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97화
“이거 제 소원 쓰는 거 맞죠……? 오히려 군주님의 소원처럼 느껴지는데…….”
“음? 티 났는가?”
“엄청요.”
“하하하핫! 이거 부정할 수 없구만. 자네 말이 맞아. 솔직히 말해 제자로 들어오라고 제안하고 싶은 건 내 쪽이거든.”
솔직하게 인정한 크리오스가 약간의 고민 끝에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소원은 쓰지 않고 내 제자로 들어오는 걸로. 제자가 되어도 소원을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지.”
“유효 기간은요?”
“없네. 원할 때 말만 하게. 내 제자가 되기만 한다면 뭐든 하나 들어줄 테니.”
‘제자로 들어오면 소원을 들어준다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기껏 얻은 소원을 제자가 되는 걸로 써먹기엔 아깝지 않은가?
상대가 저렇게 안달 나 있는데.
“좋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스승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뭐? 하하하핫! 성격 참 확실해서 좋구만!”
크리오스가 몇 번이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잭이 불만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형.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말 걸지 마.”
방으로 돌아가는 길.
잭은 마주친 동생에게 날이 선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공자인 루인 라인하르트는 그런 형이 어쩐지 낯설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말 걸지 말라고 했잖아! 저리 꺼져!”
잭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평소답지 않은 행동.
루인의 얼굴에 걱정이 스며들었다.
‘아버지한테 혼나기라도 했나?’
철혈의 군주를 아버지로 둔 잭과 루인은 당연하게도 매일 같이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하여 아버지에게 꾸중 듣는 날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잭은 저렇게 수련도 마다하고 방에 들어가며 토라지곤 했었다.
‘하지만 나한테까지 화낸 적은 거의 없는데…….’
쌍둥이 형제인 그들은 일반적인 형제에 비해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라이벌이라기보다 서로를 의지하고 돕는 동료랄까?
그 덕에 루인도 형처럼 21살의 나이에 오러 마스터에 진입할 수 있었고 서로 대련하며 폭발적으로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검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고.
‘얼마나 자존심이 구겨졌길래 이러는 거야?’
루인은 돌아서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위병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새로운 제자를 받았다고?’
오늘 손님으로 마검사가 찾아왔으며, 그가 아버지와의 대련에서 상처를 입히며 내기에서 승리했고, 아버지는 그런 마검사를 제자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는.
들을수록 놀랍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형이 저렇게 화가 난 거구나? 아버지가 같은 왕국도 아닌 외부인을 제자로 받아들여서.’
아버지인 철혈의 군주는 여태껏 외부인을 제자로 받아들인 적이 한 번도 없다.
가르침을 허용한 건 오직 같은 핏줄인 쌍둥이 형제뿐이었다.
뭐, 제자로 삼을 만한 실력자가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형에겐 충격이었겠지. 납득하기도 어려울 테고.’
유연한 성격의 자신도 외부인을 제자로 들이는 게 껄끄러울진대 형이라고 오죽하겠는가?
‘마검사라……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네.’
루인의 발걸음이 손님이 있다는 방으로 향했다.
* * *
지크는 잠깐 쉬라고 마련된 손님방에서 퀘스트 보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망성의 제자 되기 완료!]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버프 ‘무신의 축복’이 적용됩니다.]
[버프 : 무신의 축복]
-효과 : 하루에 올릴 수 있는 기력량이 20으로 증가하고, 검술에 대한 이해도와 적응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추가로 검술에 대한 가르침을 받거나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일정량의 기력이 증가합니다.
-특이사항 : 스승 ‘철혈의 군주’가 존재하는 동안에만 버프가 유지됩니다.
‘오오, 버프.’
하루에 올릴 수 있는 오러의 양은 10.
그걸 20으로 제한을 늘려주는 데다, 가르침을 받을 때마다 오러 양이 증가한단다.
게다가 검술에 대한 이해도도 월등히 높아지고.
‘버프의 지속시간도 엄청나게 길어. 철혈의 군주의 제자로 있는 동안 유지된다니…….’
그야말로 철혈의 군주가 죽기 전까지는 지속된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적어도 수십 년은 꿀 빨 수 있는 버프였다.
‘이것만 있으면 오러 마스터 상급에 이르는 것도 시간문제야.’
현재는 중급이었지만 오러 쌓는 속도가 늘어나면 상급은 금방 찍으리라.
어쩌면 판게아 대륙에서 여섯 번째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오망성, 5군주가 아니라 육망성, 6군주가 되려나?’
꿈같은 이야기지만 마냥 허황된 꿈도 아니었다.
‘한동안 여기서 지내면서 수련 좀 받다가 용병단으로 돌아가야겠어. 스킬 성장도 게을리할 순 없으니까.’
쉬는 날엔 바이소 왕국으로 와 오망성에게 가르침을 받고, 영지전이 있는 날엔 마법사를 상대로 마법 복제 숙련도를 쌓는다면?
검과 마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이었다.
‘어?’
[돌발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지크의 눈이 함지막하게 벌어졌다.
* * *
짙은 어둠 속에서 말리고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안 그런다면 뭐 하나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후우…… 이제 좀 진정되는군.”
