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6화 (16/925)

5. 1학년 0반 (2)

게임 초반 주수혁에게 까불다가 시원하게 얻어터지며 퇴장한 엑스트라 캐릭터가 있었다.

명문고에서는 보기 드문 타입의 엑스트라였다.

중학교 때는 공부만 했었지만 고등학생이 되니 양아치가 된 척, 센 척 허세를 부리는 놈이었다.

하지만 이놈은 너무나 허술한 행적 탓에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다.

기관지도 좋지 않은 주제에 캑캑거리면서 담배를 피우지만 결국 한 대도 다 태우지 못해 버리고, 길거리에서 싸움을 걸었다가 역으로 당해 주수혁에게 도움을 받는 등.

그 엑스트라의 얼마 안 되는 게임 속 모습은 매우 찌질했다.

그러다 1학년을 마칠 때쯤에 엑스트라는 올곧은 신념을 가진 주수혁에게 감화된다.

그는 자신의 하찮은 악행들을 반성한 후 주수혁과 친구가 되며 조연 격 캐릭터로 격상되는 듯했다.

하지만 주수혁을 노리던 어느 마족이 그 엑스트라를 에너미화 해 버린다.

그 마족은 엑스트라의 나약한 마음, 희미하게 남아 있던 시기심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그 결과 상위 존재인 7대 죄악의 마신 중 하나, 질투의 인비디우스의 권속이 엑스트라를 매개로 빙의한다.

엑스트라가 빙의계 악마종으로 반쯤 에너미화 되었을 때.

마족과의 격전으로 이미 그 자리에 있던 교사들은 전멸하고 학생도 수십 명이 죽은 뒤였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건 주수혁뿐이었다.

주수혁이 엑스트라를 죽이지 않으면 아직 살아 있는 부상자들도 전부 죽게 될 상황이었다.

주수혁은 차마 친구가 된 그 엑스트라를 죽이지 못한다.

주수혁이 망설이다 검을 내리려 할 때 엑스트라가 사력을 다해 저항해 잠시 정신을 되돌린다.

[주수혁 개같은 새끼야, 지금 나 안 죽이면 너부터 죽인다! 제발······.]

그 대사가 엑스트라의 유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낸 엑스트라를 위해 주수혁은 제 살을 베는 심정으로 쌍검을 휘둘렀다.

그 후 친구를 죽인 주수혁의 멘탈도 입지도 산산조각 난다.

플레이어 협회와 주수혁의 집안은 열심히 그를 변호했다.

하지만 마족의 간섭으로 엉망이 된 기록 기기에 음성 녹음은 남아 있지 않았다.

주수혁은 빙의에 저항하여 제정신으로 돌아온 반 친구를 별 망설임 없이 죽인 비정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주수혁은 처벌받지 않았으나 황명재단은 그를 위험 인자로 여기게 된다.

주수혁은 2학년이 되자 0반행이 결정되었다.

그런 주수혁에게 흥미를 느껴 관찰한답시고 2학년 0반에 황명호 이사장이 분신을 보낸다.

방금 1학년 0반에 있었던 그 분신, 황지호를.

“의신아, 어떻게 알아본 거야?”

“의신 학생, 어떻게 알아 본 건가?”

1학년 전용 건물 문 앞에서 대기하던 에어셔틀을 타고 도착한 은휘관 이사장실.

그들······ 아니, 그는 도착하자마자 숨길 생각도 없는지 눈을 빛내며 동시에 말했다.

〈‘황지호’의 인물 정보를 열람합니다.〉

[이름] 황지호

[칭호] 은광고 1학년, 신화계 호족, 개천신화의 황호(黃虎), 신역의 수호자

[가호] ‘천신은 기꺼이 소원을 이루어주었다’

[광림] (비활성화 중)

[상태] 정상

[종합 능력치] Lv.??

[스킬]

도약 Lv.??

안광 Lv.??

포효 Lv.??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설명]

개천신화에 등장하는 황호.

천신에게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는’ 권능을 받았다.

천신의 가호가 닿는 땅 위라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곳,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다.

