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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137화 (137/172)

137화

[무한의 계단]

다소 거창한 단어가 적힌 팻말을 본 순간 왠지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회귀 전 영산을 하산할 때가 떠올랐는데…….

일반적으로 오르는 것보단 당연히 내려가는 편이 쉽다.

하지만, 과연 이 계단이 주는 시련이 영산보다 가혹할까?

‘…….’

나는 갑자기 든 생각에 멈칫하고 말았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한 끗 차이라서 그렇다.

영산 때처럼, 이 계단의 시련은 내게 미지수다.

아무리 영산에서의 수련이 가혹했어도, 그게 지금의 고난을 우습게 여길 근거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시험하고 싶은데.’

내공 없이, 가호 없이.

일단 육체만으로 이 무한이라는 이명에 부딪쳐 보고 싶다.

잠깐 고민하다가, 그러기로 했다.

타다닷!

계단을 질주하듯 오르며 생각했다.

아무리 올더슨이 칠색의 마법사라고 해도, 실제 계단의 수를 무한無限으로 설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런데도 왜 계단의 이름을 무한이라 붙였을까?

단순히 오르는 자를 겁먹게 만들기 위해서?

아니면 무한에 버금갈 만큼 길기 때문인가.

‘둘 다겠지?’

나는 낄낄 웃으며 결론 내렸다.

올더슨도 마법사라서 그렇다.

앞서 맛본 칠색의 수수께끼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노인네의 성격도 결코 좋은 편은 아니란 걸.

계단의 형태도 악질이다.

얼마나 올라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나선형 디자인…….

출발지도 도착지도 모른 채 쭉 나아갈 수밖에 없다면, 계단의 이름이 무한인 것도 아예 헛소리는 아니겠지.

‘이런 부분은 영산이랑 비슷하네.’

영산을 하산할 때도 흡사한 기분을 느꼈다.

사방을 감싼 안개 때문에 위도 아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넷째 사형이 붙여 준 FAD 덕분에 진행도는 알 수 있었으니…….

난이도를 떠나 더 질이 나쁜 건 이 계단 쪽이 아닐까?

‘좋다고.’

그러나 지금 내겐 그런 미지수인 부분까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영산에서 100일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정신과 육체의 괴리감을 완전히 없앴고, 체력 또한 몰라볼 만큼 늘었다. 개량한 염화제일공 덕분에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회귀 이후, 딱히 나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세운 적이 없었다.

후안과의 전투는 다소 일방적이었고…….

마왕은 아직 내가 넘볼 상대가 아니었으며.

영도 중에선 딱히 적수라고 할 만한 녀석이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계단은 좋은 시험 상대였다.

“…좋구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내달리니, 슬슬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반면 호흡은 여전히 차분하다.

‘살짝만 더 페이스를 올릴까.’

아니면 좀 더 상황을 지켜볼까.

아직도 계단의 전체적인 길이는 감이 오지 않는 상태라 신중해야 하지만…….

힘을 아낀 채 달리는 건 내 적성에 맞는 짓은 아닌 것 같다.

처음 알았다.

산보라도 하듯 가볍게 달리는 게 의외로 감질난다는 것을.

‘살짝만 전력으로-.’

그리 생각하며 앞발에 힘을 준 순간, 나는 급히 몸뚱이를 멈췄다.

다소 갑작스럽게 계단이 끝나며 벽면이 출현한 것이다.

“뭔…….”

하마터면 이마를 박을 뻔했다.

그리고 내가 멈칫한 사이, 귓전으로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닿았다.

[축하합니다. 무지개의 층을 통과하셨습니다.]

‘이게 끝이라고?’

그렇다, 고 대꾸라도 하듯 주변이 빛에 휩싸이더니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차갑고 서늘한 색채의 계단, 석벽이 사라지고 어딘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도서관 같은 배경이 자리 잡은 것.

어쨌건 나는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진짜 끝난 거였구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전력으로 뛸 걸 그랬다.

괜한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일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서관이라…….’

어쩐지 목덜미 부근의 문신이 시큰거리는 느낌.

물론 이곳은 본가의 음침한 지하도서관과는 분위기가 아예 달랐다.

무엇보다도 밝다.

창문은 보이지 않았지만, 천장 중앙에 붙어 있는 샹들리에에서 따뜻한 조명이 쏟아졌는데 그 덕분인 듯하다.

[지식의 층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두 번째 규칙※]

[세 번 이상 문제를 틀리면 페널티.]

