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수중 이계 공략 (2)
은광고의 최편득 추종자 사건이 일단락된 다음 날.
홍규빈 팀장이 평소보다 30분가량 일찍 출근했다는 소식을 들은 협회 소속 플레이어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홍 팀장님 왜 또 이 시간에 출근하셨대요?”
“······오늘 반차 낼 예정이었는데, 날아가게 생겼네.”
“그 추종자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들 건은 끝나지 않았습니까?”
자기 관리와 자기 계발, 업무 처리 능력, 직장 선후배, 상사와 부하 직원에 대한 예의범절.
홍규빈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에서 가장 완벽한 플레이어로 꼽혔다.
하지만 반듯한 자세로 앉아 업무를 보는 그를, 저 멀리서 너나 할 것 없이 저승사자라도 보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네, 임 팀장님. 부탁드립니다. 일몰 이후부터 24시간 동안이요. 디바이스로 좌표 보내드리겠습니다.”
홍규빈의 통화 내용을 들은 이가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임 팀장님이시면······ 위성 관리팀 임지화 팀장님 아닌가요? 거기랑 엮여서 야근을 안 한 날이 없는데요.”
“망했다······.”
“아직 모른다. 모른다고!”
홍보 1팀과 규정 집행부에 동시에 소속된 협회 직원들이 한숨을 쉬려다, 홍규빈을 향해 걸어가는 인물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홍규빈의 오른팔, 윤 대리였다.
비교적 너그러운 홍규빈과 달리, 윤 대리는 지각이나 태만한 업무 태도 등에 자비가 없었다.
윤 대리 아래 직급의 사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처박고 서류 작성하는 시늉을 하는 중에 그의 보고가 시작되었다.
“팀장님.”
“네, 윤 대리님. 말씀하세요.”
홍규빈이 읽고 있던 홀로그램에 곁눈질하며 말했다.
“영원의 호수 핵심 팀원이 환몽 게이트에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고하세요.”
홍규빈을 비롯해 윤 대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범위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환몽 게이트와 최편득이 운영하는 퇴폐 업소 건, 양쪽과 연관된 플레이어 중 해외 송금을 10년 넘게 받는 중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송금을 보낸 이가 영원의 호수의 핵심 팀원입니다.”
“송금 규모는 확인됐습니까?”
“연도별로 다소의 증감이 있지만, 매년 30억을 넘겼습니다.”
1년에 30억, 10년이 넘는 기간, 300억 이상이 오고 갔다.
플레이어 간에 이루어지는 해외 송금은 일반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에 비해 규제도 수수료도 적어 이용하는 플레이어가 적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이건 이상했다.
규모도 기간도.
“왜 이게 지금 확인된 겁니까?”
“확인해보니 영국 지부에 열 차례 넘게 협조 공문을 넣은 기록이 있습니다만, 응답을 받은 기록이 없습니다. 영원의 호수 팀은 영국의 영웅이고, 환몽 게이트는 한국의 문제니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문제를 모르는 척하고 싶었나 봅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환몽 게이트로 홍역을 크게 치른 협회 직원들이 울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협회는 특정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면 안 된다는 거 모르나? 미쳤군. 협회 들어오기 전에 서약까지 했을 텐데.”
“애국심인지 팬심인지 모르겠지만, 영국 지부는 또 물갈이되겠군요.”
“진족한테 개기다가 그 사달이 나고도 정신을 못 차렸네.”
“쟤들도 이제 야근하는 거겠지? 아, 모가지가 날아가면 야근도 못 하겠구나.”
“플레이어 협회 총본부에 제출할 서류, 제가 작성해도 됩니까?”
방금까지 의욕이 없던 팀원들이 분노에 차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척척 하기 시작한 팀원들을 보며 홍규빈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규정 집행부가 나설 안건이 되었군요.”
“환몽 게이트와 상관없는 해프닝일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만······ 어설프게 은폐하려 한 영국 지부 때문에 일이 커졌습니다.”
마침 오늘 영원의 호수의 그 인물의 일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오늘 모시러 갑니다. 윤 대리님.”
“알겠습니다.”
“팀장님!”
죽 입을 다물고 있던 사원 하나가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홍규빈에게 뛰어가 크게 외쳤다.
“저도 가겠습니다. 꼭 가고 싶습니다!”
은광고 플레이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정 사원이었다.
“······네. 정 사원님도 갑니다.”
“아자! 드디어 내게 권제인 님의 실물을 볼 기회가······!”
좋은 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은광고 출신인 권제인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감격에 젖은 정 사원.
윤 대리가 당장이라도 목을 조르고 싶다는 얼굴로 정 사원을 바라봤다.