백호를 가둔 신역의 수호를 자청하여 천신이 이를 허용했다.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름과 칭호를 빼면 상태창도 이사장과 똑같았다.

개천신화에서 황호가 천신에게 청한 소원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는 것’.

천신은 그 소원을 들어주었고, 황호는 말 그대로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분신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거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를 조작하는 건 진족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니, 황호는 원하는 나이대의 분신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한 분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60대와 10대의 황호가 동시에 말하고 있는 걸 보니 골이 아팠다.

인류와 적대하지 않는 진족들 대다수가 정부와 거래하여 예비 호적을 여러 개 갖고 있었다.

황호는 거기에 더해 원할 때 은광고에 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둔 것 같았다.

10대의 황호, 황지호가 대답했다.

“그럼 말하기 편하게 내가 할까?”

“둘 다 편하지 않습니다만.”

“하하하, 저번에 예의 바른 척하던 모습보다 이쪽이 낫네. 그런데 어떻게 안 건지 말 안 해?”

어조가 대놓고 협박 투다.

하지만 황지호의 모습으로 접근했다는 건 지금 당장은 죽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도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황명호.

황지호.

황호.

황호의 성격을 생각하면 많이 머리를 쓸 필요도 없었다.

내가 할 변명은 금방 떠올랐다.

“제 입으로 말하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황호를 상대로 비밀을 숨긴다면 이 말이 최고다.

예상대로 황지호는 눈을 반짝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직접 알아내 볼까.”

황호는 생각보다 쉬운 놈이었다.

“그런데 이 모습일 땐 그냥 말 놔라. 너 때문에 의심받으면······ 죽이기는 싫고 어떻게 할까.”

황호는 쉬운 놈이지만 무서운 놈이기도 했다.

“그래. 알았다.”

나는 즉시 말을 놓았다.

황지호는 농담이라도 하는 양 웃으며 말했지만 저게 진담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잘된 일일지도 몰라.’

황호와 쉽게 접촉할 수 있다면 오히려 앞으로 일을 진행하기 쉬워질 것이다.

볼일이 있을 때마다 은휘관에 찾아가는 게 귀찮기도 하고.

신입생이 이사장과 자주 접촉하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이기도 할 거고.

“마침 부탁할 게 있는데 잘됐네.”

“또 거래를 하고 싶은 거야?”

역시나 이전에 나눈 대화를 거래라고 생각하고 있나 보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긍정했다.

“어. ‘입학시험 마수 난입 사건’과 ‘사월세음 실종사건’. 양쪽 모두 직간접적으로 웅족이 간섭했는데, 거기에 동시에 관련된 은광고 교사가 하나 있어.”

환몽게이트로 그도 쓸려 나가길 바랐지만 운 좋게 빠져 나왔는지 수업 계획서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그 교사는 환몽 리스트에도 실려 있지 않았다.

게임 속에서 운과 줄 대는 능력만큼은 환상적이었는데 이번에도 그게 발휘되었나 보다.

“그게 뭐.”

이사장이 일을 안 함.

황호는 학교가 개판이 되더라도 정말로 상관없다는 태도다.

‘이럴 거면 왜 이사장 자리에 앉아 있는 건지 모르겠네.’

그의 칭호는 ‘신역의 수호자’.

그 신역이란 서울특별시 은광구다.

개천신화에서 언급되는 신역, 열린 하늘에서 천신이 강림하여 신성한 범들의 소원을 들어줬었던 장소가 은광구였으니까.

‘그런데 왜 일을 안 할까.’

웅족이 은광고에서 개판을 치는 데도 ‘그게 뭐’라는 반응이라니.

이딴 식으로 할 거면 왜 황호가 신역의 수호자를 자청했는지가 의문이다.

황호에게 이사장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우선 나는 내가 원하는 것부터 말하기로 했다.

“그 교사의 재산 내역과 은광고 특별 전형의 인성 면접을 담당한 학생의 목록이 필요해.”

“알았어. 그럼 대가는 무엇으로 할까······.”

난 고개를 저었다.

