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일어나라, 루안.”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느낌에 눈을 떴다.
헥토르였다.
이 녀석은 질린 듯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앞에서 잘도 자는군.”
“…형님 앞인데 못 잘 건 뭡니까?”
조금 잠긴 목소리로 대꾸하니 헥토르가 말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넌 왜 존댓말과 반말을 번갈아 쓰는 거지?”
“그것이 반존대니까.”
“……!”
나는 충격적인 표정을 짓는 헥토르를 지나쳐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스읍…….”
차가운 공기가 폐부까지 닿았다.
배드니커의 본가의 공기도 대단히 맑았지만, 이곳은 그 이상이다.
걸리는 점은, 이 맑은 냄새에 뜨문뜨문 짐승의 잡내가 섞여 있다는 건데.
‘…왜 이렇게 춥냐.’
어쩐지 어머니의 고향이라는 극한의 땅, 콜랜드가 떠올랐다.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방금 본가 저택에 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옷깃을 세우며 주변을 확인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지형에 공터로 보이는 장소가 보였고, 그 공터엔 건물 몇 채가 우두커니 세워져 있었다.
건물은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눈 것처럼 각기 왼쪽, 오른쪽으로 구분된 상태.
특이한 점은 왼쪽 건물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허름하고, 오른쪽 건물은 막 세워 올린 것처럼 튼튼하고 깔끔해 보인다는 점이다.
공터엔 내 또래의 사람들 여럿이 선 채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표정만 보면 꼭 납치라도 당한 것 같다.
감이 둔한 건지, 적응력이 좋은 건지.
친한 녀석들끼리 뭉쳐서 쑥덕대고 있는 무리도 보인다.
그런 놈들 사이에서 세렌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워낙 튀는 외관의 소유자니.
내가 빤히 보니 세렌도 시선을 눈치챘는지 이쪽을 보았다.
나는 반가움을 담아서 손을 한번 흔들어 줬다.
세렌은 내 얼굴을 보고, 눈을 한번 부비적거린 다음 다시 보았다.
“너-!”
그 눈동자가 크게 떠진 순간이었다.
“집하아아아압-!”
천둥이 터지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나를 잔뜩 실은 외침이다.
커다랗게 소리친 자는 거뭇한 피부에 흉측한 흉터가 얼굴의 절반을 뒤덮은 남자였다.
가장 인상적인 건 건 눈동자였는데, 과거 용병 업계에서 10년 이상 살아남은 베테랑만이 가질 수 있는 기세였다.
‘대사범이잖아.’
아마 수렵선생이었나?
이름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멍하니 있던 영도들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후다닥 공터로 모여들었다.
수렵선생은 식은 눈으로 그 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반갑다, 영도들. 나는 탄코라고 한다. 여기 있는 몇 명은 나를 배드니커의 빈객이자 대사범으로 기억할 테지만, 네놈들은 이곳에 있을 동안 그 사실을 잊는 게 좋을 거다. 또한 이 수련장에서 네놈들 이외에 마주치는 모든 사람은 교관이니 마땅히 예를 갖추도록.”
수렵선생이 쏟아낸 말에 대다수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 파악이 느린 놈들이 그랬다.
무례한 말에 울컥한 표정을 짓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다.
아무리 이곳이 배드니커라고 해도 자기 가문에선 떵떵거리고 살던 귀족 자제들이니.
수렵선생은 그 반응을 감상하더니 픽 웃으며 말했다.
“눈빛이 좋군. 그런 표정 안 지어도 곧 개같이 굴려 줄 테니까 기다려라. 그 전에…….”
단상 뒤에서 기사 몇 명이 나오더니, 영도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건네줬다.
슬쩍 받아서 확인해 보니 서약서였다.
“서명해라.”
“무, 무슨 서명입니까.”
한 녀석이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고.
탄코는 기다렸다는 듯 입가를 사악하게 비틀었다.
“뭐긴 뭐겠어. 다치거나, 병신이 되거나, 만에 하나 죽어도 배드니커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명이지.”
술렁-.
