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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67화 (67/172)

67화

“루안 배드니커.”

내가 2위였다.

2위면 8점 추가다.

그럼 합쳐서 20점인가 21점인가……. 잘 모르겠다.

원래부터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튼 내가 2위에 선정되니 시선이 쏠리며 수군거리는 듯한 기색이 번졌다.

특히 귀족 놈들은 대부분 의혹에 찬 눈빛을 보냈는데…….

보검판매상이니 뭐니 하는 소리도 함께 들리는 걸 보니, 아직 내 악명을 없애려면 한참 남은 것 같다.

“루안 영도는 마물 토벌에선 돋보이는 성과를 보이지 못했지만, 영도 중에서 유일하게 시험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행동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서 있던 에반이 반사적으로 물었다.

“시험의 의도요?”

“생존선생이 떠나기 전에 말했을 텐데요?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말입니다.”

“아.”

생존.

아마도 그 단어가 영도 녀석들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영도 중에서 타인의 목숨까지 신경 쓴 건 루안 영도뿐이었습니다. 토벌한 마물과는 무관하게 2위라는 순위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요.”

영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은 슬쩍슬쩍 나를 보며 고마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는데, 내가 목숨을 구해 준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1위, 카론 우드잭. 위협의 근원인 몬스터를 가장 많이, 가장 빠르게, 가장 확실히 토벌하였습니다. 현역 영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솜씨였지요. 축하드립니다.”

카론이 무예선생을 보더니, 재수 없는 낯짝에 호선이 그려졌다.

저놈도 웃을 줄은 아는구만.

무예선생도 마주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특별 보상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카론 영도에겐 본 수련회에서 룰을 추가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카론이 멈칫하더니 물었다.

“룰 추가라고 하심은.”

“말 그대로입니다. 가령 이번 수련회의 룰 중에선 ‘소지 포인트 10점 미만의 영도는 저녁 식당을 이용할 수 없다’란 게 있지요? 카론 영도에겐 이걸 변경할 권리가 있습니다.”

무예선생은 그림이라도 그리듯 손가락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예를 들어 ‘소지 포인트 5점 미만의 영도는 저녁 식당을 이용할 수 없다’, 혹은 ‘소지 포인트와 관계없이 저녁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 말에 몇몇 영도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슬금슬금 카론의 눈치를 봤다.

당장 소지한 포인트가 10점 미만인 녀석들일 거다.

“아니면 이런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1등 이외의 그 누구도 저녁 식당을 이용할 수 없다.”

“…….”

“…….”

영도들 대부분이 딱딱한 얼굴로 단상 위를 올려다봤다.

그제야 이 특별 보상이 써먹기에 따라 얼마나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잠깐 침묵하던 카론이 물었다.

“막대한 권리이니만큼 당연히 제한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물론입니다. 터무니없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가령 ‘카론 우드잭의 포인트는 매시간마다 1점씩 추가된다.’ 같은 거?”

“…….”

“하지만 어느 정도는 스스로에게 유리한 룰이어도 묵인됩니다. 애초에 그러기 위한 특별 보상이니까요.”

“언제까지 결정해야 합니까?”

“딱히 시간에 제한은 없습니다만, 빨리 말씀하시는 게 유리하겠죠. 어차피 수련회 내에서만 적용되는 룰이니까요.”

“…….”

카론은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었는데, 어쩐지 저놈은 1등이란 순위에 과도한 집착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룰 추가도 자신의 현재 순위를 사수하는 방향으로 하지 않을까?

말을 마친 무예선생이 분위기를 환기하듯 화제를 바꿨다.

“아무튼 오늘로써 수련회도 벌써 사흘 차군요. 하하. 정말 시간이 쏜살같죠?”

그러나 이 갑작스러운 화제는 영도 대부분의 정신을 초토화시켰다.

“…사흘이라고?”

“삼 개월이 아니라?”

“그, 그럴 리가 없어. 하다못해 삼 주는 됐을 거야.”

“여기서 5주 하고도 4일을 더 지내야 한다고? 농담이지?”

“히, 히히. 죽여 줘…….”

확실히 수련회의 하루가 어마어마하게 길긴 하지만…….