“내가 거래를 하고 싶은 건 네가 아냐.”

“응?”

“내가 거래를 하고 싶은 건 적호(赤虎)야. 적호에게 그 교사의 이름을 알려 주는 조건으로 재산 내역과 목록을 받고 싶어.”

황지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곱상한 외모의 10대 청소년 황지호의 장난스러운 눈이 아주 잠깐 낮게 가라앉았다.

분명 나와 같은 나이대의 모습에 교복까지 입고 있는데 황지호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는 ‘우리’를 잘 아는구나.”

그야 10년 동안 화면 너머로 지켜봤으니까.

잘 알고 있다.

‘여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잠깐 생각에 잠겼던 황지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눈을 빛냈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나 보다.

적호에게 말을 전해 주는 것쯤은 그냥 해 줄 것 같다.

“알았다. 적호에게 전할게. 지금 적호는 개인적인 일로 전파가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좀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날로 먹었다.

적호에게 말 전하는 것도 거래네 어쩌네 할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오늘 내가 교실에서 저지른 실책은 전화위복이 될 것 같다.

*    *    *

황호와의 면담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

잠깐 옆길로 새기로 했다.

은광고 학교 부지는 해발 156m의 완만한 구릉성 산을 하나 포함하고 있다.

산의 이름은 천익산(天翼山).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산줄기가 하늘을 향해 홰치는 날개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천익산의 바로 아래에 거주 구역이 위치했는데, 그 탓에 기숙사 정문까지 야생 동물이 내려오기도 했다.

은광고의 보호 결계는 에너미와 진족, 학교 결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인간들만 방어하니 야생 동물의 침입은 막을 수 없었다.

‘프리 퀘스트로 기숙사에 쳐들어온 야생 멧돼지를 퇴치하는 이벤트가 있었지······.’

야생 멧돼지는 이계의 에너미도 아니니 보상이 허접해서 아무도 하지 않는 프리 퀘스트였지만.

‘찾아볼까.’

나는 천익산과 거주 구역의 경계선과 산책로를 뛰어다니며 주변을 살폈다.

내가 찾는 건 타이틀 히로인 안다인의 애견 ‘솜뭉치’다.

“어디 있냐, 솜뭉치.”

플마고 스토리 초반.

안다인은 버려진 절름발이 강아지를 키웠다.

안다인은 이 애교 많고 솜털 같은 강아지에게 ‘솜뭉치’라는 이름을 붙이고 거주 구역 관리팀의 허락을 받아 천익산에서 솜뭉치를 키운다.

‘기숙사는 애완동물 반입 금지니까 산에서 키울 수밖에 없었지.’

그러나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기간.

솜뭉치는 안다인을 시기한 이들에 의해 농약 섞인 빵을 먹고 죽는다.

솜뭉치를 땅에 묻으며 안다인은 흙투성이로 엉엉 울었다.

그 광경을 본 주수혁이 직접 사건을 조사하고 범인들을 잡아낸다.

‘범인을 찾는 과정이 게임화 되었었지. 주수혁 단독 퀘스트였었어. 범인을 잡아 안다인 앞에 던져 주는 장면까진 좋았는데.’

범인들은 처음에는 펄펄 날뛰면서 부인했다.

그러다 증거를 들이대니 장난이었다, 농약은 먹였지만 죽을 줄은 몰랐다는 둥 헛소리를 한다.

거기에 더해 고작 장난으로 강아지 하나 죽은 것 가지고 자신들을 괴롭히는 안다인이 가해자, 자신들은 피해자라고 주장해댄다.

‘같은 수석인 주수혁은 재벌집 아들이라 건드리지 않고 안다인을 노린 졸렬한 놈들이었어.’

이 사건을 맡게 된 교사는 ‘친구가 장난 좀 친 것 갖고 괴롭히지 말거라’라고 안다인을 질책하며 벌을 준다.

주수혁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벌은 없던 일이 되었지만 그 범인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화가 난 주수혁이 집안의 힘을 동원해 범인을 족치려고 했지만, 주수혁이 번거로운 일을 겪게 될까 봐 걱정한 안다인에 의해 저지되었다.

