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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08화 (10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8)

푸른 벨벳과 이계 광석으로 물결을 이미지화한 인테리어의 중앙 메인 다이닝 홀.

키모폴레이아를 상징하는 바다 님프의 청옥 조각상 아래, 하얀 제복을 입은 선장과 선원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떤 인사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지만, 주수혁이 먼저 나섰다.

선장과도 아는 사이였는지 웃으며 짧은 대화를 나누는 주수혁.

주수혁에 이어 우리도 인사를 마치자 우리에게 배정되었던 버틀러가 나타나 자리를 안내했다.

“처음 보는 메뉴도 있는데. 어떻게 고르냐.”

“크루즈선 디너의 꽃은 해산물이라니까, 다 그쪽으로 시키는 게 좋아. 리뷰를 보니까 특히 바닷가재랑 새우가 나오는 메뉴를 추천하던데.”

“뭐야, 둘 다 해산물 나오는 코스도 있는데.”

“둘 다 시킬 수도 있어. 어차피 다음 요리는 먹는 속도에 맞춰서 준비해 주니까.”

“그럼 다 시켜도 되냐.”

“나도 디저트는 메뉴에 있는 거 다 먹을 생각이야.”

이번 크루즈 항해를 가장 즐기고 있는 맹효돈과 장남욱이 들떠서 메뉴를 골랐다.

메뉴를 보는 것만으로도 쏠리는지 도시후가 수프만을 택하고 입을 다문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 옆에서 주수혁이 조용히 서버를 불러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봉투를 준비시키는 게 보였다.

‘그런데 손님은 어떤 기준으로 배치한 걸까.’

3층의 복층 타입으로 되어 있는 다이닝 홀.

우리가 안내받은 1층은 턱시도와 드레스, 혹은 한복을 착용한 이들이 많은 걸 보니 정식 손님인 것 같았다.

3층은 제복을 입은 이들이 보이는 걸 보니 선원 전용일 테고.

‘2층에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캐주얼하게 입었네.’

홀로그램 메뉴판에서 시선을 떼고 2층을 쳐다보니, 주수혁도 내 시선을 따라 2층을 바라보곤 중얼거렸다.

“2층에 온 건 기자들일 거야.”

“기자? 그냥 선상 파티를 취재하는 것치고는 많아 보이는데.”

말을 하던 주수혁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주오와 TC의 합동 프로젝트 공개를 여기서 한대. 옷을 버리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합동 프로젝트?”

대충 눈치를 보니 주수혁은 여기에 와서 프로젝트의 존재를 알았고, 도시후는 아예 듣지 못한 모양이다.

‘주수혁이 옷에 신경 쓰는 걸 보니, 오혜지와 옷을 맞춰 입게 된 것 같은데. 이만한 기자들 앞에서 두 사람이 그렇게 입었으면 소문이 아니라 기사가 났겠지.’

순정남 주수혁이 표정을 못 숨기고 어두운 얼굴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 건 보통 프레젠테이션 하면서 발표하지 않아? 데이터 센터 착공 계획이나 1GG(1Gifted Generation) 상용화와 서비스 플랜 공개할 때도 그렇게 발표했던 거 같은데.”

장남욱의 말에 주수혁이 표정을 가다듬곤 말했다.

“오늘 이 자리는 잠실 야구장 사건이 부상자 없이 무사히 끝난 걸 축하하고, 싸워 준 플레이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잖아?”

“그렇지. 주오 드래곤즈랑 TC 나이츠, 야구위원회의 관계자들도 엄청 온 것 같고.”

“새 프로젝트는 잠실 야구장 사건이랑 관련이 있어서…… 기획팀과 홍보팀에서 여기에서 발표하는 게 가장 극적일 거라고 판단했나 봐.”

주수혁은 거기까지만 말했다.

아직 엠바고가 걸려 있는 모양이다.

‘주오 그룹과 TC 그룹의 합동 프로젝트? 게임에서는 없던 내용인데.’

게임 속에선 잠실 야구장 사건을 계기로 TC 그룹의 차기 총수는 일선에서 물러나고, 두 그룹의 사이는 점점 틀어졌다.

합동 프로젝트가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

‘잠시 후 발표될 모양이니, 일단 코스 요리부터 즐길까.’

곧 주문한 대로 코스 요리가 차례차례 도착했다.

발사믹 올리브오일 샐러드.

키조개관자 버터구이.

통새우 그릴구이.

모차렐라 치즈를 올린 바닷가재.

장남욱과 맹효돈은 위의 메뉴 말고도 날치알 크림소스 리소토와 채끝 등심스테이크도 먹었다.

잘 먹는 두 사람을 보니 배가 절로 불렀지만, 도시후는 먹방을 보고 점점 속이 안 좋아지는지 허무한 개그도 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디저트가 나올 때쯤이었다.

땡―!

맑은 종소리가 다이닝 홀 전체를 가볍게 울렸다.

희미하게 이능파가 실린 소리.

일반인들은 이능파를 느끼진 못해도 ‘소리가 맑게 잘 울리네’ 정도로 생각할 법한 소리였다.

