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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4화 (14/172)

14화

암살을 업으로 삼는 놈들을 일컬어 암살자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살수殺手가 있겠다.

과거엔 어땠는지 몰라도, 현 제국에서 암살자는 대체적으로 하나의 집단을 가리킨다.

[위대한 가문] 최대의 적이자 제국의 가장 큰 위협인 암흑교단.

그 저주받은 집단이 숭배하는 다섯 앙신殃神의 일좌- 핏빛 달의 마왕.

하덴아이하르의 추종자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시치미 떼기는. 그럼 요건 어떻게 설명하시려나.”

히죽 웃으며 단검을 보여 주니 오셀의 표정이 굳었다.

내 건 아니고, 방금 집어던진 놈의 품속에서 꺼낸 것이었다.

나는 단검 칼자루에 새겨진 문양을 보여 줬다.

“기념품점에서 샀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마왕의 문양을 본 순간 아르잔의 얼굴에도 커다란 파문이 번지는 게 보였다.

사실 나도 적잖이 놀란 상태다.

다른 곳은 몰라도 배드니커에 교단의 끄나풀이 잠입해 있을 줄은 몰랐다.

저놈들이 이 제국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게 배드니커 가문이라서 그렇다.

‘전생에 이런 얘기는 들은 적 없는데.’

물론 배드니커는 다른 가문과 거의 교류가 없다.

자연스레 소문 같은 게 퍼질 일도 드물다는 뜻인데 전생에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고 그대로 묻혔을 수도 있다.

혹은 가능성은 작지만, 끝까지 발각당하지 않았을지도.

“…….”

오셀이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노려봤다.

직후 눈동자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죽이시겠다?

내가 흐흐 웃음을 흘린 순간, 오셀이 지면을 박차며 달려왔다. 손에 쥔 검이 까맣게 물드는 게 보였다.

‘[저주받은 자]인가.’

마나, 그리고 가호와 대척점에 있는 힘.

저 힘을 일컬어 위대한 가문에선 [마왕의 저주]라고 부르고…….

암흑교단에선 [앙신의 축복]이라고 하는데.

가호처럼, 딱히 위대한 가문의 핏줄이어야만 얻을 수 있는 힘은 아니다.

그리고 제한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힘이란 대체적으로 위험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멀쩡해 보이는데.’

저주를 받은 이는 머리가 살짝 맛이 간다고 하는데 오셀에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내 예상보다 거물일 수도 있겠다.

“제 뒤로 오십시오, 도련님!”

그사이 정신을 차린 아르잔이 내 앞에 섰다.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비수를 발로 차올린 뒤 양손에 쥐고, 곧바로 오셀의 공격에 대응한다.

오셀이 검을 내리찍으며 외쳤다.

“빅터!”

방금 내던진 기사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아르잔의 어깨가 움찔거리는 걸 보고 짤막하게 말해 줬다.

“난 괜찮으니까 집사는 저놈한테 집중해.”

그리고 링소드를 꺼낸 다음 즉시 휘둘렀다.

까앙!

칼날과 칼날이 맞부딪치는 느낌이 오랜만이다.

며칠 전 트롤 놈의 숨통을 끊을 때 휘두르긴 했지만,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거랑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쿠르르……!

기사의 칼날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렸다.

검기, 마나 블레이드다.

“쯧.”

마나, 즉 내공 싸움으로 가면 내게 승산이 없다.

그렇다고 무기의 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링소드는 마도구지만, 내구도에 강점이 있지는 않으니까.

결국 나는 정면에서 싸울 생각을 버리고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는 데 주력했다.

한동안 수비 위주로 싸우며 관찰하니, 어째 기사의 체계적인 움직임이 익숙했다.

‘제국 검술을 쓰네?’

어차피 정체가 다 까발려졌는데도 여전히 기사처럼 싸우는 이유가 뭘까?

뻔하지.

이놈들은 암살자다.

이런 난전에서보다 기습할 때 진면목을 발휘하는 놈들.

그런데 지금은 일대일 상황이니 무난하게 전투에 임하는 척 틈을 노리고 있을 거다.

퉷!

이렇게 말이다.

기사가 나를 향해 침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타액이 아니라 얇은 바늘을.

내 고개가 뒤로 확 꺾였다.

“핫……!”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는지 비웃음이 들렸지만…….

나는 꺾었던 고개를 펴며 진상을 보여 줬다.

“……!”

내가 이빨로 물고 있는 침을 보여 주니 기사가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다.

이런 공격을 받았다면 답례를 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라서, 나는 멍청하게 서 있는 기사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컥-.”

기사의 코와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설마 검을 쥔 손으로 주먹을 휘두를 줄은 몰랐는지, 기대 이상으로 잘 들어갔다.

