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2화 (2/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2화

태어난 지 며칠이 됐는진 모른다.

체감상 석 달 정도?

그동안 내가 알아낸 정보는 생각보다 많았다.

‘먼저 이곳은 여태 알고 있던 지구가 아니라는 점.’

현대로 환생한 줄 알았건만 전혀 아니었다.

마법사와 기사, 마나와 드래곤, 몬스터 등이 존재하는.

소설에서나 봤을 법한 중세 판타지 세계가 이곳, 판게아 대륙이었다.

‘그리고 난, 그런 대륙의 마법 명가라 불리는 가문에서 태어났지.’

데칸 왕국에서 자랑하는 세 개의 마법 명가 중 하나.

맥러플린 공작 가문.

그런 유명한 가문에서 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마법으로 유명한 가문의 사공자로 태어나다니. 운이 좋은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정실이 아닌 첩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첩의 자식은 색안경 끼고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상태창의 꼬리표에도 떡하니 서자라고 쓰여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하겠군.’

적어도 거지나 평민으로 태어나지 않은 결 천만다행으로 여겨야겠다.

이런 중세 배경에선 신분에 따른 차별이 극심할 테니.

‘뭐, 약자가 핍박받는 건 현대랑 별반 다를 바 없나?’

마법사와 오러 유저가 귀족으로 취급받는 세계였지만 그건 현대도 마찬가지였다.

게이트와 괴수가 존재하고 헌터라는 이능력을 쓰는 각성자가 대우받는 세계라는 점에서는.

‘그런데 다른 가문도 아니고 왕족 다음으로 강한 공작가에서 태어나다니. 스타트만큼은 좋네.’

보통 소설에서 공작가라면 냉엄한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인데 여긴 아닌 모양이다.

아버지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저렇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는 걸 보면.

“우리 지크 좀 보시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소.”

“당신이 그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는데 어떻게 안 보겠어요.”

지크 맥러플린.

그게 내 이름이다.

날 어여삐 바라보는 서양 남자의 이름은 제라드 맥러플린.

8서클에 달하는 데칸 왕국 최고의 마법사라나?

‘내 앞에서 수군거리던 시종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지.’

이럴 때 보면 정보를 얻기엔 아기만큼 좋은 위치가 없다.

100일도 안 된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거라 생각진 않을 테니.

“빨리 100일이 되었으면 좋겠소.”

“조금만 기다려요. 며칠 안 남았잖아요.”

“후후, 기다려지는 걸 어떡하오. 우리 지크가 얼마나 천재적인 재능이 있을지…….”

‘들어보니 100일이 얼마 안 남은 모양이네.’

아버지가 저렇게 안달 난 사람처럼 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100일 뒤면 판게아 대륙의 그 어떤 아기도 피할 수 없다는 재능 검사가 있기 때문이다.

‘마법사 가문이니 당연히 내 아이가 마법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싶겠지.’

어떤 결과가 나올진 몰라도 긴장이 됐다.

재능 검사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

‘어쨌거나 내 몸에 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겠지.’

저렇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는데 나쁜 짓을 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기껏 주어진 삶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고.

‘환생한 곳이 현실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지.’

어찌 됐건 새로 주어진 삶이지 않은가?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도 말했지. 힘을 키우면 원래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원래 차원이란 지구를 의미하는 것일 터.

적어도 그때의 대비는 해두는 게 좋을 거다.

‘이젠 최강준이라는 이름은 지운다. 나는 데칸 왕국 마법 명가의 사공자, 지크 맥러플린이야.’

최강준, 아니 지크는 젖병을 입에 물며 다시 한번 삶의 의지를 다졌다.

* * *

제라드 맥러플린.

공작 작위를 지닌 8서클의 대마법사로, 데칸 왕국의 자존심이자 3대 마법 명가 중 최고라 불리는 가문을 세운 그였지만…….

“으으음.”

오늘만큼은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막내아들의 재능 검사 날이기 때문이었다.

“긴장되세요?”

“솔직히 그렇소.”

“당신 닮아서 이번에도 최고의 재능을 가진 걸로 나올 텐데, 뭐가 그리 긴장되세요? 설마 재능이 없는 걸로 나올까 봐서요?”

“그런 건 걱정하지 않소. 내 아들인데 당연히 마법에 재능이 있겠지.”

