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30화
‘하아, X됐다.’
사형대에 올라가는 사형수의 기분이 이러할까?
제라드에게 불려가는 피터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어떤 형벌을 내릴지 두려웠기에.
똑똑-
“아버지…… 접니다, 피터.”
“들어오거라.”
집무실 안에는 제라드가 창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주변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피터는 제라드가 입을 열 때까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피터.”
침묵 끝에 아버지가 운을 뗐다.
“나는 네가 참으로 좋았다. 가문의 맏아들로서 마법적인 재능을 이어받았을 땐 정말이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지.”
칭찬처럼 들리지만 과거형이다.
그래서인지 피터는 웃을 수 없었다.
“내 뒤를 잇는 후계자가 탄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단다. 그런 생각으로 더 큰 비상을 하라고 마도 수련을 보낸 것이었고. 그런데…….”
창밖을 보던 제라드가 피터를 돌아봤다.
그 눈빛엔 그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경멸이 담겨 있었다.
“8년 만에 돌아온 자식이 마탑주의 하수인이 되어 있을 줄이야.”
“아버지, 저는…….”
“변명이라면 듣기 싫다. 쓰레기보다 못한 자식 같으니.”
“…….”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것이냐? 어떻게 그레고르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동생인 지크를 팔아넘기려고 계획한 것이야?”
“죄, 죄송합니다.”
피터는 구태여 변명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기색을 보여야 했기에.
“마음 같아선 서클을 부숴버리고 알렉스처럼 가문에서 내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
“네가 협력해 준 덕분에 역으로 그레고르를 잡을 수 있었다. 그 점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지. 그건 인정하마.”
“가, 감사합니…….”
“고마워할 것 없다. 그렇다고 네 죄를 사해주겠다는 뜻은 아니니.”
“그, 그럼……?”
“네 공을 인정하여 적어도 서클은 폐하지 않으마. 여태 해왔던 것처럼 마법을 수련해도 좋다. 그 대신, 변방으로 나가 있거라.”
“……!”
피터가 놀란 눈으로 침묵했다.
역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동생을 사지에 넘기려던 자식과 한 지붕에서 지낼 수야 있겠느냐? 난 그럴 수 없다고 본다.”
“하, 하지만 저는 지크랑 개인적으로 화해를…….”
“지크와 화해했다고 해도 소용없다. 내가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이니.”
“…….”
“변방에 거처를 마련해 줄 테니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거라. 당연하지만 후계자 시험도 없다. 너에겐 후계자의 자격조차 아깝다.”
“아…….”
피터가 허망함에 입을 벌렸다.
서클은 지켰지만, 가문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차기 가주가 목표였던 그로선 꿈도 희망도 없는 처분이었다.
“서클을 폐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거라. 적어도 폐인이 되어 시골에 처박힌 알렉스보단 나은 처지이니. 알겠느냐?”
“…….”
“왜 대답이 없느냐? 내 결정에 불만이라도 있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가,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젠 아버지라 부르지도 말거라. 이 시간 이후로 부를 일도 없겠지만.”
“…….”
절망감에 피터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아들을 쳐다보는 제라드의 눈빛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 * *
메인 퀘스트가 떠오른 건 제라드가 국왕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데칸의 마탑주를 제압하라고?’
갑자기 뜬 퀘스트에 놀라기도 했지만, 지크는 그보다 보상에 눈길이 갔다.
‘보상이…… 아공간?’
아공간은 전생의 헌터들 중에서도 극소수만 가지고 있던 진귀한 스킬이다.
한마디로 각성으로 얻을 수 있는 헌터 고유의 능력인 셈.
‘그런 대단한 걸 고작 퀘스트로 얻을 수 있다니.’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눈앞에서 수락 메시지가 깜빡였지만 안 할 이유가 없다.
‘뭐, 그것 때문에 그레고르를 제압한 건 절대 아니지만.’
지난 일을 상기하던 지크는 스탯창을 열어봤다.
[이름 : 지크 맥러플린]
[꼬리표 : 판게아 대륙 환생자, 데칸 왕국 최고의 마법 명가, 공작가 막내, 사공자, 서자, 마나 친화력 제로, 마법에 무재능, 노력가, 책벌레, 15살, SS급 헌터, 오러 마스터 하급]
[근력 : 2,666 / 지력 : 2,579]
[순발력 : 2,678 / 체력 : 2,690]
[회복력 : 2,646 / 저항력 : 2,588]
[기력 : 11,350]
[기본 스킬 : 통역, 해석, 룬 흡수, 오러 운용, 오러 주입, 오러 블레이드, 아공간]
[1차 각성 스킬 : 마력 흡수 (9성)]
[2차 각성 스킬 : 마력의 주인 (9성)]
[3차 각성 스킬 : 마법 흡수 (9성)]
[4차 각성 스킬 : 마법 흡수의 달인 (5성)]
[5차 각성 스킬 : ???]