기사는 코피를 쏟아내는 와중에도 주먹을 휘두르며 반항했으나, 이런 휘적거리는 움직임에 맞아 준다면 그게 등신이다.

빠악! 빠악!

나는 기사의 멱살을 붙잡은 채로 얼굴을 연속으로 후려치다가 발로 차 버렸다.

기사가 쿠당탕 지면을 굴렀다.

금방 자세를 잡고 일어서려고 했으나, 나는 기껏 잡은 승기를 놓치는 애송이가 아니다.

기사의 가슴을 지그시 짓밟아 줬다.

꾸우욱…….

“끄어어…….”

사지는 봉쇄하지 못했지만, 갈비뼈가 으스러질 만큼 압력을 주니 버둥대던 움직임이 점차 잦아졌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칼날을 기사의 오른손에 내리꽂았다.

못질이라도 한 것처럼 기사를 지면에다 박제시킨 형태로 만든 것.

“끄아악!”

암살자라고 해도 생살이 칼에 꿰뚫리는 고통은 참기 힘들었는지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사이 기사의 검을 가로챈 다음 왼손에도 꽂아 줬다.

다시 한번 돼지 멱따는 비명이 숲을 울린다.

나는 그제야 입에 물고 있던 침을 빼내며 말했다.

“혓바닥에도 박기 전에 닥쳐.”

“너, 너…….”

“너 뭐 이 새끼야, 말 똑바로 해라.”

그러자 기사의 표정이 굳더니 떠듬떠듬 말한다.

“넌 대체… 누구냐……? 루안 배드니커는 어디 있지?”

“멍청하게 생기진 않았는데 질문은 멍청하구만.”

내 이죽거림을 본 암살자의 눈동자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아마도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겠지.

원래 음습한 놈들일수록 생각이 많은 법이다.

“대역도 아니고 인피人皮를 쓴 것도 아니야. 내가 루안 배드니커다. 너희의 목표이자 죽이려고 안달 난 얼간이 도련님 말이야.”

“…….”

솔직히 말해 줘도 믿는 얼굴이 아니었다.

물론 이 녀석을 설득할 이유는 없어서, 나는 내 할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넌 대체 뭐 하는 놈이냐? 뭘 믿고 송곳니기사단을 사칭한 거지? 날 죽이라는 임무는 누구한테 받았고.”

“…….”

“아니지. 사칭은 아닐 거야. 배드니커의 울타리가 그렇게 어설프지는 않거든. 원래 기사였던 놈이 모종의 경로로 교단과 접선한 후 배신했다, 이게 더 그럴듯한가?”

이놈은 조무래기다.

당혹한 표정을 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오셀이라면 내 말에 딱히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입을 열지 않을 거라면 나도 더 볼일은 없다.

빠악.

주먹으로 다시 한번 기사의 얼굴을 후려치니 까무룩 기절했다.

사실 죽여도 상관은 없지만.

나중에라도 정보를 캘 방법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일단 보류.

“그럼…….”

나는 기사에게서 링소드를 수거하며 전장을 보았다.

여전히 오셀과 격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쉽게 승부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백중세…는 아니고, 오셀 쪽이 살짝 유리한가.’

둘의 실력은 비슷한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아르잔의 컨디션이 무너져 있는 게 이유인 것 같다.

‘이거 곤란한데.’

당장 내가 합류해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육체도 육체지만, 내공이 너무 부족하다.

물론 그렇다고 도울 방법이 없지는 않고.

나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기사의 검까지 뽑은 다음, 적절한 타이밍에 투척했다.

“……!”

한창 전투에 집중하던 오셀이 깜짝 놀라더니 몸을 비틀었다.

일순간 상체에 커다란 빈틈이 생겼고, 아르잔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스걱!

날카로운 비수가 허벅지부터 쇄골까지 단숨에 그었다.

목숨을 뺏지는 못했지만 치명상이다.

그러나 오셀은 침음조차 내뱉지 않으며, 오히려 놀라운 근성을 발휘해 아르잔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쿠당탕!

바닥을 몇 바퀴 구른 아르잔이 사레가 들린 것처럼 쿨럭거렸다.

“괜찮아?”

“예.”

아르잔은 터프하게 대꾸한 다음 오셀을 보며 말했다.

“무기를 버리십시오, 오셀.”

“…….”

오셀이 피를 뚝뚝 흘리며 이쪽을 노려봤다.

“그 상처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요.”

“…….”

“하덴아이하르의 암살자가 왜 배드니커에 숨어든 겁니까? 진술에 따라 주변 인물의 목숨은 건질 수도 있습니다.”

“크큭.”

오셀의 입가가 비틀렸다.

“이까짓 상처로 날 제압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더는 떠들지 않는 걸 권장합니다. 과다출혈로 죽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과다출혈? 이딴 걸로?”

