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첫 수업 (3)
유상훈의 제안으로 내기로 번 돈은 간식을 사는 데에 쓰기로 했다.
주수혁과 김유리도 그 제안에 찬성했다.
내기에 진 사람들도 교사들도 환영하는 눈치였다.
수업은 예정보다 30분 일찍 끝났다.
방윤섭에게 건 패배자들은 에어보드를 타고 정문에 가 미리 주문해 둔 배달 음식을 받아 왔다.
“넌 뭘 믿고 100만원이나 걸었냐.”
“너 믿고.”
유상훈이 왕새우와 핫치킨을 토핑한 시카고 딥디쉬 피자를 베어 먹으며 답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그룹을 이뤄 모여 앉았다.
내 주변에는 나를 지지한 세 명 유상훈, 주수혁, 김유리 그리고 1학년 0반 소속인 황지호와 한이까지 다섯이 모였다.
“주수혁, 넌 왜 나한테 걸었어?”
“마법은 방어구나 소모 아이템을 준비하지 않으면 막기 어렵잖아. 항마력이 높아도 막을 순 있긴 하겠지만. 당연히 의신이가 이길 줄 알았어.”
주수혁은 정확히 내 노림수를 알고 있었나 보다.
아마 교사들과 안다인처럼 내기에 참가하지 않은 최상위권 학생 몇몇도 마법 무기를 상정했을 거다.
‘역시 은광고 교사와 최상위권 학생답다.’
만물 사용도 희귀하고 마법 무기 사용자도 드물다.
나와 방윤섭의 내기는 즉흥적으로 시작한 데다 둘 중 누구에게 걸지 정하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만물 사용이라는 스킬 이름을 듣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마법 무기를 바로 생각해 내다니.’
마지막으로 김유리를 쳐다보자 생긋 웃었다.
“난 마법 무기를 떠올리지는 못했어. 그래도 무명의 초신성이라면 승산 없는 싸움은 안 할 것 같아서.”
대답을 마친 김유리는 플라스틱 포크로 순살 마늘 로스트 오븐 치킨 조각을 찍어 먹었다.
황지호는 내기엔 참가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대련 수업을 즐긴 듯 만족한 얼굴로 탄두리 치킨을 씹고 있었다.
“조의신, 네가 말리지 않았으면 나도 너한테 걸었을 건데.”
“그래그래. 고맙다, 황지호.”
사실 별로 고맙지는 않았다.
한편 한이는 황지호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고르곤졸라 피자에 벌꿀을 찍어 먹고 있었다.
‘황지호도 한이도 내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바로 나한테 박수를 날려 줬지.’
딱히 내 편을 들어 주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이길 거라 믿어 주고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오늘따라 기름기 가득한 옛날 통닭이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방윤섭과의 내기 대결에 대한 화제도 조금 시들해질 때쯤, 김유리가 다른 주제를 꺼냈다.
“있잖아, 아까 다인이하고 수혁이 너하고 한 대결 엄청나더라. 다인이 상대로 그만큼 몰아붙이는 사람은 처음 봤어.”
주수혁은 ‘다인이’라는 단어를 듣자 바로 사레들렸다.
다행히 콜라를 뿜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주수혁은 조금 캑캑거리다 내용물을 삼켰다.
기껏 흑역사를 막아 줬는데 주수혁이 사고를 칠 뻔했다.
아직도 안다인의 미소가 머리에 맴돌고 있는 건가.
나는 한마디 거들어 주수혁에게 쏠린 시선을 분산시켜 줬다.
“그래. 둘 다 파생 스킬을 사용할 줄은 몰랐어.”
파생 스킬이란 전투 스킬을 자기류, 자신에 맞춰 고유한 형태로 진화시킨 결과물을 의미했다.
주수혁과 안다인은 입학 전부터 이미 파생 스킬을 보유한 천재들이었다.
그 대단한 스타 플레이어 염준열도 화염술의 파생 스킬 원격점화를 얻는 건 1학년 후반 때부터였다.
“주수혁 너도 안다인도 정말 잘 싸웠다.”
나와 방윤섭의 내기 대결이 끝난 후에도 수업은 이어졌다.