지크보다 먼저 태어난 형제들도 통과의례처럼 치르는 재능 검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으로 판별되었고.

마법사의 재능은 유전의 영향이 지대하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한 가문에서 걸출한 마법사를 대대적으로 배출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꽝이 나올 걱정은 하지 않는 제라드였다.

“내가 긴장하는 이유는 오히려 그 반대라오. 내 아들이 불세출의 천재는 아닐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지.”

“천재 중의 천재가 나오길 바라시는군요? 이미 일공자가 평범한 재능을 넘어섰는데도요.”

“아무렴. 우리가 데칸에서 내로라하는 마법 명가라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해선 안 된다는 걸 당신도 알지 않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약소국이라 해도 데칸에선 당신을 건들 사람이라곤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있잖아요?”

손을 잡고 부드럽게 웃어주는 둘째 부인의 모습에, 제라드의 긴장감도 눈 녹듯 사라졌다.

“고맙소. 데이나. 당신과 결혼하길 정말 잘했어. 내 평생 잘해주리다.”

“아이, 참. 저도요…….”

‘부모님이 아주 꿀이 떨어지는구만?’

본처가 보면 질투할 법한 광경을 실눈으로 쳐다보던 지크는 다시금 자는 척을 연기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기 때문이다.

“가주님! 궁정 마법사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지금 바로 가지.”

시종의 안내에 제라드와 데이나가 빠른 걸음으로 마중을 나갔다.

밖에서는 정실부인인 크리스티나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아, 당신도 와 있었구려.”

“얼른 가요. 공작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렇게 말한 크리스티나가 지나가면서 데이나를 쏘아봤다.

본처로서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가져간 데이나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제라드 맥러플린 공. 그간 안녕했는가?”

밖에는 희끗희끗한 수염을 늘어트린 로브 차림의 마법사가 웃는 낯으로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스승님.”

“스승이라니. 공적인 자리에선 예를 갖추라 하지 않았는가?”

“죄송합니다, 달프레드 비그스란드 공.”

제라드의 말에 달프레드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데칸 왕국의 최고령 궁정 마법사치고는 꽤나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장난이야. 편하게 부르라고.”

“어서 오세요, 비그스란드 공작 각하.”

“두 부인께서도 안녕하셨소? 오랜만에 뵀음에도 둘 다 미모가 여전하시구려.”

“호호, 과찬이십니다.”

“그래, 이 늙은이를 초청한 이유가 저 안에 있단 말인가?”

“예. 막내아들인데 이번에 100일이 되었습니다. 하여 스승님께서 직접 재능 검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암, 해줘야지. 제자의 자식인데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맹금처럼 눈을 빛낸 달프레드가 지팡이를 가리켰다.

“어서 가지. 얼마나 특출난 아이일지 몹시 기대되는구먼. 허허!”

달프레드의 기대는 당연했다.

제자인 제라드는 3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신과 같은 8서클에 도달했다.

그런 뛰어난 제자가 자식을 낳았는데 어찌 기대되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인가?”

접견실로 들어서자 100일 된 지크가 세상 모르는 얼굴로 자고 있었다.

“우리 제자의 아기가 자고 있었군그래. 이거 마나를 주입했다가 깨는 건 아닌지 몰라.”

“우리 가문의 아이라면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그러니 얼른 재능을 확인해 주십시오.”

“이거 원, 제자님이 아주 안달 나셨구먼.”

“호호, 이이가 며칠 전부터 잠도 못 잘 정도로 기대하고 있었다니까요?”

“맥러플린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응당 재능은 타고났겠지. 요점은 얼마나 재능이 있느냐겠지만.”

“스승님. 그만 말씀하시고…….”

“알았으니 보채지 말거라. 내 바로 확인해 주지. 그나저나 앞에서 이렇게 떠드는데도 정말 잘도 자는구나.”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한 달프레드였지만 실은 아니었다.

지크는 슬쩍 실눈을 뜨고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저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스승이기도 한 궁정 마법사구나.’

달프레드에 대해서라면 시종들이 며칠 전부터 떠드는 덕에 익히 알 수 있었다.

데칸이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기둥처럼 지키고 있던 8서클의 궁정 마법사라고.

70의 노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창창한 실력을 내보이기에 여전히 활동 중이라고 들었다.

‘뭐, 곧 있으면 은퇴하고 아버지가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되겠지만.’

