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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1화 (11/172)

11화

사실 이런 장소라면 오히려 솟구친 후가 문제다.

착지 지점을 잘 선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암벽에 매달려 있을 때 미리 장소를 물색해 뒀다.

나는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미리 봐둔 곳으로 착지를 마쳤고, 직후 곧장 내달렸다.

쿠르르……!

착지의 충격 때문에 절벽길이 흔들리더니, 곧 무너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위태로운 길이었다는 뜻이다.

“무너진다!”

“뛰, 뛰어!”

그제야 내가 직전에 외친 말, 그리고 상황 파악이 끝난 나머지 녀석들이 내 뒤를 따라왔다.

뒤를 볼 필요도 없이.

내달리는 길이 즉시 무너져 내리는 게 느껴졌다.

산사태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규모가 작지도 않다.

휩쓸리면 문자 그대로 뼈도 못 추리겠지.

내 뒤에 바짝 붙은 기척들도 느껴졌다.

어쩐지 답답해하는 기색이다.

“좀 더 빨리 달릴 수 없습니까!”

“응. 이게 최대 속도야.”

“큭…….”

조바심에 휩싸인 기사 놈들을 보니 어쩐지 유쾌해졌다.

나는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웃음을 터뜨리며 내달렸고, 내 뒤를 기사들과 아르잔이 헐레벌떡 쫓아왔다.

그렇게 절벽길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우리는 정신없이 질주했다.

* * *

고금제일공은 각 속성마다 장단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대사형이 익힌 수림녹화공樹林綠化功은 가장 단순한 무공이며, 직선적인 게 특징이다.

쭉 뻗어 오르는 거목처럼, 잔가지를 쳐내고 단 한 가지에 집중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인데.

그래서 대사형이 익힌 무공은 큰 틀에서 단 하나뿐이다.

이외에 둘째 사저가 익힌 암철제마공暗鐵制魔功이나 넷째 사형이 익힌 만변금강공萬變金剛功에도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그럼 내가 익힌 염화제일공의 최대 강점은 무엇인가.

바로 회복력이다.

화염과 회복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예로부터 불꽃은 생명과 재생을 상징하기도 했다나 뭐라나.

어쨌든 이 신공을 익히는 것만으로 육체 회복력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데, 이 회복력이란 단순히 상처의 재생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건 육체 단련에서인데, 신진대사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에 혹사당한 근육의 재생이 무척 빠르다.

한마디로 육체를 만드는 데 걸리는 기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내공을 쓰지 않고 산행에 임한 이유기도 하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다.

첫째로 육체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움직일 때가 낫지, 쉴 때는 초고속 회복의 부작용으로 전신이 찢겨 나가는 것처럼 아프다.

그리고 둘째는 바로 식사량.

“밥 더 줘.”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오셀에게 식판을 내밀었다.

“…충분히 많이 드신 것 같습니다만.”

“성장기라서 많이 먹어야 해.”

“식량은 되도록 아껴야 합니다.”

“왜. 정 안 되면 산짐승이라도 잡아먹으면 되잖아.”

내 말에 오셀이 한숨을 쉬었다.

“…도련님, 우리는 사냥꾼이 아니라 기사입니다. 거기에 짐승을 사냥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십니까? 어떤 의미로는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보다 훨씬 까다롭습니다.”

“…….”

이놈 말투가 띠껍긴 해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산에서 짐승을 사냥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니.

게다가 여긴 몬스터가 득실대는 산맥.

서식하는 짐승도 여타 놈들보다 훨씬 재바르고 눈치도 빠르겠지.

‘정 안 되면 열매라도 따 먹어야 하나.’

그건 좀.

기력을 보충하려면 육류가 절실하다.

오셀의 태도를 보니 순순히 먹을 걸 내놓을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아쉬운 대로 품에서 육포를 꺼내 씹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초입부에서도 몬스터가 나온다면서 생각보다 조용하구만.”

옆에 서 있던 아르잔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렇군요. 어쩌면 한 놈도 안 마주치고 지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앗.”

그런 말을 해버리면-.

쿠워어어어!

돌연 수풀을 가르며, 전방에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용병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부딪치는 장애물은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다.

물론 나도 용병으로 몇 년 구를 동안 다양한 몬스터와 싸웠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놈들도 예외는 아니다.

멍청하게 생긴 낯짝에 원시적인 차림새.

재생력의 대명사.

그린 스킨(Green Skin) 중에서도 비교적 상위종이라고 불리는 몬스터.

트롤.

등장한 트롤은 총 다섯 마리였는데, 나는 이 괴물 놈들과 조우하고 보석 산맥이 금지인 이유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크구나.’

평균적이라는 표현을 몬스터에게 적용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그래도 트롤이란 놈들의 덩치는 대체로 3미터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이놈들은 내가 알던 트롤보다 최소 1.5배는 더 큰 것 같다.

말이 1.5배지, 기준을 3미터로 잡으면 이것들의 덩치는 4~5미터에 육박한다는 뜻인데, 이 정도면 거의 집채만 한 괴물이 돌아다니는 셈이다.

“전투 준비!”

오셀이 큰 목소리로 외친 순간, 기사들이 순식간에 대열을 갖췄다.

쿠워어어!

이쪽의 투기를 감지했는지 트롤 놈들도 무지성 돌진을 감행한다.