나는 하고 많은 대사범 중에 저 남자를 단상에 세운 이유를 깨달았다.
생긴 것도 그렇고, 어조 자체도 저음이라서 분위기를 잡는 데에 탁월하다.
용병 일을 할 때 신인 신고식을 해주던 선배들은 대부분 저런 느낌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배드니커의 수련회는 가혹하다. 이따위 말은 기사 훈련소 어디를 가더라도 질리도록 듣게 되겠지만, 여긴 질이 달라. 본 수련회의 사망률은 20퍼센트니까.”
수렵선생이 손가락을 두 개 펼치며 강조했다.
“20퍼센트. 혹시 그리 높지 않은 수치라고 생각하나? 수치를 숫자로만 보는 귀족이라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당장 이곳에 있는 네놈들 중에서, 최소 6~7명은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꿀꺽!
옆에 서 있던 영도 한 놈이 마른침을 삼켰다.
“왜 그렇게 가혹하냐고 묻고 싶겠지.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영도가 한 명의 영웅으로 인정받으려면 최소 1년, 길면 5년이 넘는 수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 너희는 성적에 따라 그 기간을 6주까지 단축할 수 있으니, 가혹하지 않다면 차별이 될 터.”
“…….”
“서명하고 안 하고는 자유지만, 한번 하면 그걸로 끝이다. 너희가 울고, 불고, 아무리 추한 꼴로 매달려도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뜻이다. 6주 후에 살아서 이곳을 나가거나, 혹은 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
단순히 분위기만 잡고 있는 게 아니다.
수렵선생은 일부러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말하는 것만 들으면 살거나, 죽거나- 생존율이 50퍼센트까지 떨어진 것 같다.
마음이 약한 녀석이라면 이 말에 꺾이지 않을까?
“나, 나는 돌아가겠소.”
“저도…….”
예상대로 이른 포기를 하는 자들이 몇몇 나왔다.
눈대중으로 세어 보니 네 명이었다.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모르겠다.
답을 알고 있을 수렵선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차 한 대를 가리켰다.
“퇴소자는 기사들이 안내하는 마차에 탑승하도록.”
네 명이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영도는 그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수렵선생의 말대로 방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쿵!
마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자.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마차가 떠났군. 지옥을 고른 얼간이들아, 네놈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곧바로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굴러.”
잠시 침묵.
“…예?”
어떤 놈이 멍청하게 두 눈을 끔벅이며 묻는 순간.
“굴러, 이 개새끼들아아--!”
수렵선생의 목청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 * *
대륙에서 배드니커란 이름은 대체적으로 공포의 대명사다.
암흑 교단은 물론이고 제국 내에서도 두려워하는 자들이 더 많을 정도인데.
가문 자체가 폐쇄적인 경향이 짙고, 얽혀 있는 소문은 어두침침, 소속된 자들 또한 대부분 잔혹한 손속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드니커에 존경심을 가진 이가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이 길지 않은 세월 동안 대단한 업적을 연이어 쌓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옛 위명을 잃었던 몰락 가문이 부활하여, 과거의 성세를 되찾는 것.
이러한 역전 스토리는 분명 듣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부분이 있다.
반쯤 몰락한 가문인 헬빈가.
그곳의 삼남인 에반 헬빈이 배드니커의 수련회에 참가한 이유가 되겠다.
배드니커의 수준 높은 커리큘럼을 받는다면, 나 또한 가문 부흥의 단서가 될 무언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밑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
그러다가 대사범의 직속 제자가 된다거나, 혹은 철혈공의 눈에 들게 되면 더 좋고-.
“굴러, 이 개새끼들아아──!”
“…….”
그리고 에반은 갑작스러운 수렵선생의 외침에 입을 툭 벌리고 말았다.
굴리라고?
하지만 여긴 굴릴 게 없는데.
아니, 굴리는 게 아니라 구르라고 했다.
‘설마 나 보고 구르라고?’
이 지저분한 땅바닥에?
“가장 늦게 구르는 다섯 명은 감점이다! 아. 설명을 잊었군. 본 수련회에 참가한 모든 영도에겐 기본적으로 10점의 포인트가 주어진다. 이 포인트가 낮아질수록 이곳에서의 생활이 아주 재밌어질 거야.”
