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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11화 (111/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11)

“제안이 있는데.”

“또 수상하게 웃고 있군. 말해 봐.”

키모폴레이아에 탑승하기 전.

황명호의 대저택.

적호가 조사한 자료를 전부 확인한 후, 황지호와 작전을 상의할 때.

나는 호족들에게 제안했다.

“암살 계획은 저지해도 저강렵을 잡거나 죽이지는 말자. 대신 저강렵에게 한 방 먹일게.”

긴 꼬리에 해당하는 12지는 일곱.

그중 배신자가 아니라 확신할 수 있는 건 용족과 견족뿐.

후보는 서족(鼠族), 우족(牛族), 사족(蛇族), 마족(馬族), 원족(猿族), 총 다섯이나 남아 있다.

‘아직 단서가 없는데 긴 꼬리가 몸 사리게 하면 안 돼.’

내 말에 황지호는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황지호도 나와 같은 의견이겠지만, 아홉 갈래로 찢긴 적호를 떠올리면 쉽게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거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형태로 암살을 막고 싶어. 너는 직접 나서지 마.”

“저강렵은 갈래를 쓸 거다. 어떻게 암살을 막고 그 돼지 새끼에게 타격을 줄 생각이지?”

나는 내가 준비한 계획을 하나씩 말했다.

‘플레이어의 궤적’과 ‘지우는 자의 거스름돈’에 대한 설명은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그렇게 갈래를 소모하게 한 후에 상보심금파를 손에 넣을 생각이야. 그때 무장 해제된 저강렵에게도 한 방 먹이고.”

“뭐라고?”

“나한테는 사기 스킬이 하나 있잖아.”

“만물 사용을 이용해 상보심금파를 손에 넣을 생각이로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황지호가 말했다.

“그건 조의신 네가 무기를 손에 들 때 발동하는 스킬일 텐데. 무슨 수로 돈족의 수장에게서 무기를 빼앗을 거냐.”

내 계획은 이러했다.

첫째, 갈래를 최대한 소모하게 한다.

둘째, 까마귀 가면을 착용해 저강렵을 도발한다.

셋째, 방어력을 올리고 초회복 모드에 들어가는 곽경구의 광림, ‘100초의 은총’을 발동시킨다.

넷째, 그 상태에서 상보심금파의 이빨을 몸으로 받아, 그 자루를 손에 쥔다.

‘상보심금파는 저강렵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했지. 제작자인 태상노군도 같은 생각이고.’

승산은 컸다.

이 수가 통하면 흑막의 전력을 줄이고, 저강렵을 제대로 엿 먹일 수 있었다.

“생각해 둔 게 있어.”

어쩐지 이 계획을 전부 말하면 황지호가 방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세히 말하지 않기로 했다.

황지호는 내 부족한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반대하고, 백호군은 싸늘한 눈으로 응시해 왔다.

그리고 지금.

내 계획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이능독이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계획대로는 가고 있어.’

나는 고통에 익숙했다.

암세포가 신경을 자극하거나 다른 조직을 파괴하고 압박하여 발생하는 암성 통증.

말기 암 환자였던 나는 이 세계로 오기 직전, 늘 암성 통증에 시달렸다.

그 덕에 이 계획에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실행에 옮겼다.

‘예상대로 버텨 냈다. 기절하지 않았어!’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통증으로 인한 신경성 쇼크로 기절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보심금파의 이빨에 꿰뚫린 지금.

아직 내 사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곽경구의 광림, ‘100초의 은총’의 제한 시간이 다하기 전에 끝내야 해.’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도 체내의 이능파가 날뛰고, 몸 어딘가가 터져 나가고 재생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통증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팔을 움직여야 하는데, 내 팔은 평소보다 몇 배는 무거워져 있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황지호가 개입하고 긴 꼬리는 숨게 될 거다!’

그 생각을 하니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이 겨우 움직여 줬다.

간신히 자루를 움켜쥐고 나서야 드디어 웃을 수 있었다.

‹스킬 ‘만물 사용’이 발동했습니다.›

만물 사용이 발동한 순간.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파아앗―!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났을 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갈래로 인공조명 수십 개가 박살 나는 바람에 어둑어둑했던 갑판도 보이지 않았다.

상보심금파의 자루 한쪽을 잡고 있던 저강렵도 사라진 상태였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에는 나와 내 몸을 꿰뚫은 상보심금파만이 있었다.

‘파괴도, 재생도 멈춰 있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몸을 지배하던 격통도 완전히 사라졌다.

[원통하도다.]

어디선가 어렴풋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전우는 변해 버렸어.]

혹시, 이건 상보심금파가 내는 목소리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내 배를 관통한 이빨로부터 온갖 감정이 밀려들어 왔다.

