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화
쿠르르르르릉!
서로 노려보며 전의를 불태우던 두 교수는 이상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시커멓게 물들고 있었다.
“이게 무슨...?”
“뭐야?”
두 교수 모두 경험이 많고 견문이 넓은 만큼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산맥 위의 하늘이 완전히 시커멓게 변해버리자 태양이 그 안에 삼켜졌다. 주변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도철 놈들이 이런 짓을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도철 열 마리가 아니라 백 마리여도 이런 짓은 못 해!”
아무리 도철이 암흑 원소와 저주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이건 상궤를 벗어난 일이었다.
어떻게 한낱 도철 같은 놈들이 이런 기현상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도철이 많이 모인다 하더라도 하늘을 어둡게 만들고 태양을 삼킬 수는 없었다.
“이런 짓이 가능한 대마법사는 제국에서도 손에 꼽을 텐데...”
“교장 선생님 아닌가?”
“고나달테스가 여기 왜 와!? 시간이 썩어나냐?!”
벤도졸 교수는 번개걸음 교수를 타박했다.
해골 교장은 방학에도 매우 바쁜 마법사였다.
신입생과 지원금을 제외하면 남은 시간을 전부 에인로가드의 심처(深處)에서 제국의 위협을 막아내는 대계에 몰두하는 사람인데 비통 산맥에 올 리가 없지 않은가.
여기 있는 건 고작해야 도철 몇 마리 정도가 전부인데!
“교장 선생님이 아니라면 더 문제겠지.”
“으음!”
벤도졸 교수는 침음했다.
확실히 해골 교장이 아니라면 더 큰 문제였다.
저 정도 되는 대마법사가 여기 갑자기 찾아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별로 좋은 이유일 것 같지는 않았다.
검게 물든 하늘이 쪼개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냐? 누가 건드린 거냐?
익숙한 염파(念派)에 두 교수의 낯빛이 창백하게 변했다.
놀랍게도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 고나달테스였다!!
그것도 성질이 매우 거칠어진!
내 옛 제자냐, 내 미친 분신이냐, 그도 아니면 하찮은 마법범죄자 놈들이냐? 만약 마법범죄자 놈이라면 지금이라도 죽을 기회를 주겠다. 자결해라. 맹세컨대 잡히면 후회할 거다.
‘대체 누구부터 의심하시는 거지?’
이한은 해골 교장이 강림하기 전 하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누군가 이한을 습격했다고 생각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한이 구조용 신호 반지를 작동시켰으니까.
하지만 용의자로 자신의 옛 제자를 가장 먼저 의심하다니.
‘아니. 그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예전에 황제를 만났을 때 황제도 말하지 않았던가.
해골 교장의 제자들은 전통적으로 대륙을 불태우려고 하거나, 자신을 불태우려고 하거나, 혹은 해골 교장을 불태우려고 했다고.
남은 제자들이 아직도 원한을 갖고 있을 수 있었다. 그것까지는 납득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대체 자신의 미친 분신은 무슨 소리란 말인가!?
‘뭔 개짓거리를 하고 다니신 거야?!’
나는 분명 시간을 줬다!
말이 끝남과 함께 쪼개진 하늘에서 시커먼 힘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거대한 힘은 탁류처럼 흘러 기둥을 만들었다.
그 기둥에서 익숙한 마법사가 걸어 나왔다. 인간 형태의 해골 교장이었다.
“어떤... 잠깐만.”
차가운 분노를 폭발시키려던 해골 교장은 모여 있는 교수들과 학생들을 보고 멈칫했다.
무언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것이다.
“번개걸음 교수. 안녕하시오.”
“안, 안녕하십니까.”
“벤도졸 교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겠나? 멀쩡하길 빌었지만 멀쩡한 걸 보니 죽여 버리고 싶군. 입 다물고 있게.”
지은 죄가 많은 벤도졸 교수는 입을 다물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유니콘 만나서 돌아오지 않은 건 대죄였던 것이다.
번개걸음 교수는 당황함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과연 산전수전 겪은 탐험가다운 평정심이었다.
“교장 선생님.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제가 불렀는데요.”
“......”
“......”
번개걸음 교수도, 학생들도, 심지어 유니콘도 경악해서 이한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벤도졸 교수는 기절할 듯이 놀라서 외쳤다.
