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9화 (49/925)

15. 1/4분기 학생대표회의 (2)

플레이어블 캐릭터 제갈재걸.

제갈재걸의 이능은 극히 희귀한 스킬인 언령의 형태로 발현되었다.

그의 플레이어 이명은 남옥시인(藍玉詩人).

‘그 시인 같은 플레이어의 한마디, 한마디가 남옥(아쿠아마린)처럼 빛이 난다’라는 평을 받아 붙은 이명이었다.

제갈재걸의 희귀한 이능과 고결한 성품에 주목해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신, 상위 존재 토트가 직접 가호를 내리기도 했다.

지식과 과학, 언어, 시간, 달의 신, 도서관의 수호신, 그 토트가 내린 가호는,

[그대의 언어가 언제나 진실 되기를 바라노라.]

그 가호로 제갈재걸은 거짓을 고할 수 없게 되었으나 상위 존재의 수호를 입어 더욱 강력한 플레이어로 거듭난다.

정의롭고 강한 플레이어.

학교 업무 전반을 담당하는 교무부장.

그런 자가 신문부 고문까지 맡아 교내 언론 장악도 어려웠다.

‘추종자’들은 제갈재걸 제거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학생을 미끼로 계책을 세워 성공했고, 그는 은광고에서 퇴장하게 된다.

하지만 은광고에는 그의 퇴장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제갈쌤, 왜 아픈 건데요! 아니죠? 아픈 척하는 거죠?]

[지금 우리 SSR급 회복 아이템 구하려고 파티 짰음요! 학교 올 준비나 해요!]

[SSR급도 안 되면 UR급 아이템 구하러 러시아 간드아!]

[그냥 몸만 와요! 양말까지 우리가 다 준비함!]

[휠체어랑 병원용 이동 침대도 갖고 왔는데!]

2학년 0반 학생들은 학업이고 뭐고 다 버려두고 제갈재걸을 쫓아다녔다.

2학년 0반의 학생들의 모습은 게임에 나오지 않지만 어두운 제갈재걸의 방 밖으로 대사가 계속 들려온다는 묘사가 나온다.

제갈재걸은 제자들이 자신 때문에 학업을 손 놓을 것을 걱정했다.

그는 2학년 0반 학생들에게 죽어 가는 제 모습을 한 번 보여 준다.

게임 속에서 나오는 건 거의 형체가 변한 제갈재걸의 뒷모습뿐이다.

제갈재걸이 모습을 보이자 문틈 사이로 비명과 한탄이 쏟아진다.

[싫어, 말도 안 돼······.]

[선생님 거짓말쟁이······ 우리 졸업할 때까지 담임 해 준다고 했으면서······.]

[아······.]

제갈재걸의 몸은 아이템으로 어찌할 수준이 아니었다.

사실상 그는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를 아낀 상위 존재인 토트가 그의 시간이 매우 느리게 가도록 도와 생을 정리할 시간을 조금 남겨 준 것뿐이었다.

2학년 0반 학생들은 최악이었지만 최강인 악동 플레이어들이었다.

총명한 그들은 제갈재걸을 직접 만나 그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또 제갈재걸은 자신이 구한 학생들이 다칠까 봐 모든 일을 덮어 두려 했었지.’

그런 제갈재걸을 보며 2학년 0반 학생들은 결심한다.

제갈재걸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가 남기고 간 것들을 지키자고.

‘그중 하나가 신문부였어.’

이미 잃을 게 없는 2학년 0반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교지 편집부가 하는 모든 짓에 깽판을 쳤다.

2학년 0반에게 협박을 하건 성적을 깎건 벌을 주건 이들은 한결같았다.

‘내가 죽더라도 저놈만은 죽을 때까지 줘팬다.’

이 마인드로 2학년 0반은 온 힘을 다했다.

‘제갈재걸도 없으니, 2학년 0반을 통제할 교사도 없었지······.’

은광고 역사에 남을 악동들이 갑자기 왜 교지 편집부에만 저 개지랄을 하는 것인가.

당연히 모두가 주목했고, 추종자들은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애초에 조용히 뒤에서 여론을 조작하려고 한 짓인데, 이렇게 되면 역효과니까.’

반년간의 대격돌 끝에 추종자들은 손을 놓는다.

제갈재걸의 희생과 2학년 0반의 헌신으로 신문부는 지켜졌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학교 언론의 농간으로 은광고 학생들이 고통받는 일은 없었다.

추종자들이 얌전해진 후.

2학년 0반도 죽은 듯이 학교를 다녔다.

그저 스승의 날, 제갈재걸의 생일과 기일에 교내에 있는 모든 홀로그램에 그의 모습을 한 번 띄우는 짓을 하는 정도였다.

‘게임 속에서는 CG도 없이 텍스트 대사나 배경 묘사로만 등장한 주제에 전설을 남겼어.’