[6차 각성 스킬 : ???]
[7차 각성 스킬 : ???]
기본 스킬 목록에 보상으로 받은 아공간이 보인다.
[기본 스킬 : 아공간]
-효과 :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특이사항 : 물건 이외에 살아 있는 생물은 넣을 수 없습니다. ‘아공간 소환/해제’ 시동어를 통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력 스탯에 따라 공간의 면적이 늘어납니다.
‘원래는 1성이라고 붙어 있어야 하는데 퀘스트로 얻은 능력이라 그런지 성장시킬 순 없네. 하긴 그러면 완전 밸붕이겠지.’
이미 밸런스 붕괴로 느껴질 정도의 성장 속도를 보였지만 자신은 죽기 직전의 순간 특전을 받지 않았던가?
퀘스트도 그 보상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 한번 사용해 볼까? 아공간 소환.’
시동어를 말하자 눈앞의 공간이 찢어지며 손을 넣을 만한 구멍이 생겼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아공간이란 말이지?’
지크가 시험 삼아 공간 속에 물건들을 넣어봤다.
크기에 상관없이 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가던 물건들은 방 하나의 면적을 채우고 나서야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꽤 많이 들어가네? 창고 대용으로 쓰기에 딱 좋겠어. 지력이 오를수록 면적이 오른다고 하니 나중에는 더 넣을 수도 있겠고.’
이 작은 구멍으로 어떻게 다 들어가는지 놀라웠지만 빼는 것도 신기했다.
아공간에 손을 넣고 원하는 물건을 생각하기만 하면 손에 잡혀서 빠져나왔으니까.
그 모습은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의 눈에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건 아공간이 아니냐? 신의 후예는 아공간도 쓸 수 있단 말이냐?
‘응. 어쩌다가 쓸 수 있게 됐어. 근데 왜 그렇게 놀라?’
-아공간은 우리 드래곤도 쓰지 못하는 고차원의 마법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리치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었지.
‘그러니까 이게 악마의 마법이라고?’
-그렇다. 그런데 내 지식으로 아공간은 통신구 두세 개를 넣을 정도의 크기로 아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넣을 수 있는 거지?
‘글쎄? 내가 대단해서가 아닐까?’
일부러 대답을 피한 지크는 그보다 카르볼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도 쓰지 못하는 능력이라니.
‘하긴, 쓸 수 있었으면 아공간에 넣어놨겠지. 보물창고가 아니라.’
생전의 보물들을 석실에 보관한 걸 보면 카르볼의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물건을 담기엔 유용하겠어.’
언제 한 번 드래곤의 유적에 있는 물건들을 깡그리 담아야겠다고 여기는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지크, 안에 있느냐?”
피터였다.
“들어오세요.”
방으로 들어오는 피터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초췌해 보였다.
‘보아하니 아버지한테 깨졌네.’
눈빛에선 자신을 향한 배신감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먼저 약속을 깨고 아버지한테 모든 걸 밝혔으니 그런 것이리라.
“지크, 네가 아버지에게 나와 마탑주와의 관계를 밝힌 것에 대해선 더는 묻지 않겠다. 이제 와서 따지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니.”
“그럼 왜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털썩-!
피터가 별안간 지크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를 설득해 줄 수 없겠니? 내 이렇게 부탁하마.”
“다짜고짜 뭘 설득해달라는 거예요?”
“나를 후계자 시험에서 제외하겠단다. 게다가 당장 짐을 싸라더구나. 가문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였어.”
“그러니까, 형님이 후계자에 오를 수 있도록 아버지를 설득해달란 말씀이세요? 저를 실험체로 팔아넘기려던 형님을?”
“어, 어떻게 안 되겠냐?”
“사람이 염치가 있지. 그게 가능할 거라 보세요? 형님도 아시잖아요. 아버지는 이미 결정한 사항을 번복하지 않으신다는 걸.”
“아, 알지. 아니까 이렇게 부탁하는 거 아니겠냐?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너라면 분명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
“만에 하나 설득한다고 해도, 후계자 시험에서 저를 이길 자신은 있고요?”
“…….”
피터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서클의 성취에선 자신이 월등히 높지만 그렇다고 지크를 상대할 자신은 없다.
