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3화
“예?”
기대와 달랐기 때문일까?
제라드는 스승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다. 이 아이에겐 마법사의 재능이 없어.”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기질이 있다.
마나를 느끼고 움직일 수 있는 마나 감응력.
마나를 신체에 받아들일 수 있는 마나 친화력.
이 중 하나라도 평균치에 이르지 못하면 마법사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달프레드는 그런 지크의 재능이 평균치 이하라고 판단 내린 거고.
“제 자식이 마법사의 재능이 없다니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나도 처음엔 믿기지 않았지. 하지만 사실이야. 마나를 주입해도 신체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마나 친화력이 제로란 소리지.”
“믿을 수 없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제라드는 직접 지크의 손목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혈관을 따라 흘러가야 할 마나가 미증유의 힘에 흩어지더니 어느 순간 말끔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이, 이게 무슨?”
놀란 제라드가 재차 마나를 불어넣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불어넣는 족족 마나가 신체에 머물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거봐라. 안 된다 하지 않았느냐.”
“이게 어찌 된…….”
“마나 자체를 거부하는 몸이라 그런 게지.”
“이, 이러면 정말로 마법사가 될 수 없는 겁니까?”
“몸에서 마나를 거부하는데 어떻게 서클을 만들겠느냐?”
믿기 힘든 현실에 제라드가 다시금 마나를 불어넣었다.
몇 번을 반복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제라드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얼마나 재능이 높을지 기대하고 있었건만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이라니?
기대가 컸던 만큼 충격도 컸다.
제라드의 자식 모두가 마법의 재능을 타고났으니 그도 당연했다.
낙담하는 제자를 달프레드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마법 명가라 하더라도 간혹 낮은 확률로 재능을 이어받지 못하는 아이가 나오곤 한다. 운이 없게도 네 막내아들이 거기에 걸린 모양이구나.”
“스승님.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글쎄.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봐서…….”
“마법 명가의 자식이 마법사가 될 수 없다니… 어찌 이런…….”
암울한 결과에 침울해하는 제라드와 달리 지크는 마냥 싱글벙글이었다.
이렇게 쉽게 스탯이 오를 줄은 몰랐으니까.
[흡수한 마력을 랜덤한 스탯으로 치환합니다.]
[회복력 1이 영구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하루에 올릴 수 있는 스탯량에 도달하였습니다.]
[더 이상 스탯을 올릴 수 없습니다.]
‘이거 엄청나잖아? 아기 때부터 스탯을 올릴 수 있다니.’
마나라는 게 이 세계에선 마력인 모양.
방금 주입받은 마력이라는 것만 얻는다면 이전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9성까지 성취를 올려 2차 스킬을 각성할 수도 있고.
‘마력 흡수라는 거, 알고 보니 엄청 좋은 스킬이었잖아?’
전생에선 마력을 흡수할 수 없었기에 쓰레기 스킬로 여겼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력을 흡수할 환경만 받쳐준다면 이보다 사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루에 1개라는 스탯 제한이 있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야?’
지크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제라드는 그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녀석. 아무것도 모른 채 웃기나 하다니. 네가 지금 무슨 처치에 놓인 건지 알기나 하는 게냐?’
방긋방긋 미소 짓는 막내아들을 바라보며 제라드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가뜩이나 첩의 자식이라 후계 구도에서도 불리하게 태어났는데 재능까지도 없다니.
훗날 커가며 형제들에게 무시 받을 것이 뻔했다.
‘적어도 마법적 재능이라도 있었으면 가문에서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거늘…….’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망연자실할 일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100일 된 아기일 뿐이지 않은가?
‘어쩌면 재능이 아직 개화하지 않은 것일지도…….’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지크를 바라보며 제라드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려고 애썼다.
그런 남편의 심정을 아는지 옆에 있던 데이나가 등을 쓸어주었다.
반면 본처인 크리스티나는 남몰래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걱정 마시오. 난 포기하지 않을 거요.”
“무슨 뾰족한 방법이라도 떠오른 게냐?”
스승의 물음에 제라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아이부터 정해지는 선천적인 기질은 바꿀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니까요. 하지만…….”
제라드가 고개를 들어 눈을 빛냈다.
“시도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 아닙니까?”
“대체 뭘 하려고?”
“저희 아이가 마나 친화력이 없다고 하셨지요. 그러니…….”
제라드가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나와 친해지게 만들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 * *
사람들이 떠나가자 지크는 입맛을 다셨다.
‘가버렸네. 계속 마나를 주입해 줬으면 좋았으련만…….’
마력 흡수 스킬은 굉장히 유용했다.
쿨타임도 없어서 계속해서 쓸 수 있는 데다 원하면 On/Off로 켜두고 끌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아기 때부터 스탯을 올릴 수 있다니.
