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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06화 (10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6)

돈족의 수장, 저강렵은 심기가 불편했다.

마족과 거래는 마쳤지만 그들의 태도가 저강렵 기준에서는 몹시 불손했던 탓이다.

“내가 누군지 알고 말이야, 엉! 그 마족 놈들한테서 기술을 뽑아 먹고 빨리 처치해야 할 텐데!”

저강렵은 화가 치솟아, 손에 쥐고 있던 쇠스랑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화풀이를 했다.

최근 상보심금파의 아홉 개의 이빨이 무뎌진 것 같았다.

무기 주제에 제 뜻대로 안 되는 게 저강렵을 열 받게 만들었다.

둔해진 상보심금파 탓에 그 보이지 않던 침입자를 놓쳐 ‘그분’의 총애가 흐려진 것 같아 더욱 기분이 나빴다.

‘뭔가 꿰뚫은 감각은 있었는데 말이야. 피 냄새도 안 나고 비명도 안 들렸지.’

저강렵은 답이 안 나오는 생각을 멈추고, ‘그분’의 총애를 되찾기 위해 명령받은 일을 떠올렸다.

조용히 처리하는 암살은 저강렵과 맞지 않지만, 무대는 바다 위.

저강렵의 독무대였다.

거기에 조건도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죽이진 못해도 일선에서 물러날 만큼 중상을 입히면 성공이라고 했지. 크흠! 상으로 그놈 곁에 있는 나비를 내달라고 해 볼까.”

미물, 접족은 지금 다른 12지 수장 곁에 있지만 ‘그분’이 명을 내리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접족은 언제나 미물인 제 주제를 파악하고 몸을 낮춰 영물인 저강렵을 귀하게 대접했다.

정보수집능력도 우수하고 주제 파악도 잘하고 아름다운 접족.

저강렵은 접족을 손에 넣고 싶었다.

파아아…….

저강렵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의 사고가 진행될수록 손에 들린 상보심금파의 예기가 아주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    *    *

황명호 대저택을 나서서 다시 돌아온 내 기숙사 방.

선상 파티가 시작되기 전까지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주최 측에서 나와 맹효돈한테 에어 택시를 보내 준다고 했으니까…… 일단 기다리자.’

기다리는 사이, 최후의 확인을 하기로 했다.

‘이번 건에는 이 아이템이 필요하겠지.’

만우절에 부정 입학자들의 이능을 지우기 위해 사용한 ‘부(富)와 생명의 무게’.

그 아이템을 사용할 때 나타난 순백의 곰 가죽을 뒤집어쓴 천칭 위에 선 자.

그자가 내게 넘겨주고, 아케아가 유효기간이 있다고 언급한 그 아이템.

‘거스름돈’을 아이템창에서 꺼냈다.

‹아이템 정보를 열람합니다.›

[아이템명] 지우는 자의 거스름돈

[형식] 소모품

[희귀도] SSR+++

[효과] 일정 희귀도 이하의 가능성을 지운다.

[설명]

‘부(富)와 생명의 무게’의 부산물.

천칭 위의 ‘지우는 자’가 보인 호의.

사용 가능한 기간: 앞으로 일주일.

간단히 생각하면 ‘부(富)와 생명의 무게’의 경량화, 열화 버전의 아이템이다.

유효기간도 있고, 효과도 UR―급의 부(富)와 생명의 무게에 비하면 미묘하다.

‘그래도 내가 가진 패 중에선 이 상황에 가장 잘 맞아. 유효기간도 있고.’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연락이었다.

메시지창을 열어 보니, 마침 연락해야 할 인물이 내게 메시지를 보낸 게 보였다.

[홍규빈] 의신아, 체스대회 우승 축하해! 이상한 진족하고 엮이진 않았지? ^^;

이상한 진족…….

홍규빈은 아마 서족의 수장 꾀돌이를 말하는 거겠지만, 단순히 진족 범위에서 생각하면 난 이미 늦었다.

같은 반에 학생 흉내를 내는 이상한 호족 수장이 있으니까.

그 주제는 대충 얼버무리자.

[나] 감사합니다.

[나] 부탁드릴 게 있어요.

내 메시지를 홍규빈이 읽었다는 기독 표시가 떴지만, 대답은 몇 초 동안 오지 않았다.

잠시 후, 긴 메시지가 한 번에 올라왔다.

[홍규빈] 의신아, 오늘 토요일이야. 구름도 없고, 예보된 날씨 상황도 좋고, 이계 출현 빈도도 안정되어 있고. 놀고 쉬기 딱 좋은 날이지. 최근에는 일이 많아서 잠도 못 자고 계속 야근해 왔어. 아직 처리할 사안이 많아서 출근은 하지만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쉴 예정이야^^!

[홍규빈] 의신아…… 그냥 밥 사 달라, 아이템 사 달라 이런 거 부탁할 거라고 해 줘……!

홍규빈이 곧 닥쳐올 주말 야근을 예감하고 정신없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말해 두지 않으면 플레이어 협회는 뒷수습에 더 애를 먹고, 홍규빈의 야근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홍규빈을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말했다.