마법을 차단해 버리는 인간을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그렇다고 무력으로 당해낼 수도 없다.
테오와의 대련을 생각하면 일 합도 버티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어.’
달라질 후계자 시험이 어떨지는 몰라도 자격만 있으면 기회는 오는 법.
어쩌면 힘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크는 그런 생각을 읽었다는 듯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혹시 시험에서 저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아, 아니지. 아니지만, 어쨌거나 내가 가문에서 쫓겨나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걸 제가 왜 막아야 하죠?”
“그, 그럼 내가 이렇게 버려져도 좋다는 말이냐? 너랑 계약한 관계가 아니더냐?”
서로 계약한 관계이니 자신 좀 챙겨달란 뜻이었지만, 지크는 냉정히 거부했다.
“저라고 형님에게 서운한 감정이 없는 줄 아세요? 저를 죽이려던 사람인데.”
“…….”
“그냥 죗값이나 받고 떠나시죠. 그게 깔끔할 거 같은데요.”
“그, 그럼 보상이라는 건? 마탑주를 잡도록 협조하면 내가 좋아할 만한 보상을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이거예요. 서클을 폐하지 않는 거.”
“뭐?”
“사실 아버지는 일이 끝나면 피터 형님을 폐인으로 만들려고 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서클을 폐하지 않도록 간신히 마음을 돌려놨죠. 이미 아버지를 설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
“그런 마당에 후계자 자격까지 달라고 하면 그게 통하겠어요? 서클을 지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셔야 합니다.”
맞는 말이었지만 피터는 실망한 기색이었다.
기대했던 보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요? 보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럼 지금이라도 말할게요. 아버지에게 피터 형님의 서클을 폐해도 좋다고…….”
“아, 아니다! 누가 싫다고 했느냐? 난 만족한다. 더할 나위 없는 보상이야.”
폐인이 된 알렉스보단 확실히 낫다고, 그렇게 자기합리화할 수밖에 없는 피터였다.
“오늘 짐 싸고 가라 하셨다고요?”
“그래…….”
“그럼 이렇게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겠네요.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피터 형님. 타지 생활에 적응 잘하시고요. 뭐, 마탑에서 8년을 보낸 분이니 어련히 잘 적응하시겠지만.”
“…….”
뼈 있는 말에 피터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 미안하다.”
“뭐가요?”
“너를 팔아넘기려고 한 거. 그건 백번 생각해 봐도 내 잘못이 맞아.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는데…… 어쨌거나 할 말이 없다.”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해봤자 소용없어요. 형님의 연기 실력이 얼마나 출중한지는 잘 알거든요.”
“연기가 아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리고 한평생 너를 배신할 수 없는 몸인데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느냐?”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럼 타지에 가서도 제 능력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아시겠죠?”
“알지. 내가 그걸 모를까 봐?”
기대한 대답에 지크가 피식 미소 지었다.
서클이 중하다면 어련히 알아서 처신하리라.
“변방에 잠시 머물러 계세요. 때가 되면 다시 올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얌전히 계세요.”
“저, 정말이냐?”
“그럼요. 본성은 나쁘신 분이 아닌 것 같아서 선처해 드리는 겁니다.”
“고, 고맙다! 네 연락을 기대하고 있으마!”
“예. 살펴 가세요.”
“아, 그리고 아버지께서 부르신다.”
“아버지가요?”
눈을 동그랗게 뜬 지크는 피터와 헤어진 후 아버지에게 향했다.
똑똑-
“아버지.”
“지크? 어서 들어오거라.”
제라드는 활짝 웃으며 지크를 반겼다.
피터를 마주할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이거 먼저 받거라.”
제라드가 내민 것은 나비 모양의 브로치였다.
“네가 준 물건이 반역자를 드러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어. 정말 고맙다.”
“하하, 뭘요.”
오늘따라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생각한 지크였다.
왜 자신을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크.”
“네, 아버지.”
진지한 표정을 짓던 제라드가 평소답지 않게 뜸을 들였다.
“너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다…….”
“뭔데요?”
“그때는 어떻게 한 거냐?”
“그때라뇨?”
“그레고르를 쫓았을 때 말이다. 분명 녀석이 쓴 흑마법이 너에게 적중했는데도 상처 하나 없더구나.”
‘아…… 보셨구나.’
내심 당황한 지크였지만 되도록 침착함을 가장했다.
당장 뭐라도 변명거리를 생각해내야 한다.
‘어떡하지? 뭐라고 해야…….’
그때 제라드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