정말 말도 안 되게 효율적이었다.
‘그래서 계속 마력을 흡수하도록 설정해 놨는데 조금만 검사하고 돌아가 버리네. 아쉽게.’
재능 검사는 끝났다.
통역 스킬로 들어보니 마나 친화력이 없는 재능 없는 아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실은 자신이 마력을 잡아먹어서 생긴 현상이었는데도.
‘중요한 건 마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서 하루 스탯을 채워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전생을 넘어선 성장을 이룰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어릴 적부터 마력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 나이에.
‘흠, 고민이야. 고민…….’
유모가 주는 젖병을 빨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벌컥-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까 나갔던 제라드가 돌아왔다.
“가, 가주님 오셨습니까?”
“인사는 됐다, 헬렌. 마저 먹이도록. 난 그저 물건 하나 건네주러 왔을 뿐이니.”
‘물건?’
궁금한 찰나 제라드가 대뜸 물건 하나를 침대맡에 놓았다.
“고농도의 마력석이다. 이걸 지크 곁에 항상 놔두거라.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니 걱정 말고.”
“알겠습니다. 시중드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숙지하라 명하겠습니다.”
“그래.”
흡족한 미소를 지은 제라드는 지크를 한 번 안쓰럽게 쳐다보더니 그대로 나가 버렸다.
그러자마자 지크가 고개를 돌려 머리맡의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마력이 관련된 물건이라 하니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푸른 빛이 일렁이는 게 신비스러운 물건이네?’
아무래도 마력석이라는 물건을 곁에 두게 함으로써 마나 친화력이 부족한 자신의 체질을 바꿀 생각인 모양.
하지만 체질이 바뀌는 일은 없을 거다.
‘마력이란 마력은 내가 다 흡수할 테니까. 흐흐흐!’
[손아귀에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마력 흡수’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마력을 1 흡수하였습니다.]
[마력을 1 흡수하였습니다.]
[마력을 1 흡수하였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1 증가하였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1 증가하였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1 증가하였습니다.]
[2성 성취까지 남은 숙련도 8/100]
어김없이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지크의 입꼬리가 방긋방긋 올라갔다.
“누가 가주님 아들 아니랄까 봐. 가주님이 두고 간 물건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후후훗.”
유모가 오해하건 말건 지크는 상관하지 않았다.
당장은 마력 흡수에 여념이 없었으니까.
* * *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어느덧 12살이 되었다.
“지크, 어디 가니?”
“서고에 들를게요. 어머니.”
“또?”
이른 아침부터 공작가의 마법 서고에 들른다니.
누가 보면 부지런하다고 칭찬하겠지만 데이나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마법사가 될 수 없는 몸이라는 걸 이제는 알 때도 되지 않았니? 지크?’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아들의 눈을 보며 말할 수 없었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 저토록 열성적으로 노력하는데 어찌 그런 냉정한 말을 담을 수 있겠는가?
“그래, 알았다. 다녀오거라. 오늘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점심 전까지 나오는 것도 잊지 말고.”
“예. 걱정 마세요.”
어머니에게 인사한 지크는 흥겨운 걸음으로 서고에 도착했다.
문지기 역할을 하는 마법 구슬에 손을 얹자 지문 인식처럼 생체 반응을 읽는다.
[손아귀에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마력 흡수’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아니. 이건 흡수하면 안 되지. 잘못했다간 서고에 못 들어간다고.’
No를 선택한 지크는 가만히 마나가 자신의 생체 신호를 읽기를 기다렸다.
-지크 맥러플린. 확인되었습니다.
쿠그그긍.
두꺼운 철제문이 열리자,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마법 서고가 드러났다.
처음 온 사람이라면 놀라서 입을 벌리겠지만 지크에겐 처음이 아니었다.
‘아주 지겹도록 들락날락했지.’
12년이 흐른 세월 동안에도 지크는 여전히 서클을 만들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마나 친화력이 제로인, 마법사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
적어도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상태창.’
[이름 : 지크 맥러플린]
[꼬리표 : 판게아 대륙 환생자, 데칸 왕국 최고의 마법 명가, 공작가 막내, 사공자, 서자, 마나 친화력 제로, 마법에 무재능, 노력가, 책벌레, 12살, A급 헌터]
[근력 : 733 / 지력 : 722]
[순발력 : 743 / 체력 : 732]
[회복력 : 740 / 저항력 : 736]
[기본 스킬 : 통역, 해석, 룬 흡수]
[1차 각성 스킬 : 마력 흡수 (8성)]
[2차 각성 스킬 : ???]
[3차 각성 스킬 : ???]
[4차 각성 스킬 : ???]
[5차 각성 스킬 : ???]
[6차 각성 스킬 : ???]