굴욕, 한탄, 슬픔, 실망, 환멸, 절망, 그리고 무력감과 연민.

감정이 잦아질 때쯤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에게는 이 구치정파(九齒釘耙)를 다룰 소양이 있구나. 너는 이 무기로 무엇을 이루기를 바라느냐.]

구치정파는 상보심금파를 달리 부르는 말.

이 목소리의 주인은 상보심금파가 확실했다.

[부? 명예? 아니면, 내 옛 전우 저팔계도 원한 그 무모한 소망?]

저팔계의 소망?

저강렵이 무엇을 바란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부와 명예는 아닌가 보다.

‘내가 상보심금파로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은 많았다.

모두 중요한 일이라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지금 강력한 무기를 얻는다면, 최우선으로 하고 싶은 일은 정해져 있었다.

“눈앞에 있는 돼지를 패 주고 싶어.”

게임 속의 흑막이 벌인 일들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저강렵의 하수인, 최편득이 벌인 일들은 역겹기 짝이 없었다.

적호는 상보심금파에 몸이 꿰뚫려 일주일이나 뻗었다.

게다가 지금 내 몸을 꿰뚫은 상보심금파는 더럽게 아팠다.

패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 하핫! 그렇구나!]

내 말에 바로 답하지 않고 뜸을 들이던 상보심금파가 웃음을 터뜨렸다.

[좋다, 돼지한테 한 방 먹이자꾸나!]

파아앗―!

다시 시야가 하얗게 물들고, 저강렵과 키모폴레이아의 갑판이 보였다.

‹스킬 ‘만물 사용’의 레벨이 3에서 4로 상승하였습니다.›

풍경이 바뀐 것과 거의 동시에 시스템 음이 들렸다.

높은 희귀도의 상보심금파가 저강렵 대신 나를 택한 덕에 레벨이 오른 모양이다.

머릿속으로 상보심금파의 상세와 사용법이 흘러들어 왔다.

남은 갈래는 셋.

만물 사용의 레벨 4 성능을 시험해 볼 기회였다.

“뭐야! 갈래가 발동을 안 해!”

퍼억―!

내 속을 파괴하는 것을 멈춘 상보심금파를 뽑아 들자 자루를 쥐고 있던 저강렵이 나가떨어졌다.

“아, 아니! 이게 무슨!”

‘100초의 은총’의 적용으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해 통증은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양손으로 쥔 상보심금파를 반 바퀴 돌려 저강렵을 겨눴다.

‘상보심금파가 인간의 손에 들어가는 건 상상도 못 했겠지.’

선수필승.

저강렵이 대응하기 전에 곧바로 갈래를 날렸다.

콰드드득―!

“끄아아악!”

상보심금파의 이빨이 저강렵의 복부를 꿰뚫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고통과 연이 없는 생활을 해서인가.

저강렵이 돼지 멱따는 비명을 질렀다.

“첫 방은 그의 몫이야.”

적호가 맞은 그 아홉 갈래가 아닌 게 아쉽지만, 첫 방은 적호의 몫으로 해 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건 내 몫이다!”

나는 갈래 하나를 더 사용해 저강렵의 몸을 헤집었다.

콰콰콰―!

이빨 끝에서 이능파가 터져 나왔다.

이능파의 흐름에 따라 저강렵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그러나 내가 저강렵의 몸에서 상보심금파를 뽑아 든 이후에도, 저강렵은 두 발로 서 있었다.

‘나처럼 회복 능력을 사용해 버틴 것도 아닌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해 줄 만해.’

내가 아는 서유기의 저팔계라면, 구름을 불러 꽁지 빠지게 도망쳤을 거다.

그러나 저강렵은 흉흉한 살기를 뿜으며 서 있을 뿐.

“퇴각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내, 내가 누군지 알고 하는 짓이냐!”

“당연히 알고 있어, 저강렵.”

피를 토하면서도 기세가 죽지 않은 저강렵.

어떤 의미로는 성장했다고 봐야 하나.

그래도 이 배 위에 저강렵을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죽일 수도 없고. 잡아갈 수도 없고. 내버려 둘 수 없고. 그러면 남은 길은 하나네.’

전직 천봉원수인 저강렵이다.

바다에 대충 던져 놔도 살아남을 거다.

“그럼 내쫓아 줄게.”

나에게는 아직 하나의 갈래가 남아 있었다.

“꺼져.”

콰콰콰콰―!

여덟 번째의 갈래가 저강렵을 바다 저편으로 날려 버렸다.

저강렵은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나를 노려봤다.

나는 저강렵이 완전히 시야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까마귀 가면 뒤로 수상하게 웃어 주며 마주 노려봐 줬다.