오셀이 음산한 웃음을 흘린 순간.

나는 링소드를 던졌다.

푹!

“꺽…….”

“……!”

아르잔이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오셀 또한 믿기 힘든 눈으로 목을 더듬으며, 정확히 목구멍을 꿰뚫은 칼날을 매만졌다.

그르륵, 피가래가 들끓는지 괴상한 소리를 내는 오셀.

그 몸뚱이가 천천히 허물어졌다.

“도, 도련님?”

“집사, 저런 놈 얘기는 끝까지 듣는 거 아니야. 딱 봐도 뭔가 있는 듯이 굴잖아.”

“하지만…….”

“게다가 조무래기면 몰라, [저주받은 자]에겐 심문이 통하지 않아. 여기서 다그쳐 봤자 시간 낭비란 뜻이지.”

저주받은 자는 마기가 뇌까지 침범한 놈들이다.

마약중독자처럼 통증에 무감각하다는 뜻인데, 그런 만큼 고문의 스페셜리스트라도 이놈들을 상대론 정보를 뜯어낼 순 없다.

내가 알기로 저놈들 상대로 심문이 가능한 건 교회 소속의 이단심문관뿐이다.

“이럴 줄 알고 한 놈 살려 뒀으니까 일단 그놈한테서-.”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공기가 찢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공격을 감지했으나 반응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도련님!”

푹, 날붙이가 생살을 꿰뚫는 감촉이 느껴졌다.

* * *

“끅끅끅…….”

오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음을 흘렸다.

우드득, 우득. 근육과 관절이 한데 뒤섞이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고통은 전혀 없다.

오히려 오셀은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쾌락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도련님, 상처를 빨리-.”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오셀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도중에도 한마디 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괜찮을 리가 있나…….”

그사이 몸뚱이의 변화가 끝났다.

오셀은 거울을 보지 않고도 스스로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루안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꼭 걸어 다니는 두꺼비처럼 생겼네. 그런데 덩치가 트롤만 한-.”

“아직 입을 놀릴 힘은 있나 보군.”

그것도 조만간이겠지. 오셀은 굳이 뒷말은 말하지 않았으나, 아르잔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비수는 루안의 어깨에 꽂혔다.

급소라 할 수 없는 부위였고, 그렇다고 상처가 아주 큰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오셀은 다 잡은 물고기를 보듯 루안을 대했다.

“…비수에 뭘 바른 겁니까?”

“그래. 너는 역시 우리 식으로 생각이 잘 돌아가는군.”

오셀이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독이지. 영광으로 알도록. 원래 그건 보석수와의 전투에서 쓸 수단이었으니까…….”

“보석수?”

“우리는 이후 보석수 [사파이어 스네이크]와 싸울 예정이었다. 그놈은 극냉極冷의 기운을 가진 괴물이라서, 웬만한 자들도 지척에 다가가기 전 몸뚱이가 얼어붙는다더군.”

오셀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극비 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발설했다.

마기가 뇌를 잠식한 부작용이었으나, 딱히 상관은 없다.

어차피 이놈들은 여기서 다 죽을 텐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파이어 스네이크의 비늘을 뚫기 위해서 우리는 극양極陽의 기운을 가진 영초靈草를 찾았고, 마침내 손에 넣었지. 방금 비수에 발라져 있던 건 그 영초에서 추출한 액기스다.”

“영초……? 그렇다면 약인 것이-.”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애초에 독과 약은 한 끗 차이다.”

그제야 아르잔도 상황을 깨달았다.

“해독제를 내놔라.”

오셀은 존댓말을 관둔 아르잔을 즐거운 듯이 바라봤다.

“멍청하기는, 이러한 극독에 해독제가 있을 리 없지 않나!”

오셀이 입을 벌린 순간, 입구멍에서 굵직한 혓바닥이 쏘아져 나갔다.

콰가각, 오셀의 혓바닥이 채찍처럼 숲을 휩쓸었다. 맞닿은 거목이 썩은 나뭇가지처럼 부서졌다.

아르잔은 회피에 급급했다.

앞서 교전과 달리 반격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 독을 실용화하기 전에 몇 번 실험한 적이 있다! 화염에 특히 내성이 강한 샐러맨더조차 10분 동안 돼지처럼 비명을 지르다 잿더미로 화하더군!”

“…….”

“흥미가 생기는데. 루안 배드니커, 과연 너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오셀은 루안의 표정이 공포와 절망으로 범벅이 됐을 거라 예상했지만, 틀렸다.

루안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멍청한 놈은 스스로의 죽음이 아직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5분.”

그러다 얼떨떨한 목소리로 괴상한 말을 지껄거린다.

“5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오셀은 루안의 어조가 어쩐지 미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어떻게 아직 말할 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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