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2화 (62/925)

18. 어린이날 잠실 야구장 더비 매치 (5)

경기가 끝난 후, 우리는 플레이어 협회의 요청을 받아 협회로 이동하게 되었다.

정식 플레이어들이 이계를 공략한 건 협회까지 갈 일은 아니다.

문제는 전조 현상 없이 발생한 SR++급의 던전 두 개와 타워 한 개다.

그 이상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이계 공략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으는 걸 거다.

‘플레이어SAT-K의 관측 기록 체크는 이미 끝났을 거야.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겠지만.’

괜히 흑막의 비장의 한 수가 아니다.

흑막은 최편득을 이용해 파이트 클럽을 운영할 당시, 조련계 웅족의 추격대 에너미들이 협회 위성에 걸리지 않게 손을 썼다.

그때 플레이어SAT-K가 흑막의 ‘이계 부르기’를 감지할 수 있는가도 점검해 뒀을 거다.

‘최편득 일당은 흑막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협회 위성을 내어 줬을 거야.’

그때 협력한 협회 직원은 그 사건 이후 몸과 마음이 모두 병자가 된 후 감옥행이 결정되었다고 들었다.

그 병자가 된 직원을 족친 후 협회 위성 플레이어SAT-K를 철저하게 재정비했을 텐데, 이번 사건으로 또 털리게 생겼다.

최편득의 생일빵 사건이 끝났을 때, 위성 관리팀은 대리급 이상으로 다 시말서를 써야 할 거라며 오싹하게 웃음을 터뜨리던 홍규빈이 떠올랐다.

‘이번 사건으로 위성 관리팀은 또 고생하게 생겼구나.’

플레이어SAT-K의 상태와 기록들을 아무리 뒤져 봐도 답을 얻지 못할 거다.

그렇다면 남은 단서는 공략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의 진술뿐이었다.

‘원인을 완벽히 규명해 내지 못하더라도, 전조 현상 없이 등장하는 이계와 보통의 이계 사이의 차이점을 찾아내고 싶을 거야.’

게임 속에서도 사건 종료 후, 주수혁은 협회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만 왜 전조 현상 없이 이계가 발생했는지 밝혀내지 못한다.

전조 현상의 유무에 따른 이계의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에도 실패한다.

‘토족의 옥토연이 가진 관측 스킬, 월궁계도는 이계 부르기를 꿰뚫어 보니 협회와 협력하게 만들고 싶은데.’

하지만 내가 협회 측에 그 얘기를 꺼내는 건 부자연스럽다.

용제건과 옥토연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도 미묘하다.

옥토연은 ‘토윤 언니’라는 진족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는 얼굴색이 변하더니 말 그대로 토끼처럼 토껴 버려 현재 이 자리엔 없다.

‘용제건이 말을 꺼내 줬으면 좋겠는데 옥토연이 자리를 비웠으니 어렵겠지.’

염준열을 붙잡고 회식하러 가 버린 용족들 중 용제건 혼자 빠져나와 우리와 함께 이동했다.

그는 이동하는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용제건의 근본은 유희계로, 예상치 못한 일, 즐거운 일엔 사족을 못 쓰는 황지호나 문새론과 비슷한 타입이다.

‘이번 사건으로 설레고 있을 게 눈에 보인다.’

용제건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뭔 짓을 할지 모르니 조금 불안하긴 하다.

그는 자신이 즐거운 일과 목숨, 둘 중 하나를 저울에 달면 당연히 즐거운 일을 택하는 진족이다.

‘용제건은 1학년 말에 터졌던 사건에서도 그러다 죽었으니까.’

용제건이 기척을 느낀 듯 협회 로고가 박힌 강화 유리창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곧 우리가 대기하던 협회 내 회의실 안으로 오피스 룩 차림의 여성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 이계 공략 지원실 위성 관리팀장 임지화입니다.”

임지화가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붉은 사자 대표로 남은 팀원이 바로 말을 꺼냈다.

“지화야, 이번 이계는 평소 공략하는 이계랑 다를 바가 없었어. 다른 팀원도 마찬가지라고 하네. 여기 온 것도 협회 위성 관리에 정말 실수가 없었나 확인하러 온 거야. 언론에 흘릴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뭐 실수한 거 있으면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붉은 사자에서는 가위바위보에서 진 한 명을 대표로 협회에 밀어 넣고 회식을 가 버렸다.

그녀는 빨리 이야기를 끝내고 늦게라도 회식에 가고 싶은 모양이다.

임지화는 힘없이 웃으며 답했다.

“사실대로 말하고 싶어도 뭐 없는데. 하하하······ 하하하하. 저번에 은광고에서 창천명궁이 활약한 사건 몰라? 그 사건 이후로 플레이어SAT-K 정비를 다섯 번이나 했는데?”