‘나도 한 놈 정도랑은 직접 싸워 보고 싶긴 한데.’

육체 피로가 상당히 쌓여 있긴 해도 한 놈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다.

나는 실전에서 백일식을 사용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으나 기사 놈들은 물론이고 아르잔도 허락해 줄 것 같지가 않다.

그러니 우선은 이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기로 한다.

위명 자자한 송곳니기사단의 실력을 제대로 견학할 기회인 것이다.

파츠츳!

기사들의 검에서 푸른색 검기가 치솟았다.

일반적으로 기사라고 불리는 놈들은 죄다 다룰 수 있는 마나 블레이드다.

다만 일렁이는 청염靑炎의 색이 짙다는 것이 이들의 수준을 말해 준다.

일반적으로 마나의 밀도가 높을수록 시각적으로는 투명하게 비치니.

“불필요한 공격은 삼가도록! 반드시 첫 공격에 끝내야 한다!”

오셀의 지시에 살짝 놀랐다.

트롤을 일격으로 절명시키는 건 상당히 까다롭다.

당연히 몬스터의 상위종이니만큼 가죽이 두껍고, 뼈도 단단해서 그렇다. 재생력은 두말하면 입 아프고.

하지만 까다롭다는 건 달리 말하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뜻.

일반적인 생물체의 약점인 뇌, 심장.

아무리 트롤이라도 저 두 부위에 손상을 입으면 답이 없다.

한마디로 오셀의 지시는 어려웠지만 정확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확한 지시와는 별개로, 나는 기사들의 전열에서 허술한 부분을 발견하고 말았다.

전투가 워낙 치열해서 깨닫지 못한 걸까?

이때 트롤 한 마리가 그 허술한 부분에 억지로 몸을 밀어 넣더니, 기어코 전열을 붕괴시켰다.

“앗차!”

“조심하십시오!”

기사들의 당혹한 목소리 사이, 트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동시에 옆쪽에서 무언가 빠른 게 지나쳤다.

팟!

뒤이어 눈부신 섬광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트롤의 움직임이 멎었다.

트롤의 겉모습은 일견 변화가 없어 보였으나, 나는 놈의 목젖 근처에 생긴 작은 구멍이 보였다.

“그륵…….”

목구멍에서 피가래가 들끓었다.

옆을 보니 어느새 아르잔의 손엔 얇은 비수가 쥐여 있었다.

“집사, 훌륭한데?”

“과찬이십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감탄했지만, 직후 아르잔이 비수를 거두는 모습을 보니 잔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경험이 대인전에 편향돼 있어 보이는군.”

“예?”

“트롤은 그 정도로 안 죽는다고.”

그러어어억!

벌떡 일어난 트롤이 다시 달려들 때, 나는 중지에 끼워 둔 반지를 한 바퀴 돌렸다.

저택에서 챙겨 온 아티팩트인 링소드.

반지에서 옅은 빛무리가 일더니 깔끔한 디자인의 검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대로 크게 한 발자국 내디디며 트롤의 목구멍- 아르잔이 앞서 만든 상흔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컥, 목구멍이 막힌 트롤이 핏물을 쏟았다. 나를 보는 눈동자도 피색으로 물들더니 곧 피눈물을 쏟아냈다.

쿵-.

동일한 급소를 두 번이나 공격당했으니 아무리 끈질긴 놈이라도 버틸 재간이 없을 테지만.

트롤이란 놈은 여러모로 방심할 수가 없는 괴물이다.

나는 이 괴물이 돌연변이라는 점까지 감안해서, 급소에 칼날을 여러 번 쑤셔 박으며 마무리 작업을 수행했다.

얼굴에 튄 핏물을 닦을 때쯤, 기사들의 전투도 슬슬 마무리되고 있었다.

“도련님?”

뒤늦게 오셀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잠깐 그 얼굴을 보았다.

다급한 표정과 나를 걱정하는 듯한 태도에선 위화감을 찾을 수 없다.

“-아.”

나는 이 순간 절벽길에서의 사건 떠올렸다.

갑작스럽게 무너진 길.

내가 지쳐 있다고 해도 약해진 지반을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부터 앞에 걷고 있던 아르잔은 나를 놓쳐도 이상할 게 없지만, 내 뒤에 있던 기사들은?

그놈들은 내가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테고,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그럴 마음만 먹었다면 내가 떨어지기 전에 충분히 붙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확신하기엔 애매해서 일단은 보류했다. 내 생각이 과한 걸 수도 있고.

그런데 비슷한 우연이 재차 발생했다.

방금 전열에서 생긴 빈틈.

기사들이 보인 신속한 동작과는 이어지지 않는 저급한 빈틈 말이다.

말했다시피 내겐 귀찮은 버릇이 하나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다.

이 순간 나는 싹트는 의심과 함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심리전은 물론이고 온갖 계략과 술수, 공작……. 아무튼 진흙탕 싸움의 전문가였던 넷째 사형.

그 넷째 사형이 평소 자주 입에 담던 말이 있었다.

‘친구는 미소로 대하고, 적은 더욱 짙은 미소로 대하라.’

“괜찮으십니까?”

때마침 다가온 오셀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고.

나는 사형의 조언대로 미소를 지었다.

“멀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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