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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98화 (98/112)

마법사의 천적이 환생했다 98화

“방금 말하지 않았나? 생리현상 때문이라고. 굳이 밝히지 않은 건 부끄러워서였어. 나도 체면이 있지 않나?”

구차한 변명이었지만 아주 말이 안 되지도 않는다.

그랬기에 크리오스로선 말리고르를 붙잡아둘 명분이 없었다.

그저 손가락을 들어 대문 밖을 가리킬 뿐.

“나가게! 볼일 끝났으면 나가란 말일세!”

“안 그래도 가려던 참이었어.”

그리 말하며 돌아서던 말리고르가 슬쩍 지크를 쳐다봤다.

‘운이 좋았군, 마검사.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지.’

스스스스-

대놓고 어둠 속에 동화해 사라져버린 말리고르를 보며, 크리오스가 혀를 찼다.

“저런 괘씸한! 내 가문을 멋대로 침입하고 휘젓다니!”

특히나 저렇게 어둠 속에 사라져버리는 기술은 크리오스도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즉, 말리고르가 그동안 자신만의 비기로 쓰기 위해 꽁꽁 감춰두고 있었다는 뜻.

‘암살자들이 탐낼 만한 기술이로다.’

어쩌면 저 능력으로 수많은 암살을 실행해 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 크리오스였다.

이미 가문에 침입한 것 자체로 소름이었지만.

‘화장실을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개도 믿지 않을 개소리로군.’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몰래 침입했던 걸까?

어쩌면 가는 척하며 아직도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크리오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기감을 넓혔다.

여기저기 살펴봤지만, 다행히 말리고르가 가진 오러 특유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로 간 건가?’

몇 번이고 없다는 걸 확인한 크리오스는 안심하며 지크를 돌아봤다.

“지크. 이제부터 내 제자이니 말은 편히 하마.”

“그러십시오. 그나저나 어둠의 군주는…….”

“녀석은 갔다.”

“그렇습니까?”

“솔직히 네가 아니었다면 말리고르의 침입을 알아낼 수 없었을 거야.”

“하하, 아닙니다.”

“어떻게 느꼈느냐? 나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기척이거늘.”

“직감이라고 할까요……? 그냥 느낌이 불길했습니다.”

사실 그런 느낌은 없었다.

지크도 크리오스처럼 말리고르가 침입한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퀘스트 덕분에 알았을 뿐이지.’

몇 분 전.

지크에게 떠오른 돌발 퀘스트.

【돌발 퀘스트 : 위험 피하기】

└어둠의 군주인 말리고르 데스본이 당신을 암살하기 위해 라인하르트 공작가에 침입하였습니다!

└지금 바로 크리오스 라인하르트를 찾아 도움을 청하십시오.

<조건>

└철혈의 군주에게 도움 청하기

<보상>

└5차 스킬 숙련도 10,000 증가

처음 이 퀘스트가 떴을 때, 지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둠의 군주가 날 암살하려 한다고? 왜?’

뭘 잘못했다고 죽이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생각 하고 있을 틈이 없다.

지금 당장 피하라는 시스템의 경고를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

이후로 지크는 서둘러 크리오스가 있는 방을 찾았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크리오스였지만, 지크는 더 놀라운 사실을 밝혀야만 했다.

말리고르로부터 생존하기 위해선.

마침 크리오스는 그때를 상기하고 있었다.

“네가 갑자기 방에 들어와 느낌이 불길하다고 했을 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릴 하나 싶었다. 어둠의 그림자가 자신을 노리는 것 같다고 할 땐 솔직히 정신 나간 놈이 아닌가 생각했었고.”

“…….”

“그런데 이제 보니 네 직감이 옳았구나. 말리고르가 저렇게 기척을 숨기고 침입한 걸 보면.”

“정말로 화장실을 들르기 위해 되돌아온 거였을까요?”

크리오스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개소리지. 반응을 보니 널 죽이기 위해 온 것 같구나.”

“예에?”