그건 그만큼 교관들이 짜 놓은 커리큘럼의 밀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판으로 짜 놨으면 이런 느낌이 들지도 않았을 테니.

“모두 정숙하세요. 어쨌든 오늘은 피곤하실 테니, 오전 수업은 무술 이론에 대한 설명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저번에도 이론 아니었나?

딱히 일어서라는 말은 없어서 대부분 앉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무예선생도 단상 끄트머리에 앉아 영도들과 눈높이를 맞추더니 말을 이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무술의 시작점은 호신이며 체격과 근력, 순발력 등 자신보다 우월한 상대에게서 육체를 지키기 위해 만든 기술의 총체입니다.”

무예선생은 지난번 수업 내용부터 꺼냈다.

지루한 복습에 나는 살짝 하품이 나올 뻔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해서 듣는 것만큼 지루한 일도 없다.

이후로 무예선생의 자신의 무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이건 내게 더 쓸모없는 수업이었다.

물론 누군가의 가치관을 엿듣는 건 견문을 넓힐 이로운 수단 중 하나지만, 나는 이미 개인의 무학을 확립했다.

지금은 그걸 다듬는 과정에 서 있는데, 당분간은 이 방향을 유지할 생각.

이 기로에선 누군가의 조언이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하는 게 아닌, 덜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시선을 흐릿하게 만든 다음 본격적인 딴짓을 시작했다.

‘우선 어제 있었던 수렵선생과의 대련부터…….’

수렵선생이 보여 줬던 무술과 그 특징, 전투의 흐름과 나의 대응을 순차적으로 떠올린 뒤.

백일식의 후반 초식에 대한 구상과 함께 심야에서 벌어졌던 마물과의 전투도 같이 회상했다.

그 전투에서 칠죄검으로 쓸 수 있는 몇 가지 초식도 떠올랐다.

즉석에서 떠올린 초식이라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가다듬으면 쓸 만할 터.

하지만…….

그렇게 떠올린 검법을 백일식이라 칭해도 되는 걸까?

사실 안 될 건 없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백일식은 지법指法, 권법法, 수법手法, 장법掌法, 각법脚法이 복합적으로 섞인 잡스러운 무공.

적성에만 맞았다면 분명 조법爪法까지 넣었을 테니, 딱히 후반부에 검법, 도법, 창법을 추가하지 못할 건 없다.

하나 그것과 별개로 이게 맞는 방향인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백일식에 편입되기 위한 자격이란 게 있나?

있다면 대체 뭐지?

또 무공의 완성과 미완은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 걸까.

나는 난감해졌다.

처음으로 창시자의 입장이 되니 무공이란 놈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백일식은 전반부만으로 이미 뛰어난 무공이다.

파괴력은 말할 것도 없고, 색채도 뚜렷하다.

무신의 말처럼 파괴력에 너무 치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백일식의 특징이라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래도.

‘뭔가 아쉽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우선 이 정체불명의 아쉬움을 무공 완성의 마지막 조각으로 삼기로 했다.

뭔지는 몰라도 이 아쉬움이 충족되면, 그때야 비로소 백일식을 완성한 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단기간에 찾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이건 내가 무인으로 살아가며 평생을 두고 고민해야 할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여기까지.

나는 가열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살짝 눈을 떴고…….

“……?”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상엔 여전히 무예선생이 앉아 있었는데, 그 앞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반이 서 있었다.

‘뭔 상황이래.’

때마침 근처에 답을 알려 줄 적합한 인재가 있었다.

슥슥, 요령 좋게 엉덩이로만 움직여 접근한 다음 목표물의 어깨를 툭 쳤다.

“뭐야?”

날이 선 목소리가 즉각 돌아왔다.

역시 사시사철, 24시간, 상황과 관계없이 까칠한 인재답다.

“방금 자다 깨서 그런데 뭔 일이야?”

“잤다고? 너도 참 징하다…….”

“그래서 뭔 상황인데.”

세렌이 한심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저 양반이 비전 무술에 관한 설명을 하다가 레이븐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걸로 언쟁이 좀 생겼어.”

레이븐이라면 에반의 가문인 헬빈의 비전 무술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언쟁?”

“무예선생이 레이븐을 보고 쓸모가 없는 무술이니 당장이라도 버리고 다른 걸 익히라더라.”