‘전형적인 헬조선 지옥불반도식 학교 내 사건 해결 방법을 담아낸 기승전결이었어.’

현실 같은 시궁창, 시궁창 같은 현실 속의 학교에서 사고가 터지면 보통 이런 식으로 해결되니까.

‘안다인은 운도 없었지.’

은광고에는 좋은 교사 좋은 학생들이 많다.

그 범인들과 그 교사는 은광고 최고의 쓰레기였다.

그 범인들은 은광고에 부정 입학한 놈들이었고 교사는 범인들의 부모에게 촌지를 받은 놈이었다.

주수혁과 안다인이 은광고의 모든 교사는 학생에게 공평하리라 믿은 게 맹점이었다.

두 사람은 천재였지만 아직 세상의 매운맛을 못 본 순수한 고교생이니 어쩔 수 없었다.

‘스토리상 솜뭉치를 살리고 말고는 엔딩에 별 영향이 없겠지만······.’

솜뭉치가 죽는 건 보기 싫었다.

타이틀 히로인 안다인이 우는 것도.

*    *    *

천익산을 헤매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6시가 되어 있었다.

3월 초의 일몰 시간은 약 6시 반.

어두워지면 솜뭉치도 움직이지 않겠지.

나는 혼잣말을 마지막으로 수색을 끝내기로 했다.

“솜뭉치야, 내일은 좀 나와라.”

이제 거주 구역으로 돌아가서 지익관(地翼館) 기숙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짐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기숙사생 오리엔테이션은 빠지고······.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며 하산하던 중.

‘뭐지.’

허공에서 날아드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시선 끝에서 새하얀 범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호군······!’

천익산 등산로 곳곳에 놓여 있는 낡아 빠진 구형 자판기.

그 위에 백호군이 서 있었다.

지고 있는 태양의 빛을 받은 백발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역광을 받은 백호군의 머리카락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백호군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보통의 한국인에 가깝게 위장하므로 게임 내에서도 백발을 한 건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파삭.

나와 눈이 마주친 백호군은 자판기 위에서 뛰어내렸다.

깃털이 수면에 닿는 것처럼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착지였다.

땅 위에 선 백호군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검게 물들어 있었다.

내가 주로 사용하던 플레이어블 캐릭터 백호군의 모습 그대로다.

‘왜냐.’

백호군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름 없는 조연의 튜토리얼’ 클리어 직후 체육관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내가 있던 세계에서도 범의 시선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하물며 호족의 백호의 시선이다.

움직이기도 숨쉬기도 어려웠다.

타개책이 필요하다.

말을 걸어보자.

“뭘 봐.”

어, 이게 아닌데.

망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말이 막 나오는 거냐.

그것도 호족들을 상대로.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하리.

이미 늦은 것 같았다.

난 안 될 거야 아마.

가출하려는 정신을 붙잡고 최대한 정중하게 그만 쳐다봐 주십시오, 하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웃고 있는 건가······?’

백호군은 입가를 희미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웃는 건가? 아니, 화를 내는 건가?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백호군은 입가에서 그 미소 비슷한 걸 지웠다.

휙.

그리고 바람 소리와 함께 백호군은 한순간에 없어졌다.

도약 스킬을 써서 어디론가 날아올랐나 보다.

백호군을 추적할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폭풍이 머릿속을 휘젓고 간 느낌이네.’

이 세계의 백호군은 어딘가 이상하다.

‘이름 없는 조연의 튜토리얼’에 등장한 것도.

지금의 나, 은광고 1학년생 조의신 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도.

‘신경 쓰여.’

가장 오랜 시간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사용하고 마지막 전투까지 함께 했던 캐릭터다.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지금 당장 생각할 필요는 없어.’

백호군은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캐릭터도 아니다.

최종장을 제외하면 그가 죽을만한 이벤트도 없었다.

백호군에 관한 고찰을 하는 건 미래의 나에게 미루기로 했다.

미래의 나야, 잘 부탁한다.