그 즉시 옆에 서 있던 한 놈이 곧바로 바닥을 굴렀다.
에반은 깜짝 놀란 눈으로 그놈을 보았다.
멀쩡하게 생긴, 지극히 귀족적인 외모의 소년이었다.
이 녀석은 이 지저분한 땅바닥이 자신의 침상이라는 암시라도 걸렸는지, 벌레처럼 데구르르 지면을 굴렀다.
그사이 다른 영도들도 즉시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중에선 이딴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았던 굿스프링가의 영애도 있었다.
이 미친 분위기에 따라서, 헬빈도 급히 몸을 숙이려던 때다.
“동작 그만.”
수렵선생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눈동자가 이쪽을,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몸이 깨끗한 다섯 명을 향했다.
“에반 헬빈, 한스 밴더, 쇼 그린우드, 브루노 해머, 라우라 로시. 1점 감점이다.”
“……!”
“다시 동작 재개.”
다섯 명이 멍하니 서 있으니, 수렵선생이 호통을 쳤다.
“뭐 하고 있나! 다시 굴러엇-!”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다섯 명이 다시 땅바닥을 굴렀다.
축축한 진흙이 옷과 맨살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까지 더럽혔다.
‘찌, 찝찝해……!’
물론 무가의 자식인 에반이기 때문에 흙을 묻힌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자의적으로 흙바닥에 구르는 경험은 생전 처음이다.
“그리고… 너는 이름이 뭐지?”
수렵선생의 시선이 에반의 옆을 향했다.
그곳엔 누구보다 신속하게 바닥을 굴렀던 금발의 소년이 있었다.
“예! 루안 배드니커입니다!”
헬빈이 깜짝 놀랐다.
배드니커라고? 머리카락 색이 저래서 깨닫는 게 늦었다.
‘게다가 루안이라면, 그놈이잖아.’
가문의 보검을 팔았다는 미친놈 말이다.
그렇군, 이미 정신이 나가서 누구보다 빠르게 미친 짓을 할 수 있었던 건가?
“대답이 빠릿빠릿하군. 동작도 네가 가장 빨랐다.”
“감사합니다!”
“루안 배드니커에게 가산점 1점을 주겠다.”
“더 감사합니다!”
“흠.”
수렵선생이 묘한 눈으로 루안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모두 일어낫!”
후다닥, 이번엔 거의 비슷하게 삼십여 명의 영도가 동시에 일어났다.
“본격적인 수업은 내일부터다. 오늘은 숙소를 배정해 줄 테니, 별다른 지시가 없다면 방에서 쉬어도 좋다.”
그리고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덧붙인다.
“…몸 편히, 맘 편히 잘 날은 오늘 하루뿐일 테니까, 후회 없는 휴식을 보내도록 해라.”
에반은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아까 가라고 할 때 갈걸.
* * *
숙소라는 건물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에반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여기가… 숙소라고?’
잔뜩 쌓인 먼지,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계단, 아슬아슬하게 비바람만 막을 수 있는 지붕.
돼지우리를 잘못 말한 게 아닌가?
“잠깐! 거기 당신, 아무래도 안내를 잘못한 것 같은데.”
그때 에반과 비슷한 감상을 느낀 듯한 한 영도가 안내한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가 삐딱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잘못?”
“여긴 숙소가 아니라 창고이지 않나!”
“아닌데.”
“뭐?”
“숙소가 맞다고. 너희가 이번 수련회 동안 머무를 장소 말이다.”
“뭣……!”
“그리고 브루노 해머, 교관에게 하대는 감점 요소다. 1점 감점.”
아까 이름을 한 번 불렸던 놈이었다.
기사의 건조한 목소리에 브루노의 얼굴이 붉어졌다.
에반은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하마터면 또다시 점수가 깎일 뻔했다.
이 점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 당분간은 사리자.’
그건 그렇고 방에 가기 전에 몸부터 씻고 싶었다.
