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2화 (22/925)

7. 개천신화의 신성한 범 (1)

문제 17번.

다음 제시문(가)와 사료(나)에 관련된 설명으로 옳은 것을 고르시오.

제시문(가)

이윽고 하늘이 열려 천신이 내려와 소원을 물으니 신성한 범들이 답하였다.

백호(白虎) 이르길, 어디에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황호(黃虎) 이르길,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청호(靑虎) 이르길, 항상 신인(신의 아들)을 모시는 것입니다.

(중략)

천신은 기꺼이 소원을 이루어 주고 열린 하늘로 사라졌다.

남은 신인과 신성한 범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이 땅을 다스리는 신인은 매년 하늘이 열린 날 빠짐없이 축제를 열고 잔치를 베풀어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개천신화―

1 . 당시 토테미즘이 성행하였다.

2 . 4호족 이상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 호족과 신인은 동등한 관계였다.

4 . 제정일치 사회임을 알 수 있다.

5 . 호족과 웅족의 대립을 확인할 수 있다.

제시문 (가)는 삼국유사 고조사조에 기록된 개천신화 한역본의 일부였고, 사료 (나)는 백두산 호신총에 있는 비석, 개천신화의 원본의 사진이었다.

‘답은 4번이네. 땅을 다스리는 신인이 제사를 올리니까 제정일치.’

2번과 5번은 맞는 말이지만 함정이다.

개천신화에 기록된 호족은 셋뿐이고, 웅족은 신화에는 등장하지 않으니까.

신화계와 전설계에 대한 이해와 이를 구분 짓는 것이 가능한가를 묻는 문제인 셈이다.

‘정답이다.’

선택 수업 ‘진족의 이해1’의 전자 문제지에 답을 체크하니 바로 정답 알림이 떴다.

개천신화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나와 바로 맞출 수 있었다.

정답 확인이 끝나자 자동으로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문제 18번.

다음 중 진족의 후예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진족과 진족의 후예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문제네.’

진족과 진족 혹은 진족과 인간 사이에서 자식이 생길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내는 존재도 있긴 했다.

하지만 진족의 피를 잇는 아이가 생기더라도 그 자식은 진족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진족이 아니라 ‘진족의 후예’라고 불렸다.

[진족의 후예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의 염준열 군을 생각하면 간단하죠. 염준열 군의 어머님은 진족인 용족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어머님도 염준열 군도 진족이 아닌 후예입니다.]

진족의 이해1 담당 교사인 ‘임연화’가 수업 중 한 말을 떠올리며 답을 체크했다.

‘염준열도 피가 좀 옅긴 하지만 용족의 후예지······.’

염준열의 어머니가 진족의 후예인 탓에 태어난 것 자체가 기적으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염방열과 용족들은 염준열을 몹시 아꼈다.

‘용족의 후예 개체 수는 열이 넘어가지 않으니까.’

진족의 후예의 개체 수는 진족보다 훨씬 적다.

왜 시험에 이렇게 지엽적인 문제가 나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염준열이 워낙 인기를 끄니까 문제집에도 영향을 미친 걸까.

‘인간과 진족의 중간 존재인 후예라······ 인간보다 강하지만 진족보다는 약하고, 피가 이어진 진족을 대상으로는 저항할 수 없고. 여러모로 페널티가 많은 존재야.’

과제로 주어진 50문제를 전부 풀고 전자 문제지를 껐다.

아침 일찍 등교한 탓에 교실에는 나밖에 없었다.

‘개학하고 일주일밖에 안 지났는데 시험에 찌들어 사네.’

은광고가 개학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에 있었던 주요 사건으로는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 주관한 전국 연합 학력 평가가 있었다.

전국 연합 학력 평가는 플레이어 특목고 외에도 전국의 고등학교와 동시에 치른 시험이기 때문에 다루는 과목은 전부 수능과 관련된 과목뿐이었다.

1학년 중에서 주수혁과 안다인이 만점을 받으며 잠시 화제가 되었다.

‘나는 겨우 중간 정도의 등수였지만.’

은광고가 대한민국 최고 명문이라고는 하나 4년제 대졸자로서는 부끄러운 성적일지도 모른다.

변명하자면 수능을 치르고 거의 10년이 흘렀고, 이 세계에 와서 플레이어 관련 과목만 공부했던 나다.

개인적으로는 만족했다.

‘앞으로 수능 모의고사는 관련 과목을 선택한 사람만 치를 예정이니 상관없어.’