그 2학년 0반을 이끄는 게 이 두 사람, 1/4분기 학생 대표 회의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반장 금찬솔과 부반장 왕찬솔이다.

“우리 쌤이 왜.”

“너 신문부였지. 신문부 일이야?”

“요새 신문부 일 때문에 제갈쌤이 잘 안 놀아 주는데, 좀 잘하자!”

“그래, 일단 듣자. 말해 봐, 뭔데.”

“응. 일단 말해.”

플마고 공인 제갈재걸 광팬답다.

금찬솔과 왕찬솔이 바로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제갈재걸 선생님이 위험합니다.”

금찬솔과 왕찬솔이 눈을 깜빡이는 속도, 말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응? 우리 선생님이 위험한 짓을 한다는 거야, 당한다는 거야? 어, 이건 그게 그건가.”

“우리 제갈쌤이 위험할 정도로 호구긴 한데.”

“위험? 뭔데?”

두 사람이 바로 동요한 게 느껴졌다.

은광고에서 정신 나간 자를 꼽으라면 최상위권에 오를 이들이지만, 그래도 제갈재걸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짜다.

“학생 여러 명의 목숨을 쥐고 있는 자가 제갈재걸 선생님에게 거래를 걸 겁니다. 이대로 가면 제갈재걸 선생님은 거래에 응해서 자신을 희생하실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 와서 한 소리면 한 대 처맞을 소리다.

하지만 지금 나는 무명의 초신성으로 이름을 날린 플레이어다.

신문부 소속으로 제갈재걸을 지키려 하는 명분도 있다.

그의 목숨을 운운하고 있으니 믿진 않아도 적어도 이 말이 개소리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려 할 거다.

“······왜 그걸 학교나 플레이어 협회에 말 안 해?”

“맞아. 왜, 왜? 은광고 교사진은 강한데? 플레이어 협회도 요즘 일 열심히 하잖아.”

그 의문은 지당하다.

“지금 이 사실이 퍼지면 그 학생들은 죽습니다. 설령 그 학생들을 구하더라도 다른 학생들을 잡아 제가 모르는 방식으로 거래를 걸지도 몰라요.”

나는 흑막의 이름, 직위 따위를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몇 명이 있는지, 누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러니 범인을 잡아내려면 스토리의 일부를 게임대로 진행시켜 낚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되면 끝이다.

“제갈재걸 선생님이라면 학생 한 명의 목숨이 걸려 있더라도 뛰어드시겠죠. 학생이 위험해지느니 그냥 본인이 죽겠다 하실 분입니다. 제갈재걸 선생님이 이 사실을 몰라야 합니다.”

교사진에게 알려지면 범인이나 제갈재걸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이 컸다.

이 일은 최대한 조용히 끝내야 했다.

“그래. 그게 사실이면 제갈쌤은 호구처럼 죽으러 갈 거야. 진짜 그게 사실이면!”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어?”

“넌 어떻게 알았는데!”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확증은 아니지만, 단서는 있다.

“정보 입수 루트는 알려 드릴 수 없지만, 증거가 될 만한 건 있어요.”

홀로그램을 전개했다.

“인질의 이름입니다. 지금 이 학생들, 강력한 저주에 시달리고 있을 거예요. 전원 신문부와 문제가 있는 교지 편집부 소속입니다.”

내가 보여준 건 황지호가 보내 준 명단이었다.

황지호에게 조사해 달라 지정한 조건은 세 개였다.

첫째, 학교 양호실에서 눈 종합 검진을 받은 학생.

둘째, 디바이스 교체를 신청한 학생.

셋째, 교지 편집부에 소속된 학생.

‘두 개 이상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찾고 직접 관찰해서 추려 내려 했는데.’

그러나 두 경우에만 해당하는 학생은 없었다.

세 조건에 전부 해당하는 학생이 다섯 명 있을 뿐이었다.

‘저지른 죄가 있으니 지금 아무와도 상담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 거다.’

안다인과 기숙사 친구가 된 한 명은 조금 덜하겠지.

안다인의 ‘특이 체질’ 덕에 옆에 있을 땐 저주의 영향이 사라질 테니까.

“······확인해 볼까?”

“2학년도 있네. 털자! 교지 편집부 예전부터 재수 없었어!”

“좋은 마음가짐이야, 금찬. 나도 동감이야.”

금찬솔과 왕찬솔이 명단을 각자의 디바이스에 다운로드 했다.

‘됐다. 2학년 0반의 협력은 얻은 거나 마찬가지다.’

잠깐만 관찰해도 저 다섯 명이 미쳐 가고 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이게 진짜라고 쳐. 뭘 해 주면 돼?”

“제갈재걸 선생님한테 인질의 존재 여부를 숨겨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아마 이 제안은 2학년 0반도 몹시 마음에 들 거다.