[7차 각성 스킬 : ???]
[1차 각성 스킬 : 마력 흡수]
-성취도 : ★★★★★★★★☆ (8성)
-유형 : 액티브
-숙련도 : 295,502/300,000
-효과 : 감지한 마력을 흡수하여 스탯을 랜덤하게 증가시킵니다. 반경 7m까지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쿨타임 : 없음
-특이사항 : 하루에 1개만 스탯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스킬의 On/Off가 가능하며 원하는 범위만 흡수할 수도 있습니다. 성취도 9성 달성 시, 2차 각성 스킬이 개방됩니다.
여전히 마나는 쥐뿔도 다루지 못하는 몸이지만 그 대신 어마어마한 스탯 성장을 이뤘다.
전생의 경지 따위는 1살 때 이미 넘어섰다.
‘이 정도면 전생에선 A급 헌터 수준이려나?’
이곳에선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절대로 만만한 수준은 아니리라.
맨손으로 벽을 부술 정도였으니 탈 인간급은 된다.
12년 동안 쌓은 것치곤 많이 올랐다고 볼 순 없지만.
‘어쩌겠어. 하루에 올릴 수 있는 스탯의 한계가 정해져 있는데.’
그래도 이 속도면 20살이 되기 전에 S급 수준엔 도달할 것 같다.
SS급이나 SSS급은 무리겠지만.
‘마법이나 오러를 배우는 것보단 이렇게 스탯을 올리는 게 더 이득일지도?’
재능 검사에서 나온 결과와 달리, 이 몸은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단지 마력 흡수를 사용하다 보니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체로 오해받고 있을 뿐.
‘기회가 되면 나도 마법을 배우고 싶지. 하지만…….’
마력 흡수는 사용자의 마나까지도 빨아들인다.
흡수 범위를 지정할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의 범위만 조정될 뿐.
본신의 마력 또한 모조리 흡수해 버린다는 걸 그간의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신체에 마나를 쌓을 수 없는 몸이라는 뜻.
‘그런 마당에 어떻게 서클을 만들어? 불가능하지.’
모르긴 몰라도 스킬을 켜자마자 쌓아 놨던 서클의 진기를 죄다 빨아먹을 거다.
‘그럼 스스로 서클을 붕괴시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겠지.’
그런 면에서 마법을 배울 수 없는 몸이라는 점에선 무재능과 다르지 않다.
‘물론 마력 흡수만 안 쓰면 문제없이 서클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시스템의 힘이 너무도 강하다.
12살의 나이에 벌써 A급 헌터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는가?
앞으로 각성할 스킬도 6개나 남아 있었고.
그러니 무재능 컨셉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처음부터 재능 없는 척하길 잘했어. 덕분에 어릴 적부터 마력을 흡수할 수 있었으니.’
게다가 재능을 개화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렇게 마법 서고의 출입까지 허가받을 수 있었다.
무재능인 자신을 아버지가 끝까지 밀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아버지도 참…….’
적자건 서자건 상관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전히 마력석을 지원해 주는 아버지를 볼 때면 가끔 느껴지곤 한다.
전생에선 느껴보지 못한 부자의 정이.
‘지금은 받기만 하지만 나중에는 꼭 보답할게요, 아버지.’
효도를 약속한 지크가 책장으로 다가갔다.
소모되었던 책의 마력이 어느 정도 차올라 있었다.
“자, 그럼 오늘도 마력을 탈탈 털어가 보실까? 조금만 하면 9성을 찍고 2차 스킬을 개방할 수 있으니까.”
마력이 담긴 마법 책을 펼쳐 든 지크가 씩 웃으며 손을 갖다 댔다.
[마력을 3 흡수하였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3 증가하였습니다.]
8성의 경지에 이른 지크가 더 넓은 범위를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 * *
[스킬 ‘마력 흡수’의 성취도가 9성에 도달하였습니다.]
[마력 흡수의 감지 범위가 7m▶10m로 상향되었습니다.]
[2차 스킬을 각성하였습니다.]
‘드디어 각성했다! 2차 스킬!’
12년 만에 처음으로 각성한 스킬에 지크의 눈이 기대감으로 번들거렸다.
‘과연, 어떤 스킬이 나왔을까?’
각성한 스킬의 정보를 살피던 지크는 이내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스킬이었기에.
“지크 도련님!”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지크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랐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서고에 걸린 마법 시계를 바라본 뒤 서둘러 책을 덮었다.
쿠그그긍.
문을 열어보니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준 유모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도련님! 여기 계셨군요? 지금 당장…….”
“알아, 헬렌. 개도식(開導式) 때문에 그러지?”
여유롭게 웃은 지크가 앞으로 고갯짓을 했다.
“따라갈게. 앞장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