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9화 (79/925)

22. 수중 이계 공략 (3)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 이계 공략 지원실 위성 관리팀, 플레이어SAT-K 제어실.

위성 관리팀 소속 팀원들이 수십 개의 홀로그램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제어실 정중앙.

위성 관리팀장 임지화가 팔짱을 끼고 제어실 중앙에 서서 보고를 듣고 있었다.

“호족의 수장이 힘을 개방했습니다.”

“호족의 수장이 움직임을 멈추는 즉시, 해당 좌표의 이능파의 변화, 0 .1초 단위로 끊어서 기록하고 홀로그램으로 띄워.”

“네, 알겠습니다.”

플레이어SAT-K가 관측 중인 석촌호수의 영상이 홀로그램상에 떠올랐다.

금빛 입자 사이에 청년이 서 있었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호수의 모양이 변해 갔다.

영상 조작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었다.

“호족의 수장에게 물을 다루는 힘이 있었나요?”

“관측되는 영상을 보니 그런 거 같지 않아. 순수하게 마력으로 움직였겠지. 영원의 호수 팀 마스터가 하는 것보다 효율은 나쁠 거야.”

“비교하자면 총으로 총알을 쏜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총알을 쏜 셈이군요······.”

호족의 수장이 손짓을 멈추었다.

사전에 지정했던 좌표점, 호수였던 곳의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젖은 땅 사이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화면을 응시하던 임지화가 팀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확대해.”

“알겠습니다.”

화면 가득히 확대된 지표면이 보였다.

지표면 위로 이계의 틈이 선명하게 보였다.

“위성사진에 이계의 틈이 관측됐습니다!”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우리 위성 점검 다시 해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미궁타입의 이계의 틈이야······!”

“잠깐. 뭔가, 얼음? 성에? 그런 게 낀 것 같은데.”

임지화가 동요하는 팀원들에게 계속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이계의 틈을 관측해. 호족의 수장은 이계를 공략하러 갈 거야. 내부를 보는 건 힘들겠지만, 외부는 철저히 감시하도록. 석촌호수 내에 접근 가능한 기록 기기를 전부 체크하고.”

임지화는 겉으로 평정을 가장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섬뜩한 상상이 스쳐 갔다.

‘이런 형태의 이계의 틈이 여기 말고도 더 존재하는 건 아닐까.’

*    *    *

이계의 틈은 클리어하거나 지배하여 제어하지 않는 한, 그 틈이 커지고 외부에 에너미를 부른다.

그게 이 세계의 상식이었다.

이 상식의 예외가 처음 발견된 건, 주수혁과 안다인이 1학년 2학기에 이 ‘동결형 이계’를 공략했을 때다.

‘이 동결형 이계는 마족(魔族)의 마도 연구의 결정체야.’

이계 지배에 성공한 존재는, 간섭을 중단하고 ‘이계 동결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이계 동결화에 성공하면 이계는 냉기와 독기를 머금고 비활성화되는 상태, 동결형으로 변한다.

그리고 동결형 이계는 동결화 스킬을 사용한 이가 원하는 순간, 언제든지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동결형 이계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이 시한폭탄이 심어진 건, 현재 ‘어둠의 시대’, 혹은 ‘암흑의 시대’라고 부르던 때였다.

그때는 인력도, 정보도, 아이템도 부족했다.

플레이어들이 이계 공략과 에너미와의 대치를 두려워해 이능을 숨기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 어둠의 시대가 이어질 때,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는 고난도의 이계를 공략할 여유가 없었다.

공략 난이도가 높은 이계가 등장할 때마다 인명 및 재산 피해 규모는 점점 커졌다.

한반도 멸망설이 진지하게 떠오르던 와중, 어떤 진족들이 한국 지부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왔다.

[SR+++급 이상의 이계는 전부 우리가 제어해 주마. 단, 우리가 제어한 이계의 좌표 기록은 전부 말소해야 한다.]

수상한 제안이었지만 여기서 고개를 저으면 한반도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한국 지부장은 혼을 묶는 계약서를 작성하여 거래에 응했다.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이 등장해서 어둠의 시대를 끝내고, 계약은 끝나지만······.’

어둠의 시대 당시, 플레이어SAT-K의 인도를 받아 진족이 지배한 이계의 좌표 기록은 모두 말소되었다.

‘동결형 이계는 그때 만들어졌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정확한 수도, 위치도 알 수 없어.’

게임 속에선 결정적인 순간에 전부 활성화되어서 최악의 사태로 이어진다.

‘그래도 단서는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

당시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장은 시대의 흐름 앞에 무력했지만 어리석은 자는 아니었다.

그 정체불명의 진족도 그걸 아니까 기록이 말소된 것과 동시에 사고로 위장해 한국 지부장을 암살한 거다.

