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46화
제라드는 사단장실에서 믿을 수 없는 보고를 들었다.
“뭐라? 다시 말해 보거라. 지크가 누구를 붙잡아?”
“그게……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만 검은 달의 수장을 붙잡았다고…….”
제라드가 보고하는 달란트를 빤히 쳐다봤다.
농담이라도 한다고 여기는 모양.
하지만 여태껏 호위 마법사가 농담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검은 달의 수장을 붙잡았다고 치자. 그래서 그놈은 어떻게 했지?”
“8서클이나 되는 위험한 놈이라고 말씀하시기에 즉시 구속구를 채우고 구속 철창에 가둬놨습니다.”
“지크는 어디 있느냐? 직접 와서 보고하면 될 일을.”
“바쁜 일이 있다며 먼저 가버렸습니다. 가주님께 검은 달의 수장을 잘 좀 전달해 달라는 말과 함께…….”
“허허.”
당사자가 나타나기는커녕 검은 달의 수장인지 아직 확실치 않은 인물을 위험인물이랍시고 던져주고 가버리다니.
제라드가 황당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 녀석이, 적어도 무슨 사정인지는 말해주고 가야지 원…….”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따로 사람을 두고 가셨거든요.”
“사람? 누구?”
“브라이언트 백작과 그 여식입니다.”
“브라이언트 백작이라고?”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너무도 뜬금없는 인물이 튀어나와서다.
브라이언트 가문은 마법 가문이긴 하지만 명가라 불릴 정도의 영향력은 없었다.
소위 말해 크게 신경 쓸 것 없는, 약하디약한 세력의 가문.
그런 가문이 지크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단원 중에 브라이언트 백작의 여식이 있었지. 메리 브라이언트라고.’
석 달 전에 입단했던, 특출날 것 없는 실력의 여성 단원으로 기억한다.
“자세한 사정은 그분들에게 들으라고 지크 도련님이 말씀하시고 가셨는데…… 어쩌시겠습니까?”
“일단 안으로 들이거라.”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어보겠다.
그런 생각으로 기다리자, 잠시 후 달란트가 두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맥러플린 대공 각하. 저는 루이스 브라이언트 백작이라고 합니다. 여기 있는 아이는 마법사단 단원이자 제 딸이고요.”
“안녕하십니까, 사단장님. 메리 브라이언트입니다.”
“네가 메리라고?”
제라드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을 보며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아는 메리 브라이언트는 굉장히 평범한 얼굴이었기에.
제라드의 눈길을 읽었는지 메리가 죄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단장님이 아시던 얼굴은 제 진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형상 변형 스크롤로 바꾼 가짜였습니다.”
“뭐라? 그럼 얼굴을 속이고 궁정 마법사단에 입단했단 말이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두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지크 도련님과의 관계는 물론 지금의 상황까지도.”
“당장 말해 보거라.”
메리는 차분히 그간 벌어진 일들을 설명했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난 괴한에 의해 아버지가 납치당한 일.
납치범의 협박에 못 이겨 얼굴을 속이고 마법사단에 입단한 일.
마법사단의 실세인 지크를 꼬드기기 위해 약혼자가 되어달라고 거짓말을 한 일.
괴한이 유인한 지크를 죽이고 그의 얼굴 행세를 하며 마법사단에 입단할 계획이었다는 것까지도.
듣는 내내, 제라드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지크가 위험할 뻔했다는 사실에 두 눈이 부릅떠졌다.
분통을 터트리고 싶지만 애써 참는 듯한 기색.
하기야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위험할 뻔했다는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랴?
그걸 모르지 않기에 메리의 목소리는 기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지요.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괴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지크 공자님을 위험에 빠트릴 뻔했으니까요……. 그 일은 정말이지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후우……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느냐?”
“지크 공자님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 머리도 똑똑하셨지요. 괴한의 수작에 걸려들지 않고 역으로 이용해 배후를 추적해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검은 달이라는 조직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검은 달의 수장을 제압해 갇혀 있던 저희 아버지까지 구해주셨습니다. 지크 공자님은 저와 가문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냐는 듯 제라드가 루이스 백작을 바라봤다.