교사들은 주수혁과 안다인을 지목해 대련을 시켰다.
“하, 하하. 비긴 것도 운이 좋았어. 다인이 강하더라.”
“그치? 난 한 번도 이겨 본 적 없어.”
지목당한 주수혁은 쌍검을, 안다인은 장총을 들었다.
대련 시작 신호 직후.
주수혁은 안다인이 총알을 장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검 하나를 급소를 노리고 던졌다.
안다인이 총신으로 검을 튕겨 내자 주수혁은 몸을 낮추고, 거리를 좁혀 그녀의 명치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때, 안다인의 파생 스킬이 발동했었어.’
그러자 곧바로 안다인의 사격 스킬의 파생 스킬, 전신을 총신처럼 사용하는 사기급 성능의 스킬 ‘전신총화(全身銃化)’가 발동했다.
안다인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온 총탄이 주수혁의 미간으로 향한 순간.
주수혁은 곧바로 남은 하나의 목검으로 총탄을 방어했다.
그사이 안다인은 총신을 들어 주수혁의 경추를 내리찍으려 했다.
‘하지만 사기 스킬을 가진 건 안다인만이 아니야.’
관객 다수가 그 순간에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 던졌던 주수혁의 목검이 마법처럼 손으로 돌아와 그 총신을 막아 냈다.
주수혁의 쌍검 스킬의 파생 스킬, ‘쌍검일신(雙劍一身)’.
물리적 인과를 무시하고 주수혁의 손에 쌍검이 돌아오는 스킬이 발동한 결과였다.
마치 검무라도 추는 듯한 두 사람의 대련에 아무도 눈을 떼지 못했다.
“눈으로 따라가는 것도 힘들었다. 빠른 데다 급소를 노리는 공격도 전부 예리했어.”
유상훈도 둘의 대련을 감명 깊게 본 듯 칭찬의 말을 던졌다.
김유리는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대련 시간이 10분 한정에 광림 금지가 걸린 게 아까워. 이번엔 무승부였지만 둘이 진심으로 싸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그러다 제1체육관이 박살 날걸.”
이미 제1체육관 곳곳이 파손되어 대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교내엔 수복 관련 이능을 가진 플레이어가 상주 중이니 저 정도는 괜찮긴 하겠지만.
그러나 주수혁과 안다인이 진심으로 싸우면 체육관이 수복 스킬로는 해결이 안 될 만큼 박살 날 거다.
“그게 뭐, 상관없는데.”
황지호는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냐.
플레이어 관련 설비를 갖춘 체육관이 한두 푼 하는 게 아닐 텐데.
“황지호, 피자나 먹어.”
황지호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유상훈이 고른 메뉴인 딥디쉬 피자 한 조각을 내밀었다.
황지호가 눈을 빛내며 피자를 받아 들었다.
‘황지호가 헛소리를 한다고 해서 이사장인 걸 들킬 리도 없고, 들켜도 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긴 한데.’
그래도 황지호는 1년을 함께할 클래스메이트다.
옆에 있는 놈이 이상한 놈으로 찍히게 내버려 두긴 좀 그랬다.
이미 0반인 우리 반은 전원 문제아 취급받고 있긴 하지만.
“이거 맛있네.”
“그러냐? 콜라도 먹어.”
“잘 먹을게.”
황지호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잘 받아 처먹었다.
계속 먹여서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겠다.
그는 주는 대로 아주 잘 먹었다.
먹는 동안은 입도 잘 다물었다.
‘체육관이 무너지는 것 정도는 상관없다고? 경제 관념 차원이 다르네.’
이 세계의 건축법에 따르면 플레이어 수용 시설은 한계 하중과 강도가 높게 설정되어 있어 시공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플레이어 특목고 체육 시설이라면 시공 시 이능과 아이템 사용도 요구된다.
일반 체육관보다 돈도 시간도 몇 배는 들어갈 거다.
“황지호, 피클도 먹을래?”
“아니. 딥디쉬 피자 한 조각 더 줘.”
“그래. 많이 먹어라.”
황지호는 이사장으로서의 자각은 완전히 버린 것 같다.
