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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29화 (29/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29화

그레고르를 붙잡기 전.

제라드로부터 작전을 들은 달프레드는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실 친위대로 마탑을 공격해 불안하게 만들고, 그 타이밍에 피터를 이용해 칼리파 산맥으로 텔레포트를 유도한다라……. 허허, 곱씹을수록 괜찮은 작전이구나.’

그레고르를 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어 기댈 곳이 피터밖에 없게 한 것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칼리파 산맥이라는 위치 선정이 훌륭했다.

마법사들이 꺼리는 장소를 추천함으로써 그곳에 가야 할 명분을 제시한 셈이니까.

‘이 모든 게 제라드의 막내아들이 떠올린 작전이라니…….’

달프레드는 세월을 통달한 깊은 눈빛으로 지크를 바라봤다.

15살이 한순간에 떠올렸다기엔 믿기지 않는 치밀한 작전이었다.

‘과연 그 제자에 그 아들이란 말인가? 머리가 비상한 것이 아주 타고났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점.

그 점은 갓난아기 때부터 재능 검사에 관여한 자신이기에 확실히 안다.

‘그레고르와 손잡은 피터보다는 지크가 차기 가주로 적합할 텐데……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오직 서클의 개수만으로 후보의 위치가 정해지는 가문의 관례상 지크가 가주가 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그때 제라드가 곁으로 다가왔다.

“스승님. 준비되셨습니까? 피터가 마탑주에게 연락하려고 합니다.”

“준비되었다. 그레고르 그놈이 텔레포트 하는 순간, 구속구를 채우면 되는 것 아니냐?”

“예. 그런데 위험할 수 있으니 구속구는 제가 채우겠습니다. 스승님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뒤에서 지원해 주십시오.”

“알았다.”

지팡이를 들며 대비를 마치자, 제라드가 피터에게 시선을 줬다.

“시작하라.”

“예…….”

“긴장하지 말고. 그동안 나를 속인 것처럼 마탑주를 속이면 되지 않느냐? 가면을 쓰는 건 누구보다 잘하는 짓일 테니.”

“…….”

피터는 대답 없이 고개를 떨궜다.

마탑주와의 관계를 알게 된 아버지의 눈빛을 마주할 용기가 들지 않았다.

“지금 당장 연락해라. 왕실 친위대가 마탑을 두들기고 있다고 하니.”

“아, 알겠습니다.”

피터가 통신구로 그레고르를 끌어들이는 사이, 제라드는 구속구를 꽉 쥐었다.

‘그레고르는 반드시 걸려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치밀한 작전이니까.’

이윽고 통신이 끝나자 피터가 제라드를 돌아봤다.

“끄, 끝났습니다. 지금 온다고 합니다.”

“너는 거기 서서 대화로 시선을 끌어라. 혹시나 위험할 수 있으니 지크는 좀 더 물러나 있고.”

지크가 끄덕이며 멀찌감치 물러섰다.

지정한 좌표에는 피터와 제라드, 달프레드만이 대기하고 있었다.

‘과연. 녀석이 지정한 좌표로 올까?’

만약 조금이라도 좌표를 바꿔서 온다면 대응하기 곤란해진다.

구속구를 채워 곧바로 마법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으로선 효과적이다.

‘여차하면 내가 나설 수도 있고.’

지크는 가만히 상황을 관망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마력이 휘몰아쳤다.

피터가 말한 좌표에 그레고르가 나타난 것이다.

“마탑주님! 여기입니다!”

“피터. 못 본 사이에 많이 야위어졌…….”

철컥-!

피터가 시선을 끄는 사이, 제라드가 구속구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잡았다. 그레고르, 이 개새끼.”

사악한 웃음을 짓는 제라드의 모습에 그레고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함정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으니까.

그레고르의 독기어린 눈이 피터를 향했다.

“피터, 이 새끼! 날 배신했구나!”

애써 시선을 피하는 피터를 보니 더욱더 확실해졌다.

자신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어이가 없구나. 내가 저까짓 놈을 믿었다니…… 응? 잠깐. 녀석은 마나의 서약이 걸려 있잖아?’

함정에 당한 게 어이없었지만 그레고르가 한 치의 의심도 안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피터가 자신을 배신하는 순간, 서클이 붕괴하도록 서약이 걸려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멀쩡한 모습이지?’