소리의 근원지는 홀 가장 안쪽의 스테이지 위였다.

비즈니스 정장 차림의 남성이 종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주수혁의 전속 비서, 김철. 역시 이 자리에도 왔구나.’

게임 속에서 NPC로 등장했던 인물, 김철.

주수혁이 게임 시작 전 시점에서 구했던 이들 중 하나였다.

“식사 중 죄송합니다. 앉아서 편하게 들어 주십시오.”

김철은 짧게 말하고는 스테이지 아래로 내려갔다.

무대 아래에서 양 그룹의 경호팀과 무언가를 상의하는 김철.

김철은 경호팀 사이에 섞인, 유일하게 턱시도를 입은 인물에게 짧게 묵례하고 자리를 떴다.

‘저 턱시도를 입은 사람은 주수혁의 육촌 형인 거 같은데.’

갈라 디너를 즐기는 대신 저기에 섞여 있는 주수혁의 육촌 형.

게임에서도 워커홀릭으로 묘사됐었는데, 여기서도 변함없나 보다.

팟―!

메인 홀의 조명이 한순간 전부 꺼졌다.

곧바로 스테이지 양옆의 계단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주오 그룹과 TC 그룹의 차기 총수가 각각 무대 위로 올라왔다.

무대 정중앙에서 만나 친근하게 악수를 하는 두 차기 총수.

2층 발코니석에 있던 기자들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셔터음이 들려왔다.

‘이제 그 프로젝트가 발표되나 보네.’

곧 TC 그룹의 차기 총수가 마이크를 건네받아 간단한 인사를 한 후, 주오 그룹의 차기 총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주수혁의 큰아버지인 차기 총수는 어딘지 주수혁과 닮아 보였다.

파앗―!

마이크가 넘어가자 차기 총수들의 뒤로 거대한 홀로그램 화면이 떴다.

화면에 보이는 건 이계의 틈과 에너미의 위협에 직면했던 어린이날의 잠실 야구장.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한 시민들의 질서 의식과 플레이어들의 헌신에 찬사를 보내는 내용의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졌다.

그러다 화면이 사라지고, 주오 그룹 차기 총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죽 고민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문구가 하나씩 떠올랐다.

[1GG 무상 기술 지원을 통한 더 안정적이고, 빠른 이계 경보 시스템 확보]

[예비 플레이어 장학 제도를 통한 플레이어 재원 확충]

[국내 10개 구단의 9개 야구장 전역에 SR++급 결계 구축]

[전국 주요 지역, 2만 명 이상의 대형 수용 시설 결계 구축]

그 외에도 문구는 계속 떠올랐다.

사전에 알고 있었던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놀라 웅성거렸다.

저기에 쓰여 있는 내용을 전부 실현하려면 수십조 단위로 예산이 필요해 보였으니까.

“주오와 TC, TC와 주오가 뒤에 서 있겠습니다. 모두가 함께라면 새롭게 닥칠 이계의 위협도 이겨 내리라 믿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2층에 서 있던 기자들이 발코니에서 몸을 빼고 질문을 던지거나 1층으로 허둥지둥 뛰어가는 게 보였다.

기자들이 홍보팀의 안내를 받아 프레스룸으로 사라질 때까지 소란스러웠다.

‘흑막이 저 두 차기 총수를 처치하고 싶을 만하네.’

특히 SR++급 결계가 눈에 띄었다.

전국에 수만 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대피소가 생기는 셈이니까.

‘SR++급 결계라면, SR+++급의 에너미가 와도 꽤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어. 기존의 R+++급 결계와 비할 바가 못 돼.’

기존에 정부나 협회가 운영하는 대피소는 규모도 수도 적어 말이 많았는데.

팟!

다이닝 홀의 조명이 다시 켜지고, 각 테이블에 디저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좋은 소식을 들은 직후라 그런가.

커피가 토핑된 에클레르 오 카페가 참 달았다.

*    *    *

달맞이 칵테일파티까지는 시간이 있어, 우리는 우선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쌍검 사범님이 친구분이랑 같이 오셨대. 잠깐 인사드리러 갔다 올게!”

중간에 디바이스 메시지를 받은 주수혁이 자리를 비웠다.

객실로 향하던 나, 맹효돈, 장남욱, 도시후.

우리 넷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다.

‘술 냄새가 여기까지 나네. 와인을 몇 잔이나 마신 거지.’

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데도 알코올 냄새가 났다.

엮이기 싫어서 길을 비켜 주기 위해 옆으로 물러나니,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쪽을 보는 두 사람.

갑자기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며 두 남녀가 낄낄거렸다.

“이게 누구야. 선박왕의 아드님이시잖아.”

“TC도 참 안됐어. 강철의 쐐기 같은 플레이어도 있는데, 어쩌다가.”

“배도 못 타는 결함품.”

갑자기 저게 무슨 개소리인가.

직접 이쪽에 대고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듣고 기분 나빠지기에는 충분했다.

‘도시후가 타깃이구나.’

이쪽은 어린 데다, 지금 이 자리엔 주수혁도 도원우도 없으니 노릴 만하겠지.