황명재단은 돈이 많으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어, 종 쳤다.”
“이거 어디에서 들어 봤는데.”
수업 끝을 알리는 수업종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에 나오는 ‘개선행진곡(Triumphal March)’ 이었다.
극 중 이 트럼펫 행진곡은 이집트 군대의 전승을 축하하기 위해 쓰였다.
‘빵셔틀 매치를 마무리하기엔 지나치게 위대한 명곡인데.’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나로선 영광스러운 선곡이었다.
내가 은광고에 들어와서 경험한 첫 수업, 플레이어의 전투 연습1 .
방윤섭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 진족이 만족해하며 끝났다.
* * *
오전 시간을 전부 할애한 첫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치킨과 피자로 배를 채운 학생들은 대부분 각자 휴식을 취하기 위해 흩어졌다.
나는 방윤섭을 미행했다.
“에이씨······ 내가 왜······.”
나에게도 지고.
교사에게도 까이고.
내기에 진 학생들의 원성도 듣고.
방윤섭의 정신은 피폐할 거다.
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지만.
“내가 왜 조의신 같은 새끼 빵셔틀을······ 켁, 쿨럭.”
1학년 구역에서도 가장 외진 곳.
방윤섭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빨고 컥컥거리는 게 참으로 꼴사나웠다.
“왜긴, 져서 그렇지.”
나는 그늘에서 튀어나와 방윤섭이 쥐고 있는 담배를 노려 정확히 걷어찼다.
팟―.
담배꽁초가 그의 손을 떠나 하늘로 붕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악, 조의신!”
방윤섭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가 쫓아오고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나 보다.
땅에 떨어진 꽁초를 꾹꾹 밟으며 말했다.
“약속은 지켜라, 방윤섭.”
“뭐, 뭐뭐뭔데. 이런 씨······ 뭘 시키려고!”
방윤섭을 만나고 몇 시간.
머릿속에선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다.
‘벌벌 떨면서도 주수혁에게 죽여 달라고 외쳤지.’
방윤섭이 마지막으로 보인 자기희생을 잊을 수 없었다.
방윤섭은 찌질하고 형편없는 놈이지만 개전의 정이 남아 있는 녀석이었다.
“너 ‘은광 트레이닝 코스’에 들어가라.”
“뭐?”
방윤섭은 모범생이 모인 은광고에서 일진을 하겠다는 멍청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놈은 제대로 된 탈선행위를 저지를 용기도 없는 한심한 놈이었다.
그나마 한 건 수업 빼먹기 정도였다.
‘은광고는 출석 없이 시험만 제대로 치르면 내신에 영향이 없으니 하나마나한 짓이었지만.’
그렇게 나약한 정신과 몸을 갖고 있으니 빙의계 악마종에게 홀려 몸을 빼앗긴 거다.
“지금 너는 너무 약해서 상대가 안 돼. 은광고의 훈련 커리큘럼에 참가해. 대신 한 번이라도 나를 이기면 이 ‘약속’은 풀어 줄게.”
나는 방윤섭의 손톱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이놈한테 손톱을 다 뽑히고도 내 말을 어길 배짱은 없을 거다.
방윤섭은 자신의 손톱을 내려다보며 진저리를 치다 외쳤다.
“아, 하면 되잖아! 에이씨······ 내가 이기면 풀어 준다는 거 잊지 마라!”
방윤섭은 구시렁거리며 자리를 뜨려 했다.
그리고 나는 자리를 뜨기 전에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담배 피우는 거 보일 때마다 빵셔틀 시킬 거야.”
“뭐라고!”
“빵이랑 우유 사 와. 3학년 구역 매점에서.”
나는 웃으며 5천 원을 내밀었다.
그야 담배를 피우면 체력이 떨어질 것 아닌가.
그만큼 훈련을 시켜 줘야지.
방윤섭은 내 빵셔틀이기도 하고.
“내가 왜!”
“싫어?”
약속의 불집게가 계약 위반을 감지한 듯 방윤섭의 손톱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식겁해 하며 내가 내민 5천 원을 집어 들었다.
“에어보드는 사용 금지다. 자전거 타라.”
“아악! 3학년 구역 개 멀잖아!”