여기서도 문제라니…….

마법사란 놈들의 사고방식은 의외로 단순한 게 아닐까.

어쨌든 여기도 페널티란 게 있지만, 못 풀어도 혓바닥을 자르거나 눈알을 뽑지는 않을 거다.

좀 못된 장난이야 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공교로운데.’

우연이겠지만, 내가 일전에 겪었던 고난의 하위 호환 격 시련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의도치 않게 예습을 한 느낌이랄까?

딱히 죄책감은 없었지만, 어쩐지 살짝 비겁해진 느낌이다.

‘그나저나 뭔 문제를 풀라는 건지…….’

도서관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어딘가에서 책이 날아오더니 내 앞에서 멈췄다.

촤르륵-.

뒤이어 책 페이지가 멋대로 넘어가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문제입니다.]

“아하.”

이런 식이구만.

이윽고 책의 페이지가 고정됐고, 나는 문제를 들여다봤다.

* * *

눈알이 빠져라 화면을 보던 올더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영도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분명…….”

몰란드는 두 가문에서 미리 제출한 프로필을 훑어보며 대꾸했다.

“금발에 자안紫眼……. 분명 루안 배드니커일 겁니다.”

“루안 배드니커? 철혈공의 막냇자식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분명 가호를 하나도 받지 못한 무능아라고 들었는데…….”

몰란드가 입을 닫았다.

비슷한 소문은 그 또한 들었기 때문이다.

배드니커의 막냇자식.

혈연을 중시하는 철혈공마저 내칠 정도로 답이 없는 핏줄이라고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가문의 보검을 갖다 판 미친놈이란 소문은 쉽게 잊힐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게 배드니커의 보검인 걸 알고는, 헐값에 사 갔던 상인들이 오히려 배드니커의 영지까지 뛰어갔다지…….’

혹자는 철혈공이 상인을 대상으로 판 함정이라고도 주장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를 터.

올더슨이 복잡한 눈으로 화면을 보았다.

“으음……. 아무래도 가호를 받지 못한 만큼 육체 단련에 치중한 듯하구먼. 다시 보니 새삼 대단한 육체야.”

살짝 진정한 올더슨이 홍차로 입을 축이더니, 다시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대단한 육체지만… 단순히 육체만 믿고 막 나갔다간 호되게 당할 것이야. [수행의 탑]에서 무엇보다 요구하는 건 도전자의 다재다능함이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올더슨이, 다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계단을 쉽게 돌파해 기고만장한 저 영도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드는 것도……. 큭큭큭!”

“저기… 학장님?”

“또 뭔가?”

“루안 배드니커가 2층을 돌파했는데요……?”

* * *

[축하합니다. 지식의 층을 통과하셨습니다.]

또다시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닿았다.

아마 30분도 안 걸린 듯하다.

1층보다 훨씬 빨리 클리어한 셈인데,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야말로 편법을 쓴 느낌이라 살짝 기분이 오묘했다.

‘이 정도면 무신이 아니라 문신文神 아닙니까?’

내가 살짝 질린 어투로 말하니, 무신이 픽 웃으며 말했다.

[단순히 운이 좋은 걸세. 오늘날의 인물들이 역사로서 기록한 과거가, 내게 있어선 기억과 인연으로서 새겨졌으니.]

‘…단순히 과거 시대에 국한된 게 아니라, 그냥 전체적으로 견문이 엄청 넓으신 듯한데요?’

[그런가? 잘 모르겠군.]

이번에도 무신의 도움을 받았다.

아마 아카데미의 역사 교수라고 할지라도, 무신과 역사에 대한 담론을 나누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무신의 지식의 폭은 깊고, 넓었다.

가령 풀었던 문제 중 하나…….

[일반적으로 마도학의 경지란 다룰 수 있는 색色의 종류로 정해진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마도학에서 색을 터득하는 데에 가장 추천하는 순서는?]

분명 내가 아는 언어로 적혀 있는데, 이게 대체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다.

리세가 냈던 것과 달리 [지식의 층]의 문제는 주관식이었고… 대부분이 내 관심 밖의 분야였다.

나는 마도학의 경지가 다룰 수 있는 색으로 나뉜다는 것도 이 순간 처음 알았다.

당연히 답을 알 리가 없어 멈칫하고 있는데, 무신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색과 자색 중 성향에 맞는 쪽을 고르면 되네. 이후로는 순차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이지. 칠색을 모두 터득한 이후엔 하나의 색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파고들거나, 혹은 혼색混色의 단계로 넘어가고.]