[나] 시간 조정할 수 있으시면 지금 주무시고 밤샘하러 출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홍규빈]

메신저 오류인가?

홍규빈의 메시지는 공백으로 떴다.

몇 초가 흐르자 홍규빈이 메시지를 새로 입력해 왔다.

[홍규빈] ……그래

[홍규빈] ㅠㅠ

홍규빈은 내 설명을 듣고 수긍했지만, 기운이 없어 보였다.

홍규빈이 투정을 부리기 전에 메시지창을 빠져나와 다음 메시지를 작성했다.

[나] 안녕하세요, 지금 시간 되세요?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답변은 빨리 왔다.

[옥토연] 응? 은인이잖아! 안녕!

메시지를 보낸 상대는 석촌호수에서 디바이스 코드를 교환한 옥토연이었다.

[나] 호족으로부터 연락받으셨나요?

[옥토연] 연락받긴 했는데에…… 오늘 TC 나이츠 경기 보러 가려고 준비 다 해 놨었는데, 의욕이 안 생긴다!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설마 정말로 야구 경기나 보러 갈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 옥토연이라면 그럴 법했다.

황지호한테 연락해서 족치러 가라고 해야 하나.

[옥토연] 은인아, 그런 거 가지 말고 그냥 빼먹고 야구나 보러 가지 않을래? 너랑 같이 가면 토윤이 언니도…… 악! 언니! 잠깐, 그게 아니라.

옥토연은 음성 입력으로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나 보다.

어쩐지 떡을 먹으며 소파에 드러누워 헛소리하다 등짝을 처맞는 옥토연이 연상되었다.

[옥토연] 은인님, 저희는 호족의 제안대로 움직일 예정입니다. 나중에 지금 사용 중인 디바이스 코드로 연락하면 될까요?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는데.

혹시 토윤 언니라는 토족이 입력 중인가.

[나] 네, 부탁드립니다.

[옥토연] 건투를 빕니다, 은인님.

이걸로 보내야 할 메시지는 전부 보냈다.

이번엔 어제 쌓인 축하 메시지를 확인하기로 했다.

수많은 메시지에 감사 인사를 하고 있을 때, 눈에 띄는 메시지가 있었다.

발신자는 지익회장 성시완.

[성시완] 우승 축하해! 의신아!

[성시완] 응원 가고 싶었는데 그 시간에 3학년 0반이 사고를 쳐서 지익회 소집이 걸렸어…….

[성시완] 3학년 0반 반장은 원래 안 이랬는데 왜 그럴까ㅎㅎㅎ;

3학년 0반이 또.

신문부도 3학년 0반이 띄운 공중 정원을 취재하러 가느라 응원하러 못 온다고 했지.

다음 주 월요일 부 활동 시간에 자초지종을 들어 보는 게 좋겠다.

그 뒤로 눈에 띄는 건 주수혁이 보낸 메시지.

축하 인사 뒤로 부탁을 하나 덧붙여 놨다.

[주수혁] 선착장 도착한 다음에 에어 택시 5분 정도만 세우고 기다려 줘!

[맹효돈] 알았다

앞뒤 묻지 않고 일단 알았다고 하는 게 맹효돈다웠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나] 그래.

[주수혁] 고마워 ㅎㅎㅎ

에어 택시에서 파는 프레첼이라도 먹고 싶어졌나?

다음은 우리 반의 민그린 화백이 보낸 메시지였다.

[민그린] 축하해, 다음에는 직접 응원 가고 싶다.

다음 체스대회 때는 송대석과 민그린, 두 사람 모두 응원 와 줬으면 좋겠다.

그 뒤로 받은 축하 메시지를 꼽자면, 유상훈이 보낸 ‘ㅊㅋ’라는 자음 두 개.

열 줄이 넘는 장남욱의 축하 및 잔소리.

2학년 0반 금찬왕찬 콤비가 보낸 이능 폭죽 스탬프들.

박승현의 간결한 축하 메시지.

염준열의 축하 인사 및 체스 대국 요청.

내 제자는 배포도, 향상심도 남달랐다.

‘힘내자.’

모든 메시지를 읽고 보관 처리한 후, 기숙사 로비로 향했다.

맹효돈과 만나기로 한 기숙사 로비.

주말이라 사람이 적어, 맹효돈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느루에서 맞춘 옷과 구두를 착용한 맹효돈.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 눈에 띄긴 했지만, 옷보다 머리 쪽에 시선이 갔다.

‘완벽하게 세팅했잖아.’

매일 산만하게 흐트러져 있던 짧은 머리카락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저걸 맹효돈이 했다고?

맹효돈이 헤어숍에 갔을 리도 없는데.

좀 심각한 상태면 갖고 온 왁스라도 대충 발라 주려 했으니까 다행이긴 했지만.

“의신이도 놀랐지?”

“놀란 것 같네.”

내 뒤쪽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권레나와 한이였다.

“1시간 전에 레나랑 간식 사 먹으러 가다가 마주쳤어.”

“효돈이가 엄청 멋진 턱시도 차림으로 서 있는데 머리는 조금 엉망이라서.”

맹효돈은 1시간 전부터 기다렸나.