이번엔 지크가 놀라는 연기를 보였다.

크리오스는 지크의 반응에 웃음 짓다가도 사안이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정색했다.

“네 그 특출난 감각이 아니었다면,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것이다.”

“저를 대체 왜 죽이려고…….”

“남이 마검사라는 트로피를 차지하는 꼴을 볼 바에 아예 부숴버리는 게 낫다는 심보였겠지.”

“아……!”

그리 말하니 비로소 깨달은 지크였다.

어둠의 군주의 제자가 안 되길 잘했다고.

상종하면 안 되는, 쓰레기였다고.

‘오망성이라는 놈이 은근 좀생이였네.’

이제 보니 철혈의 군주의 제자가 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이거 가지고 그러느냐. 이제는 내 어엿한 제자인데. 세상 누구도 내 제자는 건들 수 없느니라.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말리고르가 또다시 침입하지 못하게 내 단단히 대비할 테니.”

오망성을 아군으로 두니 이렇게 믿음직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어둠의 군주와는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어떡하긴. 이제부터 전쟁이지.”

“전쟁이요?”

“우선 놈의 행태를 세상에 알릴 거다. 그다음에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야지.”

“그래도 괜찮나요?”

“괜찮고말고. 원래 우리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거든. 경쟁 상대일 뿐이었지.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던 놈인데 잘 됐어. 이제 대련할 필요도 없고.”

지크의 눈에 크리오스는 맺고 끊음이 확실한 사람 같았다.

괜히 철혈의 군주라는 칭호가 붙은 건 아닌 모양이다.

‘어둠의 군주와의 전쟁이라…….’

자신을 계기로 두 군주의 사이가 틀어지게 되다니.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던 지크였다.

* * *

치이이익-

“으아아악! 아아아악!”

연기가 올라오며 살이 타오른다.

비명을 지르던 남자가 혼절하자, 후드를 뒤집어쓴 괴인이 다시 고문을 이어간다.

치이익-

“끄, 그아아아악!”

비명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어느 순간 신음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죽어버렸군.”

피 칠갑이 된 몸으로 결국 시체가 된 남자를, 괴인이 손짓한다.

그러자 기적적이게도.

“그어으어으…….”

남자가 부활했다.

아니, 시체가 일어났다.

하지만 후드 쓴 괴인은 언데드의 상태가 썩 만족스럽지 못한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어? 그어어-!”

순간 시체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이 일었다.

퍼억-!

후드 쓴 괴인의 뒤로 비산한 살점이 떨어져 내렸다.

“이것 참. 쓸 만한 놈들이 없구나.”

음울하게 말한 괴인의 고개가 한쪽으로 향했다.

피와 시체로 산을 이룬 마을의 정경이 참으로 그로테스크하다.

웃음꽃이 피던 생전의 마을 분위기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저 많은 버러지들을 몰살시켜도 지성을 깨우치는 언데드 하나 탄생하지 않는다니.”

물론 언데드가 지성이 있기야 하겠냐마는, 괴인은 믿고 있었다.

언데드도 지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그야, 자신이 그 증거였으니까.

“쯧, 다른 마을을 찾아볼 수밖에 없는가.”

그리 중얼거리며 움직이려는 그때.

괴인의 통신구가 한차례 빛을 발했다.

괴인의 눈빛 또한.

“발루두크 님?”

-오랜만이구나, 자카르. 실험에 대한 성과는 나왔느냐?

“전혀 진전이 없습니다.”

-너무 조바심 내지 말거라. 지성을 지닌 언데드 군사를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니.

“말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시킬 일이 있다.

“시킬 일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야.

통신구 속 발루두크가 웃음을 띠었다.

-너에게 암살을 맡기려고 한다.

자카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암살…말입니까?”

여태껏 발루두크에게 여러 임무를 받아봤지만, 누군가를 죽이라는 임무는 처음이었다.

-그렇다. 16살의 소년인데 이름은 지크 맥러플린이다. 자세한 건 에스카에게서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거다.