일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내 선택 과목을 본 장남욱은 ‘너 수능은 포기한 거냐’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대학 진학을 위해선 플레이어 특기생들도 수능 최저 등급을 만족해야 했기 때문에 대학을 갈 예정인 학생들은 전부 수능 관련 과목을 택했다.

‘대학이라······.’

나는 이미 대학 생활은 경험해 봤다.

딱히 대학 생활에 환상도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련이 있다면 이 세계의 엔딩 정도였다.

‘공부나 하자.’

우울한 잡생각은 집어치우는 게 좋겠다.

명문고답게 매일매일 시험이 몰아치니 방심해선 안 됐다.

현재 과목별 테스트에서 내 성적은 최상위권에 속했다.

‘내신에 반영되지 않으니 의미는 없었지만.’

전용 메뉴의 설정집으로 사전에 공부한 덕에 시험에 그리 큰 압박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설정집에서도 다루지 않은 세세한 부분을 익혀 가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백호, 황호 다음으로 언급되는 호족인 청호······.’

개천신화 완역본을 다시 읽으며 생각해 봤다.

게임 속에서 등장하는 호족은 백호와 황호, 적호.

그 외에도 다른 호족이 존재한다는 언급은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등장한 적은 없었다.

캐릭터의 회상에서 실루엣만 조금 나왔을 뿐이다.

‘청호가 신인을 모시는 걸 소원으로 청했다면 지금도 신인의 곁에 있을 가능성이 커.’

청호와 신인의 존재도 파악해 내고 싶었다.

게임 시나리오 전체를 살펴보면 몇 가지의 모순과 공백이 존재했다.

그것을 파고들면 청호와 신인의 현재 상황이 어렴풋하게 짐작이 가긴 했다.

하지만······.

‘확증도, 확인하는 방법도 없어.’

스토리가 진행되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단이 생길 거다.

지금은 기다려야 할 때다.

쉬익―.

1학년 0반 교실의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유리가 왔나?’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의외의 인물이 보였다.

게임에서는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 NPC였던 한이였다.

“안녕.”

내가 인사하자 한이도 무표정한 얼굴로 답인사를 했다.

“조의신, 안녕.”

한이는 입학 성적도 우수하고 사고를 친 적도 없다.

과묵한 편이지만 교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0반에 배치된 이유는 그녀가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2급 청각 장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이’의 인물 정보를 열람합니다.〉

[이름] 한이

[칭호] 은광고 1학년 0반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가호]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광림] (비활성화 중)

[상태]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종합 능력치] Lv.17

[스킬]

도약 Lv.3

기척감지 Lv.4

태호권(太虎拳) Lv.4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설명]

5살 때부터 고아원에 거두어져 성장하였다.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2급 청각 장애인.

인공 와우 이식이나 플레이어의 회복 스킬 등으로도 청력이 회복 불가능하여 5세 이전에 강력한 저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화법(讀話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은 없다.

(일부 로드에 실패하였습니다.)

‘학생 중에선 상위권 스펙이야. 그런데 비중이 작았던 NPC라 그런가,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네.’

은광고에는 장애인 등 대상자 특별 전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광고 학생은 1학년 2학기부터 이계에 투입되어 에너미와 싸우게 된다.

목숨이 걸린 문제다.

장애인 배려나 차별 운운에 관한 논의가 나올 수가 없었다.

‘한이는 장애가 없는 학생과 똑같은 조건으로 은광고 입시에 도전해 상위권으로 입학한 강자였었지.’

중증 장애인이 입학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교사진들은 논의 끝에 그녀를 0반에 보내기로 했다.

50명의 학생들 사이에 두는 것보다 20명 정도 되는 반에 두는 게 한이를 서포트하기에 좋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한이가 교사의 도움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한이는 높은 레벨의 기척 감지 기술과 독화법을 구사한다.

입술만 보인다면 한이는 완벽하게 대화를 이해하고 고른 발음으로 대답해 왔다.

게임 속에서도 한이가 청각 장애인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주위 사람이 놀라는 장면은 몇 번이나 있었다.

“오늘은 일찍 왔네.”

“오늘부터 동아리를 선택하니까.”

그 동아리에 한이가 은광고 진학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있을 거다.

한이는 아침 일찍 신청서를 내고 싶어서 일찍 등교했나 보다.

‘공청훤 때문이겠지.’

한이가 있던 보육원에 ‘공청훤’이라는 인물이 오랜 기간 봉사 활동을 해 오고 있었다.

그는 한이가 플레이어라는 걸 가장 처음으로 알아챘다.

공청훤은 한이에게 독화술과 이 세계의 한국 전통 무술 중 하나인 태호권을 가르쳤다.