보나 마나 파티라는 말에 긴장해서 그랬겠지만.

권레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계속 말했다.

“그래서 헤어드라이어랑 왁스 가지고 나와서 가볍게 드라이해 줬어. 선배들이 공연 나가실 때 직접 드라이하는 걸 몇 번 봐 뒀거든. 생각보다 잘돼서 다행이야.”

“레나는 손재주가 좋아.”

“…….”

맹효돈은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맹효돈이 괜찮다고 해도 안 된다며 무표정으로 길을 막았을 한이와, 웃는 얼굴로 머리를 만졌을 권레나가 떠올랐다.

“의신이도 파티에 간다고 하길래 기다렸어. 의신이 머리도 엉망이면 붙잡으려고 했는데. 음, 괜찮아 보이네.”

이전 세계에서 면접을 대비해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할 일도 있었다.

헤어 디자이너만큼의 실력은 없지만.

“뒷머리 조금 삐쳤어.”

“어, 진짜다. 의신아, 앉아!”

한이의 지적에 결국 나도 기숙사 로비 소파에 앉아 권레나에게 스타일링을 받았다.

곧 에어 택시가 오기로 한 시각이 가까워져, 두 사람과 헤어졌다.

“그럼 둘 다 잘 갔다 와!”

“학교에서 봐.”

“그래, 고마워.”

“……안녕.”

정문에 정차되어 있는 에어 택시에 타면서 맹효돈에게 물었다.

“고맙다고 인사했어?”

“했어.”

남고생 맹효돈도 천천히 우리 반에 적응 중인가 보다.

*    *    *

인천항.

자가용 선박 전용 터미널 앞.

다양한 디자인의 유람선과 페리, 크루즈들이 정박되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하늘에서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으니, 어느덧 에어 택시가 지상으로 정차했다.

착륙하고 주수혁과 약속한 대로 조금 기다리던 중.

“안녕, 의신아, 효돈아. 잘 왔어.”

1분도 지나지 않아 주수혁이 나타났다.

턱시도 위에 얇은 테일러 재킷을 걸치고 있는 주수혁.

재킷 사이로 보이는 샌드핑크의 타이가 눈에 띄었다.

“어, 너 이거 그때 맞춘 옷 아니잖아.”

“하하하. 사정이 있어서.”

주수혁은 웃으며 에어 택시에 올라타더니, 무인 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었다.

“뭐냐, 커피 마시려고 에어 택시 세우라고 한 거야?”

주수혁은 말없이 재킷을 벗고 자신이 입고 있는 턱시도에 커피를 부어 버렸다.

“미쳤어!”

맹효돈이 놀라 소리 질렀지만, 주수혁은 해맑게 웃으며 턱시도에 얼룩이 크게 지도록 골고루 커피를 쏟아 버렸다.

“하하하! 실수로 커피를 쏟았네. 갈아입어야겠다. 잠깐 자리 좀 비켜 줘.”

“어디 아프냐, 주수혁?”

맹효돈은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했지만, 주수혁은 마냥 기분이 좋아 보였다.

주수혁에게는 이 턱시도를 입기 싫은 사정이 있나 보다.

‘주수혁은 선상 파티에서 오혜지와 이상한 소문이 날 거라며 걱정했는데…… 그것과 관련 있나.’

그냥 미친놈 같아 보이는 주수혁의 행동.

그걸 본 맹효돈은 주수혁이 정말 미친 게 아닌지 걱정하면서도 자리를 비켜 줬다.

주수혁은 에어 택시에 블라인드를 걸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가 새로 입은 옷은 우리와 함께 느루에서 맞춘 그 턱시도였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그 옷을 입으려고 커피를 쏟은 거냐?”

“비슷해.”

주수혁은 쇼핑백에 담긴 옷에 남은 커피를 다 쏟으며 말했다.

그 덕에 하얀 셔츠와 샌드핑크색 타이가 완전히 커피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그는 특히, 타이 쪽을 노려 철저하게 염색했다,

‘……샌드핑크색이 문제인 건가?’

쇼핑백은 방수 타입이라 커피가 밖으로 새진 않았다.

역시 주수혁은 타이틀 히어로답게 준비성이 좋았다.

“잠깐 여기 들렀다 가자!”

“무인 우편함? 여긴 왜.”

“하하하, 이걸 들고 다니기도 그렇고.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세탁해 오거나 복구할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입기 싫었냐.”

주수혁은 커피에 절인 턱시도가 담긴 쇼핑백을 무인 우편함으로 배송하는 철저함까지 보였다.

배송지는 은광고 선도부실 앞.

배송비까지 치른 주수혁은 상쾌한 목소리로 말하며 앞장서 승선했다.

“자, 가자!”

지기 시작한 해.

그 속에서 조명을 밝혀 눈부시게 빛나는 TC 소유의 크루즈선.

선박의 이름은 포세이돈의 딸이자, 파도와 물결의 님프의 이름에서 따온 ‘키모폴레이아(Cymopoleia)’.

총톤수 약 5만 톤에 길이 약 200m, 높이는 30m의 초대형 여객선이다.

이곳이 오늘 선박 파티를 치를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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