“맥러플린이면 데칸 왕국이지 않습니까? 데칸이라면 에스카에게 맡기는 게 쉬울 텐데 왜 저에게……?”

-에스카는 다른 일을 맡겨놔서 말이야. 네가 인근 왕국에 있기도 하니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시체를 찾는 너에게는 어쩌면 좋은 재료가 될지도 모르고.

“좋은 재료라…….”

후드 속 자카르의 눈이 한차례 번뜩였다.

“알겠습니다. 에스카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통신구의 빛이 사그라들자, 자카르가 곧장 다른 통신구를 찾아들었다.

‘에스카의 통신구라면…… 여기 있군.’

세 번 두드리며 기다려봤다.

그런데 받질 않는다.

시간이야 많았던 자카르였기에 인내심을 갖고 다시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몇 번 시도한 끝에, 통신구의 빛이 유지됐다.

-자카르 님!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왜 이렇게 안 받아? 어디 구석에 처박아두기라도 한 것이냐?”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잠시 연구하느라 다른데 신경을 쏟고 있던 터라…….

“긴말할 것 없이 본론으로 가지. 타깃에 대한 정보를 내놓아라.”

-아! 발루두크 님과 연락해 보셨군요? 자카르 님이 암살을 맡기로 하신 겁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동안 얻은 지크 맥러플린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인계해드리겠습니다.

에스카는 한동안 지크에 대한 정보를 사소한 것까지 줄줄이 읊어댔다.

듣고 있던 자카르는 그 안에서 핵심만 짚어냈고.

‘16살의 나이에 벌써 6서클이라…… 마법사로서의 재능은 높은 편이군. 그레고르 판테인을 잡는데 일조한 적도 있고, 국왕의 암살을 미리 눈치채고 막기까지.’

꽤 다양하게 선구자의 계획을 방해했다.

이러니 발루두크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재능이 높은 시체라. 오래간만에 기대가 되는군.’

어쩌면 평생 찾아 헤맸던 연구의 결과가 지크를 통해 해결될지도 모르는 일.

자카르는 정보를 듣는 와중에도 반드시 암살 임무를 성공시키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제가 아는 정보는 여기까지입니다.

“한 달 넘게 작업한 것 치곤 많은 정보를 수집했군.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결과적으로 마지막 행적은 모른다는 거로군.”

-예. 헤밀톤 영주성에서 떠났다고 하니, 아마 용병단에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알았다.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라.”

-옙! 그럼 수고하십쇼!

통신을 마친 자카르는 팔짱을 끼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지크라는 놈을 찾아서 암살할지 계획을 짜보는 것이었다.

‘데칸까지 가서 찾아보기엔 위험 요소가 많다. 그러니 녀석을 이리로 부르는 편이 더 낫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체도 확보하고 말이지.’

영지전을 이유로 황금독수리 용병단을 고용한다.

그럼 자연스레 타깃을 불러올 수 있을뿐더러 영지전을 통해 대량의 시체도 확보할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겠다는 계획.

‘녀석에게 연락을 해둬야겠군. 영지전을 주관하라고.’

불사의 선구자이자 서열 10위, 자카르 패트릭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제기랄, 크리오스에게 전부 들키고 말다니. 귀찮게 됐군.’

라인하르트 가문에서 쫓겨난 말리고르는 다시 침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기감을 넓힌 크리오스가 기를 쓰고 경계할 것이 뻔했기에.

‘앞으로는 대련도 못 하겠어.’

철혈의 군주와 자웅을 겨루며 여러모로 많이 배우던 말리고르였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크리오스가 받아주지 않으리라.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앞당겨야겠어. 그분께는 사실대로 전부 말씀드리고…….’

계획이 틀어져 그분이 화를 내실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수밖에.

거처로 돌아간 말리고르가 비밀금고에서 통신구를 찾았다.

심호흡 끝에 연락하려던 그 순간.

‘음?’

통신구가 먼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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