“홍규빈 팀장님······.”
홍규빈은 윤 대리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정 사원이 저 모양이긴 하지만 실력은 있으니까요. 단시간 동안 다수를 상대하는 거라면 정 사원을 따라올 플레이어가 없어요. 영원의 호수가 팀 단위로 저항해 올 때를 대비해서 데려가도록 하죠.”
* * *
석촌호수의 동호.
호숫가 주변의 산책로 가로등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번화가에도 가깝고, 호수 주변의 정비도 잘되어 있었으나 이 주위를 걷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너무 없는데.’
남궁물산이 운영하는 테마파크 인공섬의 모든 어트랙션의 조명도 꺼져 있었다.
적자 수준이 심각해져 차라리 운영을 안 하는 게 손해가 적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정말 문을 닫았나.
“만일을 대비해 문을 닫게 해 뒀어. 평소에도 손님이 없긴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게 안전하잖아. 너도 간단한 변장밖에 하지 않았고.”
30대 버전의 황호가 내 시선 끝에 있는 인공섬을 보며 말했다.
까마귀 가면을 쓰고 체격을 감추는 옷을 입은 나다.
플레이어의 궤적으로 외견을 바꾼 상태에서 협회의 눈에 띄느니, 권제인 앞에서 까마귀 가면을 쓴 조의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이번 일엔 협회에 도움을 청했으니 어쩔 수 없어.’
권제인에겐 내가 괴짜 호족과 협력해 자경단 놀이를 하는 은광고 1학년 학생으로 보이길 바랄 뿐이다.
“저 테마파크는 남궁물산 거잖아. 황명 그룹에서 운휴일을 지정할 수 있어?”
“곧 남궁 게 아니게 될 거다. 작년부터 계속 매각 의사를 보였어. 조용히 둘러보고 싶으니까 하루 문을 닫아 달라고 요청했더니 바로 들어주더군.”
“······살 거야?”
“봐서.”
이 테마파크의 면적은 약 13헥타르, 평으로 환산하면 약 4만 평.
송파구, 그것도 잠실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테마파크다.
비록 망해 가고 있다고 하지만, 땅값만 생각해 봐도 그냥 ‘봐서’ 살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30대 버전 황호는 질색하려는 내게 더 질색하게 만드는 발언을 했다.
“······재호도 그렇고, 서호와 이호도 유원지에 관심이 많아 보여. 우리가 사들이면 셋이 실컷 놀게 할 수도 있잖아.”
지금 이놈이 뭐라는 거야.
테마파크를 사들이는 걸 무슨 조카한테 장난감 하나 사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고민 중이다.”
고민 없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테마파크를 살 생각이었냐.
“이곳은 접족이 지정한 장소와 너무 가까워.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는 보류다.”
그나마 그 고민이란 것도 돈 고민이 아니라 은호의 후예들 안전 문제에 관한 고민이었나 보다.
이놈도 언젠가 그 만렙 청룡이 염준열에게 하는 것처럼 우두머리급 팔불출이 되는 걸까.
“의신아, 안녕.”
호족의 미래를 걱정하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홍규빈 팀장님? 오늘은 왜······.”
홍규빈은 반쯤 그늘 안에 녹아 있었다.
은신 효과가 붙어 있는 이능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검은 코트와 가면, 가죽장갑으로 구성된 방어구들이었다.
이전에 본 기억이 있었다.
‘중앙 도서관 지하 서고에서 착용하고 있던 아이템들이잖아.’
홍규빈을 몇 번 봤지만, 저것들을 착용한 건 단 한 번.
규정 집행부로서 움직일 때였다.
“조의신, 플레이어 협회에 조력을 구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접근해도 내버려 둔 건데.”
30대 버전의 황호가 나와 홍규빈을 번갈아 보다 말했다.
홍규빈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의신이가 협회에 요청한 사항은 전부 처리해 뒀습니다. 지금 여기에 온 건 다른 일로 왔습니다.”
“사전 예고도 없이?”
“죄송합니다, 황호 님. 일의 성질상 사전 고지가 어려웠습니다.”
홍규빈과 이 버전의 황호는 면식이 있었나 보다.
황호가 홍규빈의 말을 듣고도 불쾌해하는 얼굴을 할 때.
“안녕하세요.”
재러드 리와 팀원 몇 명을 동반한 권제인이 등장했다.
동시에 홍규빈과 그의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설마, 규정 집행부가 나선 건 영원의 호수와 관계가 있나.’
권제인이 인사를 마치자마자 홍규빈이 입을 열었다.
