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첫 수업 (2)
제1체육관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명백한 악의를 품은 말이 계속 나를 향했다.
“얼마나 잘났기에 아이템 카드를 300장이나 받았나 했네. 그냥 레벨1 개허접 스킬이잖아.”
그 말을 한 건 1학년 2반 학생이다.
그 학생의 얼굴을 보고 조금 놀랐다.
‘이놈은 주수혁한테 시비를 걸다가 개박살 날 예정인 그 엑스트라잖아.’
1학년을 마칠 때쯤 하찮은 행적을 반성하고 주수혁과 친구가 되지만, 빙의계 악마종 에너미가 되는 바람에 주수혁의 멘탈을 가루로 만드는 1학년 2반 학생이 하나 있다.
방금 나한테 시비를 건 놈이 그 엑스트라 캐릭터였다.
〈‘방윤섭’의 인물 정보를 열람합니다.〉
[이름] 방윤섭
[칭호] 은광고 1학년 2반
[가호] 어느 사족(蛇族)의 응원, ‘그 등신스러움이 네 매력이다’
[광림] (비활성화 중)
[상태] 정상
[종합 능력치] Lv.13
[스킬]
쌍절곤 Lv.3
괴성 Lv.1
······.
······.
······.
‘설정집에서 본 엑스트라 NPC의 정보 그대로네.’
주수혁이 게임 속에서 흑역사를 남긴 후.
방윤섭은 주수혁에게 시비를 건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망신을 사서 기분이 저조했던 주수혁이었다.
주수혁은 방윤섭을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주수혁을 조작해 방윤섭을 줘 패는 건 게임 유저였지만.’
방윤섭은 주수혁과 대련하여 뼛속부터 영혼까지 처절하게 털리며 개박살이 난다.
지금 시점으로는 다음 주에 있을 1학년 2반 단독 전투 연습 수업 중에 발생할 일이다.
‘주수혁의 흑역사가 사라져서 얕볼 구석이 없으니 무명의 초신성으로 타깃을 바꾼 건가.’
나 조의신은 무명의 초신성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문제아가 모인 1학년 0반 소속이다.
거기에 전투 스킬 레벨은 1 .
어느 정도 유명인인 데다 만만해 보일 여지가 남아 있다.
‘기선 제압에 성공하면 그 무명의 초신성에게 한마디 한 센 놈으로 취급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0반과 공동 수업을 하는 건 오늘뿐이다.
나를 노린다면 오늘 당장 시비를 걸어야 했다.
정말로 주수혁에서 나로 타깃을 바꿨구나.
“방윤섭, 지금 나한테 말하는 거 맞아?”
정확하게 이름을 부르자 방윤섭이 숨을 컥 하고 들이켰다.
욕은 하고 싶지만 내게 찍히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군중 속에 숨어 졸렬하게 행동했는데 이름을 불리니 당황한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방윤섭은 허세를 부리며 소리 질렀다.
“그, 그래! 뭐 내가 틀린 말 했냐. 개허접아.”
체육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들 한국 최고의 명문 은광고에서 이런 바보를 볼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안타깝게도 등신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어느 집단에 가든 등신은 반드시 존재한다.
함근형을 필두로 교사들이 표정을 굳히는 게 보였다.
‘어떻게 할까.’
방윤섭.
주수혁.
전투 연습 수업.
만물 사용.
앞으로의 전개.
좋은 수가 떠올랐다.
함근형이 뭐라 한마디 하기 전에 내가 손을 들었다.
“오늘 학생들끼리 대련할 예정이죠? 첫 시합은 저랑 방윤섭으로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주위가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난 작은 목소리로 함근형만 들리게 덧붙였다.
“제가 방윤섭과 싸우면 좋은 본보기가 될 거예요.”
함근형이 생각에 잠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조의신, 오늘 수업의 의미를 알고 말하는 거냐.”
“네.”
함근형이 나를 가늠하는 듯 빤히 바라봤다.
몇 초 뒤.
함근형이 씨익 웃었다.
“잘해라, 조의신.”
