싶어했다.
“한 걸음만 앞으로 걸어보겠습니다.”
유니콘은 더르규가 한 걸음 다가오자 머리를 들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다가올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다.
더르규는 아쉬웠지만 선선히 인정하며 물러났다. 유니콘은 언젠가 다시 오라는 듯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생각보다 깐깐한데...”
“닐리아를 보내봐야겠다.”
“닐리아밖에 없긴 하지.”
“아, 아니 왜 난데?? 나 사냥꾼이야! 유니콘이 싫어하면 싫어했지...!”
닐리아는 질색하며 싫어했지만 친구들은 닐리아의 등을 떠밀었다.
놀랍게도 유니콘은 거부하는 대신 아예 몸을 일으켜 닐리아 앞까지 걸어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닐리아를 훑어보았다.
갑자기 유니콘이 불만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획 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뭐, 뭐지?! 왜 닐리아를...?!”
“유니콘 저 놈 이상한 놈 아닙니까?”
학생들의 불만에 벤도졸 교수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유니콘은 질투심이 강하다. 최근에 정령들하고 여럿 계약했나보군. 그 냄새를 맡고 질투하는 거다.”
“......”
“과연. 닐리아를 바람둥이라고 생각한 거군.”
“무슨 미친 소리야?!”
닐리아마저 통하지 않자 학생들은 의욕을 잃었다.
“우린 그냥 입구에서 보초나 서자.”
“그래. 야영지 만들자고.”
다 같이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이한의 소매를 물고서 늘어졌다.
놀랍게도 유니콘이 가지 말라는 듯이 이한의 소매를 물고 있었다!
“...으으으윽...”
벤도졸 교수는 질투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한을 노려보았다.
저 녀석은 대체 왜 저렇게 강력한 괴물들에게 사랑받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