‘그 사람이라면 죽기 전에 계약의 허점을 찔러서 어딘가에 힌트를 남겼을 거야.’

게임 속에서 죽어 나간 수많은 캐릭터.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간 배경 설정.

어딘가에 단서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내가 가진 패를 최대한 활용하자.’

우선 이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패부터 써 보기로 했다.

“옥토연 씨.”

옥토연은 붉은 눈동자를 볼썽사납게 이리저리 천천히 굴리며 동결형 이계의 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말을 걸자 화들짝 놀랐다.

“음? 어? 넌, 누군데 나를 알아. 어······ 혹시 은인인가?”

바로 눈치챈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마침 30대 황호가 동결형 이계 주변의 땅을 높이 융기시켜 호수 물이 들어오지 않게 막고 힘을 거둔 후 이쪽으로 왔다.

황호가 옥토연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멍청한 것.”

“아, 황호! 그 눈 하지 마! 재수 없어! 정떨어져! ······아, 떨어질 정이 이미 없구나.”

두 진족의 수장이 티격태격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말을 끊었다.

“월궁의 기술로 이 이계의 틈은 어떻게 보이죠?”

“음······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봤을 땐 별거 없었는데.”

동결형 이계의 틈을 발견했을 때 대놓고 놀라길래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나.

30대 버전의 황호가 아주 하찮은 것을 보듯, 멸시하는 시선으로 옥토연을 바라봤다.

“쓸모없군. 넌 이제 필요 없으니 그만 거슬리게 굴고 꺼져.”

옥토연이 붉은 눈을 부릅뜨고 분노로 몸을 떨었다.

“나 아직 최선을 다한 거 아니거든? 내가 이거 하나 못 찾아낼 거 같아? 나, 월궁 소속 달토끼 중에서도 회토(懷兎)의 토끼거든!”

“어. 못 찾을 거 같다.”

“야! 아니거든!”

파앗!

황호의 도발에 넘어간 옥토연이 힘을 개방했다.

힘을 개방한 그녀 뒤에서 황호가 소리내지 않고 웃는 게 보였다.

‘옥토연······. 어떤 의미로는 다루기 쉬운 성격이구나.’

달빛과 같은 빛깔을 띤 입자가 옥토연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이능파의 압력에 몸이 무거워진 기분이다.

‘진족 중에선 약한 축에 속하는 토족이긴 하지만, 옥토연도 웬만한 인간 플레이어보다는 강한 거 같은데.’

옥토연의 손끝에서 한반도 모양의 지도가 나타났다.

기의 흐름과 빛무리의 움직임이 가득한 한반도 지도였다.

저게 월궁계도인가 보다.

“으윽······ 아직 출력이 부족한 거 같은데.”

파아아앗!

옥토연이 눈에 머금은 붉은 기운이 점점 더 짙어졌다.

별 이상을 찾지 못한 건지, 옥토연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점점 힘의 개방 단계가 올라가 이능파의 압력이 켜졌다.

황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옥토연을 지켜보다, 나와 권제인 앞에 서서 방어막을 쳤을 때였다.

“이게 뭐야, 월궁계도에 얼룩이 보여. 독? 저주?”

“독?”

“이능을 가진 신체를 오염시키는 종류의 물질 같은데. 뭐지, 이런 건 처음 봐!”

옥토연의 월궁계도는 거기까지 꿰뚫어 보는구나.

원거리 관측 기술을 통해 이능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건 고무적이다.

‘동결형 이계의 틈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 같지만, 힘의 개방도를 올리면 이능독을 감지하는 게 가능하구나.’

석촌호수의 비극.

그 원인이 된 건 저 이능독이다.

당시 생성된 이계는 서호에 생긴 것.

무릎까지 오는 정도의 수위에서 발생한 SR--급 미궁.

공격대도, 수비대도 전부 호수 물에 잠긴 상태로 싸웠다.

석촌호수 물은 동호에 잠겨 있던 동결형 이계에서 흘러나온 이능독에 오염되어 있었다.

‘그 미궁은 이능독의 실험대였던 거야.’

동결형 이계는 이계를 비활성화시키기 위해 강력한 냉기와 독기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계 동결화 스킬 시전자는 그 독기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다.

‘그 사건 당시, 지원이 왔을 땐 이능독을 거둬서 실험을 마무리한 거고.’

파아아······.

옥토연이 힘을 거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으으, 머리 아파.”

옥토연의 붉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월궁계도는 이능독을 관측할 수 있지만, 효율이 낮아. 오래 사용할 수는 없겠구나.’

월궁계도는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 둬야겠다.

“감사합니다, 옥토연 씨. 쉬고 계세요.”