“싫으면 뛸래?”
“조의신 개 같은 놈아!”
방윤섭은 자전거를 몰며 3학년 구역을 향해 사라졌다.
저 멀리서도 내 이름이 가끔 들리는 걸 보니 계속 내 욕을 하며 자전거를 몰고 있나 보다.
‘그런 짓을 하면 내 빵셔틀이 되었다는 소문이 날 텐데. 멍청한 놈.’
방윤섭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걸 확인하고 근처에 있던 개잎갈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몸을 숨길 곳은 이 나무 위 정도밖에 없다.
아마 그들은 저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거다.
“두 분도 그만 내려오세요.”
10m는 족히 넘는 개잎갈나무 가지 위에 올라타고 있던 두 사람이 뛰어 내렸다.
파삭―.
둘은 가볍게 지면 위로 착지했다.
한 명은 1학년 2반 담임 노영미, 남은 한 명은 주수혁이었다.
“어떻게 아셨죠?”
“하하, 걸렸네.”
두 사람 다 겸연쩍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윤섭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요.”
주수혁과 노영미, 두 사람의 성격상 반드시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심한 걸 요구하면 막을 생각이었는데······ 의심해서 미안.”
주수혁은 내 의도를 눈치채고 바로 사과해 왔다.
딱히 사과할 일도 아니다
“괜찮아. 신경 안 써. 빵셔틀로 부려 먹긴 할 거니까.”
이미 알아챈 것 같지만 내 의도를 말로 전했다.
“방윤섭은 은광고에 올 실력도 있고 향상심도 있잖아. 기회를 주고 길을 잘 잡아 주면 좋은 플레이어가 될 거야.”
게임 속 방윤섭은 그 기회를 잡자마자 죽어 버렸지만.
내 말을 들은 노영미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냉정해 보이지만 잔정이 많은 그녀였다.
“방윤섭 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10분 정도 지나자 방윤섭이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다.
고생한 그에게 사 온 빵과 우유를 전부 먹으라고 친절하게 권했다.
체육관에서도 별로 먹지 않았을 테니 배고플 거다.
그리고 소인배 방윤섭이 사 온 음식을 입에 대는 건 좀 의심스럽기도 했다.
“먹어.”
“아 왜! 에이씨······.”
방윤섭이 손톱과 빵과 우유를 번갈아 보다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손톱이 뽑히는 건 싫은지 결국 꾸역꾸역 먹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의신 에너미 같은 새끼야아아!”
방윤섭이 화장실 방향으로 달려가며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의심한 대로 오는 길에 빵과 우유에 뭘 탔나 보다.
음식으로 장난친 거면 벌 받아도 싸다.
방윤섭의 소인배다운 행동에 한숨이 나왔다.
‘방윤섭이 빵셔틀 탈출하려면 멀었구나.’
1년 동안 방윤섭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 봐야겠다.
* * *
은광고에는 훌륭한 교사가 많다.
대표적으로 교무부장인 제갈재걸.
1학년 0반의 담임인 학생부장 함근형.
입학 실기 시험 당시 빈사 상태에서도 학생들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던 1학년 1반 담임 김신록.
반 제자를 걱정해 내 뒤를 밟은 1학년 2반 담임 노영미.
이들이 그러했다.
‘게임 속에서 멋진 교사들은 많았어.’
하지만 집단 내 등신량 보존 법칙은 교사들 사이에서도 성립했다.
지금 내 눈앞에서 수업을 진행 중인 교사 최편득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어린 연놈들이 말이야, 공부 좀 잘한다고 말이지. 진짜 좋은 수업이 뭔 줄도 모르고 말이야. 엉?”
최편득의 수업은 1학년에만 배정되어 있었다.
2, 3학년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아무도 최편득의 수업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그그 뭐냐,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 옛날엔 말이야, 학생과 선생님 사이엔 정이 있어서 선물도 주고받고, 서로 도움도 받고. 그런 깊은 정이 있었는데 뭣도 모르는 놈들이 그걸 금지한다고.”
이 세계에서도 약 10년 전쯤에 제정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있었다.
예전부터 촌지로 재미를 보던 최편득은 몹시 분노했다.