임지화와 붉은 사자의 팀원과는 아는 사이인지 편한 말로 서로 대화를 나눴다.

“하하하, 좌천 급의 인사이동이라도 상관없으니까 부서 이동 신청하고 싶다······.”

임지화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먼 곳을 바라봤다.

용제건도 임지화와 아는 사이인지 말을 걸었다.

“기운 내, 지화 씨.”

“제건 씨······! 용족 쪽에선 뭐 알아챈 거 없나요?”

“응, 용족 쪽에선 없어. 준열이가 시구한 경기인데 뭔가 알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야.”

“그래, 그랬죠······ 그렇구나!”

임지화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용제건이 한 말을 잘 뜯어보면 ‘용족 쪽에선 없어’라고 말했다.

용족이 아닌 토족 쪽에는 있다는 걸 덮어 둔 교묘한 말이다.

“학생 측에선······ 당연히 없으려나. 우선 각자의 관점에서 오늘 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해 줄래? 학생들은 오랜 시간 붙잡기 그러니까 먼저 인터뷰할게.”

임지화의 말에 붉은 사자의 팀원과 용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순서를 양보할 생각인가 보다.

“아······ 오늘 회식은 물 건너갔네. 제건 오빠는 괜찮아? 회식 안 가도 돼?”

“응. 이쪽이 더 재밌어 보여.”

“······제건 오빠의 그 유희계 용족 감성은 이해가 안 가.”

주수혁, 도시후, 도원우는 논리 정연하게 요점만 정확히 전달하며 설명했다.

장남욱은 세세한 것 하나하나 전부 설명해 말이 길어졌다.

나와 맹효돈은 위 네 명에 비하면 비교적 간략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임지화는 우리의 말을 들으며 디바이스에 뭔가 입력하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고마워, 얘들아. 너희들이 나서 줘서 이번 사태가 원활하게 수습됐어.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줘서 고맙다. 생중계에서 해설 위원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나라 플레이어계 미래가 밝구나.”

인터뷰를 마친 후 그녀는 지쳐 보이는 얼굴로 웃으며 우리를 칭찬했다.

그 외에도 임지화는 간단하게 앞으로의 이야기를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수혁, 도시후, 맹효돈은 이명이 나올 것 같다 한다.

모니터링을 한 것 외엔 제 이능을 발휘하지 않은 장남욱은 이명을 받지 못할 거라 하지만.

장남욱은 ‘저도 제가 지금 이명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얼어 있는 장남욱에게 싸우라고 할 수도 없었어.’

플레이어SAT-K의 대대적인 점검이 있을 예정이라 당장 이명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 한다.

“혹시 뭔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바로 연락해줘. 24시간, 메시지, 전화 모두 가능해.”

임지화는 그렇게 신신당부하며 우리 모두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 뒤론 붉은 사자 팀원과 용제건의 차례가 되고, 우리는 집에 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으, 끝났다. 배고파.”

“집에 가기 전에 어디 들러서 뭐 먹고 갈래? ······어, 저거 우리 집 차 같은데.”

“우리 부모님 오신 것 같다.”

협회 정문 앞.

주수혁, 도시후, 도원우, 장남욱은 보호자 쪽에 연락이 간 건지 각각 집에서 마중 나왔다.

주수혁은 통학생이지만 도시후나 장남욱은 사관학교 기숙사 소속이라 적어도 내일 아침 일찍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할 텐데.

그래도 오늘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가족들이 걱정해서 나왔나 보다.

“그럼 학교에서 보자.”

“너희 둘 그때 농구 시합할 때 없었지? 다음엔 꼭 와.”

“······잘 들어가라, 1학년들.”

“조심해서 기숙사로 돌아가라. 의신아, 효돈아. 기숙사에 도착한 다음엔 연락하고, 귀찮다고 저녁 안 먹고 자지 말고. 기숙사 식당 운영 시간이 끝났으면 밖에서 사 먹고 자, 그리고······.”

“그래. 잘 먹고 잘게. 부모님 기다리신다, 가 봐.”

장남욱의 잔소리를 대충 끊고 부모님이나 경호원의 차에 타고 사라지는 네 명을 배웅했다.

남은 건 나와 맹효돈 둘뿐이었다.

“야, 우리도 가자.”

“······그래.”

빨리 가면 기숙사 식당 운영 시간 내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비싸더라도 에어 택시를 탈까 고민되었다.

그때, 협회 건물 정문을 나서던 우리를 누군가가 불러 세웠다.

“얘기는 들었다. 잘했다. 고생이 많았구나, 조의신, 맹효돈.”

우리를 부른 건 나와 맹효돈의 담임 선생님 함근형이었다.