‘끝났다.’

예비로 갈아입은 옷이 너덜너덜했지만, 옷 틈새로 드러난 배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카드화시킨 상보심금파도 내 손안에 남아 있었다.

‘이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네.’

옷을 다시 턱시도로 갈아입고 이계 공략에 합류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감추고 선내로 돌아가려 할 때.

휙―!

기척 없이 나타난 무언가가 내 몸을 낚아채 근처에 있는 선실로 끌고 갔다.

저항하기도 전에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쾅!

고개를 드니, 아주 불쾌해하는 얼굴을 한 황지호가 보였다.

“그런 짓을 하려고 오지 말라고 한 거냐.”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황지호가 더 화낼 것 같았다.

어떻게 말을 돌릴까 고민하던 때였다.

“은인아! 아직 은혜도 못 갚았는데 미쳤어? 죽고 싶었어? 어차피 인간은 금방 죽잖아! 그러다 죽는다!”

옥토연의 걱정인지 저주인지 모를 깨방정이 들려왔다.

월궁계도의 출력을 올린 탓에 두통으로 고생 중일 줄 알았는데 아주 멀쩡한가 보다.

앞으로도 월궁계도로 자주 부려 먹어야겠다.

“토연아, 마지막 말은 지금 하기엔 부적절한 것 같은데.”

“아닌데? 적절한데? 얘 죽으려고 날뛰었거든? 인간은 배 뚫리면 금방 죽잖아! 토윤 언니도 잘 알면서 왜 그래! 은인이 죽는 거 보고 싶어? 은인이 죽는다고!”

옥토연이 붉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징징거렸다.

차분한 목소리로 옥토연을 타이르는 진족이 옥토윤, 대화에서 몇 번 언급된 토윤 언니인가 보다.

계속 내가 죽는다고 연호를 하는 옥토연.

결국 황지호가 깊이 빡친 얼굴로 한마디 했다.

“닥쳐, 망할 달토끼.”

“안 닥칠 건데? 싫은데? 너나 닥치든가!”

“닥치게 해 주지. 조의신보다 먼저 명계에 보내 주마.”

옥신각신하는 호족과 토족의 수장.

둘을 내버려 두고 옥토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은인님, 키모폴레이아 내부의 정보 조작을 완료했습니다.”

옥토윤이 내 모습이 지워진 영상 기록 섬네일을 홀로그램으로 보여 주며 말했다.

이들에게는 정보 조작과 모니터링, 또 만약을 위해 선내에서 대기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자연 이능파로 인한 기록 기기의 장애는 흔한 일이야. 이 정도면 괜찮겠지.’

옥토윤의 설명을 듣던 중, 디바이스에 플레이어SAT―K가 보낸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계 공략 종료 안내.]

내가 합류하기 전에 전부 클리어했나 보다.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과 그 일행은 유능했다.

메시지를 확인한 옥토윤이 정중히 인사해 왔다.

“저희는 먼저 하선하겠습니다. 좋은 여행 되시길.”

“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두 수장은 싸우기 바빠 보여 옥토윤에게만 인사하고 나가려 했지만.

“조의신…….”

“은인아…….”

어느 사이에 싸움을 중단한 황지호와 옥토연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둘 다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무시하고 이동했다.

더 지체하면 내 일행이 나를 찾으러 올지도 몰랐다.

‘어쨌든 무사히 끝났다.’

다시 흑막의 수를 막아 내고, 저강렵을 패 줬다.

그리고…….

‘상보심금파를 손에 넣었어.’

내 손에는 카드화된 상보심금파가 들려 있었다.

아이템 카드의 테두리 색을 보니 UR급이었다.

‘자아를 가진 상보심금파가 내 말을 어디까지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흑막의 손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해.’

상대는 강력한 피스를 하나 잃었으니, 내가 둘 수 있는 수가 늘어났다.

배의 후미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    *    *

바다로 내쳐진 저강렵은 즉시 구름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 봐도 오지를 않는 구름.

그 탓에 저강렵은 갈기갈기 찢긴 몸을 억지로 움직여 뭍까지 헤엄쳐야 했다.

고통을 참고 다다른 뭍은 땅이라기보다는 암초 더미에 가까운 무인도였다.

초라한 땅덩어리의 상태가 마치 저강렵 자신의 신세 같았다.

저강렵은 분노에 차 허공을 향해 일갈했다.

“감히, 감히……! 죽여 버리겠다! 까마귀 가면! 그 고물 쇠스랑도 박살을 내 주겠어!”

저강렵이 디바이스로 부하를 호출하고, 씩씩거리며 자갈이 섞인 바닥에 드러누웠을 때였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진족이 달을 등지고 저강렵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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