나와 함근형이 작게 대화하는 걸 본 김신록, 노영미도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 셋이 이 대결을 용인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주변에서 ‘오오오!’ 하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쟤 무명의 초신성 조의신이지?”
“함근형 선생님이 한 말도 그렇고, 조의신은 만물 사용 스킬 가지고 있나.”
“TV에서 갖고 싶은 희귀 스킬 순위 TOP5에 드는 거 봤어. 카드 개수 보니까 그런 거 같은데.”
학생들이 나와 방윤섭과의 대결 결과를 예측해 보기 시작했다.
“방윤섭이 등신이긴 한데 전투 스킬 레벨이 좀 높은 편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무명의 초신성은 레벨 1이잖아. 종합 능력치는 비슷해 보이고. 아무리 무기 아이템을 많이 쓸 수 있어도 스킬 레벨이 높은 쪽이 유리하겠지.”
“이거 내기해도 되냐? 나 방윤섭한테 만 원.”
누가 시작한 건지 몰라도 체육관이 시끌시끌해지며 내기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곧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내기용 어플리케이션을 가동시켜 홀로그램으로 접속 코드를 띄웠다.
“방윤섭한테 3천원.”
“방윤섭한테 만 오천 원.”
“조의신한테 4만원.”
“방윤섭한테 10만원! 잘해라, 인마!”
너도나도 코드를 통해 접속해 계좌 이체로 돈을 올려댔다.
주수혁과 안다인이 첫 대련을 할 때도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끓어오르지 않았는데.
교사들은 내기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을 말리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거다.
그 결과를 어떻게 수업에 이용할 수 있을지도.
‘이 정도면 도박이 아니라 일시 오락으로 취급받겠지. 말리지 않아도 괜찮을 거다. 학생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거고.’
학생들이 건 내기 돈의 총 액수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대체로 방윤섭에게 걸고 있어 제대로 된 내기가 진행이 되지 않았지만.
“조의신한테 100만원.”
학생 중에선 압도적으로 큰돈을 건 인물이 등장하며 체육관이 조용해졌다.
유상훈이었다.
그러고 보니 유상훈은 1학년 1반이었지.
내가 체육관에 늦게 도착한 데다 주수혁과 얘기하느라 인사도 못했지만.
“조의신 표정 보면 모르냐? 돈 잃기 싫으면 적당히 해라.”
유상훈이 나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홀로그램을 띄워 즉시 돈을 이체했다.
유상훈의 망설임 없는 태도에 다시 주변이 술렁거렸다.
“무명의 초신성하고 같은 수험조에서 살아남은 놈이잖아.”
“손미끼 사건에서 덫에 묶였던 그······.”
“그럼 무명의 초신성을 잘 알고 있겠네. 고민된다.”
한편 황지호는 손이 근질근질한 듯 0으로 가득한 계좌를 홀로그램으로 띄우며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한 1000만원 걸까.”
“······액수가 너무 커지면 도박죄에 걸리니까 작작해라.”
“그게 뭐.”
또 ‘그게 뭐’ 이러고 있다.
나는 황지호를 뜯어말렸다.
황지호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툴툴거렸지만 적극적으로 말리니 곧 입을 다물었다.
지금도 충분히 판돈이 커진 것 같지만 자릿수가 바뀌는 건 막고 싶다.
플레이어는 플레이어 특별법 적용을 받아서 다소 관대한 대우를 받으니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뭐야, 에이씨······ 이게 아닌데······.”
그냥 시비를 걸고 스트레스도 풀고 자기의 입지를 좀 높여 보겠다는 소인배의 마음으로 들이댔던 방윤섭이다.
방윤섭은 너무 커진 판에 겁이 났나 보다.
‘저런 얼굴을 할 거면 왜 시비를 건 거야.’
그러다 뭔가 좋은 생각이 난 걸까.
갑자기 방윤섭이 표정을 바꾸고 크게 소리 질렀다.
“대련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하나로 제한하자. 광림도 금지다!”
방윤섭의 비열한 제안에 여기저기서 어처구니없어하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졸렬하구나.’