무신은 무술만이 아닌 과거의 역사나 신화, 영웅적인 인물, 심지어 마도학에도 조예가 있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식의 층]을 별다른 고민 없이 돌파할 수 있었고…….

[단련의 층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세 번째 규칙※]

[이 층수에선 가호가 금지됩니다.]

[어길 시 페널티.]

무기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다시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이번에 날 맞이한 건 회색빛 방이었는데, 시작점과 비슷하게 벽면엔 세 개의 방문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우리의 팻말이 중간에 꽂혀 있었다.

언뜻 봐선 여태까지 본 팻말 중 문구가 가장 길어 보인다.

나는 천천히 내용을 읽었다.

[끝 모를 체력과 방대한 지식을 갖춘 당신! 3층에 오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4층엔 위대한 대마법사- 자색의 올더슨이 준비한 막대한 보상이 준비되어 있지요!]

[당연히 그런 귀한 장소에 아무나 발을 들일 수는 없겠죠? 4층에 입장하기 위해선 이제 세 가지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당신의 ‘힘’과 ‘속도’, ‘순발력’을 테스트하세요! 총합 150점을 넘긴다면 다음 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힘, 속도, 순발력.

나는 각기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의 문을 보았다.

[힘의 방.]

[속도의 방.]

[순발력의 방.]

“음…….”

이번엔 육체 능력을 측정하는 건가?

제법 흥미가 생겼다.

나는 본능적으로 [힘의 방]부터 입장하려고 하다가 생각을 바꿔 [순발력의 방]부터 가기로 했다.

육체나 정신 상태에 가장 짙게 영향을 받는 게 순발력- 즉 반응 속도라 그렇다.

반면 힘이나 속도는 육체 컨디션에 영향을 받는 게 순발력보단 덜하다.

달칵-.

문을 열고 [순발력의 방]에 입장했다.

널찍한 방이다.

탑을 들어오고 이토록 넓은 공간은 처음이라 살짝 얼떨떨한 상태.

텅 빈 공간의 중간쯤엔 팻말 하나만 표표히 꽂혀 있었다.

[순발력의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 방의 시련은 총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투척물을 피하십시오.]

“투척물?”

내가 반문한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1단계를 시작합니다.]

철컥!

그 순간 전방의 벽면에 시꺼먼 구멍 같은 게 생겼다.

내 머리통은 들어갈 정도의 크기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투투투퉁!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구멍에서 공이 쏟아졌다.

“……!”

꽤 빠르다.

나는 즉시 상체를 비틀어 날아오는 공을 피했다.

꽈과광!

벽에 부딪힌 공들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맞으면 ‘아야’하는 수준으로는 안 끝날 것 같다.

[2단계를 시작합니다.]

이번엔 양방향에서 구멍이 생기더니 화살이 다발로 날아왔다.

당연하지만 공보다 훨씬 빠르고 위협적이지만, 이번엔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1단계보다 더 수월하게 회피했다.

‘2단계가 양방향이라면 3단계는…….’

[3단계부터는 부상의 위험이 있으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속행하시겠습니까?]

1, 2단계도 까딱 잘못 맞으면 골로 갈 정도였는데. 남은 두 단계는 훨씬 위험한가 보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무를 생각은 없다.

나는 허공을 향해 짧게 대꾸했다.

“고.”

[3단계를 시작합니다.]

철컥!

예상대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후좌우, 사방에서 구멍이 생겼다.

공과 화살 다음은 뭘까?

곧바로 대응할 수 있게 감각을 끌어올린 채 대기하는데, 예상 밖의 투척물이 날아왔다.

쐐애애액-!

원반이었다.

그것도 하수구 뚜껑만큼이나 큰 원반.

심지어 이 원반엔 살벌한 칼날까지 부착되어 있었는데… 저걸 맞았다간 부상이 아니라 그냥 반으로 갈라져서 죽을 거다.

원반은 공이나 화살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빨랐고, 무규칙하게 날아오지도 않았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원반은 내가 피할 경로를 미리 예측한 듯한 동선으로 날아왔다.

전부 피하는 건 어렵다.

방어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투척물을 피하십시오.

목소리는 투척물을 피하라고 말했다.

방어가 틀린 대응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더 생각할 틈이 없다.