‘한이가 은광고에 합격할 정도로 완벽하게 가르쳤어. 굉장한 사람이야.’

그리고 현재.

공청훤은 은광고의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태호권 소모임 고문을 맡고 있었다.

“태호권 소모임에 들어갈 거야?”

“응.”

한이가 무표정을 무너뜨리고 아련한 얼굴로 웃었다.

‘······저 표정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본다.’

공청훤이 학생을 감싸다 죽은 이후.

뒤늦게 도착해 그를 발견한 한이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너미가 접근해 와도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공청훤의 곁에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 된 게 최후의 모습이었다.

‘그만 생각하자.’

공부를 너무 한 탓일까.

생각이 자꾸 우울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사고 방향을 바꿀 겸 다른 화제를 꺼냈다.

“저번 주 수업 시간에 태호권 대련 잘 봤어. 시간이 되면 견학하러 갈게.”

지난주 플레이어의 전투 연습1 첫 수업에서 한이는 황지호를 상대했다.

아이템 카드를 실체화한 보호대를 착용하고 태호권을 쓰는 한이를 보자 황지호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태호권의 기원이 호족이었다는 설이 있었는데 황지호가 한 짓을 보면 맞을 거다.’

황지호는 한이의 태호권 준비 자세를 보자 아이템 카드를 던져 버렸다.

교사와 다른 학생들이 의아해했지만 황지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황지호는 사전에 등록한 전투 스킬을 무시하고 자신도 맨손으로 태호권을 써서 응전했다.

그는 재능 넘치는 태호권 계승자를 만난 게 신나는지 아주 즐거워하는 얼굴로 태호권을 펼쳐 보였다.

그 모습은 훌륭한 미치광이로 보였다.

‘태호권은 태권도에 완전히 밀려서 기록상으로만 남은 거나 마찬가지인 전통 무예니까, 계승자는 오랜만에 봤겠지.’

대련의 결과는 황지호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황지호의 괴행동에 역시 0반에는 돌아이들이 많다는 평가가 늘었다.

“황지호도 태호권 소모임에 들어올까?”

한이는 분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모르겠는데. 심심할 때 대련해 달라고 쳐들어가긴 할걸.”

학교 운영에 무관심했던 황지호는 태호권 소모임의 존재조차 몰랐을 거다.

한이가 소모임에 가입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첫 수업 때 보인 꼴을 생각하면 황지호는 한가할 때마다 대련해 달라고 들이대러 갈 것 같다.

“다음엔 이길 거야.”

한이의 눈이 형형히 빛났다.

하지만 상대는 호족의 황호다.

백호군이나 적호처럼 천신의 진노를 뒤집어썼거나 ‘계’가 격하된 것도 아닌 만전의 상태의 신화계 호족이었다.

상대가 너무 안 좋다.

그래도 나는 응원하기로 했다.

“그래, 응원할게.”

한이가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입을 열었을 때였다.

똑똑―.

밖에서 교실 앞문, 뒷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기척을 감지한 한이가 문 쪽을 흘끗 보았다.

동시에 두 문을 열 수는 없으니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들어오세요.”

쉬익―.

“의신아, 잠깐 얘기 좀 할래?”

“조의신, 있냐.”

앞문을 연 건 유상희, 뒷문을 연 건 유상훈이었다.

‘······따로따로 온 건가?’

1학년 0반 교실은 건물 가장 구석에 있어서 앞문은 건물 출입구와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뒷문 쪽 복도는 유상훈이 소속된 1반 교실과 이어져 있었다.

그 탓에 유상희와 유상훈은 서로 마주치지 않고 1학년 0반에 도착했나 보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이제야 눈치챈 것 같았다.

“왜 여기 있냐.”

“누나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니.”

“1학년 교실에 3학년이 왜 와.”

“의신이 만나러 왔지.”

두 사람이 무슨 일로 온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3학년이 여기에 온 건 눈에 띈다.

유상희는 3학년 중에서도 종합 성적 순위 10위에 드는 탑 랭커인 데다 학생회 서기다.

‘유상희는 귀한 치유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야. 당연히 유명하겠지.’

그녀를 발견한 학생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벌써 주변이 시끄럽다.

“유상희 선배님, 안녕하세요. 유상훈 너도 안녕하냐. 그런데 두 사람은 무슨 일로······.”

빨리 용건을 듣고 두 사람을 돌려보내야겠다.

내 물음에 두 사람은 남매답게 완벽하게 합을 맞춰서 동시에 말했다.

“의신아, 학생회에 들어올 생각 없니?”

“조의신, 농구부 어떠냐.”

갑작스러운 제안에 할 말을 잃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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