나는 에반을 보았다.

그래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구나.

에반이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모든 상황에서, 그리고 모든 상대에게 절대적으로 강할 수 있는 무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언쟁은 현재진행형인 모양이다.

“교관님의 말씀대로 레이븐의 완성도는 다른 걸출한 무술에 비하면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약한 무술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약한 무술이 아니다……. 재밌는 말씀이군요. 제가 알기로 레이븐을 익힌 그대의 부친, 도즈 헬빈 경은 무수한 대련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던데.”

무예선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에반 영도의 말씀이 맞는다면 단 한 번이라도 이겨야 하지 않았겠어요?”

“…….”

에반이 입을 닫았다.

사실 무예선생의 말은 반론이 가능하다.

에반의 말이 사실이라서 그렇다.

세상에 약한 무술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존재하는 건 약한 무인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는 에반이 그 사실을 말할 수 있을까.

약한 건 레이븐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였다고?

“전패全敗의 기사…….”

그때 영도들 사이에서 웃음을 꾹 누른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패의 기사라면 유명인이다.

비전 무술을 새로 창안한다며 제국 전역을 떠돌며 대련을 청하던 기사.

떠돌이 무인이었어도 조롱받을 일을 위대한 가문 출신이 저질렀다고 당시 제국에선 말이 많았다고 한다.

콧대 높은 귀족 놈들 대부분은 눈살을 찌푸렸고.

만약 좋은 성적을 거뒀어도 품위가 없다며 비난받았을 텐데, 심지어 그 기사는 무수한 대련 속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따내지 못했다.

그러니 세간에선 그 사내더러 조롱과 멸시를 담아 전패의 기사라 불렀다.

“에반 영도, 저는 강요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이번엔 어린 영도의 미래를 위해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예선생이 얼굴의 웃음기를 지운 채로 말했다.

“강해지고 싶다면 레이븐을 버리십시오.”

주변의 조소가 에반의 고개를 짓눌렀다.

나는 에반의 숙인 정수리에서 컴컴한 연기 같은 게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어쩐지, 뭔가 좀 위험해 보이는데?

* * *

수련회 일정은 빡빡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조이기만 하면 망가지는 법.

이 빡센 일과 속에서도 한숨 돌릴 시간은 곳곳에 있다.

식사 시간은 저녁의 휴게 시간을 빼면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다.

주변에 교관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서로 주먹다짐을 하지 않는 이상에야 개입하지 않는다.

다소 시끄럽게 잡담을 나눠도 이때만큼은 터치하지 않는 것.

처음엔 슬슬 눈치를 보던 영도들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이제 식당은 제법 시끌벅적한 곳이 됐다.

“너, 성가신 놈한테 찍힌 것 같더라.”

식사를 마친 세렌이 다가오더니 내게 말했다.

누굴 말하는지 알겠다.

“그러게.”

“원래부터 알던 사이야?”

“그럴 리가.”

“뭔가 실수한 건.”

“없어.”

“그럼 1등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견제인가.”

세렌의 슬쩍이 어딘가로 향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밥을 먹고 있는 카론이 보였는데, 어쩐지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의외로 사교성이 좋은 편인가 보네. 생긴 건 무슨 고독한 늑대처럼 생겨서.”

세렌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모르는 소리 하시네. 인간이란 다섯 명만 모여도 파벌을 형성하는 법이야. 심지어 여기 모인 놈들은 젖 뗄 때부터 정치를 배우는 귀족 놈들이 대부분이고. 떡고물 떨어지는 냄새는 개새끼보다 잘 맡을걸.”

“딱히 떡고물을 줄 것 같은 타입은 아니잖아.”

“강하잖아. 거기에 잘생겼고.”

앞에 건 동의하지만, 뒤에 건 애매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잘생겼다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데?”

“얼굴에 흉터가 있건 눈깔이 세 개건 잘생긴 건 잘생긴 거야. 오히려 진짜 미남의 유니크함은 그런 요소로 결정되기도 하지.”

“야. 잘생겨서 친해지려고 구는 거면 나도 인기가 있어야지.”

그러자 세렌이 측은한 시선을 보냈다.