“나는 그런 법 신경 안 쓴다. 얼마든지 선생님에게 성의를 보여라. 제자와 선생님 사이인데 말이야! 아무렴.”
최편득은 간접적으로 촌지를 요구했다.
‘녹음으로 책잡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구나.’
대부분의 학생은 최편득의 교사답지 않은 기질을 눈치챘다.
그가 말하면 말할수록 멋모르고 이 수업을 택한 1학년생들의 얼굴색이 어두워져 갔다.
은광고는 3월 내내 선택 수업 정정이 가능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탈출해 이 수업을 포기하고 다른 수업으로 대체할 거다.
“니들이 하늘처럼 생각하는 선배들! 플레이어 팀. 붉은 사자, 영원의 호수, 에어 소사이어티, 화이트 템페스트, 절흑풍림, 수국향기. 그게 다 내 제자들이라고!”
그는 자랑스레 외쳤다.
은광고를 다니는 동안 학생들은 보통 100단위의 교사를 거쳐 간다.
최편득은 그중 하나였을 뿐인데 무슨 생각으로 저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한테 잘하라고. 엉? 선배들한테 내가 잘 얘기할 수도 있고 말이야.”
최편득의 손에는 희미하게 살점이 잘려 나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환몽 경매 당시 내가 염준열의 힘으로 남긴 시델렌티움의 순은 동전의 낙인.
‘지우려면 고가의 흉터 제거 아이템을 사용하거나 낙인이 찍힌 살을 잘라내고 치료해야 했을 텐데.’
최편득도 일단은 플레이어다.
자기 살점을 직접 잘라낼 정도의 의지는 있는가 보다.
“내가 높으신 분들이랑 얼마나 잘 아는데.”
최편득은 흔히 말하는 ‘심판받지 않는 악역’이었다.
그는 극악무도한 악행들을 행하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운 좋게 살아남고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도 조금도 치르지 않는다.
최편득은 최종장까지 살아남고 그 이후에도 살아남을 것으로 추정되는 NPC였다.
“신성한 교실에서 말이야, 선생님을 당연히 믿고 따라야지. 암.”
게임 속의 최편득은 입학 실기시험 당시 웅족과 내통하여 교사 김신록과 수험생 넷을 죽였다.
그는 왕의 외척의 후손으로 사월세음의 정체를 알아채자 환몽 경매에 팔아넘겨 이득을 챙겼다.
그 외에도 나락에 떨어뜨린 학생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은광고에 쓰레기를 불렀어.’
뒷돈을 받고 특별 전형 결과를 조작해 자격이 없는 학생들을 입학시켰다.
그놈들은 약한 학생들을 은밀히 괴롭히고 안다인을 시기해 솜뭉치에게 농약을 먹였다.
최편득은 그놈들을 감싸기 위해 솜뭉치를 잃은 안다인을 왕따를 주동한 가해자로 몰아가기도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개 같네.’
게임 속 최편득은 그 이후로도 무수한 범죄를 저지르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잘 먹고 잘살았다.
명문고의 정교사라는 지위는 굉장히 안정적이며 신뢰도도 높았고 신분 보장이 잘 되었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이용했으며 운도 좋았고, 연줄도 잘 잡았다.
‘아니, 최편득을 개 같다고 하기엔 개한테 미안하지.’
제갈재걸이 은광고를 떠나 천천히 죽어 가는 사이, 최편득은 교무부장 자리도 꿰차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내버려 두면 둘수록 위세가 커질 거야.’
최종장에 가까워지는 시점에는 교사 대부분이 죽어 버린 탓에 최편득은 은광고의 실세로 떠올라 있었다.
“내 수업을 고른 사람이라면 뭘 좀 아는 학생이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겠지. 크흠, 한 학기 동안 나한테 잘해라. 알았냐?”
아직 그가 저지르지 않은 악행도 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고 있을 생각은 없어.’
최편득을 잡을 피스가 갖춰지는 대로 조속히 퇴장시킬 거다.
머릿속으로 그를 상대할 수를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 생각을 하니 수업을 가장한 그의 개소리를 웃는 낯으로 들어줄 수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