부른다고 고나달테스가 온 것도 놀라웠지만 부른 놈도 웃기는 놈이었다.
정신 나간 새끼 아닌가 이거?!
“부를 게 따로 있지 누구를 부르는 거야! 돌아버린 거냐!?”
“돌아버린 건 네놈이지.”
“잠ㄲ...”
싸늘한 해골 교장의 목소리에, 벤도졸 교수는 황급히 방어에 들어가려고 했다. 순간 열한개의 고위 마법이 교수를 보호하듯이 가로막고 방어막을 구성했다.
그러나 해골 교장은 손짓 하나로 마법을 찢어발기고 다른 손짓 하나로 벤도졸 교수를 검은 힘의 기둥에 처박아버렸다.
벤도졸 교수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 위로 끌려가버렸다.
‘대단하다!’
방금 벤도졸 교수가 도철을 잡는 걸 봤던 만큼, 이한은 교수가 강력한 마법사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변신 마법은 물론이고 동물을 상대하거나 돌볼 때 쓸 수 있게 다양한 학파 마법들을 자유자재로 시전 가능한 유연한 마법사인 것이다.
뛰어난 마법사들 중에서도 여러 학파 마법을 다 같이 익히는 사람은 보기 드문 만큼 대단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제국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돌보는 만큼 실전에서의 마법 전투도 경험이 많을 터.
그런데 해골 교장은 그런 교수를 일격에 제압한 뒤 에인로가드로 보내버렸다. 믿기 힘든 위력이었다.
“벤도졸 교수가 왜 이리 허무하게 졌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군.”
해골 교장은 학생들이 경악해하며 쳐다보자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지금 당장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나중에 커다란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워다나즈. 집중해라. 넌 바로 이해해야 한다.”
“아니...”
자기한테만 추가로 구박을 하는 해골 교장의 모습에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먼저 벤도졸 교수는 방심했다. 나를 발견한 순간 선공을 했어야 했지. 자기보다 강력한 마법사 상대로 선공을 뺏기다니. 아주 한심한 방심이다.”
실력도 낮고 부상까지 입은 상태로 해골 교장의 실력 행사를 먼저 기다리다니.
벤도졸 교수는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꺼내서 해골 교장을 막은 다음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탈출했어야 했다. 그게 그나마 희박하게라도 승산이 있는 길이었다.
가이난도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랬다가 잡히면 더 크게 혼나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도망칠 때, 잡힌 이후부터 걱정하는 놈은 없는 법이다. 너희들도 명심해라. 한 번 결심하면 망설여서는 안 된다.”
마법은 마법사의 정신 상태에도 영향을 받았다.
도망치기로 마음먹었으면 모든 걸 다 걸어서라도 도망을 쳐야지, 뒷감당이 두려워서 어중간하게 행동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과, 과연...! 내가 그래서 에인로가드를 탈출 못 했...”
해골 교장은 깨달음을 얻으려는 가이난도를 거꾸로 매단 뒤 말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는 걸고 있었던 마법이 빈약했다는 거다. 벤도졸 교수가 마법을 몇 개 걸었지?”
교장의 질문에 거꾸로 매달린 가이난도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벤도졸 교수님이 마법도 거셨었어요?”
“다른 놈 없나?”
해골 교장은 가이난도의 입도 막아버렸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공유했다.
“6개 아닙니까?”
“5개 같은데.”
“워다나즈. 네가 대답해라.”
“저는 11개까지 봤습니다만...”
“!?”
친구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들도 같이 봤지만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잘 봤다. 너희들은 보이는 그대로 믿지 마라. 너희 같으면 너희를 지키는 마법을 그대로 드러내겠느냐?”
공격도 중요했지만 방어도 그만큼 숙련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뛰어난 마법사들은 단순한 방어 마법도 쉽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여러 개를 중첩시킨 뒤 비틀어 꼬아서 정체를 알기 어렵게 만들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방어 마법이란 것 자체가 상당한 강점인 것이다.
방금 해골 교장은 열한개의 방어 마법을 빠르게 뚫기 위해 각 방어 마법들을 향해 동시에 마력을 투사하고 그 원리를 파악한 뒤 일제히 해제시켰다. 역마법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실수를 했거나 혹시라도 마법이 더 많고 복잡했다면 시간이 아주 미세하게 지체되었을 터.