방윤섭의 쌍절곤 스킬 레벨은 3 .
내 만물 사용 스킬 레벨은 1 .
종합 능력치 레벨은 13으로 동일하다.
스킬 레벨만 따지면 이길 수 없었다.
거기에 광림도 금지한다면 불리한 게 사실이다.
‘문제없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
흔쾌히 승낙하자 방윤섭은 이미 이긴 것처럼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내 대답에 나에게 돈을 건 소수의 인물들이 거의 이탈해 버렸다.
나는 아이템창에서 아이템 카드를 한 장 꺼내 실체화했다.
“네 조건대로 싸우는 대신 지는 사람은 1년 동안 상대방의 빵셔틀······이 아니라 심부름꾼이 되는 거다. 어때.”
내가 꺼낸 아이템은 희귀도 R의 ‘약속의 불집게’.
개학 전에 사 둔 아이템 카드 중 하나였다.
약속의 불집게를 걸고 한 약속을 어길 경우 불에 달군 집게로 모든 손톱이 뽑히게 된다.
약속을 어기더라도 고작 손톱이 뽑히고 마는 수준이라 레어도는 낮다.
더럽게 아프고 고통스럽겠지만 회복 아이템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에게 걸어 봤자 마나긴 했다.
‘방윤섭같은 겁쟁이에겐 이 정도도 충분히 먹힌다.’
불집게로 모든 손톱이 뽑히는 건 자진해서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닐 거다.
“빵셔틀 매치냐!”
“무명의 초신성 세게 나왔네.”
내 제안에 1학년생들은 더욱 신나 했다.
“약속의 불집게······!”
방윤섭이 긴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워낙 유명한 아이템이다 보니 방윤섭도 약속의 불집게를 바로 알아봤다.
“내가 쫄고 도망칠 줄 알았냐? 그래, 하자!”
화르륵―.
방윤섭의 허세 가득한 말이 끝나자 약속의 불집게가 확 불타오르다 허공으로 사라졌다.
나와 방윤섭의 모든 손톱이 한순간 붉게 변했다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빵셔틀 매치가 성립되었다.
* * *
나에게 건 사람은 세 명밖에 없었다.
유상훈, 주수혁, 김유리.
유상훈은 그렇다 쳐도 주수혁과 김유리가 나한테 건 게 의외였다.
주수혁은 유상훈이 100만원을 건 것을 보더니 똑같은 금액을 걸어 버렸다.
주수혁은 대한민국 4대 그룹 중 하나인 주오 그룹 총수의 증손자다.
금전 감각이 별로 없는 편이라 그냥 유상훈을 따라 했을 거다.
유상훈은 부모님께서 나와 장남욱과 만나서 놀 때마다 밥값 내라고 용돈을 팍팍 주셨다 하니 100만원이나 건 거고.
‘김유리가 건 게 의외네.’
김유리는 이런 내기에 참가할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같은 반 학급 임원에게 의리를 세운 것 같다.
내게 걸린 금액은 총 205만원.
방윤섭에게 걸린 금액은 총 247만 8천원.
안다인이나 우리 반의 황지호, 한이처럼 내기 자체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도 꽤 큰 금액이 걸렸다.
“자, 두 사람은 제자리에.”
“와아아아아!”
제1체육관 설치된 간이 관객석에 몰려 앉은 100여 명의 학생들이 환성을 질렀다.
허공에 디바이스 홀로그램 확장 모드를 사용해 크게 띄운 내기 어플리케이션 화면이 번쩍번쩍 빛났다.
[빵셔틀 매치]
[무명의 초신성 조의신 VS 무명의 도전자 방윤섭]
내기 어플리케이션에 저 문구를 입력한 놈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거기에 더해 록키의 OST, ‘Going The Distance’를 틀어 놓고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이 명곡을 이런 멍청한 등신 같은 내기 싸움, 빵셔틀 매치의 BGM으로 써도 되나.
“시작 신호와 동시에 아이템 카드를 실체화하여 대련을 시작한다.”
심판을 맡은 건 1학년 1반 담임 김신록이었다.