“플레이어 협회 규정 집행부에서 나왔습니다.”
“협회의 규정 집행부가 무슨 일이죠.”
“영원의 호수 팀 마스터 권제인. 귀하의 팀원 중에 오랜 기간 범죄 조직의 관계자에게 자금을 제공한 이가 있습니다.”
홍규빈의 말에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인신매매, 폭행, 상해, 납치, 감금, 탈세, 건축법 위반······ 걸려 있는 혐의에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거대 범죄 게이트, 환몽 게이트와 연관된 인물에게 10년간 한화로 300억 이상을 송금했더군요.”
설마 환몽 게이트에 영원의 호수도 엮여 있었나.
게임 속에서 그런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홍규빈이 증거도 없이 권제인에게 이런 말을 할 인물도 아니었다.
“영국 협회를 통해 10회 이상 협조를 요청했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았더군요. 영국 협회의 의사인지, 영원의 호수에서 압력을 준 건지 알 수 없습니다만.”
“영원의 호수는 협회에 어떤 압력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권제인의 푸른 눈에는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착오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영원의 호수는 그런 일로 협회를 압박할 팀이 아니야. 내부에 부정이 있다면 직접 캐내서 협회에 자진 신고할 팀이다. 홍규빈도 알고 있을 텐데. 권제인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건가.’
가면에 가린 홍규빈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사무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협회에 와서 일의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지금 응하지 않는다면, 총본부를 통해 규정 집행 영장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재러드 리.”
그냥 팀원도 아니고 영원의 호수 팀 서브 마스터의 이름이 나왔다.
권제인이 재러드 리를 돌아봤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재러드. 네가 그간 한국에 돈을 보낸 인물이라곤, 그분들밖에 없잖아. 그 사람들이, 환몽 게이트에 엮여 있다고?”
“그럴 리가!”
“제인아? 재러드? 이게 무슨 소리야······!”
권제인을 제외한 팀원들은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 것 같았다.
저 반응을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듣고 싶군요. 협회에 가겠습니다.”
“나도 갈래.”
“여기에 남아, 제인아. 그렇게 찾던 나비의 메시지를 네 눈으로 확인해야지.”
재러드 리는 순순히 규정 집행부를 따라가기로 했다.
국제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멤버가 재러드 리와 동행하게 될 것 같았다.
“세상에······ 소문으로 들은 것보다 더······ 그분들이 환몽 리스트에도 이름이······.”
디바이스로 환몽 리스트를 확인한 권제인의 동요는 엄청났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그녀를 돌보기 위해 두세 명이 남고, 나머지는 다 이번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으윽. 사인을, 적어도 악수를 청하고 싶었는데······.”
“가자.”
정 사원으로 추정되는 규정 집행부 인물이 나와 권제인을 보며 부들거렸지만, 윤 대리에게 바로 끌려갔다.
정 사원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행동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게임 속에서 재러드 리가 환몽 게이트 일당과 엮였다는 묘사는 전혀 없어.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홍규빈을 통해서 재러드 리 건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
규정 집행부가 사라진 후.
모두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30대의 황호가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군. 그래도 이쪽의 계획은 변함이 없다. 결과적으론 권제인의 동행이 몇 명 줄어든 것뿐이니까.”
“음음,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 집에 가면 안 돼? 불길한 예감이 드는 데다 황호가 있으니까 더 여기 있기 싫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토족의 우두머리, 옥토연이 등장했다.
30대 버전의 황호가 짜증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싫으면 꺼져. 계약 기간을 일주일 줄여 준다는 것도 무효다.”
“아! 그랬지! ······으으, 나 이제 은호의 후예들 만나고 싶은데.”
옥토연은 징징거렸지만 어쨌든 남을 생각인가 보다.
대충 옥토연의 의사를 확인한 황호가 권제인을 돌아봤다.
“······‘길’을 여는 건 권제인 너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내가 해야겠군.”
“죄송합니다. 지금은 힘이 안정되지 않아요.”
팀원의 어깨에 기대선 권제인이 파리한 얼굴로 말했다.
힘을 쓰기는커녕 잘못하다간 이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다.
‘권제인은 그 환몽 게이트에 연루된 인물과 관계가 있는 건가.’
파아아―!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힘을 개방한 황호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휩싸였다.
“접족이 지정한 포인트까지 묶어 내마.”
황호의 손짓에 땅의 형태가, 호숫물의 위치가 변해 갔다.
쿠구구구―.
나비령이 지정한 좌표가 드러날 때까지 땅과 호수의 형태가 변한 후.
이 과정을 지켜보던 이들의 입에서 경악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건, 이계의 틈이잖아······!”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