“제가 지정하는 날에 제갈재걸 선생님을 납치해 주세요.”

두 사람은 납치라는 단어에 가슴이 설레 보였다.

금찬솔과 왕찬솔의 입가가 조금씩 위를 향해 휘어진다.

그 단어 하나에 수십 가지의 장난질 계획이 떠오르나 보다.

“하루 동안 제갈재걸 선생님과 눈에 안 띄게 놀고 오시면 됩니다.”

“콜!”

“할래!”

아직 명단에 있는 애들 확인 안 했는데 승낙했다.

이럴 거면 명단은 괜히 넘겼다.

‘제갈재걸 선생님, 미안합니다. 다 선생님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2학년 0반이 장난질로 제갈재걸을 납치한 건 이상하지 않다.

당연히 2학년 0반이라면 할 만한 짓이라고 생각하겠지.

연막작전으로는 최고일 거다.

*    *    *

금찬솔, 왕찬솔과 디바이스 코드를 교환한 후.

기숙사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소파 위로 엎어져 디바이스를 가동했다.

‘오늘 내로 디바이스로 연락해 둬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가장 먼저 뜨는 화면은 벚꽃 잎을 맞으며 잠들어 있는 올무의 사진이었다.

오늘 하루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추함에 상처 입은 멘탈이 치유되는 것 같다.

‘확인해야 할 메시지가 많네.’

며칠 동안 직접 얘기하지 못했던 녀석들의 메시지가 잔뜩 도착해 있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주수혁의 빵셔틀 관찰 이력이었다.

[주수혁] 오늘은 안 피웠어!

장남욱의 지나치게 긴 잔소리도 있었다.

[장남욱] 상훈이도 그렇고 의신이 너도 그렇고 메시지 확인을 왜 이렇게 안 해. 시험 끝났는데 몸은 안 상했어? 은광고 시험 많이 엄격하다면서. 사관학교는 평소 보는 시험도 내신에 반영되어서 비교적 여유가 있는데······ 평소에도 대비해서 중간고사 때 몸 상하게 하지 말자.

성시완의 격려 메시지도 도착해 있었다.

[성시완] 오늘 학생 대표 회의에서 1학년 0반 자료 정말 정리 잘 되어 있더라!

박승현의 안부 인사도 있었다.

[박승현] 환절기 감기 조심.

대충 확인하며 답변을 하던 중에 압도적인 양의 미독 메시지가 쌓여 있는 곳이 보였다.

은호의 후예 삼 남매가 있는 메시지방이다.

[은이호] 의신 오빠! 오늘 백호 님이랑 신수랑 싸웠어요!

뭐라고!

오늘 들은 소식 중에 가장 충격적이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랑 올무가 싸웠다고?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

[은재호] 최근 백호 님이 신수의 마음을 조금 읽는 거 같아요. 그러다 싸웠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10살이 겨우 넘은 막내 은재호는 아직 의사 전달 능력이 부족한 듯하다.

[은서호] 신수가 계속 현관 앞에서 조의신 형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은데······.

[은이호] 백호 님이 ‘조의신은 바쁘다. 못 와.’라고 말하니까 신수가 화냈어요. 진짜로 의신이 오빠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나 때문이었구나!

하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랑 우리 올무가 무슨 잘못을 했겠는가.

편이고 나발이고 내가 죄인이었다.

죄책감에 젖어 있을 때. 막내가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사진을 본 순간 심장이 떨어진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올무가 삐진 사진이잖아!’

황명호 대저택에 갈 때마다 내가 앉던 응접실 소파.

올무가 그 소파 위에서 얼굴을 파묻고 디바이스 카메라 쪽엔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다.

누워 있는 자세나 시선 처리가 전부 ‘나는 삐졌다’를 표현하고 있었다.

‘마음은 아픈데 귀엽다······!’

이번 사건이 끝나면 무조건 올무랑 논다.

사진은 당연히 저장했다.

‘이제 미루고 미루던 그 사람에게 연락해야 할 차례야.’

게임 속에선 초반에 얼굴만 몇 번 나온 엑스트라급 캐릭터.

처음엔 기억도 잘 나지 않았었다.

이 세계에선 나름 힘도 있고 은광고를 위해 애쓰는 사람 중 하나인데도.

그렇다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계속 생각했었다.

[나] 지금 바쁘세요?

[홍규빈] 괜찮아! 오늘은 오랜만에 야근도 없어^^!

그럼 퇴근했겠네.

지금부터 일할 준비를 해야겠지만.

아마 내 추리가 틀리더라도 홍규빈이라면 힘을 빌려줄 거다.

[나] 제갈재걸 선생님 일인데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메시지는 기독 처리 되었지만 몇 초간 답이 없었다.

그리고······.

[발신자: 홍규빈]

홍규빈은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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