나는 거의 코앞까지 치달은 원반을 본 순간, 허리춤에서 칠죄검을 뽑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원반을 칼끝으로 툭 건드린다.

키긱.

칼과 부딪친 원반의 경로가 틀어진다.

왼쪽으로 회전한 원반이 가장 가까이 있던 원반과 부딪쳤고, 그러한 충돌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카카카캉!

결과적으로 나를 덮치던 원반들은 저들끼리 부딪친 다음 사방으로 튕기더니, 벽면에 박혔다.

‘이 정도면 세이프?’

그래도 직접 쳐내서 막은 건 아니잖아.

살짝 긴장한 채 목소리를 기다리는데…….

[4단계를 시작합니다.]

“후우…….”

사실상 통과 사인이 떨어졌다.

아니, 안심할 때가 아니지.

4단계는 어디서, 뭐가 날아올까?

쿠우우우웅……!

그때 위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후두둑, 흙먼지가 떨어지는 기척에 고개를 들어 보니 천장 벽면이 뒤집히는 기상천외한 광경이 보인다.

뒤집힌 벽면을 빼곡히 채운 건 수백, 수천 개의 구멍이었다.

꼭 벌집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 순간, 구멍 안에서 서늘한 금속 같은 게 번뜩이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든 순간…….

“……!”

직후 뚫린 구멍에서 온갖 무기- 검과 도, 단검, 창, 도끼……. 하여간 내가 아는 모든 무기보다 몇 배는 많은 종류의 병장기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콰가가가가가가각!

“……!”

이걸, 시발, 어떻게 피하라고?

다치지 않으려면 칠죄검을 휘둘러 즉시 대응해야겠지만, 어쩐지 그러는 순간 4단계는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 무기의 폭우를 완전히 회피할 방법은 없다.

신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 밀도의 문제다.

즉 3단계처럼 편법을 써야 한다는 뜻인데, 지금은 그때처럼 투척물의 경로를 강제로 바꾸는 방법도 불가능.

그럼 어떻게 해야-.

“……!”

그 순간 벽면에 박힌 원반에 시선이 갔다.

자세히 보니 저건 원반이 아니라 방패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투척물의 형태는 하필이면 무기.

탓!

생각하는 것보다 몸이 더 빨리 움직였다.

나는 즉시 방패가 있는 곳까지 뛰어간 다음, 슬라이딩하듯 그 아래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방패를 손으로 밀어내듯 받친다.

투두두두두둑!

강철로 된 폭우가 쏟아지는 듯하다.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가 귓전을 사납게 때렸다.

그렇게 손목이 뻐근할 만큼의 충격이 끝난 이후에야… 마침내 주변이 조용해졌다.

[축하합니다! 순발력의 방에 준비된 모든 시련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점수 산정 중…….]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한숨을 내쉬며 너덜너덜해진 원반에서 기어 나왔다.

그사이 사방에 나동그라진 무기의 파편은, 곧 빛의 입자가 돼서 사라졌다.

이제 알겠다.

칼날이 달린 원반도, 하늘에서 쏟아지던 병장기의 폭우도, 실제 무기만큼 위험하지는 않았다.

아마 이것도 마법으로 만든 것일 테고, 실제로 맞아도 죽지는 않았겠지. 죽을 만큼 아플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진짜 무기에 맞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꼬락서니를, 어디선가 구경하는 거다.

‘진짜 악취미라니까.’

한숨을 내쉬는 순간, 내 앞에 작은 화면이 나타났다.

놀라기도 전에, 반투명한 화면에 떠 있는 문구가 보였다.

[순발력의 방 역대 순위.]

역대 순위라면… 클리어한 자들의 기록을 말하는 걸까?

손가락으로 움직이니, 다수의 이름이 주르륵 지나갔다.

물론 내가 궁금한 건 상위 랭킹.

가장 끝까지 목록을 올린 나는, 곧 익숙한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1위. 델락 배드니커. 94점.]

[2위. 레오네. 87점.]

[3위. 하이드 우드잭. 85점.]

[4위. 카엘라 골단. 84점.]

[5위. 글렌 스칼렛. 81점.]

“…….”

그러고 보니 철혈공도 카르텔 아카데미의 졸업생이었지.

무려 1년 만에 모든 과정을 끝마치고 졸업하긴 했지만 말이다.

살짝 얼떨떨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철혈공과 직접적인 비교를 할 기회가 생길 줄은 몰랐는데.

[점수 산정이 완료됐습니다.]

그럼, 지금 내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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