내가 0반이고 방윤섭이 2반이니까 중립적인 입장인 1반 담임 김신록이 적역이라는 판단일 거다.
300장의 카드 중 하나를 골라 들고 자리에 섰다.
저벅, 저벅.
나와 방윤섭이 약 10m 떨어진 곳에서 마주 보고 섰다.
BGM은 ‘Going The Distance’에서 ‘Gonna Fly Now’로 바뀌었다.
“그럼, 준비.”
“우와아아아아!”
“가라, 방윤섭!”
“방윤섭, 승리한 등신이 되어라!”
방윤섭은 앞으로 올라갈 자신의 입지와 영웅 대접받을 생각에 기분이 째지는 듯 좋아 죽는 표정이었다.
김신록이 손을 들며 신호했다.
“시작!”
방윤섭의 손에서 아이템 카드가 쌍절곤으로 바뀌었다.
“으랴아악!”
쌍절곤을 손에 쥔 방윤섭이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나도 아이템 카드를 실체화시켰다.
실체화한 무기를 손에 쥐자 시스템 음이 들렸다.
〈스킬 ‘만물 사용’이 발동했습니다.〉
“잠깐, 설마, 저거 마법 무기 아니야?”
관중석에서 경악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그 설마다.
나는 손에 쥔 R급 지(地)속성 기본 마법 무기 ‘초보 마법사의 땅의 롯드’를 휘둘렀다.
만물 사용 스킬로 인해 머릿속으로 마법의 주문들과 마나 운용 수식, 그 효과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마법이다!”
“와, 와!”
플레이어 중에서도 마법을 사용하는 자는 극소수다.
염준열의 화염술이나 사월세음의 바람술과 달리 마법 무기가 필요한 이능이 마법이다.
약속된 언어로 구성된 주문을 외우고, 마법 수식을 통해 마나를 운용한다.
마법은 타고난 본능이 아닌 절제된 이성과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마법은 다른 이능과 달라. 이능이라기보다는 수학에 가까워.’
거기에 스킬 입수, 레벨업 난이도는 최상위에 해당했다.
마법은 마법과 관련된 진족이나 상위 존재의 안배가 없으면 사용이 불가능하다 여겨졌다.
‘이 세계의 수험서에도 심화 파트에 부록으로 아주 가끔 언급되는 수준이었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사용하는 스킬 중 하나인 마법을 파악하고 있는 게 당연하지만.’
마법 무기도 무기다.
나에게는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있으니 당연히 마법도 사용이 가능했다.
“테라시아 이코(Terracia Ico)!”
콰콰콰―!
내가 외운 짧은 주문이 끝나자 땅 마법은 정확히 방윤섭의 눈에 명중했다.
방윤섭은 서둘러 쌍절곤을 휘둘렀지만 마법이 발동하는 속도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레벨 1의 마법은 위력은 별것 아니었지만 시야를 봉인하고 눈에 데미지를 주기엔 충분했다.
“아악! 눈이······ 내 눈!”
방윤섭은 안면과 눈에 흙더미가 강타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나는 방윤섭과의 거리를 일시에 좁혀 그의 뒤통수를 롯드로 후려갈겼다.
빠악!
통렬한 타격음과 함께 방윤섭이 비명을 질렀다.
이걸로 제압은 끝났다.
하지만······.
‘한 대만 때리면 섭섭하지.’
난 체육관 바닥 위로 쓰러지기 직전인 방윤섭을 향해 한 방 더 갈겼다.
미운 놈을 떡 하나 더 준다고?
원래 미운 놈은 필요 이상으로 더 패 줘야 제 맛이다.
빠아악!
“끄억!”
정확하게 맞은 자리에 다시 한번 롯드를 박아 넣은 덕에 방윤섭은 완전히 다운되었다.
나는 땅에 넘어진 방윤섭의 등을 밟아 준 후 롯드로 그를 겨누며 심판 김신록을 바라봤다.
김신록이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조의신 승리!”
김신록이 내린 선언에 체육관에 환성이 가득 찼다.
“와아아아아!”
“대박, 나 마법 실제로 본 건 처음이야!”