지금쯤 고통을 호소해야 마땅하건만, 피터는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 해서든 제라드를…….’

그때 제라드의 옆으로 보기 싫은 얼굴이 보였다.

“왔느냐, 제자야?”

“당신도 있었어……?”

제라드뿐만이 아니라 9서클인 달프레드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니.

이렇게 되면 탈출밖에는 답이 없다.

정면 승부는 꿈도 못 꾸는 화력이었다.

“쓸데없는 반항은 하지 말거라. 이미 구속구가 채워져 있어서 하고 싶어도 못 하겠지만.”

양 손목을 감싼 구속구를 내려다본 그레고르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마법사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데는 이만한 물건이 없다.

마력을 발산하는 즉시 구속구가 스펀지처럼 흡수할 테니까.

그 사실을 그레고르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저들은 모른다.

구속구 따위로는 자신을 얽맬 수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지. 발루두크 님이 알려주신 방법을 쓰는 수밖에.’

미소를 띤 그레고르의 손에서 어둠의 마력이 끓어올랐다.

“Leperseid schnab sitotni nightier(연기처럼 사라져라).”

별안간 들린 악마어에 모두가 놀라는 순간.

그레고르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툭!

구속구가 떨어졌지만 쳐다볼 새는 없었다.

제라드가 부릅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스승님! 저기!”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그레고르가 달리고 있었다.

60m는 떨어진 지점.

즉시 블링크 마법을 쓰며 쫓아가 봤지만, 거리를 좁히기엔 모자란 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녀석이 향하는 곳이다.

“스, 스승님.”

“알고 있다.”

그레고르를 쫓던 두 사람의 얼굴에 난처함이 떠올랐다.

놈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드래곤의 유적.

가까이 갈수록 유적의 마력이 서클을 뒤흔든다.

그건 제라드도, 9서클의 달프레드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그레고르를 미친놈 보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고통을 느끼는 건 녀석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끄으으으, 으으아아아아!”

악바리처럼 고통을 견디며 유적의 중심부로 뛰어가는 그레고르의 모습은 실로 존경스러울 만했다.

서클이 부서지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살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였으니까.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걸까?

제라드 역시 놓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턱!

뒤에서 잡아끄는 손길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스승님?”

“여기까지다. 더 이상 다가가면 서클이 무너지고 말게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그렇다고 녀석이 도망가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순 없잖습니까!”

“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어. 그렇지 않으면 네가 한평생 지켜온 서클이 무너질 테니까.”

마법사에게 있어서 서클은 일평생을 모아온 재산이자 목숨줄.

수십 년간 심장에 꾸준하게 쌓아온 마력의 진기를 한순간에 잃어버린다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마법을 쓰지 못할뿐더러 폐인으로 전락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마법사들이 드래곤의 유적을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제라드가 당할 수도 있는 현실이었고.

“젠장! 젠장!”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소리쳤다.

코앞에서 놈을 놓쳐야 한다는 현실이 분하고 원통했다.

‘정녕 이대로 놈을 놓쳐야 하는가…….’

한평생을 마법에만 매진한 제라드에게 서클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법.

국왕의 엄명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서클을 희생하면서까지 잡을 용기는 없었다.

‘제길. 설마 녀석이 구속구에 얽매이지 않는 마법을 쓸 줄이야.’

모든 마법사는 구속구 하나에 꼼짝을 못 한다.

그건 그레고르도 마찬가지일 거라 여겼지만 악마어를 사용한 고대의 마법을 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이 이번 작전의 패인이었다.

“빌어먹을!”

아쉬움이 담긴 일갈을 터트리는 그때.

제라드의 눈동자가 별안간 휘둥그레졌다.

그레고르를 향해 뛰어가는 한 사람을 보았기에.

“지, 지크!”

“지크?”

달프레드도 놀란 눈으로 바람처럼 지나치는 한 사람을 바라봤다.

지크가 그레고르를 쫓아 유적의 중심부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멀쩡한 몸놀림으로.

그 순간 제라드와 달프레드는 동시에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구나. 지크는 서클이 없어서 유적의 영향을 받지 않아.’

그 사실을 잊고 있던 건 그레고르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마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듯 뛰어오는 지크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으니까.