“거울은 보니?”

“…….”

“그래, 뭐 너 정도면 못난 건 아니지. 근데 카론이나 네 형님에 비하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너는 뭐랄까. 잘생기려다 만 것 같은 얼굴이야.”

나는 세렌의 충격적인 발언에도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못생기다 만 얼굴은 아니라 다행이군.”

“긍정적이구나.”

“고맙다.”

“아무튼 그것뿐만은 아니고. 결정적인 건 오늘 저놈이 받은 ‘룰 추가 권리’ 때문이겠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자기들도 이득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아하.”

“핵심은, 카론은 저렇게 몰려드는 놈들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다는 거야.”

이 녀석…….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는데 그런 것까지 분석하고 있었나.

세렌이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지금까지로 봐서는 딱히 약점이랄 게 없는 놈이야. 강함은 말할 것도 없고, 마물이랑 싸울 때 봤는데 가호의 숙련도도 이미 영도 레벨이 아냐. 거기에 이용하려고 접근한 놈들을 이용할 만큼의 처세술도 갖췄지. 고작 레인저의 아들내미치고는 묘할 만큼 다재다능하다고.”

“음…….”

“그런 놈이 지금 가장 견제하는 게 너 같은데, 아마 수련회 동안 고생 좀 할 거다.”

이 녀석 표정 얄미운 거 봐라?

“…그렇다고 너무 과하게 다투지는 말고, 적당히 무시해.”

“왜.”

“조만간 그깟 다툼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

나는 세렌을 보았다.

수련회에서 이 녀석이 때때로 보였던, 어쩐지 겁에 질린 태도가 다시 느껴졌다.

“야. 세렌, 너 말이야-.”

“그 말 취소해라!”

그때 커다란 외침이 내 말을 갈랐다.

목청이 얼마나 우렁찬지 귓전이 찌르르 울릴 정도였다.

어째 귀에 익은 목소리이기도 하다.

왜소한 체격의 꼬맹이가 이빨을 뿌득뿌득 갈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한 여자 영도가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제가 왜요? 전부 사실인데. 당신 겁먹어서 아무것도 못 했잖아요.”

“…겁먹은 게 아니라 몸이 움직이지 않은 것뿐이다.”

“그걸 보고 겁먹은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래서 거인족이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여자를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저 여자는 분명…….”

“샤를 루비에타.”

“그래.”

루비에타 가문의 막내딸.

그리고 에반과 대련에서 붙었던 녀석.

건너 건너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 또렷하게 바라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런 머리카락이 진짜 가능하구나.’

마치 회오리를 형상화한 것 같다.

듣기로 저런 머리카락을 유지하려면 주기적으로 특수한 도구를 써서 돌돌 말아야 한다는데…….

여긴 그런 도구가 없으니 수련회가 진행될수록 점차 정상적인 머리가 되지 않을까?

“나는… 위대한 거인 이미르의 피를 이었다.”

“그래서요? 이곳에 영웅의 피를 잇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다고.”

샤를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한심한 모습을 보인 게 당신만은 아니죠. 하지만 당신은 거인족이잖아요. 폭주하게 되면 피아도 식별할 수 없게 되는 미치광이.”

“…….”

“마물도 아니고, 거인한테 죽는 건 사양이거든요. 그러니까 어제와 같은 상황이 오면 괜히 싸우겠답시고 나서지 말고 구석에 찌그러져 계세요. 알겠나요?”

미르가 다시 이를 갈았으나, 그 말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세렌이 턱을 괴며 말했다.

“넌 어떡할 건데?”

“뭘?”

“이번 수련회에서 어디 줄을 설 거냐고.”

“줄은 무슨. 애도 아니고.”

나는 세렌을 보며 말했다.

“너도 안 설 거잖아.”

“흥.”

세렌이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맞아. 그래도 넌 파벌에 드는 게 좋을 거야.”

“왜.”

“그편이 살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세렌이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다.

이렇게 찝찝한 상태로 끝나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전개다.

나는 즉각 손목을 붙잡으려다- 세렌이 슬쩍 피하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움켜쥐게 됐다.

“…….”

“…….”

“놔.”

“넵.”

아무리 나라도 거기서 한번 더 붙잡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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