*    *    *

거주 구역에는 크게 다섯 건물이 있었다.

한 층에 30명 정도를 수용하는 20층짜리 기숙사 건물이 학년 별로 셋.

교직원 전용 사택 건물을 더하면 넷.

찍관이라는 애칭을 가진 기숙사 본관 지익관(地翼館)까지 다섯.

기숙사 본관인 지익관에는 지익회실, 기숙사생 전용 식당, 매점, 자습실, 세미나실, 스터디 룸, 시뮬레이터실, 체육실 등이 들어서 있었다.

기숙사는 전교생이 이용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으나 은광고의 통학생의 비율이 50% 정도였기 때문에 상당히 쾌적했다.

거주 구역 내의 1인당 사용가능한 면적이 두 배가 된 셈이니까.

기숙사는 2인실이었지만 사전에 신청하지 않는 한, 한 방에 한 명씩 배정하였다.

그 결과 나는 1학년 기숙사 건물의 17층에 있는 2인실을 혼자 쓰게 되었다.

‘달동네 쪽방보다 몇 배는 넓다.’

기숙사의 내부는 작은 아파트처럼 되어 있었다.

침실 두 개에 공용 공간으로 거실과 부엌, 샤워실에 발코니까지 갖추고 있었다.

기숙사실 구경을 하다 짐을 풀고 배치된 3차원 로봇 청소기와 공기 청정기를 가동하니 청소가 끝났다.

‘일찍 씻고 잘까.’

할 일이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장남욱과 유상훈이 은광고 기숙사 실내를 궁금해했다는 게 떠올랐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기숙사 사진을 몇 장 찍고 단체 메시지 방에 올렸다.

[장남욱] 기숙사 좋다. 방이 두 개에 거실에 부엌까지 붙어있네. 저기 보이는 건 샤워실이야, 2인실 혼자 쓰는 거야?

[유상훈] 놀러 가도 됨?

[나] 샤워실 맞음. 혼자 쓰는 중. 8시 이전이면 방문 가능함.

[장남욱] 외부생도 들어갈 수 있어? 주말이면 갈 수 있는데.

[나] ㄴㄴ기숙사 규칙 위반임

[장남욱] 아쉽다ㅠㅠ

[유상훈] 전학ㄱ

이쯤 되니 유상훈은 장남욱을 은광고에 데려오는 것에 미련이 남은 건지 그냥 놀려 먹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장남욱아, 덩치가 나보다 큰 놈이 ‘ㅠㅠ’를 써 봤자 안 귀엽다.

어떻게 장남욱을 놀릴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스킬 ‘운명력’이 발동했습니다.〉

예고 없이 울린 시스템음에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전개한 홀로그램을 전부 꺼 버리고 바로 광림을 사용했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수천 장의 캐릭터 카드가 빛을 뿜으며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플레이어의 궤적이 발동 중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대부분은 대처가 가능할 거다.

‘운명력 스킬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 무슨 일이 터질지 예상이 안 되는데.’

단기전이라면 ‘헌드레드 세컨드 곽경구’의 ‘100초의 은총’이 제일 쓸 만할 거다.

빨리 이동해야 한다면 ‘암중섬광(暗中閃光) 오혜지’의 ‘월하의 위태천(韋馱天)’가 좋겠지.

그러나 하늘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아니, 오늘은 구름 때문에 달이 잘 안 보이니까 안 돼. 그럼 차선책으로 ‘초원의 귀공자 마진승’의 광림을······.‘

머릿속에서 게임 속 기숙사에서 발생한 이벤트 중, 지금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와 그에 맞춰 사용할 캐릭터를 추려 내고 있을 때였다.

내 주위를 맴돌던 캐릭터 카드 중 하나가 통제를 벗어났다.

내 의지와 다르게 한 장의 카드가 닫혀 있는 창문 밖을 통과해 빠져나갔다.

바로 발코니 쪽 창문을 열어 그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카드에 나와 있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하지만 캐릭터 카드를 보기 전에 내 모든 신경이 위로 향했다.

기숙사 건물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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