“제 딸의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지크 공자가 나타나서 저를 지하 감옥에서 풀어줬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갇혀 있던 오두막의 위치도 말할 수 있습니다.”
루이스 백작의 얼굴에선 한 치의 거짓도 읽을 수 없었다.
정말로 도움을 받은 듯 고마워하는 얼굴이었다.
“위치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그래서 이 일을 꾸민 놈들이 검은 달이라는 암살조직이다?”
“예. 하지만 그 배후에 발루두크라는 12인의 선구자가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발루두크?”
요즘 들어 부쩍이나 자주 듣는 이름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마탑주 그레고르의 배후에도 발루두크가 관여되어 있다.
“확실히 발루두크가 연관된 일이냐?”
“증거는 없지만, 검은 달의 수장이 지크 공자님에게 실토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녀석들이 무엇을 꾸미는지도요.”
“무엇을 꾸미고 있지?”
“왕실에 잠입시킨 첩자와 접촉해 독약을 먹이려는 게 전반적인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궁정 마법사단의 실세로 위장하려던 것도 왕실 내부에 드나들기 위해서였고요. 아무래도 왕실에 접근하려면 궁정 마법사단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어야 하니까요.”
제라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달란트의 눈까지도.
“그럼 독약을 먹여서 왕실의 누군가를 암살하려 한다는 말이냐? 여태 벌어진 일들이 그것을 위한 작전이었고?”
“그렇게 사료됩니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
하지만 증거가 눈앞에 있었다.
여기 있는 브라이언트 가문도, 감옥에 가둬놓은 검은 달의 수장도.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군.”
궁정의 인사를 암살하려 한다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궁정을 보호해야 할 마법사단으로서도 한 귀로 흘려선 안 되는 위협이었고.
게다가 그 배후에 발루두크까지 있다고 하니 이대로 좌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중요한 사항을, 지크는 왜 직접 전달하지 않은 거지?”
“지크 공자님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자리를 뜨셨습니다.”
“중요한 일?”
메리가 순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 망설임을 읽은 제라드가 짐짓 근엄한 눈빛으로 물었다.
“지크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그게…… 좀 더 나중에 말하라고 하셨는데…….”
“아는 것이 있으면 얼른 말해 보거라.”
메리가 한숨을 쉬더니 포기한 듯 입을 열었다.
“지크 공자님은 또 다른 단서를 추적하러 가셨습니다.”
“또 다른 단서? 그게 뭐지?”
“검은 달의 수장이 독약의 출처에 대해 실토했거든요.”
“독약의 출처?”
침묵을 지키던 메리가 잠시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극독의 선구자…… 녹스 베노마이어를 만나러 간다고 했습니다.”
쾅-!
“뭐라?”
테이블을 친 제라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극독의 선구자, 녹스 베노마이어.
그는 12인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 * *
녹스는 12인의 선구자 중에서도 다소 음침한 편이다.
마법사가 아니라 암살자에 더 걸맞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고.
하지만 마법사나 암살자보다는 스스로 연구자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이런 골방에 틀어박혀서 실험실의 쥐처럼 일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이었고.
“거기, 조심히 다루거라. 네놈 전 재산을 털어도 독에 들어간 재료 하나 구하기 힘들 테니까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용액을 배합하던 조수에게 주의를 주던 녹스는 다시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극독의 선구자라 불리며 독 마법에 관해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자부하는 그였기에 자존심이 남달랐다.
괜히 천재가 아닌 듯 남다른 집중력을 보이기도 했고.
다만, 그는 조금 뒤틀린 성격의 소유자였다.
챙그랑!
“아, 죄, 죄송합니다! 시, 실수로 그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음에도 조수가 플라스크를 깨트렸다.
바닥에 질질 흐르는 용액을 확인한 녹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 이름이 뭐냐?”
“베, 베인입니다.”
“성은 없냐?”
“……평민입니다.”
“가족은?”
“아, 아내와 세, 세 살 된 딸 아이가 있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호구조사에 베인이 오들오들 떨었다.
그도 바보가 아니기에 녹스가 얼마나 화났는지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벌어질 일까지도.
“네놈 딸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아내까지도.”