그러면 벤도졸 교수는 재빨리 반응해 방어 마법을 보강한 뒤 탈출을 시도했을 것이다.
겉으로 보면 해골 교장이 일격에 쉽게 제압한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아슬아슬하고 치열한 수싸움이 있었다.
“마지막은 내가 강력한 고대 마법 몇 개를 시전한 상태기 때문이다.”
해골 교장은 뒤에 있는, 하늘과 연결된 검은 힘의 기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확실히 평소 보여주지 않는 특이하고 강력한 마법이었다.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시전하셨습니까?”
“네놈이 위급하다고 불렀잖아!”
딱!
해골 교장은 이한의 지팡이를 염력으로 뺏어 한 대 갈겼다.
꽤 아끼던 마법 같아서 이한은 갑자기 죄송스러워졌다.
“죄, 죄송합니다.”
“그래서 왜 부른 거냐? 짐작은 가지만...”
“교수님들끼리 싸우시길래...”
“역시 그랬군.”
해골 교장은 혀를 차며 번개걸음 교수를 쳐다보았다.
벤도졸 교수와 번개걸음 교수가 서로 으르렁대고 있었으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현상금도 걸려있겠다 해서 불렀습니다.”
“...현상금 때문에 부른 건 아니겠지?”
“그것만으로 부른 건 절대 아닙니다.”
“흥.”
해골 교장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한 번 던지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앞으로는 정말 위험할 때 불러라. 양치기 거인의 이야기를 아느냐?”
“잘 모릅니다. 그게 뭡니까?”
“옛날 어느 날, 산맥파괴양을 돌보던 거인이 심심해져서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로 다른 거인들을 불렀다.”
“......”
“...?”
학생들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질문했다.
“산맥파괴양이 뭔가요?”
“산맥파괴양을 늑대가 잡아갈 수 있습니까?”
“조용히 해라. 그리고 늑대가 양을 잡아갔다는 게 아니라, 거인들이 늑대를 잡는 걸 좋아해서 부른 거다. 늑대 쫓는 걸 좋아하지. 여하튼 자꾸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는 아무도 믿지 않아준다는 거다.”
“그런데 그거랑 별개로 늑대가 나오면...”
“산맥파괴양이 뭔데?”
“양치기 거인이란 게 있는 건가?”
학생들이 귀찮게 굴자 해골 교장은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조용! 온 김에 일을 마저 끝내야겠군. 도철 놈들이 돌아다닌다고?”
“예. 특이하게 무리를 지어다니는...”
“아마 우두머리 놈이 나타난 모양이군. 가끔 그런 놈이 생기면 다른 도철들이 그 밑에 모이지. 교활하고 이기적인 놈들이지만 우두머리가 있으면 무리로 굴러간다.”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워낙 보기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니 그럴 수 있소. 번개걸음 교수. 나도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군.”
해골 교장은 말과 함께 선언했다.
“사악한 무리들아, 내 앞으로 와라!”
검은 힘의 기둥이 폭발적으로 꿈틀거리며 맥동하더니, 어둠에 삼켜진 하늘에서 산맥으로 언령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드넓은 비통 산맥의 구석진 곳에 모여 있던 도철의 무리들이 허공에 둥둥 뜨더니 해골 교장 앞으로 끌려왔다.
도철의 우두머리는 살벌한 울음소리를 내며 해골 교장을 죽이려고 발버둥쳤다. 온갖 암흑 원소가 들끓으며 형태를 변화시켰다.
퍽!
손짓 한 번에 도철 무리들이 쓸려나갔다. 해골 교장은 다음 안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니콘?”
“다쳤습니다. 회복시킬 만한 안전한 곳이 있을까요?”
“에인로가드가 좋긴 하겠지.”
“!”
이한은 물론이고 유니콘도 반색했다.
대마법사의 영지만큼 안전한 곳도 드문 것이다.
하지만 해골 교장은 놀랍게도 꺼려하는 기색을 보였다.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입니까?”
“에인로가드에 머물게 하면 벤도졸 교수가 찾아와서 귀찮게 굴 텐데?”
이한은 해골 교장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유니콘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