맹효돈과 나는 보호자에 부모님이 등록되어 있지 않으니 함근형에게 연락이 갔나 보다.

그냥 학교에서 기다려도 될 텐데 굳이 이 휴일 저녁에 협회 정문까지 우리를 마중 나온 게 함근형다웠다.

“저녁으로 뭐 먹고 싶은 건 있니. 내가 사마.”

저녁까지 사주실 생각인가 보다.

맹효돈이 긴 고민 끝에 ‘돈가스요.’라고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여 우리 셋은 검색 엔진의 AI가 추천해 준 돈가스 뷔페집에 갔다.

“돈가스 종류가 이렇게 많았냐······!”

부위별로 등심 돈가스, 안심 돈가스, 목살 돈가스.

고기의 굵기별로 갈리는 고기가 두툼한 돈가스, 서양식의 얇은 고기로 간단히 만든 경양식 돈가스.

특별한 재료를 추가한 치즈 돈가스, 고구마 돈가스, 상추 돈가스.

돈가스 외에도 치킨가스와 생선가스까지 있어 배가 불러도 질리지 않았다.

“옛날식 데미그라스 소스랑 매콤 칠리소스가 제일 괜찮다. 안심살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가장 많이 먹은 사람은 숨겨진 미식가 맹효돈이었다.

그는 모든 메뉴와 소스를 섭렵했는지 뭐가 어떻게 맛있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

오늘 하루 갑작스러운 이계 공략에 휘말린 우리를 배려해 준 건지 함근형은 이계 공략이나 에너미에 대해선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듣기만 했다.

‘별로 지치지도 않았으니까 물어보거나 확인할 게 있으면 말해도 되는데.’

하지만 함근형은 끝까지 묻지 않았다.

결국 각자 기숙사 방에 들어갈 때까지 먹는 이야기만 실컷 하다 헤어졌다.

내 방 안에 돌아와 문을 닫자마자 급히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긴장하고 있었나. 오늘 사건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찰하는 건 내일로 미뤄야겠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디바이스를 확인해봤다가 놀랐다.

‘뭔 메시지가 이렇게 많이 왔어!’

홀로그램에 새 메시지 알림창이 가득했다.

전부 무시하고 대충 장남욱에게 ‘도착’이라는 메시지만 보내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잠들었다.

*    *    *

황명호의 대저택.

거실.

“답변이 없네. 이걸 뭐라 하더라. 안읽씹. 안 읽고 씹는다, 이거였지?”

황호의 눈앞에 수십 개의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대부분이 오늘 잠실 야구장에 있었던 SR++급 이계 공략 사건 관련 기사였다.

그중 하나는 조의신과의 메시지창이었다.

현재 읽지도 않고 답변도 없는 상태였지만.

“옥토연에 용족에 붉은 사자에. 이것들이 다 몰려 있는데 우연일 리가.”

옥토연에게 연락해 볼까, 하고 고민해 봤지만 금방 기분이 불쾌해져 생각 자체를 중단했다.

대신 싸늘한 얼굴로 신수를 쓰다듬으며 홀로그램을 보는 친우에게 물어보았다.

“백호, 조의신한테 뭐 들은 거 없어?”

백호는 예상대로 고개를 저었다.

둘이 신수를 끼고 자주 산책을 하러 가니 뭔가 들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 꼴을 보니 산책 중에도 한마디도 안 하고 있을 것 같다.

한편 조의신의 이름을 들은 신수가 귀를 쫑긋거리며 현관 쪽을 보기 시작했다.

“왜, 조의신이 신경 쓰이냐. 신수.”

신수는 고개를 쳐들며 황호를 빤히 바라보다 ‘끄응’ 하고 불쌍하게 들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빨리 대답하라는 뜻이다.

“걔는 오늘 못 와. 연락이 안 돼.”

신수는 고개를 홱 돌리고 다시 백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황호를 마치 없는 진족 취급하는 움직임이다.

황호는 기막혀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이렇게 도도하게 구는 걸 조의신이 봐야 하는데.”

하지만 신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백호의 손길을 받으며 눈을 감았다.

*    *    *

다음 날 아침.

평소대로 아침 훈련을 마치고 1학년 0반 교실로 향했다.

“의신아!”

교실에 들어가자 이레나가 내 앞으로 급히 달려와 말을 걸었다.

그녀의 유난히 동그랗게 보이는 두 눈이 바로 앞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와줘!”

이레나가 저렇게 절실한 목소리로 말하는 건 처음 듣는다.

그녀도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다.

게다가 지금은 1학년 0반의 몇 안 되는 클래스메이트이기도 하다.

뭘 부탁하든 당연히 들어줄 생각이다.

“영원의 호수 팀 마스터의 내한 공연 일정이 떴어. 티켓팅 좀 도와줘!”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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