‘뭐, 뭐야? 저 녀석은?’

마나를 못 느끼는 몸이라 서클도 만들지 못했다는 건 그레고르도 익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저렇게 평온한 얼굴로 자신을 쫓아올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달려오는 속도가 장난 아니잖아? 마치 오러를 쓰는 것처럼.’

오러 유저도 꺼리는 곳이 이곳 드래곤의 유적이다.

그런데 지크는 일반인이라곤 할 수 없는 속도로 한순간에 거리를 좁혔다.

수십 미터는 벌어졌던 간격이 몇 초 사이에 줄어들었다.

그레고르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

평범한 범인이 어떻게 저런 주파력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황급히 서클의 진기와 생명력을 소모하여 악마의 술법을 사용했다.

“Lett aitsch tizuo cesi(쏟아지는 가시)!”

그러자, 허공에서 수십 개의 검은 칼날이 튀어나와 지크를 덮쳤다.

“지크!”

놀란 제라드가 당장이라도 뛰어갈 듯 몸을 움직였으나 달프레드의 저지로 막혔다.

“이거 놓으세요, 스승님!”

“잠깐 진정하고 저걸 보거라!”

지크를 보던 제라드가 순간 놀라움에 눈을 떼지 못했다.

참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생채기라곤 없는 몸으로 지크가 그레고르를 제압했으니까.

“커억!”

발이 걸려 볼썽사납게 넘어진 그레고르의 등 위로 지크가 올라탔다.

그러자 그레고르는 바위에 깔린 벌레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이게 15살의 무게라고?’

고작 15살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힘이 그레고르를 짓눌렀다.

내심 놀랐지만 그레고르는 그보다도 다른 것에 더 충격을 받았다.

검은 칼날에 난도질당할 거라 여겼던 상대가 멀쩡하다 못해 미소까지 지으며 자신을 누르고 있었으니까.

“어딜 도망가려고.”

“어, 어떻게 한 거냐? 내 마법을 어떻게…….”

“질문은 됐고, 잠이나 자라.”

지크는 그대로 그레고르의 면상에 주먹을 먹여 기절시켰다.

* * *

그레고르를 붙잡은 이후로, 맥러플린 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많은 백성과 귀족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왕의 신임을 얻었다.

알렉스로 인해 추락했던 가문의 위상이 다시 드높아졌다는 건 가문에 속한 사람이라면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국왕이 내린 보상이었다.

“제라드 맥러플린은 적국의 마법사와 내통한 반역자, 그레고르 판테인을 잡은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므로, 상으로 영토를 내리고 대공(大公)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국왕 전하.”

대공은 공작 중에서도 높은 작위로, 국왕 다음으로 권력이 강한 자리였다.

그만큼 국왕이 제라드의 공을 높이 사고 인정한다는 뜻.

일부 왕국에선 대공이 국왕과 다름없는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으니, 얼마나 높은 직위를 하사받았는지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그레고르를 잡아 오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주기로 약속했다더니 정말로 엄청난 보답을 주셨군.’

비록 아버지의 신분 상승으로 자신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은 없었지만, 지크는 만족했다.

사건 해결에 일조함으로써 국왕의 눈도장을 찍은 데다 가문을 이 지경으로 만든 배후를 붙잡았다.

더구나 누구보다 존경해마지 않는 아버지의 명예가 드높아지지 않았는가?

‘그러면 된 거지. 가문이 부흥하고 명예를 되찾고, 복수를 마무리하고. 원하는 걸 모두 끝냈는데 더 이상 바랄 게 뭐 있겠어?’

누가 보면 욕심도 없냐고 칭찬할지 모르겠지만 지크는 정말로 다른 보상이 필요 없었다.

보상이라면 이미 받았으니까.

【메인 퀘스트 : 데칸의 마탑주를 제압하라】

└데칸의 국왕이 제라드 맥러플린에게 비밀리에 부탁하였습니다.

└적국과 내통하고 반역을 저지른 마탑주 그레고르 판테인을 제압하십시오.

└제압에 도움을 주기만 해도 성공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조건>

└그레고르 판테인 제압

<보상>

└스킬 ‘아공간’ 획득

[그레고르 판테인 제압 완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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