“아······ 마법 무기······ 그게 있었지.
“개사기 스킬이네.”
“아악, 내 10만원!”
내기 어플리케이션의 화면에서 방윤섭의 이름이 지워졌다.
대신 ‘무명의 초신성 조의신 승리!’라는 글자가 크게 띄워졌다.
“씨······ 망할 새끼. 마법을 쓰다니······ 비겁한 새끼······!”
방윤섭은 눈이 따가운지 눈물을 질질 흘리며 말했다.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함근형이 한마디 했다.
“방윤섭, 정말 조의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하고 있나.”
함근형의 물음에 방윤섭이 입을 다물었다.
“군중 속에 숨어서 남을 깎아내리고 만물 사용 스킬 보유자에게 무기 사용 제한을 거는 건 비겁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함근형은 화가 나 보이지도 어이없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당연한 걸 학생에게 설명하는 교사의 태도였다.
“왜 우리들 교사가 이런 대결을 허락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함근형은 쉬지 않고 추가타를 날렸다.
방윤섭은 어물어물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눈을 비비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다른 학생들도 조용해졌다.
내기를 진행한 놈도 눈치는 있나 보다.
즉각 BGM과 홀로그램을 꺼 버렸다.
“은광고에 합격한 너희들은 재능이 있고 노력도 할 줄 안다. 각자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자부심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게 때로는 독이 된다. 플레이어에겐 미지에 대한 경각심과 겸손도 필요해.”
미지에 대한 경각심, 겸손.
교사들이 첫 수업에서 이 우수한 명문고 학생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덕목이었다.
아마 나와 방윤섭 건이 없었다면 주수혁과 안다인의 차원이 다른 수준의 대련 모습을 보여 줘 그걸 가르치고 싶어 했을 거다.
‘주수혁이 안다인 앞에서 흑역사를 만드는 바람에 게임에선 실패하지만.’
함근형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몇 년 전에 있었던 ‘내장산 국립 공원 내장사 사건’, ‘석촌호수의 비극’. 상위 팀을 전멸시킨 에너미의 레어도와 종합 능력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교사들의 의도를 이제야 눈치챈 학생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한순간의 방심에 플레이어의 사활이 갈린다. 하물며 SSR급 스킬 만물 사용을 가진 데다 거의 맨몸으로 R+급 수배 에너미를 토벌한 무명의 초신성을 상대로 방심하다니.”
함근형은 워낙 인상이 사나운 탓에 그냥 차분히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을 긴장시켰다.
함근형은 방금까지 들떠 있던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피했다.
방윤섭에게 돈을 잔뜩 건 것 자체가 나를 얕봤다는 뜻이니 찔리는 게 많을 거다.
마지막으로 함근형이 덧붙였다.
“방윤섭. 너는 조의신과 정정당당히······ 아니, 비겁하게 제약을 걸고도 졌다. 본인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1년 동안 조의신의 말에 따라라. 이상.”
정적이 이어졌다.
방금 전의 열기가 워낙 굉장했기 때문에 반작용으로 분위기가 더 가라앉은 것 같다.
‘나라도 나서서 분위기를 바꿔야 하나.’
그렇게 생각할 때.
짝짝짝짝!
“잘 싸웠다, 조의신!”
유상훈이 나를 향해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그러자 유상훈에 이어 주수혁이 박수를 보냈고, 1학년 0반의 세 명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결국엔 눈치를 보던 다른 학생들도 전부 따라 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어느새 나를 향한 환호와 박수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나에게 말을 건네는 이들도 몇 명 있었다.
“돈은 날렸지만 비싼 수업 받은 셈 친다. 마법 구경 잘했다! 무명의 초신성.”
“조의신, 나중에 다른 마법도 써 주라!”
환호와 박수가 그칠 때쯤.
바닥에 엎어져 있던 방윤섭이 눈에서 흙이 다 빠진 건지 눈물을 그치고 일어났다.
방윤섭은 분한 얼굴로 자신의 손톱과 나를 번갈아 노려봤다.
빵셔틀이 생겼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