더러운 바닥을 실컷 구르면서 모래 알갱이가 내의 안까지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저어- 혹시 씻는 건 어떻게…….”
또 다른 녀석이 기사에게 물었다.
방금 꼴을 봤는지 묘하게 정중한 말투다.
에반도 귀를 기울이며 그 대화에 집중했다.
“욕실이 개방되는 시간은 하루에 단 두 번뿐이다. 일어났을 때, 그리고 자기 직전. 지금은 씻을 수 없다는 뜻이지.”
“그, 그런…….”
그럼 이 꼴로 밤까지 있으라고?
에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물론 그렇다고 교관에게 정면에서 항의할 용기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3’이라는 번호가 박힌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안엔 침대 2개와 책상 2개가 보였다.
특이한 점은, 침대와 책상이 마치 합쳐진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
책상 위에 지붕이 있고, 그 위에 침대가 얹어져 있는 모양이었는데… 왜 저런 디자인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
그러나 방의 꼴을 본 순간 에반은 깨닫고 말았다.
이 좁아터진 공간에, 책상과 침대를 두 개씩 쑤셔 박으려면 저럴 수밖에 없다는 걸.
‘말도 안 돼……. 여기서 지내라고?’
에반이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개, 덕스의 집도 이것보단 크겠다!
현기증이 났으나, 방금 브루노라는 놈처럼 기사에게 따지고 들 자신은 없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포인트를 깎이기는 싫었다.
에반은 짐도 없어서 왼쪽의 1층 침대에 털썩 앉았다.
벌컥-.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
아까 옆에 서 있던 녀석이다.
루안 배드니커.
에반이 급히 예의를 갖추며 인사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헬빈가의 에반이라고 합니다. 배드니커의 도련님이시죠?”
상대가 가문의 보검을 갖다 판 미친놈이라고 해도, 헬빈은 거의 몰락 귀족이나 다를 바 없다.
어쨌든 이쪽이 먼저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뜻.
루안은 덤덤한 시선으로 방 안을 둘러보고, 그다음 에반을 보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에반 헬빈. 유명인이시군.”
“예? 제, 제가요?”
“아직은 아닌가?”
루안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아무튼 잘 부탁해. 여기 오른쪽은 내가 쓴다?”
“아, 예.”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돼. 이제부터 같이 흙 처먹으면서 개같이 구를 사인데.”
“그게 무슨…….”
루안은 대답하지 않고 기분 나쁘게 낄낄 웃으며 2층으로 훌쩍 올라갔다.
‘귀족 같지 않은 사람이네.’
사실 그건 에반도 마찬가지라서 딱히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수련회 동안 같이 지낼 룸메이트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아아.]
“흐엑!”
그 순간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영도에게 전파한다. 식사를 원하는 영도들은 18시부터 19시까지 식당을 이용하도록. 이상.]
“뭐, 뭐야?”
“통신 마법이잖아.”
루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마 통신용 수정을 미리 숙소에 배치해 뒀겠지. 저기 있네.”
루안이 가리킨 곳엔 수정이 박혀 있었다.
“통신 도구 겸 조명이군. 확실히 이 방엔 쓸모없는 게 없어 보이는데.”
“…허, 허허.”
“정신 차리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아, 예.”
에반은 루안의 뒤를 따라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리 익숙해 보이지?’
금방 결론이 나왔다.
배드니커잖아.
아마 수련회 전에 뭐라도 귀띔을 받은 게 아닐까?
에반은 살짝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식당을 찾는 건 쉬웠는데, 그냥 음식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가면 됐다.
에반은 사실 오늘 점심부터 굶었기 때문에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었다.
‘음식이 맛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이것만큼은 미리 각오했다.
더럽게 맛이 없다고 해도, 불결하거나 영양분만 부족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에반은 결과적으로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알지 못하게 됐다.
“에반 헬빈, 넌 식당 출입 금지다.”
“어, 어째서…죠?”
하마터면 반말할 뻔했다.
그러자 식당에 서 있던 기사가 건조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소지 포인트 10점 미만의 영도는 저녁 식당에 발을 들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