거기에 먼저 숙이고 길을 비켜 줬으니 술기운에 호기가 생기나 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도시후한테 이렇게까지 말해? 도시후의 입지가 그렇게 안 좋은가.’

도시후는 계속 무표정했지만, 뒤늦게 알아들은 맹효돈과 장남욱은 울컥한 얼굴을 했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뭔가 말을 하려 할 때.

“시후야, 안녕.”

나타난 사람은 은광고 3학년 선도부장 오혜지,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였다.

오혜지가 두 사람을 제지하듯 둘의 진로를 방해하며 막아섰다.

샌드핑크의 티 랭스 드레스를 입은 오혜지는 어딘가 늠름해 보였다.

‘도시후와 오혜지가 아는 사이였나 보구나.’

오혜지는 사진으로 찍어 둬도 문제없을 만큼 사교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네가 시후 친구인 남욱이지? 아, 우리 학교 후배인 의신이랑 효돈이도 있네. 안녕.”

“안녕하세요.”

차례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지만, 도시후에게 시비를 건 두 남녀는 의도적으로 무시한 오혜지.

오혜지는 ‘내게 이 아이들이 너희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어필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 일행에게 인사를 마치고 둘을 돌아봤다.

“어머! 주오건설 29주년 창립 행사에서 뵈었던 분이죠? 그때 오신 사장님 아드님하고 그 여자 친구분이신 것 같은데.”

오혜지는 그때 오신 사장님이라는 사람과 두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댔다.

방금 까 댔던 도시후 앞에서 이름이 불리니 두 사람이 긴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우리 시후한테 하는 말 보니, TC에서 부른 것 같진 않고. 주오 쪽에서는 초대장이 안 갔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분 소개로 오셨죠?”

“저, 그게…….”

직접 초대받지 않고 온 건가.

이 정도 규모의 파티가 되면 아는 사람과 함께 묻어서 오는 이들이 적지 않긴 했다.

오혜지의 말을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와서 내 친한 동생, ‘우리 시후’한테 지랄 중인 거냐.’

상황을 파악한 남녀가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그,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데 술을 좀 마셔서. 정신이 그만, 하하, 실수를……. 죄송합니다.”

“미, 미안해, 혜지야! 와인을 과하게 마셨나 봐!”

도시후에게 사과는 하지 않고, 오혜지에게 술 핑계를 대는 게 참으로 졸렬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사과는 다른 분께 받을게요. 초대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초면이나 다름없는데 상호 존댓말을 썼으면 좋겠네요.”

오혜지가 웃으며 말했지만, 내용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네가 사과해도 소용없다. 너를 이 자리에 부른 인간을 조지겠다. 그리고 친한 척하지 말아라.’ 정도로 해석되는 말이었다.

그 말을 알아들은 두 사람은 술 핑계를 댄 주제에 심신미약 상태에서 회복되었는지 정신이 번쩍 든 얼굴이었다.

“시후는 그쪽을 모르는 것 같은데, 주변에 시후 얘기 해 주시는 분들이 많나 보네요. 그쪽 회사에서도 얘기가 도나요?”

오혜지가 ‘너희 회사도 조지겠다’라는 의사를 비치자, 두 남녀는 이 말에 다시 심신미약 상태가 오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연신 고개를 숙이다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하하! 세상은 넓고 오늘도 등신은 많으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내 사람, 내 후배는 직접 챙겨야지. 시후는 뱃멀미 중이지? 어서 가 봐.”

오혜지의 포스에 압도된 우리를 두고, 그녀는 체스대회에서 만났을 때처럼 시원하게 웃었다.

“아, 나 될 수 있으면 수혁이하고 마주치면 안 되니까 잘 데리고 놀고 있어. 알았지?”

오혜지는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겼다.

오혜지도 약혼으로 엮이긴 싫은가 보다.

*    *    *

우리가 배정받은 선실, 오션뷰 스위트룸.

녹초가 되어 소파 위로 뻗은 도시후를 상대로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주수혁이 조금 화를 냈다.

“시후야, 너 왜 그걸 듣고만 있었어! 바보야?”

“바보는…… 바다의 보배!”

도시후는 뱃멀미로 죽어 가는 와중에도 허무한 말장난을 시도했다.

분위기가 또 싸해졌다.

“이 새끼는 아직 멀쩡한가 보네.”

“시후야…….”

“하하하, 어쩔 수 없어. 사관학교 들어갔을 때부터 그런 소리 듣는 건 각오했으니까. 뱃멀미도 어쩔 수 없고.”

도시후가 힘없이 작게 중얼거렸다.

“내 주변에는 자꾸 너나 원우 형이랑 싸우게 하고, 비교하려는 사람이 많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 이후, 어쩐지 서로 같이 떠들 분위기가 아니라 개별 행동을 하게 되었다.

장남욱과 주수혁은 뱃멀미로 못 움직이는 도시후 옆에 남았지만.

‘마침 잘됐어.’

처음부터 달맞이 파티 이전에 적당히 핑계를 대고 따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쿠우웅―!

예고 없이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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