그렇기에 스승과의 시간도 보내고 싶을 겸, 직접 재능 검사를 해달라고 부른 것일 테다.

재능 검사는 타인이 확인해 주는 게 관례라 들었으므로.

‘아마 자랑도 하고 싶을 테지. 내 자식의 마법적 재능이 이렇게 뛰어나다고.’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지크도 모른다.

마나와 관련된 스킬을 가졌지만 정작 마나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니까.

‘뭐, 유전자는 타고났을 테니 재능이 있다고 뜨겠지. 그러면 커가면서 나도 마법을 배워야 하나?’

재능이 있으면 마법을 배울 의향은 있다.

마법사로 살아가서 나쁠 건 없으니.

‘이쪽 세계에서 마법사가 된다는 건 헌터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니까. 거부할 이유는 없지.’

이미 금수저 가문에 태어나서 평생을 놀고먹어도 굶지는 않겠으나 평범한 생활에 안주할 생각은 없다.

마나라는 것에 흥미도 있는 데다 마법 명가에 태어나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마력 흡수가 가능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스킬 설명을 보면 마력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스탯을 올릴 수 있다고 했어. 이러면 굳이 마법사가 될 필요는 없지.’

물론 마법과 시스템, 둘 중 어느 방향이 더 성장에 유리한지는 나중에 판단하면 된다.

여차하면 둘 다 배워도 되고.

문제는 마력을 흡수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지만.

‘시스템이 분명 최적의 장소로 보내줬다고 했으니 마력이 흡수되는 환경일 텐데…….’

아직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이의 몸으로선 확인할 방법도 전무하고.

그때 뭔가를 시작하려는지 달프레드가 자신의 작은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마나를 불어넣으려는 건가?’

긴장된 기분으로 마나라는 게 어떤 건지 느껴보려는 찰나.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체내로 마력이 주입되고 있습니다.]

[들어오는 마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마력 흡수’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사용하시겠습니까? Y/N]

‘마력 흡수를 쓸 수 있다고?’

전생에 헌터 생활을 한 지도 어언 8년.

그동안 지크는 마력 흡수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가능하다고?’

액티브형 스킬이었기에 흡수를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어떡하지? 흡수하는 게 좋으려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음 스킬의 개방을 위해서라도 마력 흡수 스킬의 숙련도를 올려야 한다.

‘예스!’

<스킬 발동 : 마력 흡수>

금빛의 발동 메시지가 나타나며 난생처음으로 마력 흡수 스킬을 써보게 됐다.

슈아아아악-

잘은 몰라도 몸이 뭔가를 빨아들이는 느낌이 난다.

[마력을 1 흡수하였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1 증가하였습니다.]

[2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1/100]

[스킬을 On/Off 할 수 있습니다. 계속 활성화하시겠습니까? Y/N]

‘정말로 흡수됐잖아?’

지크의 눈동자가 커졌다.

예상대로 마력 흡수가 써지는 걸 보니 감격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활성화할게. 그러니까 더 줘! 더……!’

지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눈빛으로 노년의 마법사를 바라봤다.

* * *

“앗, 깼다.”

“우리 아가 일어났어요?”

지크가 눈을 뜬 건 달프레드가 손을 대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갑작스레 마나를 주입하니 놀랐나 보군. 확실히 재능이 있는 아이야. 벌써 마나를 감지하다니. 허허.”

일찌감치 보인 재능에 너털웃음을 지은 달프레드가 다시금 마나를 주입했다.

마법사의 재능을 확인하기 위해선 이렇게 자신의 마나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걱정 말거라. 아가. 내 금방 끝내줄 터이니…….”

마나를 주입하며 본격적으로 신체의 반응을 보려는 그때.

뒤에서 제라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스승님. 지크가 놀랐나 봅니다. 갑자기 눈을 크게 뜨는데요?”

하지만 놀란 건 달프레드도 마찬가지였다.

뭔가를 느끼고 황급히 손을 뗐으니까.

그 모습을 제라드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

“아, 아니다. 내가 착각한 것일지도. 다시 검사를 시작하지.”

달프레드는 재차 손목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마나를 주입했다.

방금 느낀 경험이 자신의 착각이길 바라며.

그러나.

“…….”

이내 달프레드는 굳은 얼굴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하시고…….”

“제라드…… 이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시는 겁니까?”

“이 아이는 말이다…….”

달프레드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마법에 재능이 없는 아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