“······으으, 응.”

옥토연이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혼자 두피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황호가 방금 쳤던 방어막을 거두며 말했다.

“독이라······. 힘을 집중해서 가까이에서 보면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그래도 진족엔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인간은······.”

그 점은 전혀 문제없다.

“괜찮아.”

이 세계의 타이틀 히로인 안다인.

안다인은 자신 주변의 독과 저주를 억누르는 ‘특이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안다인은 중간고사 기간, 최편득의 추종자들에 의한 저주의 진행도 늦췄고, 1학년 2학기, 동결형 이계 공략 때도 대활약했었어.’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선택한 캐릭터는 육성이 완료된 버전의 안다인이었다.

외견은 바뀌지 않았지만, 신체 능력이 급격히 향상된 게 느껴졌다.

“잠깐! 너······!”

황호가 붙잡기 전, 나는 주저 없이 얼어붙어 있는 동결형 이계의 틈을 향해 뛰어내렸다.

독기 사이에서 나는 멀쩡히 서 있었다.

“너도 만약을 대비해서 내 주위로 10m 이상 떨어지지 마.”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    *    *

황호가 얼어붙은 입구를 부수자, 이계는 활성화 상태로 바뀌었다.

사전에 홍규빈을 통해 협회 위성 관리팀에 부탁을 해 둬, 위성이 보낸 경보로 주변의 스마트 기기가 울리는 일은 없었다.

수비대로 남은 건 황호의 부하와 옥토연.

공격대로 들어온 건 나, 황호, 권제인과 영원의 호수 팀원 둘.

“독기만 주의하면 문제없겠군.”

SR+++급 미궁.

그 공략 난이도에 비해 전력은 차고 넘쳤다.

이계를 눈앞에 두자 평정을 되찾은 권제인.

세계 정상급 팀에서 팀 마스터를 보조하는 팀원 둘.

그리고 중심에 있는 황호.

이들의 활약에 의해 에너미는 발견되기 무섭게 소멸하였다.

“넌 대체 어떻게 이 독기를 제어하고 있는 거냐.”

시험 삼아 내 곁에서 몇 초간 떨어져 있던 황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을 걸었다.

“권제인, 그리고 거기 둘. 쟤 옆에서 멀어지지 마. 독 때문에 죽진 않더라도 고생할 거다.”

미궁 타입의 이계는 다른 이계에 비해 보스 에리어까지 가는 길이 길고 복잡했다.

나를 중심으로 전열을 갖추고 고속으로 공략이 진행되던 중, 권제인이 불쑥 말을 걸어왔다.

“넌 그때 내 콘서트에 스태프로 왔던 후배구나.”

권제인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알아보는 게 당연한가.

“가면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소리가 같아. 말하는 속도나 발소리. 겹치는 게 많았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사람을 판독하는 기준은 소리인가 보다.

그녀는 바이올리니스트답게 청각이 뛰어난 듯했다.

“그때 같이 온 건 친구들이지? 잘 지내고 있니?”

다른 걸 물어볼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보통 후배가 이런 꼴을 하고 호족의 수장과 함께 움직이고 있으면 다른 질문을 할 텐데.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답했다.

“네, 다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 스승의 날 준비하느라 다들 바빠요.”

“그래, 담임 선생님은 누구시니?”

“함근형 선생님요.”

“그래······. 얼굴은 무섭지만 좋은 분이라고 들었어.”

함근형의 험상궂은 얼굴은 유명한가 보다.

권제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우리 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권제인과 대화를 이어 가며 앞으로 나아가던 중,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보스 에리어에 진입한 건가······!’

보스를 대면하여 긴장하기도 전에, 눈앞에 황금빛이 번뜩였다.

“길게 끌 생각은 없다.”

콰쾅―!

보스 에너미는 그 모습을 다 드러내기도 전에 황호의 자비 없는 일격에 소멸되었다.

권제인은 무심한 얼굴이었지만 영원의 호수 팀원 둘은 입을 떡 벌리고 그 장면을 바라봤다.

“끝난 게 아니야. 희미하지만 진족의 기운이 느껴진다.”

진족은 진족을 알아본다.

황호의 말에 우리가 전투태세를 갖추었을 때였다.

쓰러진 보스 에너미 뒤로 긴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흐릿한 형체를 보니 본체는 아닌 듯했다.

“이건······!”

“나비의 편린이다.”

주변에 나비의 비늘 가루가 흩날렸다.

가루 너머로 보이는 건 게임 속에서 몇 번 본 실루엣이었다.

‘나비령!’

게임 속 주요 NPC이기도 했던 접족, 나비령.

권제인이 찾던 그 나비의 실루엣이 저 너머에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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