“제,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곧바로 무릎을 꿇은 베인이 두 손을 싹싹 빌었다.
큰돈 만질 수 있다고 자원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재 그는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
자신은 그렇다 쳐도 가족을 구하기 위해선 두 손 두 발 빌어야 한다.
하지만, 녹스는 이미 결정한 사안을 번복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가족을 만나러 가거라.”
“커어억! 커어어억!”
갑자기 숨이 막히는지 발악하던 베인이 시뻘게진 얼굴로 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후 코와 눈구멍 아래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베인이라 불린 평민은 그렇게 죽었다.
자신도 언제 독에 당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에반.”
“예!”
“이 새끼 치워라.”
“알겠습니다!”
에반이라 불린 사내가 재빨리 시체를 치웠다.
이미 숱하게 겪어본 일이라 움직임이 능숙했다.
물론 동료가 죽은 건 안타까웠지만 자신도 이곳에 붙들려온 평민이었기에 신경 쓸 처지는 아니었다.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 폭군의 말에 귀를 기울일 따름이다.
녹스는 평민의 죽음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 다시 독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테이블에 놔뒀던 통신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으음? 발루두크가 무슨 일로?’
잠시 인상을 쓰던 녹스는 번쩍이는 통신구를 두들겼다.
-독 제조는 잘하고 있는가?
“물론이죠. 설마 그거 물어보시려고 연락한 건 아니실 테고. 무슨 일입니까?”
-경고하려고 전화했네.
“경고……요?”
녹스로선 생소한 말이었다.
9서클이자 12인의 선구자 중 서열 7위인 자신이 경고받을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서열 2위인 발루두크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순 없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말씀하시죠.”
-말록과 연락이 안 되고 있네. 꼬리를 잡혔을 가능성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운 거겠죠. 8서클인데다 암살단의 수장이나 되는 놈이 설마 꼬리를 잡혔겠습니까?”
-그래도 조심하는 편이 좋지. 그레고르도 잡혔고 왕국의 첩자들도 일부 드러난 상황이야.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이럴 때일수록 철두철미해야 하네. 가뜩이나 자네가 독약을 건네준 상황이지 않은가? 독의 출처가 자네라는 게 밝혀지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야.
“그거야 그렇지만…… 지금 중단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요?”
-자네와의 연관성이 밝혀지는 것보단 나은 일 아닌가? 그러니 뒤탈 없이 정리하고 나오게. 계획은 한동안 미뤄야겠어.
“…….”
알비츠 소속인 녹스가 삼왕자의 도움으로 데칸에 잠입한 것도 3개월 전이다.
그동안 독 제조를 위해 평민들을 납치해 조수로 부리며 작전을 실행할 날만을 기다려왔지 않은가?
‘그런데 그 모든 걸 이제 와서 허물어 버리겠다고?’
녹스의 얼굴에 불만이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철두철미해도 너무 철두철미하다.
“지금 정리하면 다음 계획은요? 수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때로는 물러설 때도 알아야 하는 법.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걸 망치는 것보다는 신중을 기하는 게 더 나은 길이지.
“…….”
-그러니 정리하게. 최대한 빨리.
그것으로 통신이 끊기자, 녹스의 이맛살이 와락 구겨졌다.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 이제 와서 나더러 정리하라고? 나이가 들더니 겁만 늘었구나!”
불만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계획의 설계자인 발루두크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법.
녹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움직여야 했다.
파직!
파지직!
통신구란 통신구는 전부 박살 낸 뒤, 제조 중인 약병들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이윽고 쓰레기통에 마력을 가해 완전히 증거를 인멸시켰다.
이제 남은 증거는 하나뿐.
밖에 세워둔 평민 부하들이다.
“에반. 부하들을 모두 소집하거라.”
“저기, 녹스 님…… 그보다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손님?”
손님이란 물건을 배달하는 자를 가리키는 그들만의 용어.
현시점에서 손님은 검은 달의 부하들밖에 없다.
‘독약을 가져간 게 얼마 전인데 또다시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녹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에반에게 물었다.
“어떤 손님이냐?”
“그림자의 달이 찾아왔습니다.”
“뭐?”
그림자의 달.
이는 다름 아닌 검은 달의 수장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