그에게 있어 어둠은 편안함, 그 자체.
지금처럼 마음에 혼란이 올 때는 어둠에 몸을 맡기면 생각이 정리된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또다시 흥분하고 마는 걸 보면.
‘제길.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꼴사납게 지고 말다니.’
크리오스와 진심을 섞어 대련했지만 결국 지고야 말았다.
마검사라는 희귀한 트로피를 제자로 삼고 싶었건만 그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것이다.
‘내 어둠의 힘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도 크리오스를 완전히 뭉개버릴 수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이가 갈리고 분노가 치솟는다.
일렁거리는 어둠의 오러 사이로 형형한 안광이 번뜩였다.
‘지크 맥러플린이라고 했나? 그 마검사는 결국 크리오스의 차지가 되었군.’
곱씹어볼수록 상당히 실력 있는 녀석이었다.
기술적으로는 칭찬할 게 없지만 그렇다고 모나지도 않는다.
가지고 있는 오러나 전투 센스, 두뇌 회전 등은 오망성인 자신도 인정할 정도다.
‘잘만 키우면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될 수도 있는 인재였어.’
수십 년간 오망성 이후로 탄생한 적이 없던 전설적인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또 한 명 탄생할지도 모를 일.
‘내 제자가 그랜드 오러 마스터라…… 생각만으로도 폼나겠군.’
하지만 그 기회는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
강한 자에게서 배우고 싶다는 말처럼, 크리오스를 이기지 못하는 이상 녀석을 제자로 삼을 기회는 영영 없을 것이다.
‘가지지 못한다면…… 부숴 버리는 수밖에.’
말리고르의 눈빛에 살벌함이 더해졌다.
크리오스의 제자가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다.
차라리 괴물로 성장하기 전에 일찌감치 싹을 잘라내는 게 낫다.
‘암살은 내 전문이니 마검사를 죽여도 문제 되진 않을 거야.’
오히려 마검사가 죽으면 크리오스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라인하르트 가의 초청을 받고 머무르던 차에 맥러플린 가문의 자제가 살해당했다?
맥러플린 가문이 누구를 의심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어쩌면 두 가문이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
‘이참에 싹도 제거하고 라이벌도 제거하고 좋군.’
어둠의 오러를 이용하면 어차피 자신이 죽였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갈등의 불만 지핀 채 유유히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늦기 전에 바로 죽이러 가야겠어.’
말리고르가 어둠을 틈타 움직였다.
현재 가문을 나왔기에 알리바이는 충분.
이대로 몰래 침입해 지크를 죽이고 나온다면 의심받을 일은 없을 거다.
스스스스-
오러를 극한으로 운용해 어둠에 몸을 동화시킨 말리고르가 가문의 담장을 넘었다.
이대로 지크가 머무는 방을 찾은 뒤, 어둠에서 잠깐 나와 죽이고 다시 어둠을 틈타 사라진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는, 100% 성공률의 암살 방법이었기에 그 누구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랬는데…….
수십 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말리고르는 지크를 암살할 수 없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 쥐방울만 한 놈이.’
방이란 방은 다 뒤져봤지만, 지크의 머리털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금방 처리하고 나가려던 말리고르로선 자존심 상할 수밖에 없는 일.
아니, 자존심보다는 다른 게 문제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곤란해.’
아무리 그라도 오망성의 가문을 마음대로 활보하기엔 부담스럽다.
크리오스를 만나기라도 하면 어둠의 오러가 간파당할 위험도 있다.
몰래 침입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에 부닥친다.
‘조금만 더 찾아보자. 분명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
지크가 아직 공작가를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건 확실한 사실.
조금 더 둘러보면 찾을 수 있으리라.
‘음? 저놈은 루인이잖아?’
크리오스의 둘째 아들.
손님방이란 손님방은 다 찾아봤지만, 저 녀석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놈한테 물어볼까? 손님방에 있는 걸 보면 지크의 위치를 아는 듯한데…….’
아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좀 더 찾아보자.
그렇게 다른 곳을 둘러보던 그때였다.
‘저기 있군!’
지크의 모습을 발견한 말리고르가 화색을 띠었다.
지금 당장 죽이고 빠져나가면 아무도 자신의 짓이라는 걸 모르리라.
‘죽인다.’
살기를 띤 말리고르가 서서히 지크에게 다가가는 차였다.
“말리고르 데스본!”
난데없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크, 크리오스?’
녀석이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어둠의 오러를 뒤집어써도 보인다는 듯이.
말리고르는 황급히 기술을 중단하고 어둠 밖으로 걸어 나왔다.
턱-
당연하지만 크리오스는 화난 눈치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건가? 내 분명 경비로부터 저택을 나갔다고 들었거늘!”
“으음. 그게 말이야…….”
이렇게 된 이상 궁색한 변명이라도 해야 한다.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변이 마려워서 말이지.”
“장난하는가? 그런 거였으면 대놓고 들어올 것이지 이렇게 몰래 침입한 이유가 뭔가? 어둠을 틈탄 암살자처럼!”
“말이 심하군. 암살자라니. 아무리 대련하는 사이라지만 방금은 모욕적이었어.”
“그러면 설명해 보게! 왜 우리 가문에 몰래 침입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